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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의 남민전 암호명은 '한국주'
1976년2월 29일 17;00시, 청계천 3가 중국음식점 "태성장" 2층 방에서 이재문,김병권, 신향식이 접선하여 3인이 남민전 중앙위원에 취임하기로 결의하였다.이들은 강령, 규약, 선서문을 확정했다. 3명은 이재문이 꺼내든 재크나이프를 포개 잡고 선서를 했다.
이재문은 조작관리와 자금을 담당하고 김병권은 학습을 담당하고 신향식은 빈민과 노인들을 포섭 교양하기로 임무를 분담했다.
이재오는 이재경에 의해 포섭되어 1976년 10월 3일 20;00시 전수진의 집에서 이해경의 사회와 신향식의 입회하에 가입식을 치뤘고,여기에서 이재오는 조직의 가명 '한국주'를 부여받았다. 남민전 강령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박정희 팟쇼정권의 타도에 있으므로 반체제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포섭하여 민투를 조직하고 민투 조직을 관리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재오-이해경-신향식이 '민투'의 지도위원이 된 것이다.
대검찰청 공안부가 작성한 '좌익사건실록' 12권 704~708 쪽에는 14개 항목에 달하는 이재오의 죄상이 기록돼 있다. 이재오는 중장대학 농촌사회개발학과에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하다가 제적당하자 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고 1971년 4월 민주투쟁을 위한 명분으로 민주수호 청년협의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취임하여 반체제 활동을 하다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반공법 위반,긴급조치 위반 등으로 몇 차례 구속되자 반정부 의식을 더욱 굳게 하여 정권타도에 나섰다. 수많은 사람들을 민투에 가입시키고,불온 삐라 살포작전을 주도하고, 버스 안 (153번 버스)에서 신문에 싼 다이너마이트 6개를 전달하는 등의 행위로 동 사건에서 비교적 무거운 15년의 구형을 받고, 5년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남민전 사건이란??
1976년2월, 이재문,신향식, 김병권 등이 '반유신민주화'와 '반제민족해방 운동'의 위장 기치를 내걸고 비밀단체 '남조산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을 조직했다.1977년1월,남민전은 전술조직으로 '한국민주투쟁위원회'(민투)를 결성하여 유신체제를 비판ㄹ하는 유인물 및 기관지('민주의 소리')를 8차례에 걸쳐 배포하는 등 反유신투쟁을 전개했다. 이어서 '민청학련' 등 학생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청년학생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주구국학생연맹','민주구국교원연맹','민주구국농민연맹'을 결성하였다. 또 다른 조직 ,'민주구국노동연맹'의 결성을 시도하던 중 1979년 10월 4일부터 11월까지 이재문,이문희.차성환,이수일,김남주 등을 비롯하여 84명의 조직원이 일망타진 구속되었다.
일간지들에서는,'북한공산집단의 대남전략에 따라 국가변란을 기도한 사건','북한과 연계된 간첩단사건','무장도시게길라 조직',등의 헤드라인으로 발표되었다. 남민전 사건은 박 대통령 시절의 최대 공안사건이다. 판결 기록에 의하면 남민전 관련자들은 체제전복을 위한 혁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위공직자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쳤다( '봉화산 작전' 1978.12.5),#동아그룹 최원석 전 회장 지에 들어가 경비원을 칼로 찔렀다 ('땅벌사건 1979,4,27) #금은방을 털려다 미수에 그쳤다 ('지에스 작전 1979.3.5) $1978년 7월8월 경 예비군 훈련장소에서 카빈소총을 훔쳤다.
남민전사건이 종료된 1981년 10월, 대검찰청은 2,200여 쪽에 달하는 공소장과 판결문 등을 기초로 "좌익사건 실록" 12권을 발간했다. 이 실록에 따르면,남민전은 "주체사상을 확립하자"를 첫번째로 하는 전사(戰士) 생활 규범 10개조를 마련하고, 조직원들의 '교양학습'을 위해 평양방송 자료를 사용했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민전은 북한과 연계된 조직이었다. 남민전의 주범 중 한 명인 안용웅(安龍雄)은 일본을 거쳐 월북해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와 충성서신을 제출하였으며,이는 대남방송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그는 공산햑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할 것을 모의했고, 혁명이 성공하면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도 준비했다. 이 깃발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당한 도예종 등 소위 '8열사'가 입었던 내의를 염색한 천으로 만들었다.
좌익사건 실록에는 남민전이 깆일성에 바치는 서신이 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 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족구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남민전이 주사파들의 모태
남민전의 조직원은 당시에 검거됐지만 남민전이 웅동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남민전 잔당들은 1980년대 좌익세력에게 주체사상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한국을 공산화 하기 위해서는 反제국주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이 주사파들에 교육된 것이다.
남미전이 퍼뜨린 주체사상은 1980년 광주사태를 촉매로 하여 대학가에 급속히 확산됐다는 것이 주사파 전향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이들은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조직을 학장했다. 좌익사상범에서 전향한 소설가 김정익씨는 교도소 내 남민전 연루자들과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1989년 '수인(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쓴 바 있다.이 책에서 김 씨는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 연락책까지 동원,교도소 내외에 비밀 지령을 주고 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남민전이 교도소 내에서 조직을 강화시켜 국내 좌익세력의 토대가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김씨는 남민전 연루자인 시인 고 김남주로부터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았다. "계급적 활동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그 숫자는 200만명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이수일,임헌영,홍세화,권오헌 등은 출소 후 각각 전교조 (전 위원장)활동, 친일청산 (현민족연구소장),한겨레심문(현시민펹비인), 통일연대(현 국보법철폐특별위원장)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벌은 받았지만 사상은그대로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빨갱이들이 민주화 투사라니~!!
2006년3월 13일,대통령 직속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회, 위원장 허경철)는 제 162차 심의를 개최, 남민잔 사건 관련 신청자 중 29명에 대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경비원을 칼로 찌르고,금품을 훔치고,강도짓을 하고,무기고에서 무기를 훔쳐 내온 것도 "궁극적 목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먼저 29명을 선정한 것은 29명이 빨갱이 해위 가담 정도가 가장 미약한 사람들이며,옥중 사망한 이재문,사형이 집행된 신향식 등 핵심인물들에 대해서는 보다 좋은 구실을 찾아낼 때까지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런 기막힌 작태에 대해 한나라당이 함구하는 것은 아마도 이재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나라당 소속이라 하여 모두가 우익은 아니다.이재오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 헷갈릴 것이다.어떤 때는 우익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좌익 같기도 하고,이념의 행로에서는 확실하게 "왔소 갔소"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헷갈리게 연막을 치고 가끔은 우익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100% 다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지만원
실린곳;시국진단 11월호
펴낸곳;국민의 함성
**한국민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연방제를 통일방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념이 달라 갈라진 남북이 이념이 다른 상태에서 연방제를 한다고 통일이 될 수는 없죠.북한의 연방제는 통일방안이 아닌 통일을 위한 수단(手段)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말하는 통일이란 기본적으로 무력적화통일입니다. 연방제는 결국 남한에서 내분(內紛),내란(內亂)을 일으켜 무력적화통이의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남한 내 폭동暴動을 일으킨 뒤 남한 내 애국자들을 돕는다는 구실로 무력남침하겠다는 의도로 주장해온 것이 연방제의 본질입니다- 윤상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5년 실형) 6.15 적화문서가 뜻하는 것이 바로 이 연방제로 가자는 것이다. 이런 적화음모를 이행해야 한다는 박근혜의 사상은 마땅히 규탄되어야 하고 북의 적화통일 노선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북의 북침설을 확산시키고 미군철수 국보법 폐지 연방제 주장에 동조한 친북 매체 MBC를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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