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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 특별기고]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2011/04/07 16:45 추천 4    스크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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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 특별기고]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중앙일보] 입력 2011.04.07 00:00 / 수정 2011.04.07 00:14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언론환경에 말의 과장 없이 지각 변동 수준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종이신문이 그렇고, 전파방송이 그렇고, 인터넷 매체들이 그렇다. 신문과 신문기자들에게 이런 변화는 현실 적응을 위한, 더 솔직하게는 살아남기 위한 일대 변신을 요구한다. 취재·보도의 글쓰기가 달라지고, 신문의 존재가치와 패러다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메이저 신문들이 종합편성 방송 등 다양한 활로를 찾는 것도 시대적인, 아니 문명사적 요청이다.

 신문기자들은 속보는 트위터·페이스북·뉴스전문방송에 넘겨주고, 사건의 배경을 장황하지 않게, 쿨하게 설명하는 글쓰기를 체득해야 한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종이신문 기자들은 체질상 인터넷 매체가 넘볼 수 없는 사건의 의미와 본질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낯선 언론환경에 섰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짧지만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한국에만 있는 신문의 날, 외람되게 나의 기자 53년을 돌아보면서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Journalist is what he/she reads)라는 경구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인다.

[일러스트=강일구]
 
이 경구는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먹는 대로의 동물(Man is what he eats)”이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올해 기자생활 53년째를 맞는 나의 길고 긴 여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나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때로는 무언으로, 때로는 자극적인 말로 영향을 주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의 기자 53년이 있다는 말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다. 내가 기자가 되기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은 그의 탁월한 기사를 통해서, 내가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자극하는 고전적인 저서를 통해서 기자인 나를 ‘읽는 대로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1958년 한국일보에 입사하기 한 달 전 최병우씨가 금문도 취재 중에 상륙정 전복으로 순직했다. 그때 중국은 장거리포로 연일 금문도를 포격하여 대만해협에 전운(戰雲)이 급박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에는 그의 숨소리, 그의 체취, 그의 지적 향기와 기자정신이 남아 떠도는 것 같았다. 내가 기자로서 최초의 지적 자극, 엄청난 지적 충격을 받은 것이 바로 그 무렵이다. 한국일보 도서실의 최병우 코너에는 그가 중학 시절부터 읽던 손때 묻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책 표지 안쪽에 책을 읽은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중학 때 읽은 책 중에는 역사 서적과 함께 『파우스트』를 포함한 괴테의 작품들이 많았다. 페이지를 주르륵 넘겨보니 여백에 많은 것이 적혀 있었다. 나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파우스트』 독일어판과 일본판을 대조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아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씨름하고 있었는데 최병우씨는 중학 다닐 때 그것을 읽고 있었다. 그가 읽은 책들은 주로 문(文)·사(史)·철(哲)이 많았다. 나는 낙후감을 느끼면서 그가 읽은 책들의 제목을 메모했다.

 나는 1965년 창간을 한 달 앞둔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일보에서 내 기자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엄한 보스, 큰 스승, 자상한 멘토(Mentor)를 만났다. 그가 고(故) 홍진기 회장(당시는 부사장)이다. 홍 회장은 기자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책 읽으라”, “공부하라”고 독려했다. 내가 “김군은 요즘 무슨 책 읽나?”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제일고보(경기중학) 시절부터 독서광으로 알려진 그에게 읽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1980년대에 나는 홍 회장의 해외여행을 자주 수행했다. 그는 일단 도쿄에 들러 여행 중에 읽을 서너 권의 책을 샀다. 이길현 중앙일보 지사장(나중에 삼성 재팬 사장)은 홍 회장이 지시한 책을 살 때 여분으로 한 권씩 더 사서 내게 안기면서 말하기 일쑤였다. “후딱 읽어 두라고!”
중앙일보 기자들 사이에 홍 회장의 말을 흉내 낸 “이 사람아 공부 해!”가 유행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까지 외국의 수많은 언론인, 학자, 정치지도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의 지적 향기를 맡고, 그들의 통찰력에 감화되고, 그들이 읽었거나 쓴 책을 읽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인터뷰도 했다. 칼럼니스트 조지 윌과 조셉 크래프트, 뉴욕 타임스 대기자 해리슨 솔즈베리의 집 서재를 방문했을 때는 서가에 꽂힌, 고금을 망라한 책들에 압도되어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조지 윌의 서가에는 그리스 철학 책이 많았고, 솔즈베리의 서가와 소파 위와 방 바닥에는 영어로 된 자료들 외에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된 책과 자료들이 꽂히고 나뒹굴었다.

 나의 긴 기자생활의 여정에는 몇 사람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중 한 사람이 슬로베이나의 슬라보이 지제크(Slavoj Zizek) 교수다. 그는 다작(多作)의 철학자다. 그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을 통해서 헤겔을 읽는다는 식의 책을 써서 주목을 받고, 9·11과 팔레스타인 등 수많은 현실문제를 철학자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책을 양산해 낸다. 그는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봉으로 『천개의 고원』, 『안티 오이디푸스』, 『차이와 반복』의 저자인 질 들뢰즈 수준의 철학자인데 그 두 사람의 저서들은 기자의 생각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머리를 재충전시키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새로운 개념들과 용어들로 넘친다.

 나는 기회가 닿으면 후배 기자들에게 두 가지 충고를 한다. 술 잘 사는 선배, 2차, 3차까지 붙들고 폭탄주 돌리는 선배를 경계하라는 것이 그 하나요, 늦기 전에 5개년, 10개년 독서계획 같은 것을 만들어 신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되 맡은 분야에 관계없이 문사철의 바다에 한 이삼 년 푹 빠져보라는 것이 그 둘이다. 기자가 왕성한 독서를 한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동시에 우리는 독서가 싫은 사람은 기자로, 아니 적어도 라이터(Writer)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김영희 대기자=한국 언론계를 대표하는 국제문제 전문가이자 언론인.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출판본부장·수석논설위원·워싱턴 특파원 등을 거치면서 한국언론학회상·삼성언론상·위암장지연상·홍현성언론상 등을 받았다. 취재경험과 칼럼을 담은 저서 『마키아벨리의 충고』 등 3권을 냈으며, 단편소설 ‘평화의 새벽’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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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세가지 전환점...    2010/02/06 20:45 추천 4    스크랩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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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세가지 전환점

-2005년 6월12일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고맙습니다.

오늘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도 처음이네요.

오늘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예요. 딱 세가지만 이야기하죠.

 

첫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래도 18개월 정도는 강의를 청강하며 학교 주변을 머무르다 정말로 그만뒀지요.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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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답을 하려면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 친어머니는 대학원에 다니던 젊은 미혼모였고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나온 양부모에게 입양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어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호사 부부가 마지막 순간에 딸을 원한다고 마음을 바꾸었지요.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던 지금 제 양부모님이 한밤중에 전화를 받게 되었답니다.

"예정에 없던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래도 입양하시겠어요?" 라고 말이죠.

양부모님은 "물론이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양어머니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친어머니가 알게 된 겁니다. 친어머니는 입양서류에 사인하는 걸 거부했어요.

몇달후에 제 양부모님이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마음이 누그러졌죠.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하게도 바로 이곳, 스탠포드만큼 학비가 비싼 대학을 골랐지요.

평범한 노동자였던 양부모님이 모은 재산은 제 학비로 다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교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대학교육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 부모님이 평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지요.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참 두렵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평소에 흥미없던 필수 과목대신 재미있어 보이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요. 

  

그런 생활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 마룻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한병당 5센트씩 하는 콜라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힌두교 성당)에 가서

예배에 드렸습니다. 그건 정말 좋았습니다. 당시 호기심과 직관을 믿고 저지른 일들은 나중에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죠. 당시 리드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서체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은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운 서체들로 장식되어 있었지요.

전 자퇴를 해서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때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행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그건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것에 푹 빠지고 말았죠.

 

사실 이것이 제 인생에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후, 우리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구상할 때 그때 경험들이 떠올랐죠.

우리는 맥안에 이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지원하는 첫번째 컴퓨터가 되었죠. 만약 제가 그 서체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맥은 여러가지 다양한 폰트를 지원하지 못했을 겁니다.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테고 어쩌면 개인용 컴퓨터가 그런 서체를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수업을 듣지 못했을 거고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가 아름다운 서체를 지원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이 분명히 보이더라구요.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을 겁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은 연관시켜 볼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현재의 순간들은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던 간에 말이죠. 이런 삶의 방식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서 남과 다른 것을 만들어 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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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스무살 때 제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와 함께 애플을 시작했죠.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그 덕에 차고에서 두명으로 시작한 사업은 십 년 후 4천명의 직원이 있는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가 스물 아홉살 때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고요?

 

당시 애플은 점점 성장해 나갔고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1년정도는 그런데로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애플의 비젼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습니다. 저는 서른 살에 회사에서 쫒겨나게 되었죠.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저는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렸고 아주 참담한 심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몇 개월동안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선배 벤처 기업인들에게 받았던 바통을 놓쳐 버린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저희 실패를 사과하려고 하기도 했지요. 제 실패는 너무나 공개적인 것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달아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했던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거든요.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도 제 그런 마음을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비록 해고당했지만 제 일을 아직 사랑하고 있었죠.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의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애플에서 나오면서 성공에 대한 중압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죠.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저는 넥스트와 픽사를 창립했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어 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에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사건이였던 애플의 넥스트 인수로 저는 애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넥스트에서 우리가 개발했던 기술은 애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이루었죠.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요. 아마도 제가 약이 필요했던 시기였나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을 벽돌로 내리치는 것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신념을 잃지 마세요. 제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사랑 앞에 진실하듯,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은 여러분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만족을 누리려면, 당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해야지요. 그리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을 못찾았다면 안주하지 말고 계속 찾아보세요. 그것을 찾아낸다면 스스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찾게되면 다른 좋은 관계들이 그렇듯 여러분과 그 좋은 일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거예요. 그러니 안주하지 말고 계속 찾아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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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겁니다.

열 일곱 살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만약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이 글에 감명을 받은 저는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할 것인가 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니오라는 대답이 여러날 계속되면 변화가 필요한 때란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제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남들의 기대나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죽음이라는 것 앞에선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벌거숭이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년 전쯤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일곱 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 종양이 있었지요. 그 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고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말하며, 제게 남은 시간이 3개월에서 6개월 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건 아이들에게 앞으로 십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몇 달 안에 모두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확실히 정리해서 가족들이 좀 더 쉽게 제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죠. 작별 인사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이후엔 내시경을 위장을 지나 장까지 넣어서 종양에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어요. 그때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이었고 의사들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수십년 간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군요. 저는 제가 이런 경험을 해보았기에, 지금 여러분들에게 죽음이 때로는 더 유용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는 싫을 겁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 모두가 도달하게 되어 있는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어쩌면 죽음은 삶이 고안해 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주죠. 지금 여러분은 새로운 세대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낡은 세대가 되어서 새로운 세대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겁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도그마,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분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백과란 굉장한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멘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시적 영감을 불어 넣은 책이었죠. PC나 전자출판이 생기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35년전의 종이로 된 구글같은 것이었죠. 그 책은 좋은 도구와 정보, 개념들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스튜어트와 그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그 책의 수명이 다할 때 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때가 19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었을 때죠.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할 만한 시골길이었어요. 그 밑에 이런 글이 적혀져 있었어요. "늘 배고프라, 늘 어리석어라."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메세지였어요. 늘 배고프라. 늘 어리석어라. 제 자신에게 늘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늘 배고프라, 늘 어리석어라)."

감사합니다.

(*번역본의 출처는 '스티브잡스 이야기' 입니다.)   

 

 

[원문 및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D1R-jKKp3NA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p.s) 프리젠테이션의 대가인 스티브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장에서 한 연설은 지금도 명 연설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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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진보시대여, 안녕    2010/01/07 09:31 추천 2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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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진보시대여, 안녕 [중앙일보]

2009.12.29 01:03 입력

21세기 첫 10년대(first decade)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며칠 후면 역사의 갈피로 접힐 그 연대의 정신사적 의미를 묻고자 함은 곧 개막될 새로운 십 년대가 진부한 논리와 윤리로 덧칠되지 않기를 바라는 진화론자의 소박한 심정과 일치한다. 지난 10년은 필자에겐 청장년을 연결하는 40대라는 와류기였고, 보수주의로 일관된 한국 100년 정치사엔 진보정치가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이색지대였다. 40대는 아직 자기검열의 끈을 놓지 않는 연령이기에 과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전복할 기세로 덤볐던 386세대가 단명(短命)의 꽃을 피워 올린 시대였기에 과격했다.

그것은 나의 안과 밖에서 명실상부한 ‘진보의 시대’였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주름 속에 숨겨진 상처를 치유한다는 저 비장한 각성들이 진보의 생명수였고, 주류의 행진에 대책 없이 달려들었던 비주류의 모험은 진보의 힘이었다. 과거와의 혁명적 단절을 표명한 이념적 전사들이 이렇게 많이 배출된 시대도 없을 것이다. 동종(同種)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과 이교도(異敎徒)에 대한 증오를 정신의 양식으로 삼았던 세대도 없을 것이다. 분배, 복지, 평화, 인권같이 오랫동안 억압된 단어들이 복원되고, 혐오스러운 고정관념들이 뒤집혔다. 지배집단의 오만한 성곽을 무너뜨릴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각종 불균형에 정의로운 처방을 내릴 때 사람들은 감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위적 방식이 문제였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호명 방식이 문제였다. 민주전사를 자처한 그 배타적 근본주의가 문제였다. ‘교조적 진보’라는 비난 속에 한국 최초의 진보권력은 위태롭게 항해했고, 결국 보수 역풍에 좌초되었다. 진보정치의 두 주역은 사라졌고, 의기충천했던 전사(戰士)들도 천지사방으로 흩어져 소멸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아니,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질문은 절박하지만, 답은 모호하다. 진보의 설득력은 빛이 바래고, 사회적 자원은 날로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초기지인 민주당을 봐도 그렇다. 마른 가지를 꽂아도 잎이 날 것 같았던 전성기에 발아한 이념의 포자에 생명의 물을 주는 정치인도 없고, 진보의 21세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사람도 드물다. 보수가 승할수록 진보의 존재도 더불어 유효할진대, 거부권 외에는 가치 증식이 버거운 민주당은 스스로 쇠잔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천도(遷都)에 45조원, 자주국방에 200조원, 농촌 지원에 119조원을 책정했고, 서남해안 일대를 복합레저기지로 만들겠다는 일명 S프로젝트에 50조원을 할당했다. 2009년 12월, 민주당은 4대 강 사업비 6조7000억원 때문에 내년 예산안 자체를 거부했다. 4대 강 사업이 보수정권의 고집이라고 치더라도, 원군을 기다리는 진보의 전선은 그것뿐이 아닐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 운명이다’는 행동대장의 유훈(遺訓)을 들었음인가, ‘모든 민주화 세력은 들고 일어나라’는 노회한 진보의 유언(遺言)을 이렇게 집행하고자 함인가, 호전성이라는 전통적 기질에 집착하는 진보의 후예들에게 사람들은 근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렇다고 진보의 미래전선을 담당할 억척스러운 청년세대가 태어날 것 같지도 않다. 풍요의 시대에 자라나 멋과 개성에 골몰하는 젊은 세대에게 시대의 아픔은 먼 나라의 전설이 되었다. 격화된 경쟁을 달구는 신자유주의의 코드에 자신의 스펙을 맞추기에도 바쁜 그들의 일상에 ‘저항과 전복’은 얼빠진 자의 구호처럼 들릴 뿐인데, 누가 도도한 주류를 거역할 것이며, 누가 시대의 통증을 앓는 황야의 이리처럼 헤맬 것인가? 개발독재의 해독제였던 노동조합은 스스로 독(毒)이 되는 길을 걷고 있으며, 신선한 각성제였던 시민단체는 오랜 관변화의 화려한 과거를 잊지 못해 구슬픈 화류항사(花柳巷辭)를 뇌고 있는 중이다.

그 많던 진보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동면하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던 빛나는 변론들은 왜 독설처럼 들리며, 그들의 논리와 언어는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가? 시대가 궁핍할수록 공명을 확대할 그들의 시그널은 왜 낙오병의 전신부호처럼 나부끼는가? 2009년 12월 29일, 세계의 보편적 추세에 힘입어 보수의 시대가 승승장구할 새로운 십 년대를 며칠 앞둔 오늘, 그렇지 않았으면 공허할 뻔했던 한국 현대사에 유별난 진보의 흔적을 남기고 소멸하는 21세기 첫 십 년대를 나의 40대와 함께 이렇게라도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진지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다. 진보시대여, 안녕!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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