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추방
밤이 오고 있다.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박호창. 생각에 잠겨있다. '박형사!' 강영준이 부른다. '응?' '전화 오잖아.' '응.' 그제야 벨소리를 들은 박호창. '여보세요?' '성님! 나 강평이요이.' '왜?' '아따! 죽갔소! 성님!' '왜?' '아따! 떴다니께요.' '뭐가 떠?' '오메! 특별단속반인지 그 뭣이냐 시방! 싹 쓸어 뿌리고 있당께요!' '단속에 걸렸다고?' '오메! 단속 정도가 아니지라. 아그들 몽땅 잡아갔소. 어짜요?' '그래? 어디서 나왔는데?' '나가 그걸 어찌 안다요? 참말로!' '너는?' '오메! 나도 시방 잠수 타요이. 성님. 나 찾지 마쇼이! 잉!' '야! 어디로 갈 건데?' 신강평은 전화를 끊었다. 박호창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형님 저예요.' '최형사 왜?' 장인혁도 식당에서 최형사의 전화를 받는다. '형님 저 내려가요.' '뭐?' '여수로 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형님 지금 길게 통화할 시간 없고요. 다시 전화할게요.' '야!' 대답이 없다. '야! 용국아! 최형사!' 장인혁도 핸드폰을 들여다 볼뿐이다. 멀리 비구름에서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한다. 비를 몰고 올 바람이 불어온다. 근심에 찬 장인혁의 모습이 유리창에 새겨지고 있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진다. 도시를 물에 적셔버릴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방울만 바라보며 의자 등받이에 팔을 얹은 채 턱을 괴고 있는 장인혁. 늦은 밤 이름도 모르는 행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다 바라본다. '야!' 강영준이 비에 흠뻑 젖어 식당으로 들어온다. '야 임마! 비는 왜 맞고 다녀? 혼자서.' '어때? 비 좀 맞으면.' '왜 내려왔어?' '그냥 혼자 있기 답답해서.' '박형사는?' '아까 그 조폭 있잖아.' '신강평?' '응. 그 친구 전화 받더니 나가더라.' '무슨 일인데.' '걔네 뒤집어 졌나봐. 단속반이 나와서 싹 쓸었데.' '그래?' 장인혁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일단 머리 좀 말려라. 그게 뭐냐? 생쥐새끼처럼.' 장인혁은 커다란 타월을 가져다준다. '사실은 말야 최형사한테도 무슨 일이 있나봐.' '그래? 뭐라는데?' '말하기 곤란한 모양인데... 하여튼 여수로 간단다.' '여수? 고향도 아니잖아? 거긴 왜?'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럼... 혹시......' '왜? 손형사 걱정돼서?' '아니... 뭐 꼭......' 강영준의 표정이 침울하기 짝이 없다. 장인혁도 손형사를 생각해본다. 석연치 않는 분위기이다.
'야! 자식들아!' 주전모가 갑자기 들이닥친다. 몹시 취한 모습. 문짝을 붙잡은 채 비틀거린다. 그도 비에 흠뻑 젖어있다. '얼라? 저건 또 왜 저래?' 장인혁이 쳐다본다. '야! 전모야! 너 술에 완전히 절었다.' 강영준도 바라볼 뿐이다. '자식들!' 눈을 감은 채 피식거리는 주전모. '저거 왜 저러냐? 맛이 갔네.' 장인혁과 강영준이 마주본다. '야! 짭새!' 소리를 지르는 주전모. '저 자식이 식당 문 앞에서 왜 주접이야?' '히히히히!' '얼라?' '내가 임마! 니가 골탕 먹이면 그대로 당할 줄 알았지? 그렇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주전모. '그래! 니네 장모한테 반쯤 죽을 줄 알았다. 왜!' 장인혁도 소리친다. '히히히히! 불쌍한 것들!' 비틀거리며 다가와 앉는 주전모. '무슨 술을 그렇게 퍼마셨냐?' 강영준이 물어본다. '응?' '무슨 술을 그렇게 맛이 가도록 마셨냐고? 이 원수야!' '나? 응! 우리 장모님하고 마셨지. 그럼! 장모님하고!' '얼라? 두들겨 팰 줄 알았더니?' '불쌍한 짭새 자식!' '이게 정말!' '나 임마! 아빠 돼! 자식들아! 히히히히!' '뭐? 아빠?'

46. 포착
쥐죽은 듯 조용한 경찰서. 손형사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스쳐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 반장님.’ 뒷짐을 지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권반장. ‘손형사!’ ‘예?’ ‘너 잘났다고 날뛸래? 어!’ ‘예?’ 손형사가 머뭇거린다. 권반장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그런 인간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거 뭐야?’ 권반장이 그녀의 얼굴 앞으로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이게 뭐죠?’ ‘홍콩 영자신문 복사본이지. 눈알을 빼먹었나? 손형사!’ 그 신문에 초점을 맞추어본다. 택시, 경찰차량 그리고 홍콩 경찰들, 구경꾼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한 여인의 얼굴. 바로 손형사 자신의 모습이다. ‘뭐야?’ 권반장은 그 사진을 마구 흔들어댄다. ‘어떻게 이게......’ ‘이날 구경꾼 중에 한국 사람이 있었어. 신분증까지 사방에 보여줬다며!’ 손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영사관을 통해서 경찰청에 제보가 들어왔단 말이야! 한국경찰이 연루되었다고.’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서있다. ‘이날 홍콩으로 출국한 대한민국 경찰은 너 손형사하고 최용국이란 놈 단 둘뿐이야. 맞지?’ ‘예. 반장님.’ ‘거기서 뭘 한 거야? 동해안으로 휴가 좀 가겠다더니 뭐냔 말이야?’ 권반장의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서장님도 지금 난리가 나셨어. 이게 뭐야? 말을 해!’ ‘제가 꼭 해결하고 싶은 사건이 있어서......’ ‘그래서 홍콩놈 하나 칼에 찔려 죽은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예?’ ‘귀가 먹었어?’ ‘홍콩놈이라니요?’ ‘홍콩마약중개상을 왜 니가 쫓아다녀? 니가 지금 마약반이야? 그리고 그 최용국이란 놈은 누구야?’ ‘그 피살자는 한국국적의 한국 사람입니다. 반장님.’ ‘무슨 헛소리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권반장의 목에 핏줄이 돋는다.
장인혁은 오전 내내 몰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없이 바쁘다. 주변의 젊은 주부들에게 소문이 날대로 다 나있는 그의 작은 식당이다. ‘어서... 어? 손형사.’ 커다란 쟁반을 든 채 그녀를 바라본다. ‘이 시간에?’ ‘저 잠깐만......’ 손형사는 다시 식당 밖으로 나간다. 앞치마를 두른 채 뒤 따라 나온 장인혁. ‘왜? 무슨 일 있어?’ ‘저 정직 맞았어요.’ ‘뭐? 정직? 얼마나?’ ‘그건 몰라요. 선배님.’ ‘왜? 정직이래?’ ‘홍콩 간 거 들통 났어요. 최형사도.’ ‘뭐? 이런! 그래서 최형사가 내려갔구나.’ ‘내려가요?’ ‘응. 어젯밤에 전화가 왔는데 여수로 급히 간 모양이야.’ ‘선배님. 그 김황두 피살사건 조작됐어요.’ ‘조작이라니?’ ‘김황두가 졸지에 홍콩 마약상으로 둔갑해버렸어요.’ ‘그래?’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아마 지금도.’ ‘그렇겠군. 그 놈들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어떡하죠? 도저히 길이 보이질 않아요. 선배님.’ ‘오늘 우리 머리를 좀 짜보자고.’ ‘예.’ ‘그러나저러나 갈 데도 없을 텐데 영준이한테 가봐. 손형사.’ ‘그... 그럴까요?’ ‘그럼. 지금 내가 바쁘니까 저녁때 전부같이 얘기 좀 하자고.’ ‘예. 그러죠.’ 손형사가 돌아선다. ‘잠깐!’ ‘예?’ ‘저기... 내가 김밥 좀 싸 줄 테니까 영준이랑 먹어.’ ‘김밥을요?’ ‘어차피 점심 먹으러 내려오려면 영준이가 힘들어.’
강영준과 손형사는 김밥을 먹고 있다. ‘김밥 맛있죠? 손형사.’ ‘예. 장선배님 솜씨가 정말 끝내줘요. 예술이네요. 호호호호!’ ‘히히히히. 아무도 몰랐다니까요. 하긴 지 자신도 몰랐는데 뭐.’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런데 강기자님 왜......’ ‘뭐요?’ ‘저기... 왜 재활치료 받지 않으세요?’ ‘아... 뭐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 귀찮고. 히히히히.’ ‘그렇지 않아요. 꾸준하게 하면 분명히 나아져요.’ ‘그럴까?’ ‘정말이에요. 제 동기 하나도 단속 나갔다가 깍두기한테 당해서 불구될 뻔 했거든요. 재활치료 3년 꾸준히 받고 지금은 거의 뛰어다닐 정도인데요 뭐.’ ‘정말?’ ‘그럼요! 지금 수원경찰서에 있어요. 조사계에 있는데요. 전화 해볼까요?’ ‘그런가? 의사가 좀 어렵다고 하길래......’ ‘어머!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요? 정말!’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별로 의욕이 없어서요.’ ‘내일부터 당장 다니세요.’ ‘그게 좀......’ ‘아니야! 이거 다 먹고 나랑 같이 가요.’ ‘어딜?’ ‘병원에요!’ 손형사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 애교, 보기 힘든 그녀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