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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들' 사건 그 후] "친자식 돌려받았지만 '기른 정'이 가슴을 에죠"
2009/08/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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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cschon/4114234
원문출처 :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들' 사건 그 후] "친자식 돌려받았지만 '기른 정'이 가슴을 에죠"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01/2009080100039.html
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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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기자
peac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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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8.01 00:21 / 수정 : 2009.08.01 03:00
비슷한 사례로 아픔 겪었던 김옥렬 주부의 경우
"친딸 찾으려 소송 택한 부모 심정 이해하지만
15년 넘게 함께 살았던 아이 충격도 고려해야"
경기도
의정부
에 사는 주부 김옥렬(55)씨는 지난 19일 뉴스를 보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산부인과에서 친자식이 바뀐 줄도 모른 채 16년간 지내다 병원 측 실수를 발견하고 법정 소송을 한 어느 부모의 이야기였다. 지난 19일 법원은 '뒤바뀐 자녀' 사건으론 처음으로 "부모의 정신적 충격에 대해 병원이 7000만원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병원이 신생아 정보 공개는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해 친딸을 찾지는 못하게 됐다.
김씨에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 부모의 아픔이 전해졌던 까닭은 김씨 자신이 바로 같은 실수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1981년, 김씨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남편이 세살 배기 쌍둥이 민경이·민아 자매 가운데 민경이를 데리고 이발소에 간 것이 발단이 됐다. 이발소 직원은 민경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발소에 가끔 놀러 오는 친구 A씨의 딸 수연(가명)이와 생김새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직원은 김씨 남편이 수연이를 유괴했다고 의심하고 따지게 됐다.
소동은 똑같이 생긴 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곧 해결됐지만, 그 뒤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더 큰 풍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A씨가 기르는 수연이가 민경이의 '진짜' 쌍동이 여동생 민아라는 사실이었다.
같은 산부인과에서 이틀 차이로 각각 1.9㎏, 2㎏로 태어난 민아와 수연이가 함께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뒤바뀐 것이었다. 20일간의 실랑이 끝에 아이들은 각자 친부모에게 돌아왔다.
◆뒤바뀐 아이들, 그 후…
2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진짜' 민아(30)씨는 미혼으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이라 민아씨는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씨는 그때의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 때문일까. 김씨는 막상 친자식을 되돌려 받고 나서도 3년간 키웠던 수연이가 눈에서,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우리 민아한테 별로 정이 안 갔어요. '아, 그렇지. 얘가 내 친자식이란 말이지' 그 정도였죠. 반면에 수연인 정말 정이 듬뿍 들었어요. 걘 몸이 불편해서인지, 빨리 헤어질 줄 알고 그랬는지 바닥에 내려 놓기만 해도 울어댔으니 한시도 품에서 뗄 수 없었죠."
그 후 김씨는 몇 번인가 수연이가 친부모와 사는 집에 찾아가 봤다. 하지만 곧 연락이 끊어졌다. 수연이 친부모가 이혼한 후 이사를 가 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문을 듣고 친부모가 9살까지 수연이를 키우다가 장애인 보호시설에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끔씩 신문에 나오는 것처럼 장애인들을 학대하는 열악한 곳일까 봐 걱정이 돼 여기 저기 물어서 그 시설을 찾아냈다. 주민등록까지 말소된 상황이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씨는 "수연이가 환경이 좋은 곳에 있다는 걸 보고서야 마음이 놓이더라"고 했다. 지금도 김씨는 정기적으로 시설을 찾아가 한때 키웠던 딸을 만나고, 수연씨도 김씨를 '엄마'라고 따르며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지금은 뒤바뀔 가능성 희박
김씨는 16년 만에 친딸을 찾기 위해 소송까지 불사한 부모의 절박한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된다고 했다. "부모가 친자식을 찾는다는데, 그 인연을 어떻게 끊겠어요. 그 집 엄마는 생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을 텐데…."
그러나 아이들에게 사실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섰다. "저는 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그냥 바뀐 아이를 그대로 키웠으면 좋겠어요. 이 다음에 아이들이 다 컸을 때, 그때 얘기를 해주고 선택하게 해도 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김씨의 목소리는 의외로 단호했다.
"우리 애들은 어렸으니 그때 바꾼 게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10년 넘게 친부모인 줄 알고 살다가 '나는 네 친부모가 아니란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그 애들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과거엔 간혹 민아씨 같은 사례가 생겼지만, 다행히도 이젠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즉시 산모와 아기에게 동시에 부모 이름이 적힌 인식표를 부착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의사회 장석일 총무이사는 "인식표는 그냥 자르려면 잘리지 않고 퇴원할 때 산모와 아기를 확인한 후, 특수도구로 자르기 때문에 자녀가 바뀌는 착오가 생길 일이 없다"고 했다. 이 인식표는 약 10여년 전부터 종합병원은 물론 일반 개인병원에도 전부 보급돼 사용되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7000만원 보상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부모가 바뀐 친딸을 찾기 위해 병원 측에 "당시의 분만 기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으나 병원이 응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을 낸 어머니는 혹여 지금 기르고 있는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아무도 모르게 지난해 10월부터 송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측
김제일
변호사는 "친딸도 못 찾고 길러온 아이도 잃을까 혼자서 끙끙 앓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며 "핏줄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란 신념으로 항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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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예나 지금이나 콧구멍 후벼 파는 건 추태"
2009/08/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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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cschon/4114206
원문출처 : "예나 지금이나 콧구멍 후벼 파는 건 추태"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31/2009073101286.html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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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31 21:57
부족해도 넉넉하다|안대회 편저|김영사|332쪽|1만3000원
조선후기 학자 유한준(兪漢雋·1732~1811)은 조카 김이홍(金履弘)이 건망증 때문에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제 건망증은 아무래도 병인가 봐요. 제 건망증을 고칠 사람이 있다고 하면 천금인들 아끼겠습니까. 저는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조카의 건망증이 걱정할 만한 수준이긴 했다. 물건을 보고 나서는 열에 아홉은 잊어버리고, 일을 하고 나선 열에 열을 잊어버렸다. 아침에 한 일은 저녁이면 벌써 몽롱해지고, 어제 행한 일을 오늘이면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외숙부 유한준은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건망증을 병이라고 생각하느냐? 잘 잊는 것은 병이 아니다. 천하의 걱정거리는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될 것을 잊는 데서 나온다. 이홍아! 너는 성품이 강직하고 마음이 맑으며 뜻이 단정하고 행실이 방정하다. 잊어서는 안될 일을 너는 잠을 자든 깨어 있든 잊지 않는다. 천금의 보물을 싸 들고 천리 먼 곳을 찾아다니며 건망증을 치료할 필요가 굳이 있겠느냐. 이홍아! 차라리 잊어버려라!"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등 옛 선인들의 글을 오늘의 맥락으로 쉽게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가 고려 중기부터 조선후기까지 학자·문인의 글 50편을 골라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안 교수는 서문에서 "선인들이 인생을 살면서 겪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고전을 접하며 얻는 큰 즐거움"이라며 "이 책의 주제를 보통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선인들의 인생 이야기로 잡았다"고 적었다.
안 교수가 고른 옛 글들은 엄숙한 선비의 풍모만이 아니라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아버지, 고달픈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하는 친구에 대한 위로, 객지에서 만난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생색내는 남편에게 그게 자랑할 일이냐고 쏘아붙이는 아내 이야기같이 우리 이웃이 바로 옆에서 하는 말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사람의 태도를 보고 꼴불견의 행태 92가지를 '속태(俗態)' '악태(惡態)' '추태(醜態)'로 나눠 기록한 글은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람을 만나 불쑥 '오래도록 명성을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한다"든지 "청탁 편지에 '오직 당신만을 믿는다'고 쓴다"든지 하는 일은 밑바닥이 들여다보이는 속된 행태다. "잠자는 사람을 흔들어 깨운다"든지 "책을 빌려가고 돌려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은 악태이다. 추태는 "콧구멍을 후벼 판다" "이 사이에 낀 때를 긁어낸다" "손으로 발가락을 문지르고 냄새를 맡는다" 등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 사는 근본 모양새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몸에 병이 생기면 괴로워하기보다 쉴 여유를 얻어 한가롭다고 여기라, 쓴맛 매운맛이 요리에도 각각 적절한 쓰임새가 있듯이 인생에서도 단맛만 구할 것은 아니다는 등 고난을 행복으로 바꾸는 역설의 마음가짐이 길어 올리는 삶의 잠언들이 가슴에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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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스크랩] [2008 겨울 희망편지] [15] "저도 빙판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울었죠"
2009/02/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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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chosun.com/cschon/3692057
원문출처 : [2008 겨울 희망편지] [15] "저도 빙판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울었죠"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31/2008123100023.html
김연아·피겨스케이팅 선수
입력 : 2008.12.31 03:09 / 수정 : 2008.12.31 09:09
▲ 김연아
안녕하세요,
김연아
입니다. 저는 지금 전지훈련지인
캐나다
토론토
에 와 있어요.
한국
에서의 첫 국제대회(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를 마친 지 벌써 보름이 넘었네요. 2위를 하고 난 뒤에 '수고했다', '아쉽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왜 아무도 축하한다는 말은 안 하지? 2등은 축하받으면 안 돼?"라고 하자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네가 어떤 기분일지 모르니까 조심스러워서들 그러는 거지"라고 하셨어요.
사실 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서 부담이 많이 됐어요. 금메달 딴 선수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뉴스엔 1등만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들이 연속해서 스쳐가더라고요. 이번 파이널을 준비하면서 '괜찮아. 여느 대회랑 똑같은 거야'라고 수없이 되뇌었는데, 생각보다 더 긴장했나 봐요. 하지만 막상 키스 앤 크라이 존(코치와 함께 점수를 기다리는 자리)을 빠져나오는 순간에는 실망이나 후회 같은 온갖 감정에 앞서 '또 하나 끝냈구나' 하는 생각뿐이더군요. 브라이언 오서 코치님은 아쉽지만 좋은 수업이 되었을 거라고 하셨어요.
저는 스케이팅을 사랑하지만 그 시간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연습할 때는 힘들고 짜증나고 눈물 나는 시간이 더 많고, 대회 때는 소름 끼치는 듯한 긴장감에 빠져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연습 중에 깔끔하게 점프를 성공시키는 순간, 마음먹었던 대로 얼음 위를 활주하는 순간,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자세가 나왔다고 믿는 순간에는 비록 짧지만 훈련의 피로를 모두 날리고도 남을 만한 쾌감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와요. 연기가 끝나고 '그래,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죠.
그래서 솔직히 제가 1등을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면 저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에도 2등이었잖아요. 1등을 위해서 스케이팅을 했다면 훨씬 전에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다른 선수들처럼 저도 큰 부상이 있었고, 예전엔 부츠 문제로 선수 생활을 포기할 뻔한 일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꼭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연기를 할 때 떠오르는 그 즐거움, 발끝의 느낌을 잊지 못해서 다시 얼음 위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멀리 캐나다에서 훈련하다 보니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고 그래서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힘든 분들이 더 많아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속에서 저와 제가 하는 피겨스케이팅에서 많은 분들이 힘을 얻으신다니 더 보람이 느껴져요. 저도 요즘 TV나 인터넷으로 '김연아가 어려운 여건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뉴스나 캠페인 광고를 봤어요. 그걸 보면서 정말 경제가 어려워졌구나, 힘드신 분들이 많구나 하는 걸 깊이 느끼고 있어요. 우리 운동선수들이 경험하는 어려움과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얼음판 위에 넘어져 눈물 흘렸던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예전의 제 마음처럼, 힘들어 하시는 분들의 어려움도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가 발끝의 희열을 맛봤던 것처럼 여러분들께도 힘든 시간 뒤에 맞을 기쁨이 어서 오기를 기도 드릴게요. 다음엔 더 아름답고 멋진 연기로 여러분께 또 힘을 드리고 싶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동안 ‘희망 편지’를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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