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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이 보는 존 칼빈
존 칼빈은 한국에서 가장 교세가 큰 장로교회 교리 창시자입니다. 다음은 주로 유태대백과에 나온 것을 요약했습니다.
칼빈은 초년 25년 오를레앙에 거주할 동안은 그 곳에 이미 유태인 추방이 완료된 후에 살았기 때문에 유태인과 부딪힐 일이 없었으며 후반 1/4 생애- 종교개혁가로 활약한 - 는 제네바에서 거의 보냈는데 마찬가지로 제네바의 유태인 추방도 1491년 완료되어 칼빈이 유태인과 상면할 일은 거의 없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유명한 미카엘 세르베투스 (유니테리언파 최초 순교자 - 폐의 순환을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 종교이론가, 등등 )와의 논쟁에서 세르베투스가 지나치게 친유대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의 참수를 주장, 그의 화형에 기여했습니다.
화형의 직접 이유는 세르베투스가 삼위일체와 유아세례를 성경과 맞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 불경죄로 지목당했기 때문입니다.
1556년에 나온 칼빈 설교 중 유태인에 관한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기독교도)들을 강간하고 괴롭힌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여 칼빈은 유태인을 경멸했다 라는 편이 맞습니다.
유태백과사전은 그를 '발람'같은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따라 광야에서 방황 40년이 끝나갈 즈음 모압족장 발락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민족을 저주하기 위해 불려져온 사이비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저주를 축복으로 이스라엘에게 바꾸어 내리도록 만드셨습니다.
칼빈이 구약 특히 율법에 매우 심취하여 제네바를 그런 강경율법주의로 통치했다라고 설명하였고, 이교도보다는 유태교에 관대한 편이다고 하였고 - 이 말은 유태교보다는 이교도에게 훨씬 잔혹했다는 뜻입니다. - , 그런 칼빈의 구약심취 성향 덕분에 그의 계파에서 친히브리 성향의 제자들이 유독 많이 나온 것은, 발람의 저주를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꾼 일과 같다 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칼빈은 추방유태인에 냉담하였는데 이유는 칼빈의 후원자들의 (다른 종교개혁가들도 마찬가지로) 이익이, 유태상인과 은행가들의 이익과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의 기술: '저들 유태인들의 타락하고 굽어지지 않는 완고함은 그들이 끝없이 핍박받고 그 누구의 동정도 없이 저들의 불행 속에 죽어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 from 'Ad Quaelstiones et Objecta Juaei Cuiusdam Responsio,' by John Calvin
존 칼빈과 마르틴 루터는 유태인을 사탄의 자식이라고 법적으로 못 박았다. 종교개혁가들은 유태인을 증오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기독교 아이덴티티를 이해 못했다. 그들은 결코 유태-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칼빈과 루터와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는 반유태주의자들이었다! Pastor Joe Johnson
2009.7.04. 파아란 한은경.
http://cafe.daum.net/paaran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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