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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Twain (1835-1910)
"과연 유태인이 박해받는 이유가 단지 그들의 종교적인 광신주의 때문만일까? 내 생각엔 그들의 종교는 거의 상관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내 머릿속에는 창세기의 47장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이집트의 풍년과 그 뒤를 이은 대기근의 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요셉은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하여 이집트의 왕국의 모든 돈, 모든 가축, 모든 땅을 마지막 한 쪽까지 수중에 넣었고 이 때문에 가난한 민중은 그들의 자유를 빼앗겼고 비탄에 빠졌다. 다음으로 그는 아예 나라를 취했다. 빵을 나눠주는 댓가로 그는 모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까지 그의 노예로 만들었다. 그의 손길이 뻗어있지 않은 곳이란 없었으며 모든 면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수백만섬의 곡물을 독차지함으로서 그는 요즘의 가치로 따지자면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이윤을 챙겼는데 이와같은 일은 이집트 왕국에는 너무도 파괴적인 재앙이었기에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집트에서는 그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셉의 행동은 후일 샤일록의 모습으로 굳어지게 된 그들 민족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의심의 여지는 조금도 없다. 그리고 이런 일은 예수의 수난이 있기 수백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남북전쟁이 끝난 다음 유태인들은 무리를 지어 남부의 면화생산 州들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농장에 상점을 차리고는 검둥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전부 외상으로 내주었다. 당연히 그 검둥이들이 수확한 그 해와 명년의 작물은 유대인들의 것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백인들은 유태인을 혐오하게 되었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유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들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도 농민은 도저히 유태인의 상업적 능력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태인은 항상 수확될 작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빛을 갚는 날이 되면 유태인은 추수된 작물을, 그리고 다음해에는 농장을 소유했다. 마치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존 왕 시절의 영국에서도 유태인에게 빛을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당시 유태인은 수익률이 좋은 사업은 뭐든지 손아귀에 끌어모았고 상업의 왕이 되었다. 마침내는 그들을 왕국에서 추방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400년 전 스페인에서, 그리고 몇 백년 후 오스트리아에서 쫓겨났다... 全시대를 거쳐 기독교 유럽은 유태인의 행동을 제약해야만 했다. 어떤 업종에 유태인이 뛰어들면 기독교도들은 그 업종에서 물러나야 했다. 유태인이 의사가되면 기독교도 의사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유태인이 농업에 손을 댔을 때 그들은 생계수단을 빼앗겼다. 기독교도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법적인 제도가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 유태인은 또한 다른 업종들로의 진출이 막혀있었을 때도 돈을 벌어들일 방법을 찾아냈고 일부는 부자가 되기도 했다. 유태인의 역사는 실로 천박한 상업적 탐욕으로 점철되어 있다. 유태인의 종교에 대한 편견이 이들의 수난에 차지하는 비중은 10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10분의 9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교도를 박해했지만 그들의 생계를 앗아기지는 않았다. 카톨릭교도 또한 프로테스탄트를 박해했지만 그들이 농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 예수의 수난은 유태인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유태인에 대한 반감은 그 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만으로는 유태인 박해를 설명할 수 없다. 유태인이 증오받는 이유는 그들이 불로소득(不勞所得)자들이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인생목표는 돈이다. 그들은 로마에서도 그랬고 그후로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들의 성공은 전 인류를 그들의 적으로 만들었다... 어떤 이는 유태인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보니 미국의 유태인 인구가 250,000명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곧장 브리태니커社 편집장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아는 유태인만 해도 그 정도는 될 것이며 이 수치는 2,500,000명을 잘못 표기한 것일 거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유태인들이 사업적인 이유로 스스로를 유태인으로 밝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럴듯한 얘기다. 이들의 사정에 밝은 지인들에 따르면 유태인들은 정치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한다.” - Concerning the Jews, Harpers Monthly, September,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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