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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계 위에 서는 여자
바다가 보이는 산과병동 흰 시트 위에 누워있는 여자는
아직도 굴참나무 숲에 서 있다.
반질반질한 갈색 껍질이 터진 틈새로 비치던 도토리의 연초록빛 살을
들여다보던 손바닥.
두 손바닥으로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이른 봄 숲처럼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때 여자의 손길은 신이 최초로 진흙을 주무르던 때같이 눈부시다.
어릴 때 만지고 놀던 진흙의 찰기와 미끄러움이 되살아난다.
여인의 입가에 미소의 여울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다.

어미의 적혈구가 물길을 따라 흐르는 것이 보이는 반투명 덩굴을 몸에 두르고
양수의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지느러미를 놀리는
어린 목숨이 움켜잡을 주어는 어미와 다른 '나'다
내 몸의 일부이면서 내가 다스릴 수 없는 타자의 몸.
목숨은 아름다운 모순에서 시작한다.
원생동물에서 사람에 이르는 아득한 모순의 나무 잔가지 끝.
한 그루 나무가 꽃과 잎을 무너지고 다시 차는 달의 리듬에 맞추어
펴고 지워온 멀고 먼 길 끝 벼랑에 서 있는 여자.

아침 햇살처럼 흘러내리는 임신복을 걸치고 여자는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가볍게 발꿈치를 드는 것은 어제와 같다.
체중계 바늘이 한동안 전율하는 것이 어느 날 느닷없이
배 속 캄캄한 항아리 안으로 뛰어들어온 격렬하고도 눈부신
울음소리의 무게 때문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허만하
(1932 - )
'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 2002 / 솔


PAINTINGS BY GUSTAV KLIMT (1862-1918)
1. Farmhouse with birch trees / 1903
2. Hope II /1907-8
3. The Three Ages of Woman (부분)/ 1905
4.Island in the Attersee /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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