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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캐스팅: 허준호,김명민,김영호,고은미)

13. 명품
늦은 밤 정반장이 사건현장 아래 바로 그 슈퍼로 들어간다. 양소연의 험담을 늘어놓았던 바로 그 슈퍼 여주인이 뒤늦은 손님들 받기에 정신이 없어 보인다. 정반장이 좀 떨어진 곳에 서서 조그만 과장봉지들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린다. 여인이 정반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한다. ‘손님! 뭐 드려요?’ 정반장이 빙긋이 웃으며 쳐다보자 여인은 흠칫 놀란다. ‘안녕하셨습니까? 아주머니.’ ‘아니... 왜 또? 이 밤중에.’ ‘장사 잘 되시네요?’ ‘잘 되긴 뭐... 이 시간에는 잠깐 그래요.’ 여인은 뭔가 느꼈는지 불안해 보인다. 정반장이 미소는 띄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인을 노려보며 묻는다. ‘이영수씨 아시죠?’ 여인은 이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전 남편 맞죠? 이혼하신 남편 말입니다.’ 여인은 울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인다. ‘하... 양소연씨가 꽤나 미우셨겠습니다. 그렇죠?’ 여인은 작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저한테 거짓말 하셨죠? 그때 말한 거 말입니다.’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간신히 말을 한다. ‘다 거짓말은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뭐가 진짜였죠?’ ‘그날 밤에 내가 본 게......’ ‘뭐죠?’ 여인은 가슴 깊이 묻힌 한을 내뿜듯 한숨을 내쉰다. ‘그 인간이었어요. 그 인간!’ ‘누구요? 이영수씨요?’ ‘그래요.’ 갑자기 표독스러운 눈빛을 띄는 슈퍼 여주인. ‘오입쟁이가 아주 제대로 걸렸두만.’ ‘예? 제대로요?’ ‘아주 여시 같은 년한테 제대로 걸린 거지.’ ‘왜 거짓말 하셨습니까?’ 여인은 또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자식들 애비인데. 그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그냥 아무 말 안 하시면 되죠?’ ‘그래도! 난 그 년 너무 싫어! 잘 죽었어!’ 벌컥 화를 내는 여인을 정반장은 오리혀 측은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늦은 점심시간, 정반장과 홍형사가 경찰서 앞 해장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정반장의 선짓국 그리고 홍형사의 콩나물해장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반장님.’ ‘응?’ ‘이영수씨 오늘 귀국하나요?’ ‘응. 네 시 도착이래. 인천에.’ ‘용의선상에 있는 걸 알고 있을까요?’ ‘모르지. 전 부인이 말해 줬는지 아닌지.’ ‘이영수씨하고 양소연씨가 정말 내연의 관계였을까요?’ ‘왜? 아닌 거 같아?’ ‘예. 저는 왠지......’ ‘흐흐흐흐. 하여튼 양소연이라는 여자는 유별난 여자였던 건 분명해. 안 그래?’ ‘예. 자기 세계에 빠져 살았던 여자 같아요. 평범하진 않아요.’ 국물 한번 떠먹고 정반장이 묻는다. ‘양소연씨 정신병력 같은 건 없다며?’ ‘예. 전혀 없어요.’ ‘다른 카페 손님들은 어때?’ 홍형사가 조용히 수저를 놓는다. ‘저희 생각하고는 다른 거 같습니다. 반장님.’ ‘뭐가?’ ‘양소연씨요. 다른 손님들은 던칸이나 양소연씨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 ‘예. 그냥 물장사하는 여자가 뭐... 이런 식입니다. 그저 양주 생각날 때 가끔 갔다는 식이에요. 단골술집 없는 남자가 어디 있냐고들 하던데요. 그리고 이왕이면 예쁜 여자가 좋은 게 아니냐고요.’ ‘그렇지. 그게 정상이지. 남자가 주색을 밝혀도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는데 한계가 있는 거지. 그게 정상이지. 안 그래?’ ‘혹시......’ ‘혹시 뭐?’ ‘양소연씨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요?’ ‘뭐를?’ ‘요일을 정해놨다느니 손님들이 마치 목을 매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게 양소연씨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닐까요?’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만만한 몇 놈 호구로 만드는 거지. 애가 닳게 말이야. 원래 그렇잖아. 쉬우면 재미가 없거든.’ ‘프로죠.’ ‘흐흐흐흐. 그래. 프로. 잔챙이, 쭉정이는 필요 없지.’ 정반장이 냅킨휴지로 입을 닦는다. ‘홍형사가 보기에도 임경만이라는 사람 이상해?’ ‘예. 좀 어딘가......’ ‘임경만이 이상하면 남편 김형우가......’ ‘모르죠. 도박 때문에 괜히 찔려서 그런지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나저나 이형사는 왜 안 와?’ 그때 홍형사가 식당 문 쪽을 바라본다. ‘이형사님 양반되긴 틀렸는데요.’ ‘응?’ 정반장이 돌아본다. 이형사가 씩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리고 홍형사 옆에 턱 앉는다. ‘다녀왔습니다. 반장님.’ 이형사가 정반장과 홍형사의 빈 해장국 그릇을 쳐다보고는 손을 번쩍 들며 외친다. ‘아줌마! 뼈 하나!’ ‘다른 것 좀 드세요.’ 홍형사가 나무라자 정반장도 끼어들어 거든다. ‘그래. 다른 것 좀 먹어라. 이형사 넌 맨날 뼈만 먹냐?’ ‘아니, 왜들 그래요?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데? 밤 꼬박 세고 그 강원도 골짜기까지 갔다 왔는데 뼈 정도는 먹어줘야죠?’ ‘어이구. 흐흐흐흐.’ 그리고 이형사는 짓궂게 몸까지 흔들어가며 우쭐댄다. ‘찾았어?’ ‘그럼요!’ ‘정말 찾으셨어요? 이형사님.’ ‘홍형사! 내가 양아치 자식들 돈놀이 하는 거 찾는 건 귀신이야.’ 정반장이 재미있다는 듯 씩 웃기만 한다. ‘이형사님. 임경만씨 정말 도박 빚 있던가요?’ ‘응!’ ‘얼마나요?’ ‘오천!’ 이형사가 손가락을 펴 보인다. 정반장도 좀 놀라는 표정이다. ‘그렇게 많아?’ ‘예. 반장님. 원래 육천 좀 넘었었는데 육 개월 전에 천만 원 갚고 이래저래 이자 붙고. 하여튼 지금은 이천만 남았습니다.’ 홍형사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그럼 그 새에 삼천만원 넘게 메웠단 말이에요?’ ‘그렇지!’ 정반장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갑자기 식당 안에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쾌한 댄스뮤직. 이형사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타듯 노래를 따라 부른다. ‘노바디 노바디 원츄!’ 정반장과 홍형사는 그저 어이없이 바라만 본다. 식당 주인아줌마의 걸쭉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년아! 그거 안 꺼!’ 카운터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갓 스물 되어 보이는 여자에게 주인아줌마가 다가간다. 그리고 또 큰소리로 외친다. ‘이년아! 취직할 생각은 안 하고 식당 일 좀 하라니까! 안 꺼!’ ‘엄마! 왜 그래. 음악 틀면 손님들도 좋잖아!’ ‘좋기는 이년아! 노바디는 무슨! 우리 집엔 노가리도 없다 이년아! ‘어휴! 정말!’ ‘이 놈의 컴퓨터는 왜 갖다 놔가지고! 그냥 틀고 또 틀고! 들은 거 또 듣고! 하루 종일!’ 이형사는 어깨춤을 추다가 제 앞에 놓이는 뼈 해장국을 보고 눈이 커다래지며 환하게 웃는다. ‘우와! 오늘 뼈가 더 크네!’ 정반장이 어린 동생 보듯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주인아줌마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끄란 말이야! 그놈의 플레이인지 뭔지! 지겨워! 왜 자꾸 튼 거 또 틀고 그래! 이년아! 엄마는 힘들어 죽겠는데.’ 홍형사가 살며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며 눈빛이 빛나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정반장이 보았다. 이형사는 허겁지겁 뼈에 붙은 살을 뜯어먹고 있다.
김형우가 살며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다. 조용한 거실, 문득 그는 소파를 본다.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잠이 들어있는 아들 대훈이 그리고 그 작은 가슴에 안기어 자는 어린 여자아이. 그는 대훈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울화가 치미는지 입술을 꼭 깨문다. 그리고 안방 문부터 열어보고 욕실도 열어본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구석 작은 방문을 열자 방바닥 한가득 물건들이 펼쳐져 있다. 핸드백, 구두, 옷 그리고 액세서리들. 동생 영미가 한가운데 앉아 얼이 빠진 듯 그것들을 만져보고 있다. ‘야!’ ‘엄마아!’ 영미가 놀라 손에 쥔 것들을 떨어뜨린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오... 오빠. 이 시간에......’ ‘그건 왜 다 꺼내고 난리야!’ 영미는 핸드백 하나를 집어 들고 애원하듯 말한다. ‘오빠. 이것 좀 봐. 다 명품이야. 몽땅 다! 이게 도대체 얼마야? 세상에... 몇 천만 원... 아냐 억은 되겠다.’ ‘빨리 안 치워!’ ‘응?’ ‘빨리 치우란 말이야!’ 대훈이가 고함소리에 잠에서 깨워 아빠에게로 오고 있다. 얼떨떨한 영미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이거 나 가지면 안 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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