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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드러난 ‘우리’는?

-‘우리(들)’
(We/
canterbury.ac.uk 편)의,
어느 [이미지].
이처럼,
‘공동’의 목표를 지닌,
‘여럿’에 의한, ‘여럿’을 위한,
‘여럿’의, ‘game’을 하는 경우,
우리네는, ‘나, 너, 그’의, 위아래와
좌우를, 서로 배려하며 노력해서,
그 ‘빈 자리’의 ‘아귀’를, 슬기롭게,
잘 꿰어 맞추고는 있는 걸까?
참으로?
---물리적으로나, 혹은, 언어적으로나,
급하고 거칠게 ‘폭력적’이지를 않고서?
물론, 그런 과정에서 있을 수도 있는
당연한 ‘차이’를 놓고서, ‘조정’(tuning)을
하는, 합리적인 내용의 ‘싸움’이라면,
그 누가 뭐랄까, 만은---.
신문에 나기로,
1)- (조선일보, 09-11-07,
시론),
‘표 학길’ 서울대 교수는,
‘나라 안’에서,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지적하시기를,
“---,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란, (실로,
구차! 하고도), 긴 이름을 가진,
‘세종시법’은,
법안의 잉태부터 통과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경제성 분석’은, 철저하게 외면,
---(이미, ‘눈가림 목적’으로나 실시했을,
소위,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는,
어떤 의도에! 꿰어 맞추기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고)---, 이 특별법은, 처음부터, 아전
인수 격인,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
더욱 불행한 것은, ---, 특별법을, 불완전한!
경제성-효율성의 논리로, 뒤집으려고 하는,
여권의 노력과, 여권 자체의 ‘분열!’ ---,
이와 같은, 무한논쟁과 분열을 바라보는,
(우리네) 국민의 마음은, 공허한 이념 논쟁과
과거사 문제로, 10년을 허송세월한! 지난,
두 정권에 대한, 분노를! 되풀이하는 기분
---, 지금, 여권이 의도하는, ---,
‘수정안’은, ---, (그) 이전(移轉)의 주체가,
공무원에서, 민간인이나 준공무원으로 바뀔
뿐, 당초(에) 의도했던, 수도권 분산은 물론,
세종시의 자족기능도, (아무리 보완해 봐도),
보장되지 못하는, ‘졸속안’이! 될 가능성---,
(이처럼), 세종시 문제가 표류하는 데 따르는,
‘분쟁의 비용’과 총체적인 정치경제적
‘기회 비용’이, 훨씬 클 수 있(는데), ---,
(또), 세종시보다 훨씬 더 큰 비효율성과
비경제성의 문제는, ---, 방치되고 있는,
(지난 ‘덜된’ 정권에서의, 소위), ‘혁신(?)
도시’(들)의 문제---,
만일, 우리가 다시, 세종시 문제로, 발목을
잡히고, 이로 인한, 예산과 시간의 낭비,
거래 비용의 폭증과 투기적 부동산 시장이
난무하는 시대를 맞이한다면, 이는, 커다란
국가적 손실---, 이러한, 현실적 분열의
비용을 망각한, 여야의, ‘분란을 위한!
분란’에 대해서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 했고,
‘나라 밖’에서의,
냉정한 시각(視角)으로,
2)- (조선닷컴, 09-11-05/
주간조선),
‘전 신애’(66), 전(前) 미연방 노동부
차관보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안타까움을 나타내시기를,
“---, 어떨 땐,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보다,
저처럼, 다른 나라에 살다가, 한번씩,
한국을 찾는 사람 눈에, 한국이, 더 잘
보이지요. ---,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경쟁에 관심이 많고, 성공에 대한 집착이
굉장---, 그건, 장점일 수도, 또한, 단점
일 수도 있지요. ---, (허나), 한국인이,
세계 무대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려면,
세계 각국으로부터, 존경 받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 ‘성공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 (그런데),
‘한국 정치인들’은, 너무 자주, 심하게,
싸웁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요.
제 눈에, 그들은, 미래의 한국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네) 코 앞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로 보여요. 한국의, 가장!
불행한! 모습---,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폭력적인) ‘싸우기 대장’---, 요즘 같은 때,
모든 한국인이 힘을 뭉쳐 일하면,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텐데,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글로벌] 감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한국(의) 정치인’인 것 같아요. ---,
제가 느낄 때, 한국은, ‘지적 [에너지]’ 면에서,
이미, 일본을 능가---, 한국인의 DNA엔,
(어떤) 특성이 있어요. 새 것(을) 좋아하고
변화에 민감하며, 성공에 강하게 집착하지요.
예전엔, 그게 결점이었을지 모르지만,
급속도로 변화하는 21세기엔, 전부 다,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
한다고 했다.
---
‘말 속에, 뼈가 있다’!
(言中有骨) 할까?
‘밖’에서 볼 때에는,
‘피아(彼我)’를 구분할 수가
없다는, 그래서, ---실은,
‘우리 나라’가, 그네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제 아무리, 설명해도---,
이젠, 변명의 여지가 없이, 우리를,
또는, 우리네의 ‘역량’을, 어찌 됐든,
대표? 한다고, 뭉뚱그려, 밖으로 알리는,
또한,
---‘안’에서 보더라도---, 실제로,
‘bottle-neck’이 되어, 우리네 ‘발목’을
잡고들 있다는, 우리네의, 일부! 넋이
나간! ‘여야’의! ‘정칫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무슨, 생각들을,
---아니, 무슨 생각이나? ---,
하고? 있을까?
그 ‘악법’에! 어쨌든,
‘합의’를 해 준 탓으로,
일단의 ‘보수’ 진영으로부터, 연일,
‘난타(亂打)’를 당하고 있다는, 여당의,
어느, 여성 전 대표는, 아마도, 그녀의
‘정치 생명’에서, 최대의 ‘고비’를
겪는 듯도 보이는데---.
이런, 지루한,
‘표류 정국’에서는, 때로는,
누군가의 ‘담대한 악역! (惡役)’이
필요한 것인지라,
우매한 내가 추천하기로는,
---현장 경험이 별로 없을 것인---,
신임 총리는, 이제라도, 당장, ‘세종시’란
곳에 달려가서, ‘천막’ 치고 ‘야전 침대’를
놓고서, ---이왕, ‘국무총리실’도, 그곳에
계획되어 있다고 하는 즉---, 그곳에서,
‘평시 업무’를 보면서, ‘법 원안’대로라면,
이제껏, 누구도 겪지 못했을, ‘총리’로서의,
‘실제로, 벌어질 상황’을, 미리, 체험하고서,
그 ‘비효율적!’인 경험을, 또한, ‘무모하고도,
비현실적인! 원안’에의, 황당한 절망감을,
저, ‘기본적인! 고민’도 없이, 말만 무성한!
힘센 ‘정칫꾼들’과 ‘생생하게’ 나누는 것이
어떨까? 그가 요청한 ‘3개월’ 시한쯤---.
어쩌면, 그사이엔,
[뉴스]의 ‘초점’이, 좀, 될지도 모르나,
가능하다면, ‘애쓰고 고생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두루, 보이는 것이 좋을 터---.
그러노라면, 혹, ‘신통방통’한 ‘해결책’이
솟아 나올지, 또, 누가 알랴?
---말하자면, ‘[골디우스]의 매듭’
(Gordian Knot)은, 결국, 끊어서! 풀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그 동안에는,
총리는, 중립적으로, 이를 테면,
서울 등지에서, ‘도시락’을 배달시켜,
현지 ‘지방단체’, ‘건설 업자들’, ‘주민들’
에게서는, ‘밥 한톨’, ‘물 한모금’도, 절대로,
‘폐!’를 끼쳐서는 아니 되고,
그가 주재할, 무슨, ‘행복도시 지원회의’,
‘민관 합동 위원회’, 각종의 ‘routine’한
‘회의’, ‘기자 회견’ 등등도, 그곳에서 열고,
장관들과의 업무, 또한, 그곳에서 보게 하고,
직속 공무원들은 ‘평상시처럼’ 그곳에 통근
시키게 하며, 각종, 시찰도 물론, 그곳에서
출발하고, 혹, 면담을 원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면, 수고스럽지만? 그곳까지 찾아오시게
하여, ‘고통’을 분담하고, 만일, 그게 싫다면,
서울의 대통령이나 청와대를 직접 접촉하라
하며, 혹시, 대통령이 부를 경우엔, 적어도,
‘이동 시간’만큼은 꼭 감안해 달라고 사전에
요청하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쯤 되면,
뭔, 될? 일도, 잘 안 되겠지만,
혹은, 우선, ‘국무총리’라는 ‘직책’ 자체를,
두는 편이, 어째, 불편하기도 해서, 아예,
그만 없애! 버리자는 얘기도 나올 것이나,
대통령이, 아직까지도? 눈치만 보시는 듯,
가만히? 계시다는, 그리고, 어찌 보완해도,
누군가에게는, 또, 불편한! 그 ‘결말’이?
‘눈’에 보인다는, 이른바, ‘이판사판’의!
‘막 가는’ 상황인데,
‘잘? 해도, 욕 먹고, 못? 해도, 욕 먹는’,
---그리고, ‘22조 원’, 어쩌면, ‘50조 원’이
훨씬 넘을 자금을, 그 들어간 ‘비용’에 비해,
또 하나의, 거대한 ‘잡초더미’가 될지도
모른다는? 곳에, 집행 해야만? 하는---,
‘안팎 곱사등이’의! 신세인, 총리에게는,
이런 ‘막 가는?’ 제안은 어떠 하신가?
받아 들일 가능성은 낮지만---.
지난 ‘못된’ 정권의,
대표적인 ‘기형적인 계획’ 하나를
참으로 고치려 하면, 조급하게도, 이미,
‘집행’ 됐다는, 거금! ‘5조 원’에는,
연연하지 마시고,
---익히, 아시는 대로, ‘이 건희’ 전 삼성
회장은, 잘못된 전화기 수 백만개를, 억지로
‘수정’하기 보다는, 아예, 대담하게! 불태워
버렸다는데---,
‘zero base’에서 다시 검토하여,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새 판’을 짜고,
이를, 국민 전체에게 간곡하게 호소하여,
‘지난 정권’의 뭔, 업적과? 그 ‘잔당’을,
철저히, 부정! 하고, ‘청소’! 하시기를---,
그리 해야, 그나마도, 우리네 대다수와
우리네 후손들이, 현재와 미래의, 치열한
[글로벌] 경제 속에서, 온전하게,
생존할 수가 있다는 것---.
또, 누가 알랴? 만일, 그리만 된다면,
별? 인물도 안 보이는, ‘안개 정국’에서,
국민에게 ‘희망과 vision’을 보인,
총리가, 다음 정권을 맡게
될지를---.
---
힘도 없는 나는, 차제에,
관련된 ‘대명사’나 살피려 한다.
앞서의 글에서,
우리 말의, ‘너’= ‘ㄴ+ㅓ’는,
‘내가 아닌+(나의, 앞/옆/밑의, 밖에/
멀지 아니하게, (= 가까이에), 그러나,
낮게, 솟아), 올라 있는, 다른, 아래의,
그러한 이’라고, 다시, 말씀 드렸다.
헌데,
우리 말의, ‘우리’는, 국어 사전에는,
‘1)- 말하는 이가 자기와 자기 동아리를
함께 일컬을 때 쓰는 말, ㄱ)- 말하는 이와
제3자만을 일컬음, ㄴ)- 말하는 이와 말을
듣는 이만을 일컬음, 2)- ‘나의’의 뜻으로
쓰는 말’이라 하고,
‘나’는, 국어 사전에는, ‘말하는 사람이,
이름 대신에, ‘자기’ 스스로를 일컫는,
제1인칭 대명사’로, 낮춤말로는 ‘저’라하고,
조사(의) ‘가’가 붙으면, ‘내’가 된다’고
하나, 그 ‘발음의 뜻’은 뭘까?
---
내가 다시! 보기로,
‘나’= ‘ㄴ+ㅏ’는, ‘(위에서 아래의,
낮은 곳으로 내려와, 어미의), 안에서,
(밖으로, 솟아), 나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다른 이에게, 이 같이, 이르고
있는, 그러한 이’이다.
그리고, ‘내’= ‘나+ㅣ’는, 그런 ‘나+라는
(이르는 것이)’/또는, 소유격으로서는,
‘나+로부터의’이고,
‘저’= ‘ㅈ+ㅓ’는, ‘낮은 곳에 있어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 이 같이), 다른
이에게 이르고 있는, 그러한 이’이다.
그리고, ‘우리’= ‘ㅇ+ㅜ+ㄹ+ㅣ’는,
‘안에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 이 같이)
+이르는 이(= 나)와+더불어, 어울려 있는
(듣는 이가, 같이, 들어 있는)+그러한
이들’, 혹은, ‘나의’의 뜻으로는,
‘안에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 이 같이)
+이르는 (나)+로부터의+그러한’이다.
한편, 대만의
‘중문자보(中文字譜)’에서는,
한자의 ‘我’를 ‘나(I)’의 뜻이라 하고,
‘吾’를 ‘I, we’의 뜻이라 하며, ‘我們’을
‘우리(we)’의 뜻이라고 구분을 하지만,
한자의, ‘아(我)’는, 옥편에는, ‘나, 이쪽,
고집쓸, 우리!’ 등의 뜻이 있고, ‘오(吾)’는,
옥편에는, ‘나, 내(自己), 아들, 웅얼거릴,
벼슬 이름’ 등의 뜻이 있는 즉, 뭔가?
헷갈린 듯도 한데, 실제로 그렇게 쓰고
있다니,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어쨌든, 한자의, ‘아(我)’는,
‘(다른 이에게 이르는) 나, (다른 곳에서
떨어진) 이쪽, (다르다고 이르며) 고집쓸,
(더불어 어울린) 우리’ 등의 뜻이므로,
우리 말 발음의! ‘ㄹ+ㄹ’ 발음의 어휘들
이라서, 중국어의 ‘아(我)’[wo³, 워]는,
우리 말의, ---‘나’의 뜻인 경우---,
‘(속에서 솟아서), 소리를’à‘手’[shou,
써우]+‘밖으로, 이 같이’à ‘戈’[ge¹, 꺼]
+‘다른 이에게 이르는, 그러한 이’à ‘我’
[wo³, 우+ㅓ], 이다.
그리고, 한자의 ‘오(吾)’는,
‘(안으로부터, (소리를, 이 같이, 밖으로
내어), 이르는) 나, ((밖의) 다른 이와는
다른) 내(自己), (아래에서, 아래의 것이,
(밖으로 나와, 돋아) 올라 있는) 아들,
((밖의) 다른 이가 모르게) 웅얼거릴,
(위에 높이 오른) 벼슬 이름’ 등의 뜻이
있다. ---우리 말의, ‘ㅇ/ㄹ+ㄹ’ 발음의
어휘들이다.
따라서, 중국어의 ‘오(吾)’[wu², 우]는,
우리 말의, ---‘나’의 뜻인 경우---,
‘안으로부터’à ‘五’[wu³, 우]+‘밖으로,
이 같이’à ‘口’[kou³, 커우]+ ‘다른 이
에게, 이르는, 그러한 이’à ‘吾’[wu²,
우], 라는 것이 된다.
중국어에서,
‘우리/우리들’의 뜻인,
‘아문(我們/们)’[wo³ men, 워+먼]의,
복수(複數) 접미어, [men², 먼](們/
们)은, 앞서도 말씀 드린 바,
우리 말의, ‘들’=
‘다른 것들이’à ‘人’[ren², 런]+
‘붙어 (솟아) 있어서’à ‘門’[men², 먼]+
‘(어울려) 모여 있는, 그러한’à
‘們’[men², 먼], 이다.
참고로,
‘우리네’에서의, ‘~네’는, 국어 사전에는,
‘1)- 어떤 이의 한 무리를 나타내는 말,
2)- 어떤 집안이나 가족을 나타내는 말’
이라고 하므로, ‘~네’= ‘~+ㄴ+ㅔ’는,
‘~의+안을+이루게 하는, 그러한’, 또는,
‘~의+안에+들어 있는, 그러한’이다.
그리고,
‘찰(咱)’[zan², 잔]은, 옥편에는,
‘나’의 뜻이라는데, 대만의 ‘중문자보
(中文字譜)’에서는, 이를 ‘I, we (듣는
이가 같이 들어 있는)’의 뜻이라고 하며,
‘찰문(咱们)’[zanmen², 잔먼]을, ‘we’의
뜻으로, 쓴다고 한다.
내가 보기로,
‘찰(咱)’[zan², 잔]은, 우리 말의,
‘밖으로, 이 같이’à ‘口’[kou³, 커우]+
‘속에서, 소리를’à ‘自’[zi⁴, 즈]+
‘(다르게) 솟은 이에게, 이르는, 그러한
이’à ‘咱’[zan², 잔], 일 터이다.
---단수와 복수가,
서로, 뒤섞인다는 것은, 그 문화가
‘후발(後發)’ 됐다는 것이 아닐까?
일본어의,
[わたくし, 와따꾸씨](私)는,
대명사로는, ‘나 (= 자기에게 관계된 일,
비밀)’의 뜻이고, 그 속어로는, [わたし,
와따씨](私)인데,
[와+따+(꾸)+씨](私)는,
---내가 다시! 보기로---, 우리 말의,
‘다른 이가’à [와]+‘듣게 하도록’à [따]
+‘밖으로, 이 같이’à [꾸]+‘소리를 솟게
하는, 속에서, (밖으로), 솟은, 그러한 이’
à [씨], 또는,
‘다른 이와는’à [와]+‘떨어지게 하여’à
[따]+‘속으로, 이 같이’à [꾸]+‘스스로,
숨기는/지키는, 그러한 것’à [씨],
(= 비밀)일 터이다.
[ぼく, 보꾸](僕)는,
---그 한자표기의 뜻으로는, ‘종,
머슴’이나---, 대명사로는, 남자가
스스로를 일컫는, ‘나’이다.
이 때의, [보+꾸](僕)는, 우리 말의,
‘밖으로, (다른 이에게)’à [보]+‘이
같이, (소리를 이르는), 속에서 밖으로
(오른), 그러한 이’à [꾸], 이다.
한편,
[おれ, 오레](俺, 己)는,
‘나, 너’의 뜻이고, [われ, 와레]
(我, 吾)는, ‘나/자기, 그대/너’의
뜻이라고 한다.
‘나’의 뜻으로의, [오+레](俺, 己)/
[와+레](我, 吾)는, 우리 말의,
‘안에서/(밖의) 다른 이에게’à [오/와]+
‘(소리가 들리게), 이르는, 그러한 이’à
[레], 이고,
‘너/그대’의 뜻으로의, [오+레](俺, 己)/
[와+레](我, 吾)는, 우리 말의,
‘(내가) 아닌, (나의, 앞/옆/밑의, 밖에/
멀지 아니하게, 그러나)/ 다르게, (솟아)’
à [오/와]+‘올라 있는, 아래의, 그러한
이’à [레], 이다.
일본어의 복수(複數) 접미어,
[たち, 따+치](達)는, ---그 한자 표기의
뜻, ‘이를, 이룰, 사무칠’ 등과는 달리---,
우리 말의, ‘다른 것들이, 붙어’à [따]+
‘솟아 있어서, (어울려, 모여 있는), 그러한’
à [치], 이고, [ら, 라]는, 우리 말의,
‘어울려, (모여 있는), 그러한’이다.
해서, 일본어의 ‘우리’는,
[わたしたち, 와따씨따치](私達),
[われ(我)ら, 와레라], [われ(我)われ
(我), 와레와레], [ぼく(僕)ら, 보꾸라],
[おれ(俺)たち(達), 오레따치] 등이
있게 된다.
영어의 ‘우리’,
[위](we)는, 고대 영어,
O.E.의, ‘we’ ß 원 [게르만]어,
P.Gmc.의, [비즈](wiz), 원 인도-
[유럽]어, PIE의, [붸이](wei)에서
왔다고 하며, [리투아니아]말의 [붸두]
(vedu)는, ‘we two?’의 뜻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영어의 ‘나’,
[아이](I)는, 고대 영어,
O.E.의, [이츠](ic) ß 원 [게르만]어,
P.Gmc.의, ‘ekan’, 원 인도-[유럽]어,
PIE의, [에고(ㅁ)](ego(m))에서 유래
했다는데,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내가 보기로,
‘나’의, [에+고+ㅁ](egom)은,
우리 말의, ‘(위에서 아래의, 낮은 곳으로
내려와, 어미의), 안에서’à [에]+‘밖으로,
(솟아), 나서’à [고]+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 다른 이에게, 이 같이), 이르고
있는, 그러한 이’à [ㅁ], 이다.
그리고, [이+츠](ic)는, 우리 말의,
‘안에서’à [이]+‘(밖으로), 솟아, (나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 다른 이에게,
이 같이), 이르고 있는, 그러한 이’à
[츠], 이다.
그렇다면, ‘I’의 변화형, ‘my, me, mine’
에서의, 그 ‘변화형’의 발음, [ㅁ](m)은,
우리 말의 ‘밖~’의 흔적이라는 말씀.
그리고, ‘우리’라는 뜻의,
[붸+두](vedu), [붸+이](wei),
[비+즈](wiz) 등은, 내가 보기로,
우리 말의, ‘(안에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 이 같이), 이르는 이(= 나)와’à
[붸/비]+‘(더불어), 어울려, (밖으로),
돋아/솟아, 올라 있는, 그러한 이들’à
[두/즈/이], 이다.
---우리네 [앨타이](Altai) 말로,
그 풀이가 된다는 것.
참고로,
‘우리’를 뜻하는,
[아랍]어의 [nahnu, 나흐누],
[히브루]어의 [anakhnu, 아나크
후누], [라틴]어의 [nos, 노스],
불어의 [nous, 누], [이탈리아]어의
[noi, 노이], [스페인]어의 [nosotros,
노소트로스],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의
[hemeis, 헤메이스], [힌디]어의 [ham,
하므], [페르시아]어의 [ma, 마], [핀랜드]
어의 [me, 메], [러시아]어의 [my, 미],
또한,
고대 영어의 [wit, 위트/비트],
독일어의 [wir, 뷔어ㄹ], [터키]어의
[biz, 비즈], [몽골]어의 [bid, 비드],
[스웨덴]어의 [vi, 비], 등등의, 겉으로는
서로 달라 보이는, 그 ‘발음’들에서,
---만일, 우리 말의 ‘순음(脣音)’, ‘ㅂ’à
다른 말들의 ‘순음’들, [ㅁ/ㅂ/ㅍ/ㅎ]로,
변화됨을 이해해 주신다면---, 이들의
각각에 대한, 설명 말씀은 줄이려니와,
‘우리 말’에서의, ‘우리’(we),
즉, ‘안에서, 밖으로, 소리를 내어,
이 같이, 이르는 이(=나)와, 더불어,
어울려, 밖으로, 돋아/솟아, 올라 있는,
그러한 이들’이란, ‘발음’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실 터.
---
우리네 ‘사람들’이,
안팎으로, 미처, 그 ‘전파(傳播)’의
‘속도’를 따라가지를 못 해서 그렇지,
‘말’에 관한 한, ‘우리 말’은, 이미,
그 옛날에, [글로벌]화! 되어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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