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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과 종로 사이에 위치한 인사동은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인들이 살던 주거지역이었다. 그 후 미술 활동의 중심지로 형성되어 1930년경에 서적과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고 1950년 전쟁 뒤에 바로 옆 낙원상가 거리에 낙원시장이 만들어 지면서 평양떡집을 시작으로 떡집골목도 늘어나게 되었다. 1980년경부터는 골동품, 고미술, 화랑, 고가구점, 민속공예품, 화방 등이 생기면서 명실상부한 전통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과 견평방에 속했던 곳이 갑오개혁 당시의 행정개편으로 원동, 승동,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으로 나누어진다. 관인방의 인(仁)과 대사동의 사(寺)를 합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북으로는 관훈동, 남으로는 종로2가와 적선동이 있으며 동으로는 낙원동, 서쪽으로는 공평동이 자리하고 있다.

잎새와 같은 독특한 모양을 한 지형이며 전통 문화지구로 인사동 길은 12큰 골목과 12 작은 골목으로 구분된다.
북 인사마당이라 해서 안국역주변에 느티나무 밑으로 생기는 쉼터마당을 소공원과 함께 보도를 넓혀 더 넓게 만든 공간이 자리한다. 남 인사마당은 테라스 형 공원으로 종로에서 들어오는 상징마당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진입 상징으로는 열주 나무기둥을 심어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골목 안을 어지럽히는 플래카드나 휘장들을 없애고 그 기둥을 이용해 이벤트나 행사를 알리자는 정화차원의 목적이 있다고 한다.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길은 이 거리를 바꾸는데 제일 난제다. 바꾸고도 안 바꾼 듯해야 하고 디자인을 새롭게 하고도 안 한 듯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사동을 새천년이 되면서 새로 꾸미기를 맡은 사람은 (주)서울 포럼의 대표인 김진애 이다. 그녀는 특색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전돌 점토 벽돌로 정했다. 기왓장 색깔을 내기위해 특별히 구워낸 전벽돌은 물기가 촉촉이 묻으면 더욱 제 색깔을 낸다. 도로포장에는 세 가지 크기의 줄무늬로 나열해서 걷는 리듬을 살렸다고 한다.

골목 앞에는 장대석 포장으로 거친 느낌을 주어 골목입구라는 걸 느끼게 하였으며 차도 기능으로서는 차량 감속 역할과 주차방지, 포장마차방지 등의 역할도 하게 했다. 골목 어귀에는 지방석을 두어 문지방 역할을 하게 했으며 모퉁이마다에는 기둥을 두어 골목 등이 걸리었으며 상점들이 안내 간판 등을 걸 수 있게 하였다.
처음에 이 거대하고 일정치 못한 돌들과 접했을 때 ‘뭐 이런 가당치 않은 것을 여기에 놓아두었을까?’ 하는 황당함이 일었다. 그러나 자꾸 앉아도 보고 만져도 보면서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과 있는 듯 마는 듯 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어느 따스한 마음을 가진 상점의 주인이 비단 방석을 돌 위에 갖다 놓을지도 모를 장면을 상상했다는 인사동 거리의 설계자. 취객이 많기로 유명한 그 길에서 행여 돌 벤치에 드러누워 잠이라도 들까봐 길이를 제한했다는 말도 있다. 항상 사회엔 좌우가 있듯 그 거리의 탈바꿈에도 찬반이 분분하다. 그러나 만남의 장소, 사랑의 장소, 전통발견의 장소로서 전벽돌의 색깔과 장대석은 어울려 보인다.

인사동의 상가들은 국내 경기순환과는 무관하다. 불황을 모르는데 일종의 문화프리미엄을 가졌기 때문일 게다. 정태춘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유행가속의 ‘침 발라 기름 발라 인사동’이라는 말처럼 가짜가 범람하는 거리지만 그래도 불경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동네이다.
사람들은 흔히 큰길만 다니며 상가들을 대충 훑어보고 인사동을 다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골목의 중요성을 잊은 것이다. 기억의 길들이 숨어 있다. 일단 그 길에 들어서면 더 큰 세계가 놀라울 만치 얽혀있다. 많은 이들이 탐험하기를 거부하는 좁은 길, 옛날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골목. 촌스럽기 그지없으며 사랑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거미줄 같은 추억이 배어있는 뒷골목의 세상이 거기에 있다.
수많은 문객들이 인사불성이 되어 윗도리 벗어 어깨에 걸친 체 어깨동무하던 거리. 적당한 술값, 음식 값에 바가지 쓸 일 없다며 왕래를 멈추지 않던 그 곳. 낭만과 풍류를 흉내 내는 내왕 객들이 마치 시인이라도 된 듯 멋진 구절들을 밤하늘에 대고 뇌까리던 인사동길.

그 길에 쌈지길이라는 ‘ㅁ’자 공간이 한 기업인에 의해 생겼다. 건물 안쪽에 빈 공간을 넣어 놀이마당을 만들어 각종 공연을 하고 빙 둘러 전통 상가들이 있다. 4층 건물을 오르는 나선형 길을 따라 첫걸음길, 두오름길, 세오름길, 네오름길이라 이름 지어져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몇 번의 방문에도 그 곳이 그리 익숙해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수도약국 앞에서는 약속 한 번 안해 본이가 없을 것이다. 그 건너편에 위치한 인사가나아트센터는 관광객들에게 추천해도 부끄럽지 않는 곳이라 생각한다. 전통의 공예품들이 고급스럽게 상품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관광지에든 이 정도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면 하는 상상을 여러 번 해보았다.
평화 만들기, 이모 집, 부산식당, 소설, 토방, 귀천 등 예술가들이 자주 찾는 식당들을 비롯 정원이 아름다운 경인 미술관의 전시회를 둘러본 후 미술관 안의 찻집에서 다소곳이 앉아 마시는 진한 대추차, 헌 책방들, 여기저기서 매일 열리는 다양한 작품전을 보다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버려 아뿔사 북 마당 쪽에서 타고 떠나보는 미술관 순환 버스는 탈 엄두도 못 낸다.

여러 번 가서도 제대로 다 보지 못한 느낌이 드는 동네. 오랜만에 가도 방금 왔다간 것 같은 거리. 어느 시간이든 많은 이들이 오가는 길. 항상 뒤 끝에 여운이 남는 인사동이다. 어릴 적 추억의 물건들이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우리를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개의 사람들이 가고 싶은 장소의 일순위에서 맴도는 것은 기본이다.
특별하게 잡아끄는 것이 없는 그 곳이 나는 특별하게 좋거나 하진 않다. 그래도 시간만 허락하면 자주 가보고 싶은 거리다. 그냥 담담하게 아무런 표정 없이 머리를 완전히 비운 채 걷다가 유리창 너머의 물건들을 의미없이 쳐다보기도 하면서 하릴없는 시간을 종일 보내보고도 싶다. 거기 인사동에서. 손에는 생강엿이라도 들고서 아이처럼 그렇게.
나는 더 이상은 그 거리가 변하지 않길 바란다. 이미 너무 변했으니까 말인데 건물도 전통방식 외에는 신축건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짜만 있든 진짜만 있든 한국적인 것이 무한정 나오길 바란다. 더 촌스럽고 예스러워지면 더 사랑스럽겠다. 옛 거리랑 기억속의 길들이 존재하는 그런 이 세상에 하나뿐인 인사동이 되어 한국인과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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