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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란 곳이 있습니다. 포트레이트란 인물 초상화를 가리킵니다. 13세기에서 19세기 서유럽 그림들을 모아 놓은 내셔널 갤러리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인물화와 인물 사진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갖는데 그림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 19세기에 세워진 전시관입니다.
개인에 대한 존경심을 길이 남기기 좋아하는 전통을 가진 영국은 매일 게재되는 신문에 부고 기사만 4~5 페이지가 됩니다. 어떤 분야든 한때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살았던 개인의 죽음을 통해서 그의 생애와 역사를 반추합니다. 초상화가 서양에만 있는 그림은 아니지만 인물화나 인물 사진만 따로 모아 놓고 끊임없이 전시를 여는 전통은 이런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런던 대부분의 국립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무료이듯 기본적으로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도 무료입니다. 그런데 실은 어제 거금 2만 2천원을 주고 상설전시가 아닌 특별전시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파라솔을 들고 있는 비틀즈 흑백 사진 한장 때문에.
비가 뿌린데가 날씨마저 갑자기 쌀쌀해진 까닭에 전시관에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문을 들어섰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예상 밖에 많은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보며 옛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초로의 일부 관람객들은 야드버즈 제프백의 사진을 보며 멜로디를 중얼거렸고, 또 어떤 관람객은 친구와 추억담을 나누며 자신의 음악 상식을 끊임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우리가 80년대 황인용의 '영팝스'나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빌보드 차트 순위를 줄줄 외울때 처럼.
그곳엔 한 시절 세계 팝음악의 역사를 주도한 찬란한 영국 팝 음악가들의 사진들과 잡지, 포스터 등이 걸려 있었습니다. 60년대 영국 팝음악의 역사는 비틀즈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비틀즈의 사진을 중심으로 클리프 리처드, 레드 제플린, 마리안 페이스풀, 애니멀스, 데이빗 보위 등등. 개중엔 영국에서 활동했던 지미 핸드릭스 같은 미국 기타 연주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전시회는 어찌보면 크게 돈이 들건 없었습니다. 과거 비틀즈 매니아나 음반 관계자 몇사람이 모아 놓은 사진들과 액자, 낡은 잡지 몇권, 그리고 간간히 전시관 구석에 트는 비틀즈 노래들. 사진도 life나 elle 같은 화보 잡지의 사진가 사진이라기 보다는 그저 잡지나 앨범 홍보에 씌였던 음반 기획사 사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재료들의 바탕에 뭐가 더해졌을까요?
전시기획자는 아마도 사람들이 무엇을 보러 와서 무엇을 느끼길 바라는 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멋진 아이팟을 가졌거나 아무리 쉽게 음악을 구해도, LP판과 라디오로 음악을 듣던 시절 만큼 사람들이 팝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험심이나 기대 같은 것들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팝음악 시장 자체도 그러거니와 뮤지션들도 마찬가집니다.

오래된 흑백의 가수 사진들 옆엔 그가 노래하고 연주했던 시절과 음악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실려 있었습니다. 관람객들은 11파운드를 주고 저처럼 비틀즈에 사진에 끌려 이곳을 찾았고, 팝가수들의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더듬고, 사연을 즐기며,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또 전시관 판매대엔 비틀즈나 전시회 사진집, 가수들의 얼굴이 담긴 컵이나 기념품이 다시 상품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찾고 또 원하는 것은 새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 속에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뭘 원하는가를 예측하고 두리뭉실하게 범위를 넓히기 보다 타겟을 조준해서 오히려 좁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1960년부터 1969년까지로 방을 나누어 구분해서 전시한 것입니다.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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