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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타임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Thirst)'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었다. 타임지의 기자인 리차드 콜리스는 "박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풍부하며, 가장 파격적이며,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고 찬사하면서 "환희와 엑스터시, 고통, 체액, 그 중에서도 특히 피가 빠지지 않는 이 애정극은 놀라운 즐거움을 전한다"고 평가했었다.

그리고 결국 '박쥐'는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찬욱 감독이 2004년 올드보이로 같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지 5년만이다. 황금종려상은 오스트리아 출신 마카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이 차지했고 프랑스 출신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는 2위인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를 수상했다. 박찬욱의 '박쥐'가 수상한 심사위원상은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 대상 다음인 3등상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등수를 떠나서 세계 유수의 작품들과 경쟁해서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박쥐'가 정말 수상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객의 한사람으로서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내가 박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닽다.
첫째. 스토리가 엉성하다.

뱀파이어라는 설정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하니 스토리 역시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을 수 밖에는 없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건 너무했다. 똑같은 실험에 참가했을 뿐인데 다들 죽어나가고 혼자서만 뱀파이어가 되어 살아돌아왔다.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았기 때문이라는데 그 수많은 혈액중에서 하필이면 주인공에게만 뱀파이어 피가 주입되었다는 말도 어불성설인데다가 그 피를 헌혈한 다른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승에서 하직하며 마지막으로 좋은일 하려고 불멸의 피를 남겼다는 말인가? 이전에는 한번도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둘째.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박쥐는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그릇된 편견 속에서 이 영화도 두시간 동안 피를 뿌려댄다. 그러다보니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의 피를 빨대(?)로 빨아먹는 부분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고 자살할 사람들을 모아서 피를 확보한다는 설정은 코미디 그 자체였다. 도로에서 운전자들을 상대로하는 살인은 적당히 괴수영화를 흉내낸듯하고 집안에 모인 사람들을 차례로 죽여 피를 빨아먹는 대목은 막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인듯 보였다. 애시당초 뱀파이어가 된 신부라는 설정이 잘못되었으니 되도록이면 자극적인 표현으로 포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셋째. 편집이 엉성하다.

칸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감독의 연출이 엉성하다고 말한다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게 뻔하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의 연출과 편집이 엉성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상현이 태주의 남편 강우를 낚시터에서 물에 빠뜨려 죽인 이후 그의 환영이 보이는 부분이다. 잠자리에서도 둘 사이에 누워있고 상현과 태주가 섹스할때에도 가운데 포개져 있던 강우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환영을 떨쳐내기 위해 둘이서 어떠한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닌데 말끔히 둘 사이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두남녀가 사랑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일까? 결국 둘의 죄책감이란 그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양념일 뿐이었다. 엉성한 스토리와 엉성한 편집이 빚어낸 결과인 것이다.
넷째. 반전이 없다.
반전이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서 영화의 극적전개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정의해볼 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반전이라 할 만하다. 죽은줄 알았던 강우가 물에 젖은채 돌을 가슴에 매고 나타나는 장면과 강우에게 맞아서 생긴 상처인줄 알았던 태주의 허벅지 상처가 자해에 의해서 생긴 상처라는 점, 그리고 상현이 장애신도를 겁탈하는 장면 등이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전신불수가 된 시어머니가 태주의 피 한방울을 먹게 되는 장면과 둘이서 자동차 본넷에 앉아 아침해를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하나 시원하게 해결되는게 없다는 점이다. 죽은줄 알았던 강우는 아무 이유없이 중반부터 나타나지 않고 강우에 대한 오해로 친구까지 죽였다는 죄책감에 티격태격하던 상현과 태주는 욕설을 주고받은 후에도 그 문제와 관계없이 정사를 나눈다. 상현의 피를 마신 태주는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지만 태주의 피 한방울을 맛본 시어머니 라여사는 의식만 또렷할뿐 몸은 여전히 불수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현이 장애여신도를 강간하는 장면도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반전을 위한 삽입이라고 해석하려고 해도 그 이후에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부분에서 송강호의 성기 노출을 반전이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이 내뱉는 대부분의 반응은 '뭐야~'하는 외마디였다. 이는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반대로 영화가 관객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서울 칸영화제 특별취재팀의 기사에 의하면 칸 현지에서의 관객들도 "테러블(terrible)"과 "어메이징(amazing)"으로 엇갈렸다고 전한다. 즉 우리나라 관객들의 이해수준이 낮아서 생긴 현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기사의 일부를 살펴보자.
15일 오후 공식 스크리닝 후 만난 스페인 관객 마리오 잉글레스 씨는 "박찬욱 감독이 만든 멜로 영화라는 정보를 접하고 관람했더니 완전히 속은 기분이다"며 "타락한 신부와 그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의미없는 살육 행각이 불편하고 불쾌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쥐'의 난해함에 불평을 표한 것은 일반 관객 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외신들은 리뷰 기사를 통해 혹평했다. 미국의 버라이어티지는 "진정한 영감의 수혈이 심각하게 필요한, 지나치게 길고 음침한 코미디"라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르 몽드는 "방자하고 멍청하며 우스꽝스러운 괴기주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악평을 쏟아붓기도 했다.
영화 전문 기자들 역시도 이야기의 불친절함과 표현 방식의 낯설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사회 직후 기자가 만난 이탈리아의 영화잡지 듀얼랑티의 기자 칼리오 체틸리안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다"며 "오로지 스타일만을 과시하려는 뱀파이어 호러물 같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네덜란드의 ANF NEWS AGENCY의 기자 뮤랏 아크다스는 "박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 환상적인 카메라 워킹 등 스타일리쉬함은 높게 평가한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왜 저렇게 잔인하고 과격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여러개의 에피소드를 질서없이 엮어놓은 것처럼 무질서하기까지 하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혹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관객들은 표현 방식의 독창성에 열광했고 스타일리쉬한 영상에 감탄했다. 특히 개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관객과 언론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프랑스의 영화감독 엔리크 지오다노는 "환상적인 영화"라고 언급했다. 그는 "구원과 죄의식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일관된 메시지가 강렬한 이야기와 영상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됐다"며 "올드보이 만큼이나 뛰어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프랑스 문화잡지 스내치의 루카스 로빈 기자는 "시각과 청각을 자극 시켜준 멋진 영화"였다며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상 미학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영화 제작자 에니디에 프랑퀴스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스타일리쉬하고 짜릿한 쾌감을 주는 영화"라며 "화면 속 파랑과 빨강, 피와 물의 대비되는 이미지 등은 잊지못할 강렬함을 선사했다"고 전했다.
→ 스포츠서울 "기립하거나, 나가거나"…'박쥐', 엇갈린 현지반응 왜?

박쥐를 보고나서 들었던 내 생각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해외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보내는 사모곡'이었다. 즉 이 영화는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해외영화제 심사위원들을 위해 만든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관객들이 불편하고 불쾌해 할지라도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쥐'는 모범답안만 줄줄외워서 필기시험에 통과한 운전면허시험과 같은 영화일 뿐이다. 철저히 해외영화제를 겨냥해서 만들어진 기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라고는 여주인공 김옥빈의 가슴노출이나 남자주인공 송강호의 성기노출에만 몰려있을 뿐이다.
아무튼 우리의 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인정받았으니 축하해 주는게 도리일진데 '박쥐'는 도저히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창피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분명 우리에게는 더 좋은 영화도 많은데다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많기 때문이다. 박쥐의 칸영화제 수상이 자랑스럽지 않은 것은 나만의 이기심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박쥐를 보고나서 당신의 생각은 정녕 나와 달랐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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