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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 알지거서한
‘아리랑’은 ‘아리’와 ‘- 랑’이 합쳐진 글자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알과 함께”,“양(羊)과 함께”,“태양과 함께”라는 뜻인 것이 명백해지지 않는가! 우리는 박혁거세 임금이 신라의 시조로 불구내왕(弗矩內王)라고하며 왕호가 거서간 (居西干)인 것은 삼국유사를 통해 알고 있다.
...因名<赫居世王>(盖鄕言也. 或作<弗矩內王>...
학계에서는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는 칭호 에 대해서도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거서간(居西干) 이란 서쪽(중국)에서 임금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말하고 있으며, 불구내왕(弗矩內王)이란 우리말의 ‘붉은 해’를 음의 표기가 자유롭지 못한 한자를 빌려 표현하다보니 ‘불구내 왕’으로 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불구내’란‘붉은 해’의 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태양을 말한다.
곧 박혁거세 임금은 태양의 아들이며,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손(天孫)사상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불구내란 태양,양(羊)과 관련이 있으며 박혁거세 임금을 ‘알지거서한’이라고 한 것도 ‘알의 자손으로 서쪽에 살던 임금’이라는 뜻이니 ‘알지(閼智)’가 ‘아리’와 밀접한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아리랑이나 불구내왕(弗矩內王)을 비롯한 난생실화,그리고 태양족의 후예라는 말은 동일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를 번역한 말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居西干初開口之謂自稱云閼智居西干一起...』 《新編三國遺事》74p.
“맨 처음 입을 열 때에 자신을 일컬어 말하기를 ‘알지거서한’이라하고는 단번에 일어섰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역사전반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번역한 것이다.
하나의 장으로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알지거서한은 ‘서쪽에 살던 임금’이라는 뜻이며,
알지란‘알의 자손’ 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불구내(붉은 해 곧, 太陽)’,‘거서간’,‘알지(○)’는 모두가 박혁거세 임금 1인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이해한다면 삼국유사의 앞글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서쪽 중국대륙에서 살았던 (박혁거세)임금이 처음 입을 열어 자신을 일컬어 말하기를 알(태양)의 자손이며, 서쪽(西土 中國)에서 살던 임금은 다시 한번 일어선다(재기한다)”
이 말은 신라의 건국시조인 박혁거세 임금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추상적이거나 신비한 신화와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고 계승했음을 알게 한다.
□ 고대문자 상의 알과 태양(太陽)
동이족의 시조할아버지이신 염제신농(炎帝神農)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신의 기원》이라는 책에서는 고전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염제는 태양이다.”《백호통의》
- “염은 불빛이 올라가는 것이다. 火가 겹쳐진 것을 따른다.”《설문해자》
- “염제는 불을 관직명으로 하였으며, 姜이란 성은 그 뒤의 일이다.”《좌전 애공 9년》
- “염제는 불을 표지로 삼았으므로 불로 관직명을 만들고 불로 이름을 지었다.”
《좌전 소공 17년》
- “염제씨는 불을 종족의 표지로 삼고, 불로써 관직명을 만들었으며, 불을 종족의 이름으로 하였다.”《좌전》
지금까지「알(아리) = 양(羊) = 양(陽, 혹은 太陽) = 일(日) = 남자의 생식기」라는 동일한 개념을 실제 유물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愙齊集古錄》第21冊4項-2 을 그 사례로 들어본다.

위의 금문은 羊과 己를 나타내 양족의 己(=巳,子)씨란 뜻이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대로 알(아리)는 '羊 = 陽 = 日'의 뜻이며, 생소한 글자인 己는 자성(子姓)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고조선시대에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가정형태를 갖고 있었다.
각기 한세대의 차이가 나는 동성의 인물 2명이 같은 경우로 이성의 2명과 혼인하는 이른바 4인 1실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런 구조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亞자이며, 은나라의 구조물에서 이 亞자의 형태가 발견되고 있고 오늘날의 훈으로는 '동서, 배우자'등의 의미를 갖게 되는 배경을 설명하는 글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己(=巳,子)씨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작은 마누라(어머니 두분 중 조카뻘)라는 뜻으로, 다시 말하면 자신은 아버지의 작은 마누라의 소생이라는 의미이다.
거듭 설명하면, 군혼사회 → 다수배우자 사회 → 부계사회라는 전반적인 인류고대사회의 발전과정 중에서 고조선시대는 고모와 조카가 여자배우자로, 삼촌과 조카가 남자 측의 배우자가 되어 남자와 여자배우자가 각각 2 : 2로 구성되는 혼인형태였다. 이는 오늘날의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드나, 고대 기록과 백남운의 《조선경제사》에서는 이런 혼인에 관한 내용을 일부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금문의 己는 자성의 대표격인 ‘子 ‘로 바꾸어 읽으면 '羊己 → 日己 → 日子'로 해석이 되어, 금문의「羊子(=日子)」란 양족의 아들로서 작은 마누라가 낳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금문의 명칭을 최종적으로 ’일자고(日子觚)‘로 명명함이 옳은 것이다.
통칭인 자성(子姓)에는 사(厶) ․ 사(姒) ․ 이(以) ․ 희(姬) ․ 자(子) 등이 있어 이름자에 이들이 포함되면 작은 어머니의 소생이라는 뜻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예를 들면,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중국인의 시조라는 황제를 설명하여 원문은「黃帝者,少典之子,姓公孫,名曰軒轅...」 《史記》卷一 本紀第一로 기록이 되어있고, 이를 “황제는 소전의 아들로서 성은 공손이며 이름은 헌원”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잘못된 해석이다. 앞의 설명대로 자성(子姓)의 개념을 알았다면 다음과 같이 해석했을 것이다.
「黃帝者,少典之子姓公孫,名曰軒轅...」 황제는 소전의 작은 마누라가 낳은 아들(子姓)로 공적인 후계자이며, 이름은 헌원이다.
결국 사마천도 부계사회가 공고히 된 한(漢)나라 시대의 개념으로 해석한 것이다.
사마천은 부계사회의 잣대로서 모계사회로 운영되는 고대사를 모르고 기술함으로써 잘못된 역사해석을 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사마천 뿐만 아니라, 공자를 포함해서 우리가 성경처럼 받들고 인용하는 중국의 각종 사서기록이 유사한 잘못을 갖고 있으나, 이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어 우리는 거의 기록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일부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펴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물증이나 객관적인 자료를 내놓지 못해 의문만 제기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본래 우리가 찾고자하는 日子(=己,巳)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대인물의 족보를 기록한 당우삼과병명(唐虞三戈兵銘)이라는 칼을 살펴보자.

이 칼은 청나라 말기 중국의 “하북성 보정 청원 남향의 고양성(高陽城)” 부근에서 발견된 고조선 왕가의 족보 기록을 모사한 것이다. 실물은 현재 요녕성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연구결과 이 칼은 고조선시대의 3대, 4대, 5대에 이르는 족보임을 밝혀냈다. (길이는 27.5 cm이다.)
이 세 자루 칼 중에서 제일 위에 있는 첫 번째 칼의 좌측에서 두 번째와 다섯 번째의 인물은 우리가 언급하는 알(•)로서 자신의 이름을 삼았다.여기서도 우리가 알에 태어났다는 말은 신화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데,앞의 금문에서 후보가 될만한 이름이 있어 '日子觚'의 청동기가 고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日子가 들어있는 것은 첫 번째 칼의 祖日子와 두 번째 칼의 마지막 인물인 父日子 등 2명 중의 한 사람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이들이 생존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기원전 2,450년 전후에 이 청동제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日(=羊)己觚'는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의 생활용구임을 알 수 있다. 《금문신고》에서는 ‘父日己’로 지목했다.

위의 금문은 이미 난생실화에서 살펴보았던 ‘중여존(舊 丁子尊)’이라는 명문으로서 앞으로도 몇 차례 대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우측 첫째 줄에 있는 는 도깨비 기(夔)로 읽는 글자로서 머리에는 양의 뿔이 달려 있어서 양족의 사람임을 표시하고 있다. 곧, 양족의 ‘기씨’라는 뜻이다. 글자 자체 내에서도 양의 눈, 人이 들어있어 '羊人'의 개념이 들어 있다.
- 因而正聲讀「柱」(足)變音讀「系」,讀「夔」又是以後的變化了.《금문신고》「화폐집」37p.
이런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양(羊)이 단순히 쓰인 것이 아니라 족칭임을 알게 된다.
양과 함께 日로 자신의 족칭을 표시하는 이런 전통은 지속적으로 계승되는데, 곤(鯀)이라는 인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장자에서는 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중국 고대 전설에 따르면,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라 한다. 그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넓이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솟아올라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가득히 드리워진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의 기운이 움직이면 남쪽 바다로 날아가는데, 남쪽 바다란 천지(天池)이다. 기이한 일을 잘 아는 재해(齋諧)라는 사람은 말한다. "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 갈 때는 물결을 삼천리나 일으키고, 회오리바람에 날개를 치고 오르면 9만 리에 이르며, 한번 오르면 반년이 지나서야 멈춘다.』 장자(莊子) 제1 소요유(逍遙遊)편
어(魚)씨 곤은 자신의 외손자이자 새족 집안인 제곡고신의 아들 지(摯)를 밀어 임금의 자리에 않힐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인물이었음이 금문에 기록되어 있다.또한 조선이라는 한자에서 '鮮'이라는 글자로 표현된 인물이기도 하다.
* '朝鮮'이라는 글자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조선 시대에 자신을 나타내는 토템을 당시의 글자로 모은
신위/위패에 해당한다. 글자의 획순은 족보의 순서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상상력을 동원하고 과장해서 곤을 말하기는 했으나, 그가 그토록 큰 인물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실제로 고조선 역사상에서 그만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객관적으로 외손자인 지(摯)가 임금을 할만한 실력이나 차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곡고신 임금으로부터 나라를 건국할 만한 막대한 정치적 로비자금을 받은 후 지를 임금으로 책봉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의 큰 인물이었던 것이다. 마치도, 조선시대의 대원군의 위세를 능가할 정도였다. 고조선문자의 실물기록을 통해보았을 때 곤은 실제로 그런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고조선을 이끌었던 조상들의 상형문자 이름을 조합하여 구성한 조선(朝鮮)에서 곤은 鮮이라는 이름으로 기리고 있는 것이다. 鮮이라는 이름 자체가 羊족의 魚씨라는 뜻이다. 고조선 당시의 선(鮮)의 실제 문자는 다음의 금문(군고록 1-2-65)과 같다.

이미 우리는 '羊 = 陽 = 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日은 족칭으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동이족이요, 작게 말하면 김씨, 이씨, 신씨와 같은 가문을 나타내는 말이다.
'日 = 羊'이므로 ‘日魚’는 곧 '羊魚'로서 한자로는 鮮으로 기록한 것이다.
곤이란 인물은 양족의 어씨란 의미이며, 개인씨칭을 곤(鯀)으로 한 것은 바로 양족의 어씨가 (조선의 역사를) 이은 실력자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는 동이족이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집이나 자동차와 같은 가치 있는 물건을 사들였을 때 북어를 넣어두는 것도 이 곤의 위력을 빌리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위의 금문(《西淸古鑑》券3)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로 「閼(혹은 珠)高羊」이라고 쓰인 것이다.
‘알씨 고양’이라는 뜻으로 사마천의《사기》에서 ‘고양전욱’이라고 기록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는 사마천이 동이족의 조상을 폄훼하려는 의도로 기록한 것으로 의심 받을 만 한 것이며,
실제로는 ‘고양정옥(高羊正玉)’으로 읽어야 옳다.
고양전욱(高羊顓頊)이라는 이름은 ‘미련하면서도 독단을 일삼는 사람’이라는 악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정옥은 실물기록에서 보듯이 자신이 삼신의 후손으로 양족을 대표하는 알씨라는 뜻을 천하에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글자의 양뿔 아래에 삼신을 나타내는 △을 뒤집은 글자 ▽는 삼신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이 ▽에다 양뿔을 합쳐 표현함으로써 양족의 삼신(三神)을 이은 후손이라는 의미를 확실히 밝혀 놓았다.
양족의 알씨라는 의미이다. 좌측의 금문을 보면 고대부터 왜 양(羊)과 알(閼 혹은 해)를 동일시해 왔는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 할 것 같다.

하나의 사례를 더 찾아본다. 이른 바《양계존(羊癸尊)》이다. ‘양계존’은 가제집고록《愙齊集古錄》13冊에 수록되어 있다. 羊은 日과 같은 개념이므로 ‘양계(羊癸)’는 ‘일계(日癸)’가 된다.
글자는 앞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청동창에 새겨진 인물 중 한사람인데, 대상은 아버지 항렬의 4인과 형님뻘의 두 분을 포함한 총 6분 중의 한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읽어나간다는 점에서 양을 먼저 그림으로서 양족이 왕으로 세력을 가질 당시에 만든 예기인 점을 감안하면 그 시점은 BC 2,329 ~ 2320 사이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는 이런 연대 계산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나, 하나씩 깨우쳐 가면 결국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기서는 당우삼과병명(唐虞三戈兵銘)을 통해 ‘양(羊)이 왜 알과 동일한 글자’인가를 아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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