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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속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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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등불 (fedra57)
나는 내 안에서 나의 存在인 건물을 헐어 버리고 내가 여지껏 되어 본 적이 없었던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맨하탄의 善神> 中에서-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숨어든 것일까? 사슴벌레와 같은 곤충은 용화작용을 겪기도 한다고 했지. 번데기나 성충이 되는 꿈마저도 잊어 버릴 만큼 오랜 망각의 늪. 문득 난 용화작용을 겪는 한 마리 애벌레이고 싶었다. 조선 블로그에서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의 건물을 헐어 버리고...... 또 다른 내가 되어 내 삶의 용화작용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지 : 로댕의 다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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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냄새, 그리움의 냄새
마음의 소묘  
강물 냄새, 그리움의 냄새    2006/10/13 16:58 추천 9    스크랩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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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안도현 작가의 <연어>라는 제목을 가진 동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으며,

시작과 같은 문장으로 맺고 있었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의 시작과 끝이 위의 문장과 무관했다고 할지라도

수천 마리의 검푸른 등을 가진 연어 떼 속에서

은빛으로 홀로 반짝이는 주인공 <은빛연어>처럼

책 속의 무수한 문장에 섞여 있었을지라도

나는 강물 냄새로 반짝이는 위의 문장을 이내 찾아내고선

오래도록 그 문장을 음미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연어의_회귀.gif

                                           연어 1

 

고백컨대

내 한 번의 절정을 위해

밤새도록

지느러미 휘도록 헤엄쳐 오던

그리하여

온 밤의 어둠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비릿해질 때까지

마침내 내 몸이

수초처럼 흐느적거릴 때까지

 

기꺼이

射精을 미루며,

아끼며,

참아 주던

 

그 아름답고도 슬픈 魚族

 

그가 바로 지난 날 내 생애

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산란하고 떠나간

내 마지막 추억의 은빛 연어입니다.

                            -박 이화의 <그리운 연어> 全文-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나는 <연어>라는 제목을 가진 책 속에 담긴 모든 문장 중에서

이 문장을 가장 좋아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진한 강물 냄새를 맡았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핏톨에 섞인 그리움의 냄새를 맡았다.

 

강물 냄새.

 

알래스카의 베링해에서

핏속에, 영혼 속에 잠재한 원시의 그리움을 좇아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가는 연어들에게 있어서 그 냄새는

그동안 익숙했던 바다의 냄새와는 전혀 다른......

 

여태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주 이상한 냄새.

새로우면서도 웬일인지 낯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냄새.

언젠가 몸 속을 적시고 간 아련한 추억의 냄새.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속살 깊은 곳에 숨어 있었을 것 같은 냄새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냄새였다.

 

연어의_회귀_2.jpg

                                             연어 2 

 

<나는 강물냄새를 알고 있다>고

발칙하게도 자만했던 적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강물냄새란 기껏

물비린내라던가, 수초냄새, 그리고 새벽 안개 냄새 정도였음에도......

 

초록강물의 냄새가  후각 이전의 감각이며

느낌이며, 기억임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강의 상류를 향해 세 시간 가량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가

돌아오던 어느 날의 나는

문득 한 마리 은어였다.

나는  문득 초록강물의 냄새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후각 이전의 어떤 감각이었으며,

느낌이었고, 기억이었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은어와 연어에게서 나는 냄새.

초록강물의 냄새.

 

강물 냄새는 여지껏 내가 알고 있었던

물비린내와 수초와 새벽안개의 냄새였으면서도

그 냄새와는 또 달랐다.

 

은어1.jpg

                                                      은어 1

 

 

은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밀양의 남천강에는 은어가 많다.

오후의 산책길에서 만나는 남천강의 은어는 강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거나,

가끔 물 밖의 세계가 궁금했는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단내를 풍기면서 익어가는 가을 햇살 속으로 뛰어 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유명작가의 <연어>를 <은어>라고 살짝 바꾸어

강물 냄새가 나는 문장을 소리내지 않고 외워보곤 한다.

그랬다.

나의 강에는 언제나 모천의 초록강물 냄새를 그리워하는 은어가 회귀하고 있었다.

 

은어.

나는 이 세상에서

은어만큼 아름다운 이름과 자태와 향기와 빛깔을 가진 물고기를 거의 알지 못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물고기 중에서 <은어>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유명작가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읽었던 이유도 <은어> 때문이었다.

연어는 은어와 이름이 비슷하다.

모천 회귀의 본능까지도 닮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라는 문장을 기실

 

은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로 바꾸어 읽고 있었다.

동화 속의 주인공 은빛 연어 역시 자태는 은어를 닮아 있었다.

 

                                         섬진강 은어 1

 

<은어>라는 물고기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를 확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중 3학년의 초여름이었을까?

혹은 초가을이었을까?.

치자꽃을 닮은  소녀들은 치자꽃잎처럼 하얀 여름 교복 상의에

하얀 여름 모지를 쓰고

감색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담임 선생님 댁으로  심부름을 갔던 날.

아니, 내가 선생님 댁에 심부름을 가는데

두 명의 친구가 따라 왔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댁은 비어 있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시는 총각 선생님.

미술 선생님.

아이가 아닌 여자가 되기 위해 아픈 껍질을 벗고 있는 소녀의 가슴에

맨 처음 담긴 이름.

 

치자 꽃잎같은 가슴에

치자꽃잎같은 사랑 하나 아무도 몰래 가슴 속에 품었던 시간.

학교 꽃밭에서 살짝  따넣었던 치자 꽃잎 하나.

교복 소매 속에서 소녀의 살냄새처럼 풋풋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주인 없는 빈 집 마루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의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마실을 다녀 오셨는지,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황급히 돌아오셨다.

 

-이렇게도 이쁜 애기들이 있었다냐?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이쁘다냐?

강물에 은어떼같이 이쁘다야.

고만고만 한 게 고만고만 참말 은어같이 어쩌면 

이렇게 이쁜 애기들이 다 있다냐?

 

우리들의 볼을 만지고,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시면서

눈부신 듯 탄성을 자아내는 선생님 어머님을 통해서

<은어>라는 물고기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은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름처럼 은빛 비늘을 가졌을 테고......

초여름의 여름 하복을 입은 소녀들을 닮아

초여름 아침의 치자꽃같은 물고기가 틀림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돌아오는 내내 입을 삐죽이며 토라졌다.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은아 이름>만 알고 있었으며,

<은아>만 이쁘다고 칭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의 눈흘김을 받아야 했다.

 

나는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은아>가 아닌

<은어>라는 물고기 이름을 말씀하신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시침을 뚝 떼었다.

오히려..... 그 친구의 오해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 세 사람이 똑 같이 나누어 가져야 할 은빛으로 아름다운 찬사를

나 혼자 독식해 버리면서 나는 오래도록 행복했으며,

오래도록 <은어>라는 물고기를 그리워했고,

<은어>라는 물고기를 만나거나 발음할 때마다

내 이름 <은아>를 소중하게 기억하여 주는 이가 있어만 준다면,

아니, 선생님께서 내 이름 <은아>를 기억하여 주신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칵 죽어 버린다 해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초여름의 치자 꽃잎같던 시절이었다.

 

 

                                                     섬진강 은어 2

 

 소녀 시절에 이름으로만 만났던 은어를

나는 섬진강변의 학교에 첫발령을 받았던 그해에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하동 지리산 자락의 섬진강변에서

보리누름은 은어의 계절이었다.

 

지난 해 가을.

어머니의 강에서 부화하여

어린 몸으로 갯내음을 따라 어머니의 품보다 크고 넓은 세계로 모험을 떠났던 은어.

그가 <바다>라는 크고 넓은 세계를 경험한 후에

보다 성숙한 영혼으로 돌아온 고향.

은어는 바다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낸 다음

이듬해 3-4 월에 모천으로 회귀한다고 한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어머니의 강 언덕에서 겨울을 난 보리밭이 새푸르게 일렁이는 3-4월.

모천으로 돌아온 은어.

초록강 언덕에 보리가 패고......

청보리 푸른 물결이 황금색으로 눈부시게 바뀌는 계절이 되면

그의 은빛은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면서

그의 뼈와 살은 가장 연하면서 부드럽게 변하고,

그의 속살에서는 깊고도 맑으면서 상큼한 수박향이 난다고 했다.

 

동기생 한 명과 인근의 학교로 함께 발령을 받았다.

학교야 달랐지만 걸어서도 오갈 수 있는 지척이었다.

내가 부임하게 될 학교명도

그가 우라집으로 전화를 해 주었기에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근무할 학교 위치까지도 그는 미리 알고 있었다.

 

섬진강변의 보리 누름철의 은어회.

 

이제 막 어머니의 강을 떠나

바다로 흘러든 은어처럼

사회에 첫발을 딛은 내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던 시절.

그는 내게 참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섬진강 하얀 모래밭을 거닐고,

화개장터의 작은 주막에서 은어회를 앞에 놓고 있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와 나의 미래는 결코 함께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막 어머니의 강을 벗어나 바다로 나온 작은 새끼 은어일 뿐이며,

우리는 결코 모천으로 함께 회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백마를 탄 왕자님을 꿈 꾸고 있었으며,

썸머 타임 킬러에서의 크리스 밋챰처럼

키가 크면서 고독하고,

광폭한 눈길을 가진 킬러를 또 꿈 꾸고 있었다.

백마를 탄 왕자님이면서

동시에 키가 크고, 어깨가  다부지며,

고독하고 광폭한 눈길을 가진 킬러.

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내게 있어서 백마를 탄 왕자님은 결코 아니었으며,

키가 작고,

부드럽고 유려한 목소리로 가곡과 찬송을 즐겨 부르는 그가

고독하고 광폭한 킬러는 더더욱 될 수 없었다.

 

우리는 저물어 가는 보리누름철의 섬진강변에서 

수박향 아릿한  은어회를 앞에 놓고

자신의 바다와

모천으로 함께 회귀할 자신의 상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kp1_2050710j0891.jpg

 

 

많은 세월이 흘렀다.

처음으로 이름만으로 <은어>를 만났던 소녀가

보리누름철에 수박향 깊은 <은어>의 속살을 즐기면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 뒤에도

많은 세월이,

모천으로 회귀하는 은어의 초록강물같은 세월이 흘렀다.

쉰 살의 여자는 매일 은어의 강가를 천천히 산책하면서

강물 냄새를 기억한다.

 

은어, 라는 말 속에서는 강물 냄새가 난다.

 

연어와 은어.

 

연어의 회귀는 비장하고, 장엄한 반면

은어의 회귀는 잔잔하고 맑고 고요하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의 강을 떠나 멀고 차가운 베링해까지 가서

자신의 삶을 살다가

3-4년이 흐른 다음에야 죽기 위해서......

그렇다.

오로지 죽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

 

태어나는 순간 그도 연어처럼 어머니의 강을 떠나서

넓고 거친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나지만

모천의 속살 냄새가 너무나 그리웠던 것일까?

이내 돌아와서 초록강을 누비며  일생을 살다가

여지껏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강의 품에 안겨서 죽는 그.

 

강인 나는  떠났다가 이내 돌아오는 은어가

그의  맑은 그리움이

죽기 위해서 돌아오는 연어의 독한 그리움보다 좋다.

 

그리움이란 얼마나 모질게도 시린 갈원이었던가?

연어의 강이 인생이란 수직선 위에서 生과 死라는 출발과 도착으로 나타나는

단 두 개의 점이라면

은어의 강은 生과 死를 포함하면서

그 사이에 연결된 무수한 점들의 집합이다.

 

 

연어와 은어는 모천에서 알을 낳은 뒤,

모천에서 그 일생을 마감하지만

연어의 회귀가 일생일대의 서사시라면

은어의 회귀는 따뜻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의 수필이다.

 

연어의 회귀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반면,

은어의 회귀에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

 

쉰 살인 나는 이제.....

비장하고 장엄하고 숭고한 서사시보다는

잔잔하고 따뜻한 일상의 노래가 좋다.

죽기 위해 돌아오는 연어보다는

살기 위해 돌아오는 은어의 그리움이 좋다.

 

그렇다.

쉰 살의 나는...... 어쩌면...... 

무엇인가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기에는 너무 늙었으며......

많이 지쳤는지도 모른다.

연어의 강이 그를 긴 세월 기다렸듯이

길고 모진 그리움을 품기에 나는 이제......너무 지쳤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강물 냄새를 기억하며 남천강을 건넌다.

그를 기다리는 일은 따뜻해서 좋다.

그를 그리워하는 일은 잔잔해서 좋다.

나는 천천히 강을 건너면서

폐부 깊숙히 은어의 그리움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강물 냄새를 빨아들인다.

 

  

은어, 라는 말 속에서는 강물 냄새가 난다.

 

 

 

                                                          섬진강 은어 3

 

 

회귀하는 연어1 : Daum의 체 게바라님의 플래닛에서

                   2 : Daum의 유한무전님의 플래닛에서

 

은어 1 : mulgoginara.com의 강대옥님 사진

섬진강 은어 사진 3 장 : Daum 블로그 <빵점 짜리 남자>의 아지님 작품

은어 2 : 연합 뉴스 <돌아온 은어> 화보

흐르는 곡은 Hamabe no Uta의 해변의 노래(Song of the seashore)

첼로 연주입니다.

 

오늘 아침엔 7시가 훨씬 넘어서야 가까스로 일어나서

가까스로 출근을 했습니다.

동호회 활동을 하던 날.

등산 동호회원이면서도 등산에는 참가하지 않고,

선배 선생님과 둘이서 남천강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며

세 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하루에 두 시간 가량 강을 헤매며 돌아다녔더니

드디어 몸살이 나 버렸네요.

 

가을 강의 순하디 순한 물소리가 좋아서......

가을 강의 순하디 순한 강물 냄새가 좋아서.....

가을 강의 순하디 순한 바람소리가 좋아서......

몸살이 나도록 강을 따라 걷는 요즈음입니다.

 

어제 오후에 쓴 글입니다.

아침에 몸살이 나는 바람에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내일은 토요 휴무제.

이제..... 내가 가꾸는 화분에..... 이틀 동안 견디도록 충분히 물은 준 다음,

퇴근해야 하겠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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