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홈 |  기자 블로그 |  새로운 글 |  Blog뉴스 |  카페  |  사진마을 블로그 개설 |  랜덤 블로그
파아란홈
blog.chosun.com/hansu0001
 
한은경 (hansu0001)
- 우리 대통령을 나는 무조건, 무한정 지지한다. - 단, 박그네를 따라다니실 땐 절대 반대한다. 망하는 길이니까. 또 친아랍도 나는 반대다. 망하는 길이니까. - 이스라엘을 나는 무조건, 무한정 지지한다.
전체게시물 (6570)
파아란최근글   
뉴스 엮인글  
미국, 이스라엘  
연방제,평화전술  
이명박 자료  
박근혜 친북자료  
최태민 자료  
이승만  
5.18광주 자료  
한반도 운명에 대해  
우익과 좌익에 대해  
북핵, 북한위협  
역사와 오류에 대해  
박정희  
친일에 대해  
가치관에 대해  
일상,신앙에 대해  
스크랩2  
사진, 만평, 스크랩  
음악  
뉴스 스크랩  
좌익 포진 실상  
 
Today  384    / Total  783450
  
북핵, 북한위협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NORTH KOREA    2008/06/16 21:27 추천 2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3085518

 

 

NORTH KOREA

North Korea suffers from one of the worst human rights disasters in the world.  The regime of Kim Jong-Il brutally denies its citizens freedom of thought, conscience and religion and even subjects children to ideological indoctrination.  North Korea has more than 200,000 political prisoners in concentration camps and jails, many of whom are victims of experiments and executions in gas chambers.  Because of such treatment, many North Koreans attempt to escape the country.  Thousands of refugees seek safe harbor in northeast China, and others attempt to make the perilous journey to such far off places as Southeast Asia.

In response to this situation, I sponsored the North Korea Human Rights Act of 2004, which calls on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to demand access to North Korean refugees in China, and urges heightened diplomatic pressure on China to reverse its policy of capturing and repatriating North Korean refugees.  China must stop turning a blind eye to the suffering, persecution and execution of the citizens of its neighbor.  

Most North Koreans who escape want to resettle in South Korea.  For cultural, linguistic and even logistical reasons, this makes practical sense.  Sam on podiumHowever, some North Koreans, many of whom have family members living in America, have asked to come to the United States.  The North Korea Human Rights Act of 2004 enables North Korean refugees to apply for and receive asylum in the U.S.

I will continue to pursue appropriately targeted policies that advance our national interests, affirm our values and bolster the confidence of our allies.

 

 

 

http://brownback.senate.gov/english/legissues/foreignpolicy/northkorea.cfm

 



  댓글 (0)  |  엮인글 (0)
NORTH KOREA    2008/06/16 21:26 추천 1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3085515

 

 

NORTH KOREA

North Korea suffers from one of the worst human rights disasters in the world.  The regime of Kim Jong-Il brutally denies its citizens freedom of thought, conscience and religion and even subjects children to ideological indoctrination.  North Korea has more than 200,000 political prisoners in concentration camps and jails, many of whom are victims of experiments and executions in gas chambers.  Because of such treatment, many North Koreans attempt to escape the country.  Thousands of refugees seek safe harbor in northeast China, and others attempt to make the perilous journey to such far off places as Southeast Asia.

In response to this situation, I sponsored the North Korea Human Rights Act of 2004, which calls on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to demand access to North Korean refugees in China, and urges heightened diplomatic pressure on China to reverse its policy of capturing and repatriating North Korean refugees.  China must stop turning a blind eye to the suffering, persecution and execution of the citizens of its neighbor.  

Most North Koreans who escape want to resettle in South Korea.  For cultural, linguistic and even logistical reasons, this makes practical sense.  Sam on podiumHowever, some North Koreans, many of whom have family members living in America, have asked to come to the United States.  The North Korea Human Rights Act of 2004 enables North Korean refugees to apply for and receive asylum in the U.S.

I will continue to pursue appropriately targeted policies that advance our national interests, affirm our values and bolster the confidence of our allies.

 

 

 

 

http://brownback.senate.gov/english/legissues/foreignpolicy/northkorea.cfm

 

 

 



  댓글 (0)  |  엮인글 (0)
[스크랩]북핵외교 관계자 “청와대 발표 실제상황과 거리 있었다”    2008/04/16 06:4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2939703

 

북핵외교 관계자 “청와대 발표 실제상황과 거리 있었다” [중앙일보]

노무현 정부 ‘북핵 외교’ ② 엇갈리는 한·미 발표의 전말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06년 9월 14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 매리엇 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들어섰다. 이날 오전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한·미 양국 고위 실무선에서 6자회담 재개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양국이 지금 협의하고 있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common and broad approach)을 다른 참가국들과 추가적으로 협의해서 만들도록 했다.”

그의 발표에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강경 제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7월 비공개로 서울에 들어온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은 당시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에게 “대북 송금과 대북 화물 수송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 유엔 안보리도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청와대 발표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서 대화로 국면을 전환했다고 생각하게 했다. 삐걱대던 한·미 양국이 견해 차를 좁혔다는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엇이 미국을 움직였는지 기자들은 궁금했다. 하지만 송 실장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지금 관련국들이 (각자가 해야 할 조치를) 정교하게 조합해야 하는 과정이니 궁금하더라도 참아 달라”고만 했다. 최근 본지 기자를 만나서도 그는 “상대방(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현직에 있는 만큼 공개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청와대는 내용을 감춘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란 포장을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로 부각했다. 바로 그날 국정브리핑 홈페이지에 ‘북핵,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마련 합의’ ‘한·미,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합의 막전막후’ ‘미래지향적 한·미 관계 디딤돌 놓았다’는 제목으로 홍보 기사를 잇따라 올렸다.

◇‘한국의 역할’ 내세운 정부=당시 대북 협상을 담당했던 한 고위 외교관은 “그 내용은 별로 새로울 게 없었다. 핵심은 대북 제재를 미루고 6자회담을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 되면 한국도 제재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 방안을 추진했던 청와대 관계자도 “요체는 미국은 방코텔타아시아(BDA) 금융 제재를 풀고, 북한은 즉각 핵 신고·핵 시설 불능화의 행동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비공식적이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가를 검토하겠다는 말도 오갔다”고 말했다. 제재 국면으로 들어간 미국과 국제사회를 어떻게든 대화 국면으로 끌어내는 것이 이 방안의 목적이었다는 말이다. 그 수단으로 한국의 제재 동참을 내건 것이다. 결국 그 약속은 끝내 이행되지 않았지만….

이를 추진했던 인사들에 따르면 그해 7월 4∼6일 송 실장이 미국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촉하며 이 방안이 본격화됐다. 당시 해들리 보좌관은 송 실장에게 “(주고받고 그래도 안 되면 제재한다는데) 한국이 제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며 거절했다고 한다.

8월 말 청와대 박선원 비서관, 임성남 행정관 등이 다시 워싱턴을 찾았고, 9월 초 송 실장이 이들과 합류했다. 이때 처음엔 미적지근하던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번 검토해 보자”고 했고, 송 실장이 “양측 대리인들이 있으니 만들어 보자”고 하면서 협의가 시작됐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직후 워싱턴에서 미 국무부의 젤리코 자문관과 임 행정관 등이 협의에 들어가 9월 한·미 정상회담 때 반기문 외교부 장관·송 실장-라이스 국무장관·해들리 보좌관의 ‘2+2회담’을 열어 대통령에게 이 방안을 보고하는 계획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참여한 한 외교관은 “정상회담 전날인 9월 13일(현지시간) 라이스 국무장관 측에서 ‘2+2 회담’을 다음날 열자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 대화 국면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뜻이다. 송 실장은 최근 본지 기자와 만나 “(7월 방미) 당시는 항공모함에 훅을 걸은 정도였고, 당겼는데 당겨오지는 않았다. 거대한 항공모함을 돛단배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한·미 간 계속된 동해 같은 이견=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드러난 미국의 공식 행보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마련을 합의했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와는 거리가 멀다. 정상회담 당일 뉴욕 타임스가 부시 대통령의 참모들을 인용, “두 나라 간에는 동해와도 같은 갭이 있다”고 했던 양국의 이견이 회담 후 좁혀졌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회담 이틀 후인 9월 16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싱가포르의 G8 재무장관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대북 제제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촉구했다. 사흘 후인 19일 워싱턴에선 미 국무부 관리가 이례적으로 한국 특파원들을 불러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 중이며(1994년) 제네바 합의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방안도 있다”고 공개했다.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9월 20∼28일 천영우 외교부 평화교섭본부장과 힐 차관보가 양국 실무진을 이끌고 워싱턴과 뉴욕을 오가며 진행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후속 협의도 순조롭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청와대에서 대북 문제를 담당했던 한 당국자는 “북한을 달랠 해결책은 모두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였던 게 문제였다. 따라서 몇 차례 실무회담을 했으나 성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인사도 “28일 귀국한 천 본부장을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서울에서 만났지만, 한·미 협의가 잘 안 돼 우 부부장이 북한에 줄 게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미 실무협상에 참여했던 미국 측 담당자는 최근 본지 기자를 만나 “북한이 아무런 의무도 이행하지 않는데도 한국은 무조건 모든 인센티브를 올려 놓고 북한을 설득하자고 요구했다. 미국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한·미 간에 합의한 것처럼 발표한 데 대해 그는 “송 전 실장은 자신의 임기 중 치적을 원했다. 늘 한국이 미국의 대북 유연성을 끌어낸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한 외교·통일 당국자도 “그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대북 제재에 전력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자 송 실장이 미국이 한때 고려했던 포괄협상 개념을 끄집어내 BDA 문제까지 얹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한때 검토한 내용이긴 하지만 정상회담의 실제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송 전 실장은 최근 “북핵 문제는 한반도의 핵심 현안인 만큼 주인 의식을 갖고 절벽에서 뛰겠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며 “북핵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드러내면 안 되지만 북·미가 할 수 없는 것을 한국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과 멀었던 레토릭”=결국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던 10월 9일까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 방안을 추진했던 인사들은 발표 당시 완성된 로드맵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내용’은 없어도 ‘골자’는 있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후 한·미 실무협의에 참여했던 한 외교관은 “핵실험 당일 미국 측에서 ‘백악관이 오케이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올 정도로 성사 직전 단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상대했던 미국 측 협상 당사자는 이마저 부인하고 있다. 최근 본지 기자와 만난 미국 측 인사는 “한국의 주장은 늘 똑같았다. 미국이 북한에 더 유연해지고, 압박을 하지 말며, 더 많이 대화하라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우리는 한국의 계속된 그 같은 주장에 화가 났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당시 북핵 외교 관계자도 “청와대의 현란한 레토릭은 실제 돌아가는 상황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협상 상대는 인정하지 않는 자신만의 ‘밑그림’으로 그 이후 상황을 계속 오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별취재팀=강찬호 워싱턴 특파원,정치부문 김수정·예영준·채병건 기자, 국제부문 정용환·이수기 기자


  댓글 (0)  |  엮인글 (0)
李 취임후 북한동태 보도들.    2008/03/28 12:2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2898878

이명박정부 취임후 북한동태 보도들.

 

 

 

북, 서해상서 단거리미사일 수발 발사(2보)
북한이 28일 오전 10시30분께 서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 수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서해상... 연합뉴스2008-03-28

北 "美주장 고집하면 核무력화 심각한 영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8일 우라늄농축프로그램 문제 등과 관련, 담화를 통해 "미국이 계속 없는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보려... 연합뉴스2008-03-28

    柳외교 `6자회담 8월시한설' 주목
    "8월 지나면 의미있는 결정 있어도 美행정부 집행 어려워" =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지연으로 북핵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연합뉴스2008-03-28

      [언론사별 보도] 北 왜 `개성공단 발언' 문제삼았을까
      "북핵문제가 계속 타결되지 않고 문제가 남는다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개성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연합뉴스2008-03-27

      [남북관계 파장은] 남북 치킨게임 시작 … 경색국면 장기화 불가피
      정부, 총선 맞물려 대북강경 정책 완화하기 어려운 상황=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북측이 개성공단내 남측 당국자... 노컷뉴스2008-03-28

      [北,경협사무소 南 인원철수 요구] MB 대북정책에 北 첫 물리적 시위
      북측이 개성공단내 남북경협사무소에 상주하던 남측 당국자들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킨 뒤 남북간 냉기류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 문화일보2008-03-27

      한국,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임기 연장에 찬성표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결의안을 다수결로 의결했습니다. 한국도 찬성표를 던졌는데,... YTN TV2008-03-28

        "탈북자 12명,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 진입"
        탈북자 12명이 27일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진입했다고 국제 인권단체들이 밝혔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벨기에 브... 노컷뉴스2008-03-28

          美, 北에 식량 50만t 지원 제의
          "WFP, 모니터링 문제 협의 위해 곧 방북" = 미국이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 연합뉴스2008-03-28

            2000년 이후 납북자 - 국군포로 관련 남북대화록 입수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북한과의 국군포로·납북자 관련 협상에서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인 1953년 6월... 동아일보2008-03-28

              南출신 북녘 부부의 "못잊을 혈육"
              남쪽에 고향을 둔 북한의 한 부부가 남한의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방송을 통해 밝혔다. 북한의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은 28일 ... 연합뉴스2008-03-28


                댓글 (0)  |  엮인글 (0)
              [본문스크랩]    버려진 아이, 성룡이. 다른 방식의 이야기    2008/03/08 11:4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hansu0001/2852256
               원문출처 : 국경에 서다
               원문링크 : http://blog.chosun.com/arisu01/2848994

              신문 기사계획은 수시로 바뀝니다.

               

              성룡이 이야기는 오늘 하루만 3번 변경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비극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선배와 했습니다.

               

              게다가 기사작성 이후 팩트가 틀린 부분도 발견했습니다.

               

              애초엔 아래의 기사처럼 조금 읽기 편하게 쓸 작정이었습니다.

               

              매일 고민합니다. 그리고 능력 없음을 한탄합니다.

               

              탈북자의 슬픔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룡이[2].jpg

               

               

              대한민국은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다. 최소한 8살 성룡이한테는 그렇다. 중국에서 숨어지내는 동안 엄마가 말했다. “꼭 살아서 한국으로 가야 해.”

               

              엄마는 탈북자, 아빠는 중국인. 중국은 아빠와 엄마의 신분이 명확해야 호구(戶口)를 가질 수 있다. 인구증가를 막기 위한 정책의 하나다. 엄마는 북한 사람도 중국 사람도 아닌 불법체류자. 덕분에 성룡이는 호구도 없고 국적도 없다.

               

              2003년 11월 7일 오전 6시, 흑룡강의 집으로 공안(경찰)이 들이닥쳤다. 마침 아빠는 외지에 일을 나갔다. 엄마 품 속에 잠들었던 성룡이가 내쳐졌다.

               

              순간 엄마는 북송을 떠올렸다. 1998년 10월의 어느날, 두만강을 넘은 엄마. 그녀는 항상 북송이 두려웠다. “성룡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발버둥을 쳤다. 힘쎈 공안 3명이 잡아당겨도 엄마는 꿈적하지 않았다. 결국 2시간 만에 엄마의 손엔 수갑이 채워졌다. 탈북자 집중단속 기간이었다.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아빠는 기가 막혔다. 아이는 버려졌고 아내는 끌려갔다. 중국 돈 8000원을 들고 공안을 찾아갔다. 공안은 2000원을 더 달라고 했다. 아빠가 돈을 구하러 간 사이, 엄마는 북한으로 갔다. 1년 뒤 엄마의 소식이 전해졌다. 아빠는 성룡이를 붙들고 통곡했다. “엄마가 총살 당했데.” 아직 성룡이는 엄마의 죽음을 믿지 못한다.

               

              2006년 6월 18일. 아빠가 먼저 한국에 왔다. 아내를 빼앗긴 남자는 돈에 한이 맺혔다. 한국에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로 했다.

               

              아빠는 홀로 남겨진 성룡이가 애닯다. 아이의 신발을 안고 잔다. “성룡이가 더 크기 전에 신겨줘야는데.” 성룡이는 아빠가 그립다. 아이는 잠들 때 아빠의 사진을 베개 밑에 두고 잔다.

               

              2007년 11월 17일. 성룡이는 탈북자 일행을 따라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을 넘었다. 걸어서만 18시간. 아이는 힘에 겨웠지만 버려질 것이 두려웠다. 성룡이는 울면서 말했다. “힘들지 않아요. 춥지 않아요.” 열흘 동안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자유를 찾아가는 길. 아이는 둥근 달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사랑해요.”

               

              2007년 11월 26일. 성룡이는 태국 방콕에 무사히 도착했다. 곧 아빠를 만나리라. 하지만 아이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성룡이에게 요구했다. “엄마가 탈북자라는 것을 증명하렴.” 성룡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조선족들이 한국 국적을 얻으려 탈북자 가족이라고 속이거든.” 아이에게 대한민국 공무원은 넘을 수 없는 큰 산이다.

               

              2008년 2월 19일. 성룡이를 태국까지 데려온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가 아이를 찾아갔다. 아이는 눈망울을 굴리면서 물었다. “죽은 엄마를 어떻게 데려와요? 하나님이 해주실까요.” 천목사는 울고 말았다. 성룡이는 지금, 태국 이민국에 갇혀있다.

               

               

              /이학준 기자 arisu01@chosun.com

              인기 Blog뉴스 이학준 님 최근 게시물


                댓글 (0)  |  엮인글 (0)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