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새해가 와도 다시 또 비슷한 일상을 되풀이 하리란 걸 짐작하면서도
결코 무심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큰 탈없이 평범하게 지나온 날들이 고맙다가도
한 해만큼 닳아진 내 삶을 짚어가다 보면
평범함만으로는 갈증이 덜어지지 않는 나만 아는 나, 를 만납니다.
그럴때마다 늘 조금쯤 딱하고 안쓰럽지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살아내는 우리의 일상속으로 찾아드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누군가 여기가 끝이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금 그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무거운 바윗돌을 짊어졌을망정 잠시 멈추어 스스로 금을 긋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이유는
지난한 삶 어딘가에 숨겨 둔 희망때문입니다.
확신도 없으면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그 것,
혼자만 아는 시간속에서 늘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다 닳아졌어도
여전히 햇살 품은 초여름의 개울물처럼 조그맣게 반짝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 것,
한 번쯤은 환하게 터지는 봄꽃나무처럼 달큰하게 내 손을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허망하다 탓하며 굳이 내려놓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이고 나는 여전히 또 많은 시간을 그것을 생각하며 보낼테고
무엇보다도 손금처럼 쥐고있는 바램이 없다면 삶은 또 얼마나 가난한지요.
지난 한 해 가만히 다시 들여다 봅니다.
한결같진 않았지만 아주 잊지는 않을만큼의 보폭으로 나를 찾아왔던 소소한 행복과 기쁨으로
고단하고 쓸쓸했던 시간들을 달래며 일상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이후로도 내내 이만큼의 것들을 만나며 살고싶다고 말해봅니다.
언제나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얼마나 사랑스런 만족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그 한 마디 확신처럼 남겨두고 싶어서
못생기고 아팠던 어느 한 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날들,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한겹한겹 잘 일어나야 맛있게 구워지는 페이스트리pastry 같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아픔까지도 각각 제 몫만큼 부풀어 자리를 지켜주어야만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것, 이것이 삶이라 생각합니다.
새해의 다짐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아갈테니까요.
그래도 가슴속에 상형문자처럼 써 넣은 나만 아는 소소한 계획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계획들이 이뤄진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어 보이는 내 일상을 더 튼실하게 받춰주는 거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눈 감고도 치뤄낼 수 있을 듯 오래 반복되고 익숙한 일상이지만
가끔은 새로운 양분이 있어야만 그 반복조차도 제자리에 머물러 준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살아가다보면 꼭, 새로운 양분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해야 하는 그런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뭔가 시작하는 일 일수도 있고, 뭔가를 그만두는 일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론 무언가를 보태는 일보다 덜어내는 일이 더 어렵듯이
시작하는 일보다 끝내는 일이 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끝내는 것이 다른 것의 시작이 될수도 있다고 믿으렵니다.
그리고, 설령 아무 달라진 것 없는 한 해를 또 보내게 된다 하더라도
그 시도로 인해 나는 그만큼 가벼워지는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핸드브레이크가 올려진 것을 잊은 채
불길한 경보음에 시달리며 바퀴가 마모되는 것도 모르고 달리던 자동차 같았던 어리석음,
새해의 순한 첫 시간 아래에 조용히 묻어두고 싶습니다.
우리들 삶이란 러시안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 doll)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목각인형 안에 조금 작은 같은 모양의 목각인형이 또 들어있는...
늘 맞이하는 새해도 그 러시아 인형같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같은 모양의 크기만 다른 인형이라 할지라도 결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목각인형을 만들고 채색했던 시간과 공간, 나무의 결, 손끝의 힘, 모두 다를테니까요.
이제 또 다시 조금쯤 축소된 시간으로 다가올 새해,
설레임이나 희망도 그만큼 축소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직 내 몫으로 남겨두신 시간이기에
조심스레 리본을 풀고 선물상자를 열듯 그렇게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축소된 시간과 설레임이 단지 축소가 아닌 응축된 삶의 질료이길 소망하면서
당신의 새 시간도 그렇게 다가오길 바랍니다.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Myran, Vancou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