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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與 국보법 폐지 주도그룹 누구인가    2006/05/30 21:40 추천 1    스크랩 3
http://blog.chosun.com/hansu0001/1156507
與 국보법 폐지 주도그룹 누구인가

발행일 : 2004.09.08 / 종합 A4 면 기고자 : 안용균 
 
종이신문보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까지 가세해 여권 내에서 사실상 ‘강행’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금 열린우리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 중인 세력은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任鍾晳) 의원이 주도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입법추진 의원 모임’과 우원식(禹元植) 의원 중심의 ‘아침이슬’ 소속 의원들이다.

이 중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의원 모임은 임종석 의원이 주도해 지난 7월 21일 결성된 것으로, 당시 참석자는 16명이었다. 첫 모임에는 임채정·한명숙·우상호·강기정·이은영·정성호·오제세 의원 등이 참여했는데, 이 중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 전대협 간부 출신 의원들이 모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의원 등의 국보법 폐지 모임이 결성된 지 나흘 뒤인 7월 25일에는 70년대 말 ‘긴급조치 시대’ 출신의 우원식·선병렬·이상민 의원 등이 결성한 ‘아침이슬’ 모임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참했다. 이 두 모임 소속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주도해 열린우리당 의원 84명이 폐지안에 서명을 했다. ‘아침이슬’ 모임 출신 의원들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국보법 폐지 주장 등을 문제 삼아 ‘국가정체성’ 논란을 제기하자 정면으로 반박했고,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합헌 결정을 내리자 이 결정도 성토 반박했다.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 중인 그룹의 면면을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를 당한 전력이 있거나 시국사건에 관련됐던 인사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국보법 폐지법안에 서명한 84명의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 시국사건 전력이 있는 의원이 30명에 이르고, 그 중 1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됐던 경력을 갖고 있다. 국보법 폐지를 주도하고 있는 임종석 의원은 1989년 임수경씨 방북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전대협 1·2기 의장인 이인영·오영식 의원도 각각 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았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당한 전력을 가진 의원 중 국보법 폐지에 서명하지 않은 의원 3명 중 김근태 복지부 장관은 ‘폐지’ 입장을 밝혔지만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안 의원은 “완전 폐지는 시기상조”라며 개정파 모임을 주도하고 있고, 김부겸 의원은 신중한 입장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은 아니지만 각종 시국사건과 관련해 집시법 위반 등으로 구속돼 실형을 치른 의원들도 상당수다. 80년대 초 운동권 출신인 우원식 의원측도 “정권이 법 해석을 자의적으로 하다 보니 같은 사건으로 어떤 사람은 국보법 위반이 되고 어떤 사람은 집시법 위반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서명 의원 중에서 이미경·이호웅·강창일 의원 등은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송영길·이화영·정봉주 의원 등도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실형을 살았다.

안용균기자 (블로그)agon.chosun.com

<표>■국가보안법 폐지안 서명 여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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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김대중의 반역행위와 이철의 망언    2006/05/22 12:5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1135844
 원문출처 : 구국전사
 원문링크 : http://blog.chosun.com/sjkoreano/940907

 

김대중의 반역행위와 이철의 망언


오늘 YTN News에 의하면, 철도청장 이철이 "남북철도 연결은 김일성주석의 유시" 라고 말하였다고 보도하였으며, 여자 아나운서는 아무른 가책 표정 없이, 태연하게 이를 방송하였다. 아니 내가 듣고 보기엔, 김대중이 철도로 평양에 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게 전망하며, 더욱 힘을 주어 김일성 주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철이는 성분이 친북반한, 崇金容共 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자가 민족의 영원한 원수요 반역자를 “주석”이라고 하고, “유시를 받든다." 는 취지로 말하는 데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노무현 정부j의 구성은 반한친북이라는 것을 새삼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전여옥 의원이 "김대중 치매" 설을 발설한데 대하여 몇몇 열우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전의원의 의원직 사퇴, 국회윤리위원회 회부 등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아직도 김대중은 한국 전라도 광신도의 호메이니로서 건재 한다고 인식된다. 


약5년 전에 김대중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김일성의 625전쟁 도발을 통일전쟁이라고 목청을 높여, 필자의 격분을 산일이 있었으나, 당시는 소위 “김김 평양 615 공동선언” 이 있은 지 수개월이 안 되고, 김대중은 노벨상을 전망하고 북에게 상충되는 언동을 자제하여야 함은 물론,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 충성심 불변을 김정일에게 과시하여야 할 입장이라고 인식되어, 적색분자의 망언이라고 치부하며 격분을 자제한 기억이 있다. 


김대중의 햇볕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한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도 과거 김대중 정부처럼 무조건 대북지원에 열을 올려, 노무현집권시기내에 국가의 변란을 걱정하면서도, 국체를 말살할 반역이야 하겠는가? 고 위구심을 자제하며 불안한 나날을 지내왔는데, 최근의 여러 상황은 어떤 돌변을 예고하는 공기가 팽배하는 것 같아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사기도적질로 역적질을 한 김대중이 남북문제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 철도로 평양을 가겠다고 하고, 그 철도편의 의미를 애써 포장하여 어떤 역사적의미로 발전시키려는 음흉한 작태를 감히 발로한데 대하여, 심히 격분하는 바인데,


오늘 친북반한도배인 이철이 그의 이념적 상전인 김대중의 철도편 여행을 부추기며, 자신의 정신적 우상격인 김일성을 무슨 구국지도자로 존칭하는 대목에서는, 도저히 이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격분하게 되어, 국민의 경각심을 높이는 뜻에서 간단명료하게 김일성 김대중을 성토하고자한다.


김일성은 추종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항일독립운동에 공이 큰 것도 아니며, 2차대전 종전 후 소련의 천거로 북한을 장악한 젊은 走狗였으며, 국제공산주의 맹주 소련위성국확장의 일환으로 김일성은 자진하여 동족상잔의 전쟁을 도발 주도하여 국토황폐와 수백만 동족의 주검을 초래한 민족반역자며, 전쟁도발 패전책임을 남로당파에 전가하여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자행한 살상의 수괴며, 종전 후에는 절대 군주적 독재로 반대파를 억압하며 쇄국정책을 지속하여 북한의 낙후를 자초한 독재자였다.


한편 김대중은 그의 정치출발이 여운형의 근로인민당 즉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이었으며, 사기 음모 술수로 정계에 출몰하면서, 북측과 교신한 반국가분자며, 일본에서 납치 전에는 북의 전위대인 조총련 분자들과 연계하여 소위 망명정부를 획책한 반한행동을 하다가 납치귀국 후에도 민주화를 가장한 반국가행동은 계속되고, 10.26 박정희 사망 후에는 그의 사조직을 동원하여 대권도전에 열을 올려, 그가 국가변란 음모로 구속되자, 광주폭동을 배후에서 조종한 장본인이다. 그 후 미국에 와서는, 정치활동 포기 약속을 파기하고, 미국의 대한원조 중단을 외치며, 계속 반한운동을 한 것은 필자가 현지에서 경험한바다.


그 후 전두환정권말기에 귀국하여 정치를 계속하면서 서경원을 북에 밀파하여 김일성은 물론 북조선 수뇌와 교신하며 비밀자금까지 수령하였고, 93년 대선에 패배하자, 정계를 은퇴한다는 성명을 남기고 영국으로 떠났다가, 1년 만에 귀국하여서는 다시 정치를 재개하며, 북과 접촉하였음은 일본 文藝春秋지에 보도된바있다.


그 후 국민의 오판으로 대권을 잡은 후에는, 국민 몰래 천문학적 국고금을 도적질하여 북에 밀송하고, 평양에서 김정일 면담을 허락받고, 국민의 합의없이 저들만의, 소위 615 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서 북의 연방제통일에 동조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방면으로 북을 원조하여 북의 무력증강은 물론 핵무기 개발을 源泉支援하였다.


그런 천문학적 자금의 북한원조는 자신의 노벨상은 얻었지만, 그가 자진 천명한 실크로드, 북한특수, 김정일 입경, 연방제통일등은 空約이 된 虛言에 불과하였다.


재임기간에는 IMF를 수습한다는 구실로 수백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국민의 부담을 가중하고, 벤처기업육성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비리를 양산하여 마침내 대한민국을 기업도박의 천국으로 만들고, 국가기업과 자산을 헐값에 외국기업에 매각하여 외국기업의 도박장을 만들었다.


또한 김대중은 자신의 거짓생애를 포장하는 기념관 건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였다.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이런 개인 기념관을 건립한 예가 있었는가? 그 자금은 어디서 났는가?


그러면서 퇴임초기는 정치에서 초연한다고 천명한 말을 잊었는지 최근에 와서는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615 치매가 아니라 요즘 그는 치매상태인지 건망증인지 노망인지 의심이 간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김대중은 爲國生涯가 아니라 危國政治의 표본이며,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우선 그는 북에 지원한 막대한 자금만 가지고도, 이적행위와 반역죄가 성립되며, 국고를 도적질한 대도행위를 범한 것이다. 또 그가 무슨 낮은 연방제 높은 연방제 운운하며 대한민국의 국체를 변조할 계획으로 적장 김정일과 이를 논의하였다면 국가전복음모를 범한 것이다.


김정일이 김대중을 어떻게 생각하며, 김대중의 말을 얼마나 신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일의 행적으로 보아 김대중의 2중 프레이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전년의 일본 문예춘추 보도에 의하면 김정일은 “김대중이 자기 선고 김일성의 은혜를 입었다” 고 술회한 보도가 있었는데, 김대중은 김정일의 언동에 촉각을 새우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그런 정황으로 김대중이 김정일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평양을 가겠다고 자작극을 벌린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김대중이 정부의 공식 특사도 아닌 신분이고, 사적야인으로 평양에 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인식하면서도, 혹시 현 노무현정부와 밀약 하에 어떤 국가적 변란을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대중은 국민합의를 얻기위하여 입북시기를 6월로 연기한다고 하였는데, 김대중이 대북역적행위에 대하여 언제 국민의 합의를 얻은 바가 있는가? 참으로 웃기는 말이며, 궤변이 지나치다.


결론으로, 김대중은 이상에서 열거한 이적행위와 국가전복 음모 등 반국가적 행위로 체포되어야 하며, 심판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중이 끼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은 제외한다 하여도, 그가 범한 대죄는 반드시 그의 생전에 법의 심판을 받아야한다.


지금 많은 국민이 국체의 손상내지 변형을 우려하고, 전범집단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것은 모두 김대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국민은 이점을 유의하고 김대중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대중의 반국가행위를 심판하게 될 때, 우리나라는 정의와 평화와 화합과 통일의 기류가 형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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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南民戰 관련 자료모음    2006/05/18 23:23 추천 0    스크랩 1
http://blog.chosun.com/hansu0001/1128311
南民戰 관련 자료모음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꾀했던 대규모 反국가단체가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全敬雄   
 *최근 국가기관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북한과 연계된 공산폭력혁명조직인 南民戰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하였다. 좌파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는 이 위원회의 황당한 결정은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한 것일 뿐 아니라 사실과도 맞지 않는 反헌법적, 反국가적, 反민주적 행패이다. 아래 관련자료들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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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0월 10일 조선일보 1면 기사
 
 대규모 반국가 지하조직 적발
 
 내무부 발표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 결성
 74명 중 20명 검거 54명 수배
 총책 李在汶 사제 폭탄 ·총기 등 1300점 압수
 
 잠실 시영 아파트 11동 408호 거점
 
 북괴의 적화통일혁명노선에 따라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조직,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꾀했던 대규모 반국가단체가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具滋春 내무부 장관은 9일 이 반국가 단체의 총책 李在汶(45·前언론인·서울 강동구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 등 일당 20명을 지난 4일 검거하고 나머지 54명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검거된 일당은 ▲전직 교수 및 현직 교사 5명 ▲전직 언론인 2명 ▲대학생(제적자 포함) 7명 ▲회사원 1명 ▲기타 5명이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사제폭탄, 소총 및 실탄, 도검류, 통신문, 공작장비, 金日成 육성 녹음테이프 3개 등 1374점을 압수했다.
 
 
 학생 등 포섭…都市게릴라 手法 사용
 
 발표에 따르면 총책 李在汶은 74년 4월 民靑學聯 사건 배후조종 혐의로 수배중인 자로 76년 2월 29일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학생, 교직자 등을 포섭, 이른바 南朝鮮民族解放戰線준비위를 조직, 10대 강령, 9대 규약, 10대 생활규범, 4대 임무, 3대 의무 등을 만든 뒤 北傀旗를 모방한 「南朝鮮解放戰線旗」까지 제작, 지하조직을 이용하여 對政府 투쟁을 선동조종하고 불온전단을 뿌리며 都市게릴라 방법에 의한 강도 등을 자행하고, 민중봉기에 의한 국가변란을 획책해 왔다.
 이들 일당은 모두 가명을 사용, 5~12명으로 「彗星隊」라는 행동대를 조직, 「烽火 작전」 「땅벌 작전」등 암호를 사용하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D건설 C회장집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K사장집 및 寶金藏 등에 침입, 3회에 걸쳐 50여만 원의 금품을 털었고 추적하는 수위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들은 또 지난 8월 28일에는 서울 청량리에 있는 靑山학원 옥상에 「政權 타도」플래카드를 내걸고 50여 종의 불온문서를 학원가와 시중에 살포하면서 반정부 선동과 유언비어를 조작유포시켜 왔다.
 경찰은 靑山학원 불온전단 살포사건 용의자로 추적 중이던 전 서울大생 김富燮(24)의 검거로 일당이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를 근거지로 활동 중임을 밝혀내고 관련자들을 잇달아 잡았다.
 
 
 資金위해 强盜 두 차례, 1회 미수
 작년 11월-금년 4월 社長집 털어
 
 총책 李在汶 및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의 주요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資金조달을 위한 강도=민족해방전선의 총책 李在汶은 산하 행동대원인 金南柱, 車成煥 등과 자금조달을 위해 작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사이에 돈 많은 사장집이나 금은방을 골라 「작전」명의까지 붙이고 대낮에만 침입, 금품을 털거나 강도모의를 했다.
 ▲봉화산 작전=78년 11월 5일 오전 11시쯤 李在汶 등 3명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모 사장(55) 집에 식칼을 들고 침입, 금반지 등 시가 50만 원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이들은 『선거 운동원인데 선물을 가져왔다』고 가족 2명과 가정부를 속이고 들어가 칼로 위협한 뒤 나일론 끈으로 손발을 묶고 범행을 저질렀다.
 ▲땅벌 작전=지난 4월 27일 오전 10시 30분쯤 李在汶의 지시로 金南柱, 車成煥, 朴錫律, 李學永 등 4명이 서울 강남구 반포동 D건설 C모씨(37)집에 침입, 경비원 金永喆씨(26)를 길이 20㎝ 과도로 가슴 어깨 등을 찌르고 비서 李光植씨(25)를 나일론끈으로 묶은 뒤 집안을 뒤지다 金씨가 피를 흘리며 집 밖으로 나가 소리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나다 李學永만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寶金藏 금은방 강도모의=지난 3월 25일 오전 10시쯤 李在汶을 총책으로 車成煥 등 12명이 4개 반으로 나눠 서울 종로1가 寶金藏에 침입, 금반지와 귀금속을 털기로 모의했다가 1명이 범행 직전에 이탈, 미수로 끝났다.
 이들 12명은 주인을 협박하는 행동 1반, 왼쪽 진열대를 터는 2반, 시계류를 터는 3반, 금은 세공 종업원을 협박하는 4반으로 임무를 각각 분담키고 했었다.
 ◇民靑學聯 배후조종=총책 李在汶은 慶大 法政大를 졸업, 60년 용공신문으로 폐간된 民族日報기자로 근무했으며, 64년 7월 「人革黨중앙상위조직부책」으로 정부전복을 꾀하다가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뒤 다시 民靑學聯사건 주모자 呂正男을 배후조종했고 李晩星, 金耕人 등과 「南朝鮮民族解放戰線준비위」를 조직, 위원장에 취임하고 點組織 방법에 의해 학생, 교직자 등 동조자 74명을 포섭했다.
 ◇解放戰線 조직=위원장 李在汶은 중앙위원회에 총무조직, 교양선전선동, 출판, 통일전선, 무력, 대외연락, 정보, 재정 등 9개 부와 검열위원회 署記 및 地域責(서울, 慶北, 湖南)을 두고 그 산하에 「民主鬪爭國民위원회」(위원장 韓民聲)라는 전위조직을 설치, 청년, 학생, 농민, 노동, 연합, 교양 등 6개部와 지도요원 및 221隊(특수행동대)를 편성, 암약하면서 北傀 金日成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보냈다.
 ◇統革黨 재건 기도 관련=일당은 통혁당 재건기도사건에 관련,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林東圭(46·高大노동문제연구소)를 조종했고 서울大, 고려大등 각 학교 구내와 시내에 불온전단 수만 장을 살포했고 지하요원으로 반정부선동을 일삼았다.
 ◇金日成에게 충성서신=「남조선 혁명가들은 首領의 혁명이론과 방법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있다」는 등 서신을 보내고 사업보고서를 통해 한국민주투쟁 국민위원회를 조직, 서울시내 일원에 1만 장의 삐라를 뿌리는 등 宣傳투쟁을 했다고 보고했다.
 
 
 [해설]「反體制 운동」과 성격 달라
 
 「南朝鮮民族解放戰線」은 학원가와 시내 중심가에 불온전단을 살포하고, 플래카드를 내거는 외에 자금조달을 위해 재벌집에 침입, 강도까지 자행하면서 도시게릴라 수법으로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金日成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기까지 한 조직임이 드러났다.
 더구나 解放戰線 조직은 統一戰線部, 武力部, 221隊 등 北傀가 상용하는 조직명을 쓰고 「鬪士」「戰士」등으로 조직원을 철저한 點組織으로 엮어 강도행위에도 「烽火山 작전」「땅벌 작전」등 듣기에도 섬뜩한 용어를 써왔다.
 경찰은 당초 불온전단의 살포가 불온분자의 산발적인 행동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가 이같이 赤化혁명을 기도하고 있는 解放戰線의 전모를 밝혀낸 것이다.
 이들 일당은 속칭 反體制 운동과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면서도 「民主化」와「反政府 투쟁」을 구실로 선전활동을 펴면서 私製폭탄을 만들고 무기를 불법입수하는 등 北傀가 노리는 「人民解放軍」으로의 성장을 꾀하고, 북괴의 지령을 받은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赤化통일노선을 지향해 왔다.
 이들의 검거로 일단 수시로 불온전단이 학원가 등에서 나돌던 일은 해소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으나, 反體制 운동의 틈바귀에 끼여 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 찬양조직이 自生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自省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수 있다 하겠다.
 
 
 관련자는 自首를…具 內務 당부
 
 具滋春 내무부장관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과 관련, 아직도 검거되지 않은 불순분자가 전국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지적, 정부는 최단시간 내에 이 사건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다짐하고 국민들중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조직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수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인근 경찰관서에 신고해주고 학생 및 근로자들은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본의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1979년 10월 10일 조선일보 7면 기사
 
 덮치고 보니 「不穩 아지트」
 「解放戰線」검거 詳報 李在汶, 잠긴 방문 밀치자 自害
 “反政府 삐라” 용의자 金의 愛人이 자백
 「재벌强盜」共犯도 잡아
 
 불온전단 살포 용의자를 끈질기게 추격한 끝에 낚은 대어(大魚)였다. 경찰이 불온전단 살포혐의자 2명을 체포한 뒤 그 연루자가 있다는 서울 강동구 잠실4동 시영아파트 11동 408호를 덮치자, 그곳은 뜻밖에도 소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의 아지트였다.
 
 경찰이 불온전단 살포자로 金富變(24)을 쫓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 8월 28일 서울 시내 靑山학원과 중심가에 뿌려진 극렬한 반정부 불온전단 살포자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은 그 내용과 수법이 77년 서울大 불온전단사건과 유사한데 착안, 그때의 주모자로 도피중이던 金을 주목했다.
 경찰은 서울 용두동에 있는 金의 집 주변에 잠복근무하면서 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중 그의 동생이 어디론가 하숙비를 가져다주고 있음을 알아냈다.
 金의 동생이 월 6만 원의 하숙비를 서울 망원동에 있는 金의 애인 朴美玉(24·외국어대 불어과 4년)에게 전달하는 것을 확인, 3일 낮 12시 朴의 집주변에 잠복하다 金富變이 애인과 함께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붙잡았다.
 경찰이 朴의 집을 수색하자 서울 청량리에 뿌려진 불온전단을 등사한 등사철판과 원지가 나타났다. 金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끝까지 잡아뗐으나 애인 朴이 J여중 교사 李銖日등과 함께 일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朴을 데리고 李銖日의 집이 서울시영 잠실아파트 11동 408(그곳에 李在汶, 李文熙 등 동거)호임을 확인했다.
 경찰은 4일을 D데이로 잡았다. 기습작전에는 대공경찰관 8명이 참가했다. 4일 오전 1시30분 순찰백차 2대에 분승한 이들은 현장에 도착,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며 13평짜리 李의 집 문을 노크했다.
 李在汶의 내연의 처인 李文熙가 『무슨 일인데 한밤중에 찾아오느냐』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丁형사가 『급한 연락이 있어 찾아왔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李銖日이 나와 문을 열었다.
 丁형사는 덤벼들어 단박에 수갑을 채웠다. 그순간 李文熙는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옆방에 있던 金南柱(戰士)가 밖의 소란에 문을 열고 나왔다. 金은 D건설회장집 등의 강도상해사건의 용의자로 수배중인 자였다. 잠시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과 격투가 벌어졌다. 이 사이 金과 같이 있던 車成煥(鬪士)이 유리창을 깨고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달아났다.
 형사들은 우선 李文熙가 들어간 안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형사들은 발로 문을 걷어차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李在汶는 불온문서를 싼 보따리를 밖으로 내던지고 길이 10㎝의 등산용칼로 앞가슴 2곳을 찔러 피가 낭자한 채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경찰은 구급차를 급히 불러 李를 서울大 병원으로 옮겼다. 李는 오른쪽 가슴에 길이 7㎝, 깊이 5㎝, 왼쪽 가슴에 길이 7㎝, 길이 2㎝, 깊이 3㎝의 자상을 입고 있었다.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경찰이 李를 수송하느라 법석을 떠는 동안 李文熙는 식칼을 든 채 밖으로 달아나 아파트옆 쓰레기통 뒤에 숨어있었다. 이 검거 소동에 놀란 주민들이 인근파출소에 신고, 달려온 파출소 순경이 李文熙를 잡으려 하자 칼을 휘두르며 반항했다.
 한 형사가 권총을 빼어들고 『반항하면 쏜다』고 위협하는 사이 파출소 순경이 경찰봉으로 칼을 든 李의 손을 후리쳐 칼을 떨어뜨리는 순간 붙잡았다.
 창문을 깨고 달아난 車는 밖에 있던 L형사가 300m나 추적 끝에 잡았다. 일당 5명은 15분 만에 모두 검거됐다.
 방안을 뒤지자 포도넥타 캔에 폭약을 넣고 3㎝길이의 도화선을 붙여 만든 사제폭탄 1개와 다이너마이트 1개가 나왔다. 또 총신만 빼낸 카빈 1정과 실탄 105발, 가발 2개, 장갑, 도끼, 각종 칼 20자루, 색안경 및 金日成교양강좌와 교시를 육성 녹음한 소형 카세트테이프 3개 등이 나왔다. 카빈은 총신을 잘라 권총처럼 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형사들은 李在汶이 창밖에 내던진 보따리를 끌러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북괴기와 비슷한 기가 나오고 불온책자, 불온전단 등이 쏟아졌고 예기치도 않았던 「해방전선」의 조직망 도표와 명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李在汶을 덮쳤을 때 『내 보따리, 내 보따리』라고 중얼대던 의미를 뒤늦게야 알고 심야작전의 수확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은 이 조직망 도표를 통해 관련자들을 잇달아 검거한 것이다.
 
 
 이웃에 「성실夫婦」 행세
 李在汶 일당 잡히자 住民들 놀라
 
 사건전모가 발표된 9일 낮 李在汶 등이 아지트로 삼은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엔 이웃 주민들이 몰려와 『감쪽같이 속았다』며 놀라와 했다.
 이 아파트는 K경찰서 교통계 모 순경의 소유로, 李在汶 등은 작년 12월 李銖日의 명의로 220만 원의 전세금을 주고 빌었다가 전세 계약이 만료된 지난 7월부터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4만 원씩을 주고 사용해왔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李銖日은 입주 당시 李在汶의 내연의 처 李文熙를 자신의 처라고 이웃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반상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주위 사람들을 만나면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등 누구에게서도 성실한 부부라고 인정받을 만큼 완벽하게 위장을 해왔다. 李文熙는 남들 앞에서는 李在汶을 시삼촌이라고 불렀고, 가끔 드나드는 朴美玉은 시누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 2006-05-17, 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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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평택범대위의 실체    2006/05/18 23:22 추천 0    스크랩 2
http://blog.chosun.com/hansu0001/1128306
오종렬의 전국연합은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왔다. 전국연합출신들이 청와대에도 있다.


오종렬이 이끄는 평택범대위의 실체



  1.

2001년-「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汎국민대책위원회(매향리범대위)」
2002년-「美軍장갑차여중생故신효순·심미선양殺人사건汎국민대책위원회(여중생범대위)」
2004년-「탄핵무효·부패政治청산을위한汎국민행동(탄핵무효범국민행동)」
2005년-「貧困을확대하는APEC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反부시국민행동)」
2005년-「농업의근본적회생과故전용철농민살해규탄汎국민대책위(전용철범대위)」
그리고 2005년과 2006년-「평택美軍기지확장저지汎국민대책위(평택범대위)」

소위 범대위라는 조직을 앞세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오종렬 등 사실상 동일(同一) 인물들의 反美 소요·폭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2001년 이래 구성됐던 각 범대위 상임대표 명단입니다.


▲2001년 매향리 범대위(매향리 미군부대 철폐를 목적 구성) ; 전국연합 오종렬 外 평통사 홍근수, 민주노동당 권영길·단병호, 문정현 신부, 범민련 남측본부 이종린 등

▲2002년 여중생범대위(노무현 정권 탄생 기여) : 전국연합 오종렬 外 평통사 홍근수, 통일연대 한상렬, 민주노동당 단병호·천영세, 문정현 신부 등

▲2004년 탄핵무효범국민행동(노무현 정권 유지 기여)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문규현 신부, 민주노총 이수호,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변호사,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 등

*2002년 여중생범대위 촛불시위는 미선이·효순이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 이전에 미군철수 등「反美감정」을 선동하며 盧대통령 당선 이후 1년 넘게 계속됐습니다.


*2004년 탄핵 당시 거의 매일 취재했던 탄핵무효 촛불집회 역시 「탄핵무효」「국회해산」은 물론 「反美감정」을 선동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예컨대 촛불집회의 주제가 역할을 하며 집회 내내 애창된 「너흰 아니야」라는 노래는 『시대가 바뀌어도 북한은 적(敵)이고 미국은 죽었다 깨도 혈맹(血盟)이라는 너희들의 망발, 너희들의 헛소리』등 북한에 대한 적(敵)개념과 미국에 대한 동맹(同盟)개념을 망발과 헛소리로 치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005년 10월 反부시국민행동(2005년 11월18일 1만 여 명 동원, 부산 수영만 인근에서 쇠파이프·죽창·곤봉 등을 사용 폭동)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민중연대 정광훈 등

▲2005년 11월 전용철범대위(여의도농민대회에서 전용철씨가 사망하자 구성. 노무현 대통령 사과 및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 유도)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민중연대 정광훈·통일연대 한상렬·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민주노동당 권영길 등

▲2005년 2월 평택범대위(2005년 7월10일·2006년 3월15일·4월7일·5월4일 쇠파이프·죽창·곤봉 등을 사용한 극렬폭동) ; 전국연합 오종렬 外 민중연대 정광훈, 통일연대 한상렬, 평통사 홍근수, 문정현 신부,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민주노동당 이정미 등

2.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범대위를 구성해 反美를 주도한 인물이 오종렬이라는 인물입니다.

오종렬의 전국연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91년 설립 이래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단체입니다. 전국연합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보람원수련원에서 열린 소위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연방제(聯邦制)실현을 다짐한 이날 결의는 「9월테제」또는 「군자산의 결의」로도 불리죠.

전국연합은 이 대회에서 『6.15공동선언 이후 정세는 <<조국통일의 大사변기>>로 규정할 수 있다』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 「자주적 민주정부수립」→ 「연방통일조국의 완성」』의 시나리오를 담고 있는 정치조직방침을 결정했습니다. 전국연합은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연방통일조국 건설」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의 反帝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의 反帝전선에 가세(加勢)·결집(結集)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북한 사회주의에 남한이 흡수·통합되는 방식의 통일이 연방제라는 설명입니다.


전국연합은 이를 위해『美帝식민지배체제의 결정적 해체, 6.15선언이행을 앞당겨 연북(連北)·연공(連共)의식의 대고조 이룰 것, 사대매국세력 한나라당 박살, 국보법·이적(利敵)규정·주적(主敵)규정철폐(2004년 대의원대회 자료집)』『국보법철폐를 통해 친미수구세력을 척결(剔抉)·매장(埋藏) 및 생명줄을 끊어 놓는 투쟁을 벌일 것(2005년 대의원대회 자료집)』이라는 요지의 결의를 한 바 있습니다.

3.

노무현 정권 들어 공직人事의 특이점은 전국연합 출신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전국연합 간부출신으로 공직에 진출해 있는 이는 우선 진실·화해위 위원장 宋基寅씨(장관급)를 들 수 있습니다. 宋신부는 전국연합 부산본부 상임지도위원과 전국연합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사무실 내 위치한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의 부산본부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습니다.

천영세(千永世.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前전국연합 공동의장 - 민노당 국회의원)·강기갑(姜基甲. 전국연합 대의원 - 민노당 국회의원)·김금수(金錦守.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노사정위 위원장·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이창복(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경기대 관선이사장, 최근 강원지사출마로 사퇴)·김상근(金祥根.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前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정동익(전국연합 감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씨 등은 전국연합 現職 간부들입니다.

함세웅(咸世雄) 씨는 2004년 10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명단에서 삭제됐습니다. 그는 99년 이래 3년여에 걸쳐 덕성여대에 관선이사로 활동해 온 데 이어 최근에는 세종대 관선이사로 파견됐습니다.

전국연합의 前職 간부들은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에 진출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인영(李仁榮) 의원은 全大協 1기 의장 출신으로 1997년 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全大協 부의장 출신으로 1992년 전국연합 부대변인을 역임했습니다.

임종인(林鍾仁)의원은 1992년~1995년 전국연합 대변인을, 이기우(李基宇)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 경기남부 조직부장을,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1992~1993년 전국연합 인권위원, 최규성(崔圭成)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제도정치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김희선(金希宣) 의원의 경우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 준비위원을 거쳐 1992년 전국연합 통일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결성단계인 지난 91년 11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利敵團體)」로 判示받은 바 있으며, 지난 97년 5월16일 다시 대법원에서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다시 「利敵團體」판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총선 당시 열린당 부산 해운대 기장甲 공천을 받았던 최인호(崔仁昊)씨는 全大協 부의장 출신으로 1993~1995년 전국연합 산하 부산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총선에서 떨어진 후 2005년 4월 대통령비서실 부대변인으로 임명됐습니다.

열린당 경기 고양일산을 공천을 받은 김두수(金斗守)씨는 1996~1998년 전국연합 정치국장을 역임했다. 낙선 후 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15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임명된 황인성(黃寅成)씨는 1990년대에 집행위원장으로 전국연합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공직에 진출했고, 2004년 4월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됐었습니다. 黃寅成씨는 지난 5월 청와대 인선에서 시민사회수석 이정호 제도개선비서관에서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전해철 변호사도 전국연합 인권위원장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친북화·반미화·좌경화 배경에는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김성욱(프리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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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혹세무민하는 빨갱이들    2006/04/19 22:23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1065085
 원문출처 : 안보논단
 원문링크 : http://blog.chosun.com/lsh09/628621

 

제4차 6자 회담의 타결과

 

우리의 과제




우여곡절 끝에 제4차 6자 회담이 <6개항 공동성명>에 대한 합의로써 타결되었다. 이로써 우리민족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평화통일의 길로 가닥을 잡아 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 6개항의 공동성명은 한반도 문제는 미국의 이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북의 핵무장은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대한 자위적 조치였음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북에 대한 재래식 군사공격 및 핵공격위협을 철회하겠다고 명시함으로써 이북이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이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가당치도 않은 미국의 이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미국이 시인한 꼴이 되었다. 이는 지난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의 위협이 아니라면 우리가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라고 한 발언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로써 한반도평화를 위협해 온 세력이 누구이며 이를 수호해온 자가 누구인지를 똑똑히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대목은 북-미, 북-일간 관계정상화와 '한반도영구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별도의 포럼을 통하여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한 대목이다. 그냥 '평화체제'가 아닌 '영구평화체제'란 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영구평화체제란 한반도를 어떤 외세의 영향력 아래에도 두지 않고 동북아 평화체제의 중심 축으로 삼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결국 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북의 NPT복귀절차문제와 핵사찰문제 그리고 '한반도영구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 등 앞으로의 6자 회담을 통하여 지루한 줄다리기와 협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한반도문제는 평화적 해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방심하고 방관자의 자세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남북공동선언실천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 통일>을 전면에 내걸고 '반미반전 자주통일 운동'을 더욱더 거세게 밀어 부쳐야 할 것이다.


<한반도 영구평화체제>구축과 <자주평화통일>을 향한 추진력은 남한민중의 힘으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끝)



주한미군 철거 원년 2005년 9월 20일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www.onec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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