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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감에 대한추억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가을 단풍의 빛깔도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풍부한 강수량과 일조량, 큰 일교차로 지난해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단풍'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들 가을 여행을 즐기기 위한 가족나들이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이지만 내가 성장하던 시절은 상상도 못해본 일들 이지요. 어쩌면 지금 살아가는 세대들은 참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도 그 부류 속에 속할 테지
내가 살아온 어린 시절은 가정마다 집안의 경제사정이 그만그만하게 차이 없었고 빈부의 구별 없이 가정 형편이 모두가 못살고 가난하였다. 농사로 생업을 이어가는 농지에서 소출되어 나오는 먹거리도 동일하였다.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저 집에도 있고 저 집에 없는 것은 우리 집에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것이 딱하나 있었다. 특별히 과수원 제배하던 사람이 없었던 시절이라 유실수몇 포기정도는 집이나 마을 어귀 자신의 소유 경작지에 심어두던 것이 전부였다. 그 가을 과일나무로서는 감, 사과, 배, 밤, 대추 정도 이였다. 사는 집의 대지 면적에 따라서 한두 포기를 심어두기도 하였다.
내가 살았던 시골집은 양지바른 마을 앞 햇빛 쏟아지는 정남향 집이였고 대지 면적이 넓어서 인지 할아버지는 근동의 이색 감나무 싹을 구하여 고염나무 접하여서 키워진 여러 종류의 감나무들은 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수종의 감 중에서도 으뜸은 대문 앞에 심어진 ‘대봉’이라는 그 감이었다. 당시에는 동이감이라고 불렀다.
그 시절 동내에서 유일하게 우리 집에 만 있던 하늘이 내려준 최고 선물이었다. 동내사람들이 항상 부러워했던 감나무이었다.
대봉감은 어느 감보다 검은 반점으로 얼룩진 덩치 크고 당도가 높아서 제일 좋아한 한 감으로서 내 어릴 적의 대봉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전부이다. 감에 점처럼 보이는 검은 것들이 비타민이라고 하며,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서 제일 풍요로웠던 추억을 일을 떠올리라면, 그것은 우리 집 감에대한 이야기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달이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벼 두지 속 어디에 간직해 둔 대봉 감을 할머니께서 꺼내어 주시면 어머님이 상을 차려 손님 앞에 내어 놓으시면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들 하시고 후뭇한 표정으로 돌아가시는 손님들의 표정들은 살아오면서도 잊어지지 아니한다.
이 귀한 감을 할머니는 가끔 혼자 있으면 이름을 불어시면서 먹으라고 주시던 음성이 지금도 내 귀에 은은하며 장손인 나에게 특별히 배려하여 베풀어 주시던 사랑의 표시였다.
올해도 하동 악양 대봉감이 잔뜩 인터넷에 올라 있다.
감은 배수가 잘되는 사태지역의 부엽토에서 잘 자란다. 또 그늘이 없고 지는 해를 잘 받아야 열매가 튼실하고, 이슬을 맞은 상태에서 햇빛을 받으면 때깔이 곱고 당도가 높아진다고한다.
세상 살면서 밖에서 감 사먹어 본 적 몇 번 없지만, 한번도, 할머니가 주시던 우리 집 대봉 감만큼 맛있는 걸 먹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천상의 맛이던 홍시를 혼자 마구 먹을 수 있었던 것은 한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세상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성장하여서도 장손으로 장자로 형제들로부터 특별대우를 받고 살아온 나는, 정말 행운 아닌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에 돌아가신지 몇 년이던가? 나는 올바르게 시골 선산 산소에 참배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오고 있었다. 주말에는 올 윤유월 달에 준비해둔 묘지 표지석으로 묘지를 재단장하려고 한다. 어쩌면 이런 것으로라도 하는 것이 내가 선대의 사랑에 보답 하는 작은 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멀리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사랑하는 형제들이지만 곁에 있다는 것 같이 마음 든든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그 혈육의 정을 세삼 서럽게 느껴진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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