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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에 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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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 프란츠 리스트    2005/05/03 15:21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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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Wagner (1813-1883)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의 반유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우리는 예술, 특히 음악의 범주 안에서 유태인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감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순전히 정치적인 면에서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유태인들에 대적한 적이 없다. 우리는 유태인들이 우리의 조국 안에 그들만의 예루살렘 왕국을 만들도록 허용하기까지 했으며 이와 관련해, 저 폰 로스차일드(Herr v. Rothschild)씨가 ‘유태인의 왕’으로 남기 보다는 스스로를 ‘왕들의 유태인’으로 만들었다는데 대해 유감을 금할 수 없다... 다들 아는 것처럼 신을 독차지하고 있는 유태인들은 먼저 그들의 외모로 구분된다. 유태인은 그의 표면적인 국적과는 상관없이 그 나라의 진정한 국민들과는 이질적인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저렇게 생긴 이들과 내가 같은 나라 사람이란데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하여 겉모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말을 통해 유태인들이 우리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음악에 대한 유태인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유태인은 그들이 대대로 살아온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지만 그들은 그 언어를 항상 외국인의 입장에서 사용한다... 유태인이 그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을 듣다보면 그의 장광설 속에는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표현들이 결여되어 있기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그의 요상한 지껄임에서 풍겨나오는 냉담함으로 그의 말은 가슴 깊은 곳에서 발현되는, 뭔가 더 숭고한 열정을 일깨우지 못한다... 그러기에 유태인은 그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에 예술적인 발음을 가미하지 못한다. 단순한 말에도 그럴진데 노래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노래란 달아오른 열정의 순간에 입에서 나오는 말일 뿐이다. 음악은 열정의 언어인 것이다. 만약 유태인의 요사스러움에 홀린 포로가 아니라면 그들의 혐오스런 외모나 말투에 더해 그들의 노래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적인 차원의 미학보다는 태고적부터 보다 실용적이고 물질적인 일들에 혈안이 되어왔던 그들의 정신세계를 염두에 둘때 유태인들 중에서 표면적인 화려함과 얕은 기교 외에 진정한 창의성을 지닌 예술가를 발견하기란 힘들다는 사실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외모를 통해서나 말을 통해서, 더욱이 노래를 통해서는 자신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유태인은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근대예술의 모든 분야에 파고들었고 음악에 관해서는 대중적 취향을 재단하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더욱 노골적으로 신흥귀족의 상징으로 치부되는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회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유태인(예를 들어 고리대금업, 그들의 유일한 직업이다)들과 황금으로 그득한 그들의 주머니에 상류사회의 출입증을 거절하는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문화예술이 돈 많은자의 허황된 장식품으로 전락하여 오직 부유한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게된 오늘날, 문화예술이 유태인들의 전유물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태가 그러하니 우리의 사회에 문화적인 유태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세계와 생활양식 자체에 예술을 생산할 자양분이 없는 유태인은 실제로 자신들만의 예술을 창조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시대와 같이 음악이 삶에 대한 열정과 희열을 유기적으로 반영했던 시절에는 유태인 작곡가를 단 한명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유태인처럼 이질적인 존재가 생명의 초기단계에 있는 유기체 안에 움을 틀 수 있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그 생명의 내면적인 죽음이 다가왔을 때 외계적인 요소는 그 생명체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파괴하는 것이다. 가장 숭고한 문화예술을 추구하는 우리의 염원을 그들이 오도하고 변질시키는 것에서도 볼 수 있지만, 우리의 정신적 삶에 대한 유태인들의 영향에 관해서 나의 소신은 확고한 것이다. 허나 물리력을 동원하여 우리들 안에 존재하는 이질적이고 파괴적인 요소를 축출함으로서 우리의 문화가 더 이상 타락하는 것을 중단시킬수 있느냐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이를 위해선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전능자의 힘이 필요할테니까." - Das Judenthum in Der Musik

 

(탄호이저, 순례자의 노래)

 

 

 

Franz Liszt (1811-1886)

"유럽국가들에 유태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많은 사회악을 수반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계속 돈을 독점하고 있는 유태인은 자신의 지갑속의 돈을 풀거나 거둬들임으로서 국가의 목줄을 죄었다 놨다한다. 이는 실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과 다름이 없다. 과거의 소규모 수공업과 상업은 날로 확장하는 괴물적인 몸집의 산업과 금융업으로 대체되었으며 이 와중에서 유태인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세상의 절대군주가 되었다. 그들이 획득한 모든 근대적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무기로 유태인은 모든 기독교적 진리와 가치관을 공격하며 그들이 소유한 언론을 등에 업고 사회의 기반을 파괴한다... 그들은 기존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종류의 비밀결사에 가담한다. 그들은 왕정과 교회, 종교적 규범, 그리고 법치(法治)를 차례로 붕괴시키려는 모든 비밀결사 조직과 이들이 일으키는 소요의 뿌리에 있다. 모든 기독교문명의 善함과 아름다움이 혁명의 무저갱을 통해 부정되고 의구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이 그들에겐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다. 설사 혁명의 혼란 속에서 수백만을 도둑맞고 그들의 저택이 불타버린다해도 저들 유태인은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 석유는 그들의 매부리코엔 향내음이며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은 그들의 귀엔 감미로운 음악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누가 그들로부터 토라와 탈무드를 앗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모든 사회혼란의 배후에 있으며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부도덕의 근원에 있다... 그들은 신앙과 윤리를 파괴하는 흉기와 탄환을 은밀하게 유통시킨다. 그들은 적절한 양으로 가미된 방종과 부도덕한 풍조에는 그 어떤 사회도 저항할 수 없으며 이로인해 인간의 지성(知性)은 총체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을 용납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결국 이 유태인들을 모조리 추방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날이 올 것이다. 이들을 용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삶과 죽음, 건강한 삶과 만성적인 질환, 그리고 평화속의 안정과 끊임없는 사회혼란 중 그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 Die Israeliten

 

 

'유대 오스트리아'

 

Fritz Trocase  오스트리아 언론인

"비엔나의 유태계 언론은 그들의 입맛에 따라 한 예술가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줄 수도 있고 한 사업가를 파산하게 할 수도 있다. 먼저 유태 언론의 “비평”을 거치지 않은 책이나 예술작품은 대중과 만날 수도 없다. 물론 유태인의 손에 현찰을 듬뿍 안겨준다면 모든 일은 한 것 편해진다. 그러므로 야심과 함께 제정신이 있는 예술가라면 대중의 인기를 얻기 전 먼저 저 전지전능한 유태인 신문사 사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뛰어난 재능으로 찬사를 받는 여배우, 연주가, 가수는 모두 무대에 서기 전 이스라엘의 추잡한 욕망에 값진 조공을 바친 이들이다. 가혹한 군주들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의 경력은 그 날로 끝장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런 악성적인 영향을 보고 있자면 과거의 가장 수구적이고 억압적인 폭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요즘 이 시대 우리 사회에 이런 잔혹한 망령을 불러온 추악한 강령술사들은 누구인가? 바로 유태인이다. 오스트리아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유태민족의 영향력은 실로 재앙이었다... 유태인 때 거지가 달려들어 폐허가 된 지역을 지켜보는 것처럼 우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이들 지역의 농민들에겐 제대로 된 가구 하나도 없고 농사를 지을 땅 한 치 없다. 그들의 침대, 수례, 땅, 그들의 낫까지, 모든 것이 유태인들의 소유이다... 발을 딛는 곳이면 어디든 간에 유태인들은 거대한 죽음을 연출한다. 어디든 그들의 입김이 닿는 곳은 생명이 없는 황무지로 변해버린다. 어디든 그들의 더러운 텐트를 치는 곳마다 유태인은 증오와 분노, 시기와 분열과 부패와 해체의 씨앗을 뿌린다...

 

"1848년 이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유태인은 별 볼일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날 유태인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제국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이 오스트리아를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엔나의 거리를 피로 물들였던 그 혁명으로 덕을 본 자들은 그들뿐이었다. 오로지 그들의 권리가 선포되기 위해 수많은 선량한 피해자들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들 특유의 인내와 집요함과 교묘한 책략으로 그들은 서서히 오스트리아를 착취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전(全) 기독교 인구의 재산을 거머쥐게 되었다. 50년이 걸린 유태인의 오스트리아 정복은 의심의 여지없이 근대유럽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들에게 자유와 민권을 선사한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유태인은 오스트리아인을 노예로 만들었다... 무엇이 그들을 권력의 정점에 서게 하였는가? 이들의 성공요인은 딱히 근면이나 어떤 덕목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재능도 아니요 과학성도 아니요 또한 생산적인 노동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권모술수였고 뻔뻔함이었으며 비유태인 이웃이 흘린 땀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고자 하는 추악한 탐욕이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의 땀과 노동의 결실을 파렴치하게도 가렴주구 한 덕택으로 유태인들은 단시일 내에 엄청난 富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들이 50년 만에 합스부르크 제국의 모든 것이 된 것이다... 이 모든 영화를 그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취했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지도 않았고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으며 목초지를 가꾸지도 않았다. 이들이 한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살찌운 일일 것이다. 유태인은 기독교인들이 고된 노동으로 벌어서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모은 푼돈을 갈취하여 이 나라의 주인인 기독교인들보다 측정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또한 유태인은 인류의 해방과 진보라는 허울아래 그들 특유의 끈덕짐을 무기로 서구문명의 말살이라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오로지 불구대천의 원수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파괴하기만을  꿈꾸는 유태인들은 그들의 윤리관을 오염시키고 그들의 피를 빨아서 기독교인들을 마치 가축 때처럼 쉽사리 지배할 수 있는 노예집단으로 만들려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간악무도한 의지를 사회주의라는 덮개로 위장하여 만국의 민중을 미혹하고 있다. 이 엄청난 사기극 앞에서 진실 된 사람들의 가슴은 피로 물든다.” - L'Autriche juive,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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