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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에게서 실패했다. 그림은 나에게서 실패했다. 그 그림은 내가 기대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이 내가 기대하는 만큼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림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그림이 원하는 사람이 될 이유도 없었다. 그림과 나는 다만, [그림]과 [나]였다. 이 사실을 망각하고 "그림과 나"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림과 나의 대화는 가장 격렬했고, 가장 증오했고, 그리고 가장 사랑했다.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만큼 증오하지도 않는다. 끝내 "그림과 나"는 서로는 아무 이야기도 동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림에게서 실패했고, 그림은 나에게서 실패했고, 마침내 모든 부정을 겪어내고 나서야 단단해진 스스로들은 [그림]과 [나]가 되었다. 절대 긍정으로의 전회다. 아마 이제 대화는 침묵일 것이다. 서로의 정보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성을 뿜어내는 방식으로, 다만 서로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림]과 [나]는 대화할 것이다. 절대 긍정이란 그런 것일까. 어쩌면 지금부터야 말로 [그림]과 [나]는 관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미끄러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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