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살아 있는 듯 절을 올린 리진이 느린 걸음을 뗐다.춘앵무의 완보(緩步)다. 두 팔을 펼쳐들 때 그녀의 눈앞에 지난날 연회 때의 풍경이 펼쳐졌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날개를 펴듯 나아갈 때나 꽃을 보듯 눈앞을 고요히 응시할 때 춤사위에 스며드는 대금 소리가 강연의 것이라는 것을 저절로 느끼던 그 시절. 우물 속의 찬기처럼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하루도 온전히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이 궁궐에서도 무희가 되어 춤을 추는 그 순간은 자유로웠다. 사랑을 느끼고 바람을 느끼고 축원을 느끼고 지는 꽃을 흐르는 물을 느끼던 유일한 때였다. 파리로 떠나기 전 날 밤 이 자리에서 왕비의 강녕을 바라며 추었던 춘앵무가 마지막 춤이 될 줄이야. 어디에 숨어 있던 기력일까. 일어설 힘도 없어 보이던 리진은 정성 들여 춘앵무를 완성하고 숨을 고르며 손을 모으고 물러섰다.
아직 냉기가 서려 있는 봄 햇살이 교태전을 나서는 리진의 눈을 찔렀다. 사흘 전, 반촌을 나설 때부터 챙겼던 무명 보자기를 품은 채 용마루가 없는 교태전의 지붕을 지나 북쪽의 자경전을 보았다. 철인대비가 꽃담에 새겨진 천(千) 귀(貴) 수(壽) 낙(樂)을 어린 리진에게 일러주던 곳이다. 북쪽 담 꽃담에 새겨진 성(聖) 인(人) 도(道) 리(理)를 가르쳐 주던 젊은 대비의 슬픔이 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콜랭은 벽난로의 불길 속에 허드레 것들을 집어넣으며 우울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인간이란 미워하면서 싫어하면서 닮아 가는가. 이민자이면서 기필코 이 나라의 귀족이 되어보겠다고 애쓴 부친의 욕망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돌아보면 자신의 삶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생각. 저 먼 극동의 나라에까지 제국의 손길을 뻗던 유럽이 이제 서로 편을 갈라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슬라브 청년이 암살한 것이 전쟁을 발발시킨 원인이었다.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슬라브 청년이 세르비아의 정보부원으로 밝혀지자 오스트리아는 곧바로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같은 슬라브 족으로 세르비아와 형제국임을 자랑하던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향해 군사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 유럽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세계는 서로의 이권에 따라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있던 독일과, 러시아와 협상국으로 지내던 프랑스와 영국이 편이 갈리며 전쟁에 줄줄이 엮였다. 회색 군복을 입은 무뚝뚝한 독일군과 “라 마르세예즈”를 목청껏 외치는 프랑스군과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이는 영국군이 총을 쏘아대며 인류가 일궈놓은 근대 문명들을 파괴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름에 시작된 전쟁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겨울이 될 때까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파리까지 독일군이 밀고 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자자해지며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죽이고 죽어갔다. 앵발리드 광장이나 센 강변엔 ‘무기를 잡으라, 시민 동지들이여!’를 외치는 젊은이들이 행진을 하곤 했다. 언제 피란길에 오르게 될지 모를 상황이었다. 벽난로의 불길에 가지고 떠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집어 던지던 콜랭의 손길이 멎었다. 이제는 쓸모 없어져 태워버리려고 쌓아놓은 서류뭉치 사이에 기메 박물관의 동양 총서가 나왔다. 조선인 홍종우의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다. 콜랭은 책장을 한 장 넘겨 보았다. “배가 많이 드나드는 두 대양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해마다 수많은 항해자들의 눈에 띄긴 하지만 코리아는 가장 탐험이 덜된 나라들 중의 하나이다.” 콜랭은 홍종우가 쓴 서문을 잠깐 읽다가 책을 접었다. 벌어진 책 사이를 펴보니 피가로지 한 장이 접힌 채 꽂혀 있다. 콜랭은 물끄러미 신문에 찍혀 있는 날짜를 살펴 보았다. 1910년이면? 4년 전의 것이다. 무슨 중요한 것이어서 여기에 끼워 뒀을까. 구레나룻이 거의 회색빛이 된 나이 든 콜랭의 손가락이 신문을 펼쳤다. 대한제국이 일본과 합방을 하였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콜랭은 묵묵히 대한제국이란 글자를 응시했다. 콜랭은 비로소 이 신문을 읽던 날의 아침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