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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메그단 성벽에서 바라 본 베오그라드 전경>
“베오그라드. 처음 이 도시 이름을 지은 것은 정복자 오스만투르크 인입니다.
왜 그들은 도시를 ‘베오 그라드(하얀 도시)’라고 불렀을까요? 그건 처음 이 도시에 쳐들어왔을 때
요새가 하얗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날이 서서히 밝아옵니다. 때는 한창 가을이라 새벽 기온이 꽤 쌀쌀합니다.
급격히 내려간 기온 때문에 강의 수온과 차이가 생기죠.
그 때문에 강의 수면에서는 우윳빛 안개가
피어 올랐습니다. 하얀 안개에 휩싸인 도시는 때마침 밝아온 태양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발합니다.
그 아름다움에 터키 병사들은 전의를 잃고 말았죠. 그날의 습격은 중지됐습니다.
이리하여 이 도시는 베오그라드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하얀 도시도 결국엔 터키의 손에
함락되었지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일본의 유명한 수필가 요네하라 마리가 어린 시절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급생 소녀 3명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 '프라하의 소녀 시대' 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예전에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기회가 닿으면 베오그라드엔 반드시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요네하라 마리가 그린 세르비아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그에 얽힌 주인공의 사연도 인상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동경했던 세르비아에 얼마 전 다녀왔습니다. 불가리아에 취재 가는 길이었는데
마침 세르비아가 불가리아로 가는 방향에 있어서 부다페스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세르비아에 도착,
하루 동안 도시 구경을 하고 다시 그날 야간 열차를 타고 불가리아로 향했습니다.
세르비아에 도착하자마자 공중 화장실에서 대충 얼굴을 씻고 막바로 찾아 간 곳은
칼레메그단 공원입니다,
앞서 소개한 '프라하의 소녀시대'에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베오그라드는 주변의 침략으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는 곳입니다.
이 도시는 사람이 살기 시작한 기원 전 3세기부터 오늘날까지 2300년 역사를 통해
40번이나 파괴되고 다시 지어지길 반복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민족의 침략에 대항해 높은 요새와 성벽을 쌓았는데,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
바로 지금의 칼레메그단 공원인 것입니다.
공원 안엔 군사 박물관과 수 많은 전쟁을 기념하는 승전비, 기념 동상 등이 있는데
그 모든 볼 거리를 제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역시나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만나는 구릉 위에
높이 솟은 성벽입니다.
이곳에 올라오면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베오그라드가 한눈에 들어오는 성벽>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도시는 아름다웠습니다.
햇빛 좋은 맑은 날씨였지만, 강 수면 위엔 물안개가 끼어서 강을 투명하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 고향 베오그라드의 모습을 반 친구들에게 근사하게 소개했던
구 유고연방 출신 소녀 야스나가 30여년이 지난 후, 옛친구를 찾아 세르비아까지 온
저자 요네하라 마리를 데리고 가 구경시켜 준 곳이기도 합니다.
"절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합해지면서 생긴 예각지가
무너져가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성벽 건너편으로는 구시가지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는 기복 있는 거리 풍경이 보인다. 더 멀리로는 한적한 농촌 지대가 펼쳐져 있다."
라는 요네하라 마리의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는 풍경이었습니다.
그 분위기를 미흡한 사진 실력으로 다 담아올 수가 없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사진으로 보면 잘 느껴지지 않지만 성벽이 높은데다 아래가 꽤 가팔라 구경을 하다 자칫 떨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성벽 주변엔 보초가 관광객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공원은 상당히 넓어서 자세히 구경하려면 한 나절 꼬박 걸릴 것 같았는데
한가하게 공원을 산책 나온 시민들, 아기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 현장학습을 온 듯한
어린 아이들도 많더군요.
공원에서 서양 장기인 체스를 두고 있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자체가 체스판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장기알은 집에서
가져오나 봅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선 노인들이 체스를 두고 주변에선 이래저래 훈수를 두고 있었습니다.>
공원엔 여러가지 먹을거리도 팔고 있었는데 전통 과자를 파는 노점상도 보였습니다.
다른 과자들은 눈에 익은데 왼쪽 아래편에 있는 빨간 사과는 처음 보는 거라서 사 먹어 봤습니다.
빨간 사과는 마치 아이스바처럼 손잡이가 달려 있고, 표면이 코팅을 한 것처럼 빨간 형광색으로
반질반질 윤이 났는데 정체는 깎은 사과에다가 색소를 입힌 빨간 설탕 굳힌 것을 두껍게 입혀 놓은 것이었습니다.
달콤한 설탕은 입 안에서 사각거리고, 설탕 껍질을 다 먹고 나니 새콤한 사과 맛이 느껴지면서
참 맛있더군요.

<저 빨간 사과, 보기만 해도 꽤 탐스러워보이지 않나요?>
공원 한켠에선 사진전도 열리고 있었는데 세르비아 곳곳의 자연 환경과
민속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인상적인 사진들을 몇 개 카메라로 담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할머니들 사진입니다.
사진 설명을 보니 세르비아엔 이렇게 할머니들로 구성된 전통 음악단이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저런 옷을 입고 아코디언을 켜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꽤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지만, 공원의 귀여운 포인트였던 수박 의자.

공원에서 나오면 바로 구도심 광장으로 연결이 됩니다.
세르비아의 구도심 광장은 바닥이 대리석으로 장식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닉이나
세계적인 관광 도시인 체코처럼 그렇게 번화하지도, 아기자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규모도 작고요. 하지만 '하얀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체적으로 하얀 색채에
소박하고 수수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구도심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보헤미안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광장이 나옵니다.
광장 주변엔 오페라 극장과 유명한 시인들,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보헤미안 광장>
'보헤미안 크리스탈'은 꽤 유명합니다. 보헤미안 광장 주변에 있는 한 샹들리에 가게에서 찍었습니다.

그 밖에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이곳에서 쓰는 키릴 문자로 적힌 간판
(덕분에 절대로 길 표지를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딘지 이색적인 느낌을 줬던
벽화입니다.


불가리아에선 수도 소피아에 도착하자마자 260km 떨어진 장수촌으로 이동해야 한데다
'폭우'라고 할 정도로 비가 심하게 와서 도로 교통이 막혔고, 살아 돌아가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천천히 내느라 소피아에 돌아 오니 벌써 늦은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교통편을 미리 구해 놔서
불가리아에 왔는데도 불가리아 요구르트조차 먹어보지 못하고 와야 했습니다.
불가리아는 수도 소피아보다 녹음이 우거진 자연 경관이 한폭의 그림 같던 교외 쪽이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차 안에 있었던데다 돌아오는 길엔 비까지 너무 심하게 와서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는 게 내내 아쉽습니다.
불가리아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취재를 했던 장수 부부 할머니, 할아버지였는데
두 분 다 정말 소박하고 다정한 분이었습니다.
불가리아는 수도 소피아만 해도 동양인을 보기가 매우 힘든데
제가 갔던 곳은 골짜기 중에서도 골짜기,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라 그곳 사람들은 동양 사람 실물을
처음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정말 노골적으로 호기심과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제가 본 노부부는 카메라도 전혀 익숙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표정이 금세 굳어지고,
"제발 저를 보지 말고 좀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 주세요"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눈은 항상 사진 찍는 사람을 정면 응시해 버립니다. 게다가 플래시가 터지면 말 그대로 그냥 '얼어버리시는' 통에
사진 찍기가 꽤 힘들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갈 때 할머니가 괜찮다고 사양 하는데도 굳이 집 앞에 심어 놓은 꽃을 한 아름 꺾어서
들고 가라고 선물로 주시더라고요.
어쩐지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 같은, 그런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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