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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캐스팅: 손현주,정준호,김명민>

47. 채널
병원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 손형사. ‘강영준님 보호자분!’ 간호사가 부른다. ‘예.’ ‘강영준님 검사는 다 끝났고요. 지금 물리치료 받으러 들어가셨어요.’ ‘예. 얼마나 걸리죠?’ ‘한 시간 안에 나오실 거예요. 오늘은 그냥 물리치료만 받으시니까요.’ ‘예. 알았어요.’ ‘남편분이 병원오시는 걸 굉장히 싫어하시나 봐요?’ ‘예? 아! 예. 좀......’ 뒤돌아서서 다시 소파에 앉는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차있다. 콧노래를 부르며 잡지를 넘기는 손형사.
‘둘이 어디 갔다 오냐?’ 장인혁은 앞치마를 풀며 물어본다. ‘응. 병원.’ 강영준이 조금은 어색한 눈빛이다. ‘병원?’ ‘예. 재활치료 시작하려고요.’ 손형사가 말한다. ‘어이구! 웬일이냐? 병원 근처도 안 가려고 하더니. 나 원 참! 별일이네?’ ‘아니 뭐... 좀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너 이제 앞치마 하네?’ ‘응?’ ‘너 지금 앞치마 했잖아.’ ‘응. 헤헤헤헤. 옷이 자꾸 더러워져서 할 수 없지. 좀 이상하긴 한데.’ ‘그럼 식당하면서 앞치마도 안 할 생각이었냐?’ 장인혁은 마치 꾸중이라도 듣는 것 같다. ‘어이구! 미안합니다요. 얘가 거 이상하네. 손형사하고만 있으면 좀......’ ‘야야야! 밥이나 줘. 오래간만에 움직였더니 허기진다.’ ‘아이고! 예! 대령합죠! 예!’ 장인혁은 킥킥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손형사는 딴청을 부리며 앉아있다. ‘박형사는?’ 강영준이 물어본다. ‘응. 올 때 됐어. 아까 전화 왔었어.’
그들의 이른 저녁식사는 청국장이다. ‘거 참!’ 장인혁이 손형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왜요?’ 손형사가 장인혁을 쳐다본다. ‘보기에는 깔짝깔짝 먹을 거 같은데 아무거나 잘 먹는단 말이야. 손형사.’ ‘어머 그럼 경찰이 체력 없이 어떻게 버텨요? 안 그래요?’ ‘히히. 그렇지.’ 그리고 박호창도 들어온다. ‘어? 벌써 저녁 먹어?’ ‘응. 너도 앉아! 빨리 먹자.’ ‘어이구! 청국장이네. 저기 바깥까지 냄새가 나더라.’ ‘응. 그래도 맛은 죽여줘. 먹어봐.’ 강영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먹어댄다. ‘강기자 왜 이러냐? 밥맛없다고 항상 그러더니.’ ‘히히히히. 얘 운동하고 왔단다. 운동!’ ‘운동?’ 박호창은 의아할 뿐이고 손형사는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다.
‘자! 이제 정리 좀 해보자고!’ 장인혁이 식당 벽에 걸린 달력을 떼어낸다. ‘달력은 왜?’ 강영준이 의아해한다. ‘야! 상황판이 없잖아. 큰 종이라도 좀......’ ‘히히히히. 저 꼴통!’ 박형사가 웃는다. 장인혁은 굵은 매직펜까지 꺼내어 무엇인가를 그리고, 쓰고 분주하다. ‘자! 여기 그 놈의 꽃이 있다. 그렇지?’ 장인혁이 거창하게 말을 꺼내고 있다. ‘그래! 빨리 해!’ 박형사가 타이르듯이 말한다. ‘이 꽃이 마피아 그러니까 지난번에 장악을 하던 마피아 1번, 넘버원한테 갔다 이거야. 그리고 누군가가 국내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이거지!’ ‘그리고 일부가 그 짱깨 곽부장한테 흘러들어갔지.’ 박형사가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그 꽃의 비밀을 아는 러시아 교수님이 계시다. 이거야.’ ‘그 비밀은 마피아가 꼭 차단해야 했겠죠?’ 손형사가 말한다. ‘그렇지! 그래서 일단 입을 막았는데... 마피아 2번, 넘버투한테 졌단 말이야. 그러니까 넘버원하고 연결된 어느 조직이 독극물 사건을 조작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수출대금을 받게 되었지. 그냥 기계만 돌리면 돈이 쏟아지는.’ 강영준의 대답이다. ‘그렇다면 한국 쪽 대박은 바로 그 벤처회사이고 그 벤처회사가 이런 엄청난 일을 꾸밀 수는 없을 테니까.’ ‘어떤 놈들이 또 배후에 있다. 이거지.’ 박형사의 말이다. ‘그렇지! 그게 바로 손형사가 홍콩에서 가져 온 그 파일이라 이 말씀이지.’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알고 준비했을까요?’ 손형사의 물음. ‘그게 포인트야!’ 장인혁이 손가락을 흔든다. ‘간단하지.’ 강영준이 조용히 말한다. ‘뭐?’ 셋은 동시에 강영준을 바라본다. ‘그 파일을 보면 벌써 삼십년 전에 준비된 일이야. 꼭 이 일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위해서 조직이 움직였단 말이야. 삼십년 전부터.’ ‘그렇지!’ ‘그런데 핵심인물은 짐작대로라면 옛날 정보요원들로 구성되었어. 전부들 힘 꽤 나 쓰던 인간들이지. 그럼 정보요원들은 뭘 했을까?’ ‘뭐?’ 장인혁이 묻는다. ‘지금도 그리고 예전에도 정보요원들은 서로간의 채널이 있다고 봐야 돼.’ ‘채널?’ ‘아무리 적대국이라도 서로가 통하는 길이 있단 말이야.’ ‘하긴 그래. 형사들이 조폭 놈들하고 뒷거래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헤헤헤헤.’ 장인혁이 웃는다. 박형사는 왠지 찝찝한 표정이다. ‘그럼 우리 쪽 정보요원들이 비밀리에 통했던 채널은?’ 강영준이 묻는다. ‘KGB!' 손형사가 대답한다.

48. KGB
‘이런 가정을 할 수 있어.’ 강영준은 눈까지 감고 말한다. ‘중정의 어느 누군가가 KGB와 연결이 된 거야. 그리고 KGB가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화학물질에 대해서 알게 되지. 그리고 해독제가 있다는 것. 또 그리고 아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라는 걸 말이야.’ ‘그들은 무언가를 계획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손형사는 강영준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장인혁과 박호창. ‘그러다가 벽에 부딪히지.’ ‘왜?’ ‘정권이 바뀌고 중정이 물갈이 되어 버렸잖아.’ ‘그리고 안기부?’ 박호창도 이야기에 쏙 빠져있다. ‘그렇지! 그리고 다시 국정원.’ ‘어쨌든 심한 정치바람과 변화 때문에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을 테죠.’ 손형사는 강영준을 거들고 있다. ‘그러다가 소련이 붕괴된 후 KGB는 힘을 잃고 마피아와 결탁하는 거야. 그리고 그들은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그 화학물질을 한 제약회사에게 넘기는 거지.’ '그놈들이 제약회사를 사실 상 장악했겠지?’ 장인혁의 말이다. ‘그렇겠지. 아주 철저하게 장악했을 거야.’ ‘그럼 이제 돈 버는 일만 남았겠군.’ 장인혁의 말이다. ‘그렇지. 꼭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자금이 필요했겠지. 엄청난 자금.’ 강영준이 탁자를 두드린다. ‘그런데 말이야.’ ‘뭐?’ 장인혁은 궁금하다. ‘민검사가 쉽게 러시아마피아를 통해서 그 꽃을 알게 되었을까?’ ‘글쎄?’ ‘러시아마피아들이 그렇게 허술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정보를 주었을까?’ ‘하지만 민검사 조직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잖아?’ 박호창이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꽃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었을까? 심지어 해독제까지?’ 강영준이 실마리를 풀어보려 한다. ‘그럼... 누군가가 또?’ 손형사가 묻는다. ‘그거야. 가운데에 누군가가 있었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 민검사에게 알려주어야 했던 거지.’ ‘어떤 이유?’ 이제 또 장인혁이 물어본다. ‘양쪽 다 버릴 수 없는 이유. 아니면 양쪽 다 필요한 이유.’ ‘뭐?’ 장인혁은 그의 뇌리를 스쳐가는 그 무엇이 있다.
그들은 고민과 고민을 더해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새 어둠은 내려 깔리고 또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주전모가 우산을 팽개치며 들어온다. ‘야! 너희들 또 모여서 뭘 작당하는 거야?’ ‘오셨어요. 주사장님.’ 손형사가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한다. ‘손형사 도대체 뭐하고 있던 거예요? 예?’ ‘아! 그 자식 정말! 꼬박꼬박 끼어드네!’ 장인혁이 핀잔을 준다. ‘어? 이게 뭐야?’ 식탁위에 있는 커다란 달력종이를 집어 드는 주전모. ‘중정... 안기부... KGB!’ 주전모 잠시 말이 없다. 그리고 네 사람도 말이 없다. ‘오라! KGB! 그렇지! 러시아 제약회사! 히히히히!’ 주전모는 혼자 웃으며 좋아한다. ‘잠깐!’ 박호창이 주위를 준다. ‘왜 그래? 박형사.’ 앞에 앉은 강영준이 놀란다. ‘아까부터 저 길 건너에서 우릴 살피는 여자가 있어.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그래?’ 장인혁이 슬쩍 바깥을 내다본다. ‘저기! 저 남색우산! 맞지?’ 박호창이 조용히 말한다. ‘그래. 우릴 보고 있는데.’ 장인혁이 일부러 딴청을 부리며 대답한다. 가로수에 몸을 가린 한 여자가 우산을 들고 서있다. 매장 불빛에 검게 드리워진 모습이 보인다. ‘어디? 어디? 누가?’ 주전모가 호들갑을 떨며 기웃거린다. ‘야! 임마! 조용히 앉아!’ 장인혁이 주전모의 팔을 끌어당긴다. ‘야! 박형사. 내가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왼쪽으로 갈 테니까. 넌 오른쪽.’ ‘알았어.’ ‘손형사 이쪽으로 건너올지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어.’ ‘예!’ 장인혁이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뛰어나간다. 그리고 그가 멀찍이서 길을 건널 무렵 박호창이 천천히 오른쪽 길로 걸어간다. 손형사의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 풀어버린다. ‘손형사 치마 입고 뛰려고요?’ 주전모가 엉뚱한 말을 하자 강영준이 나무란다. ‘야! 너 좀 가만히 좀 있어라. 이제 좀 나이 값 좀 해라. 임마!’ ‘자식! 괜히 신경질이야?’ ‘두 분 그만하세요. 저 여자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어디?’ 주전모가 또 기웃거린다.
남색우산의 그 여자, 장인혁을 발견하고 뒤로 돌아선다. 그리고 뛰기 시작한다. 박형사가 이미 길을 건너 가로막고 서있다. 우산을 집어 던지고 찻길 속으로 뛰어든다. 경적소리 그리고 쏟아지는 폭우. 손형사가 뛰어 나간다. 길을 건너자마자 손형사의 손에 붙잡히고 만다. ‘놔요! 놔줘요!’ 몸부림치는 여자의 두 팔이 이미 손형사에 손에 꺾여버리고 말았다. ‘손형사! 데리고 들어가!’ 찻길을 건너 뛰어오며 장인혁이 외친다. 비에 흠뻑 젖은 두 여인이 서로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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