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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의 軍史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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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독이라 불린 장군 [ 5 ]    2009/11/03 13:00 추천 3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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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의 軍史世界

 

불독이라 불린 장군 [ 5 ]

 

 

 

확고한 의지

 

워커 스스로 회고록 등을 남기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전사에 나와 있는 사료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살펴보면 Stand or Die 처럼 낙동강 방어선에 대한 필사의 방어의지가 단지 부하 장병들을 다독이기 위한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닌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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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일대를 정찰하는 미군 ]

 

당시 미국 내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후진국에서 발생한 전쟁에 미국이 피를 흘려야 할 필요가 있는지 또는 아무리 냉전시기이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수하여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언론이나 정치권 일각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말단의 병사들은 확고한 전투의지가 부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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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의 피해가 커져가자 본국에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

 

예를 들어 뉴욕 타임지의 종군기자인 핸슨 볼드윈 ( Hanson W. Baldwin 1903~1991 ) 에 의해 워커의 Stand or Die 훈령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미 의회에서 ' 병사들의 인권무시 ', ' 한국을 미국인들이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지 ', 또는 ' 민주주의의 위기 ' 니 하면서 수많은 반론이 제기되었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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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매체에서 워커의 훈령을 문제 삼기 시작하였습니다 ]

 

비록 북괴군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하고 안이하게 대처하여 엄청난 코피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참전 초기의 미군은 이러한 치욕을 극복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만일 부산을 내줄 정도로 밀린다면 그냥 배타고 일본으로 건너만 오면 될 것으로 대다수는 생각하였습니다.  때문에 이처럼 전투의지가 결여된 부하장병들에게 목숨을 걸라는 명령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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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커는 병사들의 떨어진 전투의지를 살려내야 했습니다 ]

 

하지만 워커도 처음부터 이러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또한 7월 7일 대구에 야심만만하게 8군 사령부를 꾸렸을 때만해도 여타 미군들처럼 손쉽게 북괴군을 물리칠 것으로 낙관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부대를 뒤이어 제24사단이 사단장까지 북괴군의 포로가 되며 해체 위기까지 몰릴 정도로 타격을 받자 소극적으로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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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 후 귀환한 딘 제24사단장 환영회 ]

 

일단 낙동강 방어선을 염두에 두고 후퇴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이곳의 붕괴를 가정하고 일본으로 후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항 할 수 있는 데이비스 라인 ( Davison Line ) 을 워커는 염두에 두고 있었을 만큼 낙동강 교두보 사수에 대한 의지가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 선이 대략 경상남도 경계와 비슷한데 한때 영천과 포항에 위기가 닥치자 대구지역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이동할 것도 심각하게 고려하였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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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이곳에서 더 물러날 생각도 하였습니다 ]

 

그러나 판단이 빠른 야전지휘관인 워커는 상관인 맥아더가 절대로 한반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전투의지와 반격에 대한 집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낙동강 방어전 펼치기로 결심하였고 이러한 확고한 전투의지를 부하들에게 표명합니다.  또한 점령지에서 공산군이 벌이는 학살극에 대해 워커는 잘 알고 있었고 부산까지 후퇴한다는 것은 한반도 전체가 사상 최대의 살육장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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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아더의 의지를 워커는 깨닫고 사수에 전력을 다합니다 ]

 

이것은 20년 후에 있었던 인도지나반도의 공산화 당시 학살극만 보더라도 충분히 유추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이미 유럽에서 나치가 점령지에서 벌인 학살현장을 목도한 적이 있었고 그는 훈시에서 이런 가능성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워커는 "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포로가 되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 " 라면서 결사의 항전의지를 예하 장병들에게도 요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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