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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히기의 대가’ 마이클 무어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자신의 3번째 타깃으로 삼는다. 전작 ‘로저와 나’에서 고향 플린트의 대량 실업 사태를 이유로 GM의 로저 스미스를 쫓아다니고, ‘볼링 포 컬럼바인’에선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취재하며 찰턴 헤스턴 전미총기협회장을 괴롭히더니 이번엔 대통령을 스토킹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무어는 ‘화씨 9/11’을 통해 지구 평화의 수호신이 되기로 마음 먹은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책 ‘멍청한 백인들’에서의 문제의식을 영상에 그대로 펼쳐놓는다. 2000년 미 대선은 명확히 고어의 승리였지만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주지사를 맡고 있는 플로리다에서 근거가 불확실한 역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흑인 하원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상원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부시의 취임식은 반(反) 부시 시위로 얼룩지고 만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편집된 장면은 다름 아닌 9·11 테러. 무어는 이 장면에서 영상을 과감하게 삭제해버리고 컴컴한 흑색 화면에 당시 현장의 소리만을 실어놓는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내리는 영상은 이미 수없이 남용돼왔고 우리에게 테러와 공포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낙인시켜놓았다. 무어는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들의 상상력을 거꾸로 자극시킨다.
무어의 논리는 때로 정치(精緻)함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사우디 왕가와의 친분, 그리고 왕가와 부시 가문과의 친분이 영화 곳곳에서 암시되지만 이 장면들이 곧바로 ‘테러의 배후자를 부시가 옹호하고 있다’는 논지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 대사관을 경호하는 백악관 직원을 조롱하거나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을 과장하는 장면에선 거꾸로 인종주의의 위험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전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논리보다 더 감동을 주는 것은 무어 특유의 행동주의.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총기 사용에 쓰이는 탄환을 판매하는 월마트 본사를 찾아가 항의했던 무어는 이번 작품에선 미 의사당을 찾아간다.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 의원들에게 ‘직접 자신의 자녀를 이라크에 보내라’고 설득하는 것. 무어는 관찰과 참여라는 경계를 끊임 없이 무너뜨리며 영화가 어디까지 정치적일 수 있는 지 실험하는 것만 같다. 해답 없이 문제만 제기하는 사람들을 두고 흔히 ‘무책임하다’고 부르지만, ‘문제제기만 잘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올해 칸 영화제는 가르쳐줬다.
‘멍청한 백인들’을 보면 2000년 대선에서 무어는 민주당 후보인 고어와 녹색당 후보였던 랠프 네이더 사이에서 고민 끝에 네이더를 택했다. 한국 식으로 말하면 ‘비판적 지지’와 ‘독자 후보론’ 가운데 ‘독자 후보론’을 택한 것이다. 더 나쁜 자를 막기 위해 덜 나쁜 자를 선택하는 것이 때로는 더 좋은 자의 출현을 막는다는 것이 독자 후보론의 문제의식이다.
그랬던 무어가 그로부터 4년뒤 비판적 지지론자들을 가장 기쁘게 해줄 무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로 찬반 논란이 거센 한국에서도 이 영화를 보는 것이 결코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가 끝난 뒤 광화문 사거리에선 파병 반대 집회가 한창이다. (김성현 드림 danp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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