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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의 軍史世界
불독이라 불린 장군 [ 6 ]
피로 물든 가장 뜨거웠던 여름
낙동강의 최후 거점을 기준으로 양측이 첨예하게 대치되었고 이제 아군과 적에게는 단 한 가지 목표만 남았습니다. 바로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을 지키려는 아군과 이를 점령하기 위해 달려드는 북괴군 사이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 낙동강은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
공산군은 남한 점령지에서 강제 징집한 병력까지 총알받이로 내세우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반면 최후의 보루를 지키기 위해 아군 또한 피로써 적을 막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일진일퇴의 공방과 더불어 산하는 포연에 뒤집혀 빨간 속살을 들어냈고 불탄 나무와 풀 위에는 주검들이 나 뒹굴었습니다.

[ 전사한 피난민, 하물며 전전의 상황은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
8월로 접어들어 시작 된 마산, 왜관, 다부동, 영천, 포항을 잇는 낙동강 방어선의 공방전은 뜨거운 여름과 함께 붉게 물들어 갔고, 총소리가 잠시 멈추면 여기저기서 미처 치우지 못한 시신들이 부패하여 터지면서 나오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산하를 울려 퍼져 나갔습니다. 필사의 사투를 벌이며 1950년 여름은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 지고 있었습니다.

[ 그해 여름 엄청난 사투가 벌어졌습니다 ]
지독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8월 중순이 지나자 부산항을 통하여 밀려들어온 수많은 보급품과 지원 병력 때문에 전쟁발발이후 계속 열세였던 피아간의 전력균형이 서서히 바뀔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전쟁이라는 것이 한 번 밀렸다 그 자리에서 공세로 나가 순식간 전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산하는 붉게 물들어 갔습니다 ]
총 사령관 맥아더는 전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하였는데, 이 때문에 모든 가용전력을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맥아더의 의중을 알고 있던 워커는 그에게 주어진 전력만으로 낙동강 교두보를 지켜나가야 했습니다. 워커의 임무는 눈앞의 공산군을 최대한 많이 잡아두면서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 워커는 내선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부족한 예비대를 가지고 기동 방어에 나섰습니다 ]
제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의 소련 제62군이 독일 제6군을 도심에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였는데, 워커의 제8군이 맥아더의 회심작인 크로마이트작전 ( Operation Chromite ) 을 위하여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다만 차이라면 제8군이 뚫린다면 전쟁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방어전이었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은 낙동강을 지켜낸 워커의 공로에 힘입은바 큽니다 ]
이때 워커에게 믿음직한 동반자로 인식된 것은 국군이었습니다. 워커가 참전하였을 당시만 해도 자기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삼류군대정도로 국군을 인식하였지만 낙동강 교두보에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육탄으로 적을 막아내며 전략거점을 방어하여 나간 국군의 필사적인 투혼에 워커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 워커는 국군의 무공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
대구를 중심으로 우측을 방어한 국군 1, 3, 8, 수도사단은 낙동강 방어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우리의 선배들은 그러한 위기상황에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특히 동양의 베르덩전투라 불린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진부대의 노고에 대해 워커의 찬사는 진심어린 것이었고 국군을 믿을 수 있는 군대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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