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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영감을 얻는 법, 구글에 들어가 검색창에 낱말을 타이핑하고 엔터키를 치라 ~새로움은 요소가 아니라 배치에 있다② 스티브 잡스~21세기형 창조성을 되묻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그의 삶의 철학…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황당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다    2009/11/01 12:49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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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2009.10.27. 제783호]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1 마지막회]
창조에서 검색으로

디지털 시대에 영감을 얻는 법, 구글에 들어가 검색창에 낱말을 타이핑하고 엔터키를 치라

 

■ 진중권 자유기고가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정보를 저장하는 유일한 장소는 두뇌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힘’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지식과 권력’은 한 몸(savoir-pouvoir)이다. 이 때문에 사회 성원 대다수가 문자를 모르던 때는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진 자, 즉 연장자가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정보를 외장할 수 있게 된다. 지식이 외장되면, 그것은 또한 인간 두뇌의 자연적 한계를 넘어 무한히 축적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것이 이른바 ‘문명’의 시초임을 알고 있다.

 

» 구글.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기계에 구별 능력을 주는 ‘검색’


문자로 저장된 정보의 상징은 아마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는 도서관일 것이다. 거기에는 고대의 지혜를 적은 수십만 권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수장돼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화재로 그 많은 문헌들이 소실되었기 망정이지, 그게 그대로 전승되었다면 후학들은 정말 골치 아플 뻔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는 이 도서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도서관의 원형이자 전범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더불어 도서관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과거에 도서관은 정보들을 모아놓은 하나의 장소를 의미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정보의 집적에서 이 장소의 구속을 파괴해버렸다. 오늘날 정보는 수많은 장소에 산포된다. 여기서 정보는 ‘분류’되는 대신에 위계질서 없이 ‘링크’된다. 인터넷은 디지털 시대에 환생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검색이다. 전통적 도서관에서는 기다란 서랍에 빽빽이 꽂힌 카드와 책 뒤에 붙은 색인이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라는 디지털의 도서관에서는 검색엔진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도서관의 정보는 유한하지만, 인터넷의 정보는 거의 무한하다. 따라서 검색 작업 역시 기계에 맡길 수밖에 없다. 검색엔진의 요체는 생각이 없는 기계에 정보의 중요도를 판단하게 하는, 중요한 정보와 사소한 정보를 구별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일종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물론 기계는 생각이 없다. 따라서 기계가 정보의 중요도를 인식하게 하려면 정보의 중요성이라는 질적 특성을 양화(量化)시켜야 한다. 논문의 질이 보통 인용 횟수로 측정되듯이, 정보의 질은 거기에 링크된 수로 측정된다.

 

하지만 링크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중요한 정보란 보장은 없다. 이 때문에 검색엔진은 좀더 똑똑해야 한다. 구글이 다른 것들을 제치고 검색엔진의 총아로 떠오른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독특한 해법, 이른바 ‘페이지 랭크’(page rank) 덕분이다. 가령 10명이 열어본 페이지 10개와 링크된 페이지가 있고, 1천 명이 열어본 페이지 1개와 링크된 페이지가 있다고 하자. 링크의 수는 전자가 10배나 많지만, 중요도는 외려 후자의 10분의 1밖에 안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똑똑한 검색엔진은 해당 페이지만이 아니라 그것과 링크된 페이지의 중요도 역시 고려해야 한다.

 

물론 링크된 페이지들의 중요성은 다시 거기에 링크된 또 다른 정보들의 페이지뷰에 따라 측정된다. 그리고 이것들의 중요성은 또 그것들과 링크된 또 다른 페이지의 뷰로 측정된다. 이렇게 고리의 수를 하나씩 늘려갈수록, 기계가 한 검색 결과는 인간이 직접 한 검색 결과와 점점 더 유사해질 것이다.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이것은 러시아의 수학자 마르코프가 창시한 속박확률의 개념, 이른바 ‘마르코프 체인’의 원리를 이용한 검색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던 예술가 “새로움은 요소가 아니라 배치”

문제는 기계검색이 열어주는 새로운 인식론적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정보는 해독이 중요하고, 검색은 부차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보가 희귀하던 시절의 낡은 습관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보는 더 이상 희귀하지 않다. 외려 현대 대중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정보 하나하나를 해독하는 능력보다는, 그렇게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정보에 성공적으로 접근(access)하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색엔진은 정보의 바다에 떠 있는 구명보트라 할 수 있다.

 

기계검색은 정보를 생산하는 방식 역시 변화시킨다. 모던 예술가들은 일찍이 “새로움은 요소가 아니라 배치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 당신이 쓰고 싶은 글은 이미 누군가 써놓았다. 당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은 이미 누군가 그려놓았다. 당신이 찍고 싶은 사진은 이미 누군가 찍어놓았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거기에 물 한 바가지 더 들이붓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예술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패러디하고,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몽타주하고, 이미 존재하는 사운드를 리믹스한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다른 작품들을 이리저리 혼성으로 모방해(이른바 ‘패스티시’) 또 다른 작품으로 조직해낸다. 한마디로 그들은 디지털 시대에 널리 퍼질 정보 생산의 방식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미리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구글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찾는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정보를 창작하는 위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창작’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고상한 아우라를 듬뿍 뒤집어쓰고 있다. “아, 떠오른다, 떠오른다, 오선지….” 창작의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낡은 낭만주의 수사법이다. 학생들에게 나는 늘 “영감을 일으키는 기계적 절차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게 뭐냐고? “구글에 들어가 검색창에 낱말을 타이핑하고 엔터키를 치라.” 그러면 단지 그 낱말이 포함돼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텍스트들이 화면에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 영감이다.

 

물론 기계는 인간보다 멍청하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창작을 할 때는 장점이 된다. 기계가 전혀 엉뚱한 자료를 내밀 때, 인간은 본의 아니게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밖에 존재하는 정보를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감’이란 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의 밖에서 불현듯 사건처럼 찾아오는 어떤 것이다. 존 케이지와 같은 작가들이 우연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어냈듯이, 랜덤하게 돌아가는 검색엔진의 멍청함이 외려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해줄 수 있다.

 

검색엔진의 멍청함이 상상력을 확장해

이렇게 얻어진 기계적 영감은 당연히 기계적 글쓰기의 바탕이 된다. 일단 구글 검색창에 검색어를 친다. 검색된 문건들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면서 쓸 만한 자료는 마우스키로 복사해 ‘hwp’에 옮겨놓는다. 이 작업이 끝나면, hwp상에서 문건들을 읽어나가면서 불필요한 정보는 삭제하고, 필요한 부분만 남겨놓는다. 이어서 그렇게 남겨진 조각 정보들을 앞뒤로 자리를 바꾸거나 이리저리 결합시키면서 몽타주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뿐이다.

 

내가 쓴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적어도 60% 이상은 그런 방식으로 쓴 것이다. 이번에 낸 <교수대 위의 까치>는 99% 구글 검색을 통해 얻은 자료로 쓴 것이다. 아쉽게도 ‘네이버’ 검색으로는 이 작업이 아직 불가능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서구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이 정보적(informative)이라면, 한국 네티즌들의 그것은 친교적(fatique)·오락적(ludic)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대신 생활밀착적 정보는 역시 네이버가 짱이다. 한국은 여전히 구술문화다.)

 


당신이 검색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는 야심찬 계획, 지금 구글이 준비하고 있는 것들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글로벌 브랜드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매년 실시하는 브랜드 가치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브랜드 가치가 가장 많이 상승한 기업은 단연 ‘구글’이다. 구글은 올해만 브랜드 가치가 25%나 상승해 약 40조원에 달했으며, 지난해 10위에서 올해 7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몇 년간 100위 안에 들었던 미국 기업들이 경기 침체로 줄줄이 브랜드 가치가 하락했고, 자동차 기업과 생활용품 관련 기업들이 크게 부진한 것과 비교하면, 구글의 약진은 더욱 돋보인다.

 

» 래리 페이지(오른쪽)와 세르게이 브린(누운 이)이 ‘구글’을 작은 창고에서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 회사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왼쪽은 슈미트 최고경영책임자. 이들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밀고 나가고 있다(사진/ 연합AP). 서울의 한 헌 책방(왼쪽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세상 정보만 아니라 몸속 정보도

1998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이란 기업을 작은 창고에서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 작은 정보기술(IT) 회사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페이지뷰와 링크에 따라 검색 결과를 알려주고, 위성사진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지도를 올려놓는가 하면, 동영상 창고인 유튜브까지 사들였다. 최근에는 실사 기반의 지도 서비스인 ‘구글 스트리트뷰’(위치를 지정하면 그 동네의 실제 거리 사진을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선을 보이는가 하면, 음악을 검색하는 서비스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구글이 이처럼 지난 3~4년 사이 크게 약진한 데는 새로운 광고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안드로이드폰 등을 통한 각종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지원 등으로 사업을 다변화한 점이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구글 검색을 통한 페이지뷰 횟수에 따라 기업으로부터 광고료를 받음으로써 검색 웹페이지 자체를 상업 광고로 물들이지 않았다는 데 네티즌들은 열광했고, 이른바 ‘구글 철학’이라 표현되는 그들만의 생각이 브랜드 가치로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결과이리라.

 

그렇다면 구글의 약진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아니면 IT 산업이 포화상태에 도달하면 구글의 운명도 하강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그동안 구글이 했던 일보다 ‘지금 구글이 준비하는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늘 새로운 생각들을 시도하는 그들의 행보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주목 포인트 하나. 지난 몇 년간 구글은 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작은 회사 ‘23앤드미’(23andme)에 40억원 이상의 돈을 투자해왔다. 이 회사의 사장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 앤 워지스키. 그러나 그들이 패밀리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 회사에 투자한 것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소개된 바 있는 ‘23andme’ 서비스는 간단하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일주일 안에 키트(kit)와 간단한 설명서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 키트 안에 침을 뱉어서 다시 우편으로 보내면, ‘내가 유전적으로 유방암과 당뇨병 등을 포함해 118가지 유전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확률로 표시해 알려준다.

 

그뿐인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조상은 어디에 살았으며, 내 몸속에 다양한 민족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내 혈육의 뿌리를 찾아준다. 이미 시판되고 있는 ‘23andme’ 서비스의 가격은 399달러(약 45만원). 필요한 분석 기간은 8주. 구글은 지금 침 한 번만 퉤! 뱉으면 내가 누구인지, 내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가 포함된 인간 염색체의 개수가 23이라 ‘23andme’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8년 <타임>이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한 ‘23andme’ 서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구글이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속에 있는 바이오 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다.

 

독감 검색이 늘면 독감 발생이 많다

그들의 야심찬 꿈은 사람들이 병원에 갈 때마다 받게 되는 진료카드 정보, 약을 처방받은 정보, 수술 정보 등이 모두 전산화돼 있으므로, 그것을 한데 모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이 볼 수 있는 내 사이트에 들어가면 내 유전 정보를 포함해 모든 의료 정보가 담겨 있어 내 건강을 자동적으로 체크해주고 때론 주치의에게 주요 상황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들은 이런 정보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사회의학적 연구나 인류학적 연구, 진화생물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질병 동향을 미리 파악하고 심지어 예방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구글은 몇 년 전부터 독감 관련 검색어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매년 독감 시즌마다 특정 검색어(독감 이름, 독감 예방법 등) 패턴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데이터와 비교해봤더니, 검색 빈도와 독감 증세를 보인 환자 수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독감과 관련된 단어 검색량을 보면, 실제 독감 환자 수, 독감 유행 지역 등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검색 빈도수는 개인의 생활을 반영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기에 개인의 유전 정보와 진료 정보 등이 합쳐지면 ‘세계 시민의 보건복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구글의 주장이다. 실제로 구글은 독감 관련 검색 분석 자료를 매일 공개하고 이를 신속하게 업데이트함으로써 독감 발생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실을 하기도 했다.

 

두 번째 주목 포인트.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와 이미 동의어가 돼버린 구글은 지난 5년간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줄기차게 진행해왔다. 현존하는 모든 책들을 스캔해 서비스하는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1천만 권에 이르는 책의 디지털 작업을 완료한 바도 있다. 저작권이나 출판권 등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페이지뷰에 따른 비용 지불 등의 방식으로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텍스트 정보뿐만 아니라, 오디오와 비디오, 동영상까지도 모두 디지털화되면서 구분이 사라지는 세상이 10년 내에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이책은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그동안 사용 방식(user interface)이 편하지 않아 종이책을 선호했던 사용자들도 아마존의 ‘킨들’이나 소니의 ‘북리더’ 같은 e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제 e북은 종이책을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데다, 길거리에서 쉽게 다운로드를 받게 될 예정이어서 오히려 더 편해질 것이다. 게다가 e북이 대중화되는 데 ‘만화’가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는데, e북의 만화 서비스 수준은 종이책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신문을 구입할 필요도 없다. 내 e북으로 신문이 배달되며, 배달된 TV 뉴스를 동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도시인들의 ‘생활양식’이 크게 달라질 거란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용자 발신 콘텐츠’ 근본적인 변화 틀을 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의 성공은 웹서퍼들이 정보의 바다를 탐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용자 발신 콘텐츠’ 쪽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정보를 어떻게 조직화하느냐가 관건인데, 구글은 한마디로 이 모든 정보를 편하고 효율적으로 서비스할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과연 인류에게 유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근심과 걱정 또한 많지만, ‘그들이 과연 꿈꾸는 세상을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심과 회의가 적다. 프로그램 개발자와 통계학 전공자들로 가득 찬, 그래서 대부분의 업무가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전세계 ‘검색 포털 사이트 회사’들과 달리, 구글은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을 불러모아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 -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구글 앤절리나 졸리
제프리 쇼 박사
헬로 키티 강호동 vs 유재석
쌍꺼풀 셀카
생수 위키피디아
세컨드 라이프 [2009.04.01. 제754호]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⑦]
사이버 공간에는 중력이 없다

무대리가 과장을 거느리고 ‘30대 전문대 졸 무직자’가 논객으로 뜨는 세상, 세컨드 라이프의 전제군주는 인류의 해방자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독어독문과

 

세컨드 라이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건축가 문훈을 통해서였다. 이 괴짜 건축가는 건축에 디지털 논리를 도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건축에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마치 만화처럼 이어지는 스토리를 가진 작업의 첫 단계는 건물의 스케치로 시작된다. 얼마 뒤 그 가상의 스케치는 육중한 건물이 되어 현실 공간에 나타난다. 건축이 끝나면 건물은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바닥에는 이제 해파리 촉수 같은 것들이 돋아나고, 그것으로 공기를 휘저어가며 건물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디로 날아가는 겁니까?” “예, 세컨드 라이프 속으로요.” 이미 세컨드 라이프에 부지까지 사놓은 그는 거기서 건물을 분양할 작정이라고 했다.


» 혁명의 공간 ‘세컨드 라이프’ /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마침내 테러가 발생하다

얼마 전에 어느 외국의 인터넷 신문에서 읽은 기사. 듣자하니 세컨드 라이프에도 마침내 테러가 발생했단다. 처음에는 그저 몇몇 사이버 산보객(flaneur)만이 거닐던 이 한가한 가상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날아온 수백만 가입자가 북적거리는 거대한 대안 세계로 변했다. 현실에서처럼 거기서도 참가자들은 자신이 제작한 가상의 상품을 서로 사고팔고, 기업들 역시 이 가상세계의 잠재적인 경제가치에 주목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끈끈한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서는 당연히 정치적 문제도 발생하는 법. 현실에서도 그 정치적 갈등은 종종 테러와 같은 극단적 방식을 취하지 않던가.

 

자신을 ‘세컨드 라이프 해방군’(Second Life Liberation Army)이라 부르는 해커들이 마침내 수백만 세컨드 라이프 주민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주민들의 참정권과 투표권을 요구하며 이 해방의 전사들은 세컨드 라이프의 개발자이자 지배자인 린든랩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사실 세컨드 라이프가 현실이라면, 린든랩은 전제군주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테러는 목표로 삼은 상점에 하얀 공 모양의 폭탄을 터뜨려 그 근처에 있는 아바타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식이다. 물론 교란의 시간은 짧고 세컨드 라이프의 아바타들에게도 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테러는 테러. 해방군의 행동 역시 실제 테러처럼 짧고 강력하고 인상적이다.

 

워낙 흥미로운 사건이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없을 리 없다.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테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실에서처럼 그곳에서도 견해는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확연히 갈리는 모양이다. 그 격렬한 논쟁의 주요 흐름을 어느 신문이 아주 깔끔하게 요약했다. “좌파의 시각: 사이버공간에 기업의 돈이 들어와서 문제가 생겼다. 우파의 시각: 사이버공간에 테러리스트들이 들어와서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제3의 견해. “자연주의자의 시각: 사이버공간에 인간이 들어와서 문제가 생겼다.” 맞아, 그곳도 결국은 인간이 사는 곳이지….

 

게리 쿠퍼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오는 아바타의 실제 주인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바타와 실제 주인을 사진으로 병치시켜 보여주는데, 그 두 캐릭터가 서로 흡사한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둘이 너무나 달라 시각적 충격을 던져주기도 한다. 가령 강력한 물리력을 갖춘 로보캅을 아바타로 삼은 사람은 알고 보니 병상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아가는 가녀린 소녀였다. 그에게 아바타는 신체 이상이리라. 세일러복을 입은 아리따운 여고생의 아바타를 입은 사람은 알고 보니 40대의 뚱뚱한 아저씨였다. 그에게 아바타는 아저씨의 신체 깊숙한 곳에 잠재된 또 다른 정체성의 발현이리라.

 

복수화한 ‘아이덴터티’

‘정체성’(identity)이라는 말은 동시에 ‘동일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현실은 우리에게 오직 하나의 정체성만을 갖도록 강요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남자로 확인되어야 하고, 여자는 여자로 확인되어야 한다. 이 규칙을 깨고 남자가 여장을 하거나 여자가 남장을 할 경우, 곧바로 ‘변태’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즉 남자 속의 여자, 여자 속의 남자가 있다. 다만 그것이 ‘정체성’의 미시정치 속에서 발현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의 아바타는 한 사람이 다수의 정체성을 갖는 것을 허용한다. 과거의 ‘내 자신’(myself)은 세컨드 라이프 속에서 ‘내 자신들’(myselves)이 된다.

 

현실에서는 언제 잘릴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무능한 대리가 퇴근 뒤에는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 10만의 추종자를 거느린 영주가 될 수 있다. 심지어 현실에서 그토록 자신을 구박하던 과장이 자신의 추종자 속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무대리의 탁월한 능력은 현실에서는 발현될 수 없었던 것이고, 온라인 게임이 없었다면 아마 그는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다가 죽었을 것이다. 가상세계가 없었다면 미네르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벌주의로 병든 한국의 현실에서 누가 ‘30대의 전문대 출신 무직자’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가상세계는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의 발현지이기도 하다.

 

물리적 공간과 달리 사이버공간에는 중력이 없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우리는 중력을 이기고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다. 가상공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신체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된다. 세컨드 라이프를 드나들며, 우리는 신체화(embodiment)와 탈신체화(disembodiment)를 번갈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영적 체험을 세속화한 것이기도 하다. 가령 세컨드 라이프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바타의 이미지는 공교롭게도 17세기 이탈리아에서 갑자기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는 성 주세페의 그림을 닮았다. 하늘을 날기 위해 더 이상 신의 은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컨드 라이프 속에서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될 수 있다.

»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가상세계는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의 발현지이다. 사진 WIKIMEDIA

현실의 세계는 하나이지만, 가상의 세계는 여럿일 수 있다. 영국의 미디어 이론가 로이 애스콧은 세 개의 ‘VR’에 대해 얘기한다. 하나는 물리적 법칙이 작용하는 ‘검증현실’(validated reality), 둘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셋째는 식물의 환각작용을 이용해 입장할 수 있는 ‘식물현실’(vegetable reality)이다. 가령 브라질에는 환각제를 이용해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일상적인 종교활동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애스콧은 이제 인류는 물리적 신체와 가상적 신체와 환각적 신체를 갈아입으며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 거기서 또 다른 세계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누가 인간에게 구금형을 내렸나

물리학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이어주는 통로를 ‘웜홀’이라 부른다. 웜홀은 두 개의 구멍 밖에 있는 두 개의 우주를 연결하며, 그 사이를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인 셈이다. 애스콧은 이 동사를 명사로 만들어, 인간이 검증현실에서 가상현실로, 거기서 식물현실로, 거기서 다시 검증현실로 넘나드는 것을 ‘웜홀링’이라 부른다. 사회에 요구되는 이상적 인간상은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다. 애스콧은 미래의 이상적 인간은 이렇게 여러 개의 세계를 넘나드는 웜홀링의 능력으로 규정될 것이라 말한다. 누가 인간을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단 하나의 세계에 살도록 구금형을 내렸던가.

세컨드 라이프를 만든 린든랩은, 세컨드 라이프 해방군이 주장하듯이, 사이버 공간의 전제군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도 한때는 오직 물리적 공간에서만 살아가야 했던 인류의 위대한 해방자였다.


익명 뒤로 숨다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도구 ‘아바타’… 누가 뭐래도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퍼스트 라이프’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몇 년 전 미국에서는 70대 노인이 인터넷에서 25살 여성 행세를 하며 중년 남자들과 성적인 채팅을 나누고 선물도 받아챙기는 등 수년간 이중생활을 하다가 발각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의 밤과 낮은 지킬 박사과 하이드처럼 굉장히 달랐다. 평소 이웃들에게 ‘점잖고 인자한 할아버지’로 통하던 그의 집은 온통 젊은 여성 행세를 하며 얻은 속옷과 보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인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세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젊음’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고 있었다.

 

네티즌들이 아이디(ID)를 얻는 순간 성격이 돌변하듯, 작가는 ‘필명’을 얻는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한때 전남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미즈노 순페이 교수는 2004년부터 <사피오> <쇼쿤> <겐다이코리아> 등 여러 일본 잡지에 ‘노히라 슈스’라는 필명으로 한국 때리기에 열중하는 글을 싣곤 했다. 평소 한국 TV에 비친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글이었다. 그는 두 개의 이름을 오가며 두 개의 국적으로 분열적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음란서생의 필명, 네티즌의 아이디

영화 <음란서생>의 김윤서(한석규 분)는 당대 최고의 문필가로 이름난 작가이지만, ‘추월색’이라는 필명 속에 자신을 숨기면서 음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 필명은 억압적인 현실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익명의 방패막이’다. <반칙왕>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김대우 감독은 ‘반칙왕’ 송강호에게 가면을 씌워주듯 한석규에게 필명 ‘추월색’과 함께 ‘안경’을 씌워준다. 그가 안경을 끼고 추월색이 되는 순간, 그의 성적 상상력은 시대를 초월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겐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구와 함께 현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순적인 욕망이 있다. 이 점에 착안해, 미국의 과학소설가 닐 스티븐슨은 자신의 공상과학(SF)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1992)에서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고 그리로 들어가려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평소 피자배달부로 살고 있는 주인공 히로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뛰어난 검객이자 해커다. 메타버스 안에서 퍼지고 있는 신종 마약 ‘스노 크래시’가 가상공간 속 아바타의 주인, 즉 현실세계 사용자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노 크래시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히로는 거대한 배후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한 시절, 이 독창적인 이야기는 천재 과학자 필립 로즈데일에게 창조적 영감을 준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그의 뇌 속에는 이미 메트릭스 같은 세상이 통째로 들어서게 됐고, 그는 ‘필립 린든’이라는 필명으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3차원 가상세계를 창조한다.

 

» 세컨드 라이프의 ‘조물주’ 로즈데일의 목표는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사진 WIKIMEDIA

2003년 린든랩에 의해 처음 선보인 세컨드 라이프는 수많은 아바타들이 모여 사는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나만의 아바타와 이름을 가지고 현실세계와는 다른 두 번째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사용자는 자신이 꿈꾸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자신이 그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고,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으며, 그 안에서 통용되는 전자화폐를 현실 화폐로 환전할 수도 있다.

 

왜 세상의 기대만큼 붐비지 않을까

이 사이트는 처음 만들어지자마자 현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세컨드 라이프의 주민이 될 수 있는 시간만 기다렸다. 세컨드 라이프를 창조한 린든랩은 21세기 가장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다. 세컨드 라이프의 조물주란 별명이 붙은 로즈데일의 목표는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처럼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 기발한 아이디어에 나 역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필립 로즈데일의 비전이 샘나도록 부러웠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세컨드 라이프는 왜 세상의 기대만큼 그다지 붐비지 않는 걸까? 현재 세컨드 라이프에 등록된 가입자는 전세계적으로 1300만 명 정도. 이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가입자는 수십만 명에 불과하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용자가 3만∼4만 명 선에 머물고 있다. 린든랩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기대만큼 폭발적이진 못한 게 현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기술(IT) 환경에 살고 있는 한국 사용자들을 공략하기에 세컨드 라이프는 문제가 많다. 가상공간 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글 서비스’가 턱없이 미흡하고,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인지적으로 친숙한 환경도 아니다. 게다가 국내 게임산업진흥법은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유·무형 결과물의 환전을 금지하고 있어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First Life·현실세계) 사이의 관계는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대중적 욕망을 정확히 포착한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임에도, 사람들이 아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은 이미 수많은 게시판과 채팅방을 통해 세컨드 라이프적인 삶을 살고 있다. 3차원 사이버 공간과 아바타만 없을 뿐, 세컨드 라이프가 채워줄 욕망을 이미 수많은 게시판 사이에서 풀고 있다. 세컨드 라이프가 사람들을 모으려면 게시판과 채팅방, 블로그 등이 채워줄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시해야만 한다.

 

세컨드 라이프의 강력한 경쟁자는 누가 뭐래도 퍼스트 라이프다. 현실세계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그곳에선 가능해야 한다. 물건을 사고팔거나 땅을 소유하는 등 또 다른 평범한 일상을 살기 위해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내밀한 욕망의 분출구가 될 수 없다면, 세컨드 라이프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동안 통제가 거의 없었던 세컨드 라이프도 질서가 무너지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운영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판단한 모양인지, 얼마 전 성인물을 통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유분방’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세컨드 라이프도 점점 퍼스트 라이프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탈의 꿈’마저 현실로

세컨드 라이프에 존재하는 아바타는 내겐 여전히 ‘타자’다. 이제는 친숙한 단어가 된 ‘아바타’는 분신·화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avataara’에서 유래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나를 대신해줄 사이버공간의 분신으로는 역부족이다. 로즈데일은 어느 과학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아바타가 웹과 웹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가상공간 이동 프로그램을 IBM과 함께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은 플랫폼이 달라 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세컨드 라이프 속 아바타가 네이버나 싸이월드 속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만든 ‘아이디’ 하나만으로 새로운 인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활보하는 아바타가 나로 인식되려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선 ‘내가 나를 인식하는 뇌영역’(self-center)이 어디인지 찾는 데 분주하다. 내 아바타를 봤을 때 이 뇌영역이 활성화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부터 세상은 로즈데일 편이 될 것이다!

흔히들 사이버공간은 ‘무한한 캔버스이자 창조적인 놀이터’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곳에서 나에 대한 모든 세상의 기대와 의무, 도덕적 잣대와 법적 심판에서 벗어나 ‘매력적인 일탈’을 꿈꾼다. 설령 그것이 한낮에 꾸는 ‘나비 꿈’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실세계가 세컨드 라이프와 점점 더 닮아가는 오늘날, 안타깝게도 내 ‘일탈의 꿈’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생활이 되고, 그저 꿈이 된다.

 

스티브 잡스, IT 시대의 구루 [2009.01.15. 제744호]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② 스티브 잡스]
21세기형 창조성을 되묻다

‘다르게 생각하라!’는 그의 삶의 철학…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황당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다

[정재승]

 

1980년 12월 둘쨋주. 인류는 한 명의 천재를 잃고 새로운 천재를 맞이한다. 월요일에 비틀스의 전 멤버 존 레넌이 광적인 팬에 의해 살해되고, 금요일에는 애플 주식의 공모가 시작되면서 스티브 잡스라는 젊은 청년이 하룻밤 사이에 2천억원을 번 ‘미국 최고의 자수성가 거부’가 된다. ‘애플’ 음반사의 비틀스는 한 시대의 막을 고했고, 같은 시기에 ‘애플’ 컴퓨터는 새로운 시대를 알린 것이다. 한동안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이름 때문에 비틀스 저작권자들과 싸워야만 했는데, 그가 아이팟(iPod)을 출시해 음반시장을 장악하면서 두 애플의 악연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이후 ‘가장 유명한 사과’를 소유한 역사적 인물이 됐다.

 

» 21세기형 창조성을 되묻다-스티브 잡스.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형 인재

대학들은 요즘 ‘21세기형 창조적 리더’를 키우기 위한 고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지난 30년간 한국은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빨리 따라잡을 수 있는 산업인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세상을 선도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지식정보화 시대’를 20세기형 리더로는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분화된 영역의 전문가가 아니라 여러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형 인재,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형편이다. 20세기형 인재들끼리 모여앉아 궁리하고 있으니, 대안이 없을 수밖에.

 

해외에서 그 역할모델을 찾자니,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바로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모두 장악한 ‘디지털 시대의 테크노 구루’ 스티브 잡스다. 아이콘 클릭만으로 프로그램을 여는 컴퓨터 혁명을 이끌어낸 매킨토시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와 디즈니의 상상력을 잇는 애니메이션의 걸작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로 영화산업을 뒤흔들어놓은 디지털 시대의 최고 흥행사. 매력적인 디자인과 편리한 기능 혁신의 아이팟으로 ‘MP3 파일로 음악을 듣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최초의 인터넷 음악 공급 프로그램 아이튠스를 만들어낸 하이테크계의 예술가. 스티브 잡스만큼 과학과 예술을 행복하게 결합한 인물이 또 있을까. 그만큼 사회적 트렌드를 제대로 꿰뚫어본 과학기술자가 있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제도권 교육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가 살아온 삶은 분명 그의 창조성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우리가 따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55년 2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아기의 법적 양육권을 포기하자 폴과 클라라 부부에게 입양된다. 고아 출신인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야 마는 도전정신으로 무장돼 있었다고 친구들은 술회한다. 그는 명석한 학생이었지만, 과잉행동 장애를 앓는 산만한 소년이었고 독불장군에 외톨이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함께 일해온 동료들을 애플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애플 주식 공개 상장에서 배제할 정도로 편협했고, 화이트보드를 가로챘다는 사소한 이유로 픽사의 공동 창업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벌컥 화를 내기도 했던 유치한 독설가였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사기를 친 적도 있었고,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아냥과 험담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iCon〉(민음사 펴냄·2005) 같은 스티브 잡스의 평전을 읽히면, 감상평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비슷한 사람이라는 데 놀랐어요.” “성공했다는 것 외에는 딱히 본받을 만한 게 없는 사람 같아요.” 카이스트 기숙사에는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녀석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우주를 놀라게 하자’는 꿈

그럼에도 어떻게 그는 미국의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되어 ‘지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일하는’ 행복을 누리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전 우주적 스케일의 꿈’이 그에게는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놓겠다는 비전과 우주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야심찬 꿈 말이다. 그래서 애플 컴퓨터의 모토도 한때 ‘우주를 놀라게 하자!’(Make a Dent in the Universe!)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원대한 꿈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에게 매료된다.

 

» 맥월드에서 그가 매년 하는 기조연설은 IT 대중에게 마치 예수의 산상수훈처럼 여겨진다. REUTERS/ ROBERT GABRAITH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를 ‘우리 시대에 가장 우뚝 선 몽상가’라고 칭하지만, 그가 단지 몽상가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진 못했을 것이며, 그를 따르는 ‘애플 컬트’와 ‘아이팟 컬트’가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꿈과 비전을 ‘현실화’하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그중 나 같은 신경과학자에게 흥미롭게 눈에 띄는 것은 그가 가진 ‘창조성의 본질’이다.

 

창조적인 사람을 정의할 때, 20세기 심리학자들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창의력 테스트가 대부분 “‘둥글다’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만들어보시오”라는 과제를 주고 몇 개의 문장을 만들어내는지 센다거나, “신문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열하시오”라는 과제를 주고 행동을 관찰하는 정도였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주목받는 창조적 능력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개성적인 통찰력’을 요구한다. 문제의 본질을 남들과 다르게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과 황당한 아이디어를 현실 가능한 아이디어가 되도록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픽사는 스티브 잡스가 처음 만든 회사가 아니라 조지 루카스가 이미 가지고 있던 기업이었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도 MP3 플레이어는 여럿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을까? 실사영화의 특수효과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스만으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스티브 잡스만의 생각이었고, 그것이 단번에 픽사를 영화산업의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인터넷 비평가는 아이팟을 ‘멍청한 놈들이 가격을 매긴 물건’(Idiots Price Our Device)의 약자라고 조롱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갖고 싶은 디자인과 편리하게 음악파일을 들을 수 있는 기능만 제공해주면 소비자들이 CD 대신 MP3 파일을 들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본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사실 애플 컴퓨터의 모토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삶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대학 중퇴가 ‘약’인 이유

이마 바로 뒤인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서 한다고 열려진 이 21세기형 창조적 기능들은 ‘사회화가 많이 될수록, 또 일찍 사회화될수록’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의 대학 중퇴는 그에겐 ‘독이 아니라 약’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어찌 이런 사람을 대학이 키울 수 있느냔 말이다! 아이러니다.

 

그가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은 ‘분석의 틀’에만 매몰된 합리적인 (척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양식의 삶’을 전해준다.

“시장조사는 하지 않았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조사를 했느냔 말이다! 천만의 말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혁신이다.”

이제 책상 위에 ‘디지털 시대의 구루’ 스티브 잡스를 올려놓고 ‘과학적 사고’ ‘창조적 사고’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할 때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IT 문화의 구루

매년 이루어지는 기조연설은 IT 대중에게 예수의 산상수훈, 신제품은 IT 시대의 복음이어라

 

[진중권]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애니메이션. 아이폰의 출시를 기다리는 어느 부자(父子)의 심정을 담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출시가 안 되자, 부자는 결국 출시가 계속 연기되는 이유를 자신들의 마음가짐에서 찾는다. 마침내 마음을 비우기로 한 부자는 머리를 밀고 도를 닦기 시작하여 나중엔 공중부양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번뇌가 모두 사라지자 아이폰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 되었단다. 알고 보니, 원래는 ‘안 와요, 가정교사’라는 제목의 일본 애니메이션인데, 한국의 네티즌이 거기에 가짜 자막을 달아 여대생 가정교사를 기다리는 심정을 ‘아이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꿔놓은 것이란다.

 

그에게는 ‘현실왜곡장’이 있다네

아이폰의 출시가 또다시 몇 달 뒤로 연기됐다. 그런데 인터넷 분위기가 생각보다 조용하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모두 해탈의 경지에 올랐나 보다. 조바심은 분노로, 분노는 체념으로, 체념은 이제 달관으로 바뀐 듯. 이게 불교적 어법이라면, 같은 상황을 기독교적으로 과장할 수도 있겠다. 지난해 7월11일이던가. 이웃 일본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던 날 일본의 소비자들은 소프트뱅크 앞에서 노숙까지 해가며 매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것은 일종의 강림의 드라마다. 출시의 아침을 기다리는 정보기술(IT) 노숙자들에게서 우리는 휴거를 기다리는 종말론 신도들 못지않은 종교적 열정을 볼 수 있다.

 

굳이 과장을 섞지 않아도 적어도 스티브 잡스가 ‘IT 문화의 구루(Guru)’라는 데에는 아마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구루’의 말뜻 그대로 스티브 잡스는 IT 문화의 지자이자 현자이자 스승이다. 그의 인격의 주위에는 신비한 아우라가 감돌고,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는 기묘한 숭배의 분위기가 존재한다. 맥월드에서 그가 해마다 행하는 기조연설은 오늘날 IT 대중에게 마치 예수의 산상수훈처럼 여겨진다. 이 IT 교주의 연설은 먼저 발표장의 청중들을 사로잡고, 그것을 담은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파된다. 잡스가 신제품을 내놓는다는 소식이야말로 IT 시대의 복음이 아닐까.

 

» 지난해 6월9일, 아이폰이 출시되는 ‘역사적인’ 날 소프트뱅크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REUTERS/ TORU HANAI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버드 트리블은 스티브 잡스에 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1981년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잡스는 벌써 다음해인 1982년 초로 선적 일정을 확정해놓았단다. 이 비현실적인 계획을 왜 만류하지 않았느냐 묻자, 버드 트리블은 이렇게 대답한다. “스티브 잡스니까. 1982년 초에 선적을 한다고 말한 이상, 그와 다른 그 어떤 대답도 스티브는 들으려 하지 않아. 이런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하는 방식은 <스타트렉>에 나오는 용어지. 스티브에게는 현실왜곡장이 있다고나 할까. 그의 앞에서는 현실도 변형 가능하지. 그는 어느 누구에게나 그 어떤 확신이라도 갖게 할 수 있어.”

 

이후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는 표현은 애플사의 사원들을 휘어잡는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를 기술하는 용어가 되었다. 요즘은 그가 하는 기조연설의 청중, 그가 만든 제품의 소비자들에게 그가 행사하는 그 압도적인 심리적 영향력을 가리키는 데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잡스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알아두어야 할 게 또 한 가지 있다고 한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하면, 잡스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일축했다가도 얼마 뒤 그 당사자를 찾아와 똑같은 아이디어를 마치 제 것인 양 역제안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확신과 자기최면이 강한 것은 모든 교주들의 공통점이다.

 

비물질화를 재물질화로 돌려놓다

애플에는 ‘루머 커뮤니티’가 있다. 루머 커뮤니티들은 그해에 반포될 복음의 내용을 대중에게 미리 알려주는 애플교의 선지자들이다. 선지자 중에는 가짜와 진짜가 있는 법. 그리하여 어떤 선지자들의 예언은 빗나가지만, 어떤 선지자들의 예언은 실현되기도 한다. 그들의 예언들 중에서 실제로 실현된 것도 상당히 많다. 이 선지자들에 대한 애플사의 공식 입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 하지만 이 루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선지자들 중 일부는 실제로 애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 예언의 놀이가 일종의 서브컬처가 되다 보니, 애플사의 입장에서는 제품의 홍보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잡스는 컴퓨터 산업에 미학을 도입했다. 그는 최초로 컴퓨터에 서체의 아름다움을 부여했고, 자신이 개발하는 모든 제품에 미적 디자인을 구현했다. 한때 ‘번거로운 케이블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모니터와 키보드와 본체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애플의 뛰어난 디자인 때문에 이제 기기의 물질성은 사라질 수 없게 되었다. 애플의 사용자들은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구현한 자신의 기기가 남들의 눈에 보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심지어 고장난 기기의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고 하지 않는가. 애플의 미학은 비(非)물질화를 지향하던 디지털 기술을 재(再)물질화 쪽으로 돌려놓았다.

 

“서로 전공과 취향이 다른 애플의 개발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하게 단합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공통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적이란 바로 스티브 잡스다.” 이 농담을 들으며, 나는 ‘버튼을 없애라’는 잡스의 한마디에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전전긍긍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상이한 분야에 속하는 전문가들의 작업을 조율하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닮은 데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자신이 뛰어난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예술과 기술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마에스트로이기도 하다. 이는 픽사를 설립하여 <토이 스토리>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얘기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맥월드의 기조연설일 것이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철저하게 연극적으로 조직된다. 이 공연은 물론 반복적인 리허설과 고된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 스크린 앞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일종의 행위예술이다. 결정적인 얘기를 꺼내기 전에는 무대 옆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시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때쯤에는 꼭 “아, 한 가지 더”라고 말하며 보너스를 얹어준다. 서류봉투에서 슬며시 노트북을 꺼내드는 제스처는 당연히 노트북의 두께를 숫자로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상을 준다.

 

예술가 CEO의 전형

미디어에서 떠드는 최고경영자(CEO) 찬양, 현대 자본주의가 양산해내는 이 조작 신화들은 대부분 유치하고, 뻔뻔하고, 지루하다. 하지만 그것이 스티브 잡스에 관한 것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그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CEO, 즉 ‘예술가 CEO’의 전형이다. 그는 컴퓨터 기기의 디자이너이자, 기술과 예술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이자, 프레젠테이션을 행위예술로 끌어올린 탁월한 퍼포머다. 동시에 IT 대중들에게 지혜와 확신을 주는 구루이자,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프레젠테이션으로 청중들의 혼을 홀딱 빼놓는 마법사다. 빌렘 플루서였던가? 디지털 시대를 탈역사적 마법의 시대라고 했던 것이.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독어독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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