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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8년 11월 18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뒷골목. 나는 때 이른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길을 걷고 있다.
예순이 됐지만 대한민국 평균수명 90세에 비하면 아직 꽤 젊은 축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감기기운이 온 몸에 퍼져 나는 기침을 연신 해댄다.
기관지 부근에선 끈적거리는 가래가 끊는다. ‘퉷’ 무심코 몸 밖으로 나온 가래가 차갑고 매끈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진다. ‘아차….’ 내 몸에서 떨어진 액체가 채 식기도 전에 바닥을 뒤덮고 있는 센서들을 통해
내 DNA 정보가 경찰청으로 전송됐다.
잠시 뒤 손목에 차고 있는 휴대용종합단말기에 ‘벌금 XX원’이란 경고표시가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 혼자 상상해본 30년 뒤 미래의 모습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나는 세상이 통제되기 쉬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이는 과거부터 접해왔던 SF영화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된다. 미래를 통제가 극심한 디스토피아로 보는
감독들의 시각은 영화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오늘은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바라보는 영화들과
그 영화가 바라본 통제의 주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초국가적 거대 기업이 통제하는 미래
리들리 스콧 감독 -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

올해 한국나이로 72살인 리들리 스콧은 대표적인 영국 출신 감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글래디에이터'‘델마와 루이스'‘G.I제인’‘한니발’‘아메리칸 갱스터’‘블랙호크다운’
등과 최근작 ‘바디 오브 라이즈’까지 만드는 작품마다 화제가 되는 거장감독이다.
1977년 '결투자들'이란 시대극으로 데뷔했다. 리들리 스코트의 작품 중에는 눈에 띄는 2개의 작품이 있다.
바로 ‘에이리언’ 과 ‘블레이드 러너’다. 이 2편 이외에는 SF와 담을 쌓고 있는 감독에게 거장의 칭호를
부여해 준 장르가 SF라는 사실이 흥미롭다(나는 지금도 간절히 그의 신작 SF를 기다리고 있다).
1979년에 미국에서 개봉한(국내엔 1987년 개봉) 에이리언은 당시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주인공 리플리 역의 시고니 위버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영화는 이후 제임스 카메론, 데이빗 핀처, 장 피에르 주네 등 스타 감독들에 의해 4편까지 제작 되었다.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들이 일하는 우주선 노스트로모(Nostromo)號에 명령을 하달하는 주체다.
원래 ‘노스트로모’란 이름은 영국의 소설가 J․콘래드가 1904년 발표한 소설 제목으로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노력에 무의미함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노스트로모 號는 영화 속에서 '회사'라고 지칭되는 상위기관에 의해 통제 된다.
우주선 내에 모든 인물들은 이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인데 그들은 매우 중요한 우주광물을 운송하면서도
회사 이외의 통제는 전혀 받지 않는다. 1~4편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 지구라는 행성마저 4편 마지막 부분 잠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처럼 ‘에이리언’이 그리고 있는 미래는 철저히 자본가에 의해서 관리되고 통제되는 모습이다.
이런 경향은 1982년 리들리 스콧이 만든 SF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다시 한번 나타난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2019년 LA를 배경으로 타이렐 社(The Tyrell Corporation)라는
유전공학 회사가 리플리컨트(Replicants)라 불리는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내면서
사회를 통제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특수경찰대인 블레이드 러너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리플리컨트들에게 ‘해고’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집행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분명 경찰의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실제로는 ‘타이렐’이란 회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영화 막바지 블레이드 러너인 주인공 해리슨포드 역시 ‘리플리컨트’임이 암시되는데 여기서 미래를 철저한
자본가들의 통제 사회로 묘사한 감독의 시각을 엿 볼 수 있다.
앤드류 니콜 감독 - 가타카(Gattaca)

‘트루먼 쇼’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한 앤드류 니콜은 1997년 ‘가타카(Gattaca)'로 감독 데뷔를 했다.
가타카는 우성인자(완벽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사람)만이 주류사회에 편입 될 수 있는 근접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열성인자(유전자 조작 없이 자연분만 된 사람)인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가 영화 속 세계에서
가장 선망받는 직업인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우성인자지만 반신불수가 된 수영 은메달 리스트
제롬 모로우(주드 로)의 신분으로 위장, 자신의 꿈을 이루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세상을 통제하는 곳은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우주비행선을 소유한
우주 항공 회사‘가타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존재를 의심하고 추적하는 주인공의 동생(형사) 역시 국가보다는 회사의 요청에 의해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이러한 회사의 통제는 ‘트루먼 쇼’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주인공이 거대한
세트에서 자신의 모든 삶을 통째로 중계 당하게 만드는 주체 역시 방송이라는 회사였다.
마땅히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는 '트루먼 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강력한 국가가 모두를 통제하는 미래
폴 버호벤 감독 - 로보캅, 스타쉽 트루퍼스, 토탈리콜

섹스와 폭력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폴 버호벤 감독은 ‘원초적 본능’ '쇼걸'과 같은
섹스 스릴러와 ‘토탈리콜’ ‘로보캅’ ‘할로우맨’ 등 SF를 주로 만들어온 재능이 있는 감독이다.
특히 그가 만든 SF영화들은 군국주의자란 비난을 받을 만큼 미래를 국가 통제 사회로 그리고 있다.
영화 ‘토탈리콜’에서 2084년 지구 식민지 화성의 광산노동자로 일하는 주인공 퀘이드(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모두 국가에 의해 조작된 기억을 바탕으로
한 허상에 불과하다. 로보캅의 경우 범죄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경찰로 복무하던 주인공 머피가 범인을 쫓다
살해 된 뒤 로보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개인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오직 국가에 의해 결정된다.
로보캅은 치외법권으로 존재하며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살인을 포함한)는 국가에 의해 정당화되기도 한다.
스타쉽 트루퍼스의 미래는 완벽한 군사 국가 체제를 바탕으로 모든 국민의 군인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
통용되는 논리의 근거는 외계 공격으로부터의 지구 방어에 있다.
이는 전쟁이 모든 국가 통제를 합리화 하고 있는 지구 상 분쟁지역과도 유사성을 보인다.
아마도 폴 버호벤은 폭력이란 모티브를 통해 가장 거대한 폭력을 행사 할 수 있는‘국가’를 미래 사회의
통제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이 밖에도 많은 SF영화에서 자본가와 정부를 미래사회를 통제하는 중심세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권력을 가지고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가는 세력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탓으로 여겨진다.
과연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통제가 극심한 정보비대칭의 디스토피아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유토피아를 이룩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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