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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프랑스 - Equality? What Equality?    2005/05/03 16:14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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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Renan (1823-1892)

“고대세계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너무도 널리 퍼져있었고 뿌리 깊은 것이기에 이를 부추기기 위한 노력은 필요치 않았다. 이 격렬한 증오심은 인간 사이에서는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감정은 단지 민족이 다르다는 것 외에, 더욱 깊숙한 곳으로부터 솟아난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동안 그토록 수난을 당한 것도 다 이유가 있음이다. 언제 어디서고 그들이 발을 딛는 국가들과 그곳에서 만나는 민족들 마다 아무 이유없이 유대인을 박해했을 리는 만무하다!... 오늘날까지 유대인은 항상 법적인 평등을 외치며 모든 곳에 끼어들었지만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특별한 위치를 보장해줄 치외법권적인 권리들이다. 그들은 먼저 다른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와 처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의 긴 쇼핑리스트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기에 더해 국가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특권을 허락하라고 떼를 쓴다... 그들은 비유대인 시민들이 누리는 권리들은 다 원하면서 이러한 권리에 대한 의무는 회피하여 다른 시민들에게 자신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느 나라도 이런 괘씸한 심보에 관용을 베푼 적은 없었다. 국가란 군사적인 창조물이다. 국가는 칼에 의해 만들어지고 칼에 의해 보호받는다. 국가는 농민과 군인의 피와 땀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국가를 만들고 보호하는데 아무런 기여도 한 게 없다. 이것이 바로 평등을 입에 달고 사는 유대인들의 가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엄청난 사기극의 본질이다. 물론 외국인이라도 국가에 도움이 되는자는 마땅히 용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국에 대한 침략자로 돌변한 그 외국인에게 진정한 그 나라의 시민들이 무릎을 꿇어서야 되겠는가!... 자기가 짓지도 않은 집에 살면서 그 집에 사는 가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행위는 분명 터무니없는 일이다. 유대인은 다른 새의 둥지에 날아들어 주인과 새끼를 내쫓고 그 둥지를 가로챈다는 어떤 조류와 흡사하다.” (The Antichrist) 

 

“유대인은 단지 별개의 종교집단이 아니라 - 그리고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 인종적으로 아예 이질적인 집단이다. 유럽인은 유대인이 근동에서 도래한 인종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단지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라면 모를까, 문명은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을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 동부유럽에서 유대인은 다른 국가들의 살을 서서히 파먹어 들어가고 있는 암종양이다. 그 나라들의 민중을 착취하는 것만이 이들의 유일한 목표이다. 그들 특유의 민족성은 이기심과 비겁함이며 자기희생과 애국심이란 그들에게는 외계적인 개념일 뿐이다.” (L'Histoire du peuple d'Israel)

 

 

('발레리나', Edgar Degas; 로댕, 발레리, 세잔느, 르노와르와 함께 反드레퓌스 진영에 섰던 드가는 드루몽이 발행했던 - 유태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극우파쇼 반유태적 - 'Libre Parole'의 열렬한 독자였다)


Edouard Drumont (1844-1917)
“프랑스 대혁명으로 득을 본 이들은 오직 유태인뿐이다. 모든 것이 유태인에게서 시작하여 유태인에게서 끝을 맺는다. 이 땅의 주인이었던 우리가 단결된 이 소수민족에게 정복을 당하여 이들에게 종속된 농노들로 전락했다는 작금의 현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마치 6만 명의 노르만 정복자들에 의해 색슨족이 농노들로 전락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복에 사용된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다. 정복자 이민족과 그들이 지배하는 방대한 금융시스템에 의해 정복된 한 민족전체가 수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추측하기도 힘든 막대한 유태계 자산들, 성채들, 유태인이 소유한 저택들은 그들이 땀 흘려 노동하고 뭔가를 생산해서 모은 재산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정복민족이 정복된 주인민족에게 노예의 족쇄를 채워 강탈한 금은보화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공개된 재산만해도 30억 프랑에 달한다는 저 로스차일드 가문의 프랑스 일족도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그런 돈이 없었다. 그 후로 그들은 뭔가를 발명해내지도 않았고 무슨 광산을 발견한 것도 아니며 땅을 일군 것도 아니다. 결국 이들은 돌려준 것 없이 프랑스인들로부터 30억 프랑을 챙긴 셈이다. 유태인들의 막대한 富라는 것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동일한 수법을 통해 축적된다. 유태인들 덕택으로 과거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돈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되어 버렸다. 대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극소수는 그들의 의지대로 한 국가와 민족의 경제를 농단하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일하지 않고 벌어들인 불의로운 이윤으로 황제들처럼 산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모든 유럽인들에게는 익숙한 이 문제가 프랑스에서는 그러나 거의 알려진 바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유태인 Lassalle이 지적한대로 이 나라 부르조아지들의 지적(知的)수준은 얄팍하며 그들이 가진 견해란 것도 대부분은 언론에 의해 날조된 것 들이다.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신문사들과 매체가 유태인의 손에 있으며 직접, 간접적으로 그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을 유념할 때 지금 유럽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일고 있는 광범위한 반유태적 운동들이 우리들에게는 교묘하게 은폐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쨌건 간에 유태인의 프랑스 정복을 국면적인 관점에서 고찰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유태인에 의해 과거의 프랑스는 조금씩 해체되었고 과거 프랑스의 행복하고 정이 넘쳤던 국민은 증오심과 물욕(物慾)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굶어 죽어가는 민중으로 대체되었다. 교활하게도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내건 유태인들 덕분으로 그 동안 프랑스는 붕괴의 붕괴를 거듭해왔다. 유태인들은 모든 공공의 자산을 독점했으며 軍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 침투하여 정복했다. 귀족계급이나 부르조아계층에 속해있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지도층은 지금 두 부류로 양분되어 있다. 한쪽은 유태인이 부추기는 사치와 환락과 돈벌기에 중독 되어 있는 부류이고 또 한 부류 역시 유태인들이 살포하는 사상적 독약에 취해 더 이상 제 정신을 갖고 살아가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도취에 빠져 그들 눈앞에 뻔히 보이는 조국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조국이란 대상에 느끼는 감정은 유태인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만국이스라엘협회의 저 기고만장한 표현처럼 그들은 어느 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는 세계주의와 보편주의(universalism)를 표방한다. 나는 이 점에 있어 유태인을 탓할 생각은 없다. ”조국“이란 무엇인가? 내 아버지, 내 조상들의 땅이란 의미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마음 속 깊은 곳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며 애국자란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국심은 우리의 피와 뼈와 골수에 사무쳐있는 감정인 것이다... 사실이 이럴진데 저 영원한 유랑민족 유태인이 과연 장고한 세월을 통해 흘러내려오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새로운 조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조국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유태인에게는 그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거룩하고 신비롭다는 예루살렘이라는 조국이 있다. 승리와 고난, 환희와 비통의 시간에도 그들은 매년 로시하샤나(Rosh Hashanah) 때에 왼다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기도문으로 국경을 초월하여 결속되어 있다. 이 예루살렘 외에 프랑스, 독일 혹은 영국은 유태인들에게는 잠시 동안 거주하는 일개 지역에 지나지 않는다. 때때로 자신의 이익과 합치할 때 이들 국가를 위해 일하는 유태인들도 있으나 이는 오직 프리랜서로서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기독교 문명을 공격함에 있어 프랑스의 유태인은 거짓말과 속임수를 사용했으며 스스로를 자유사상가로 위장했다. 만약 그들이, ”우리는 그토록 영광스러웠고 아름다웠던 당신들의 옛날 프랑스를 파괴한 다음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한줌의 유태인들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기를 원하오”라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우리처럼 나약하지 않았을 우리의 선조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유태인들은 프리메이슨을 내세워 ‘해방’, ‘현실참여’, ‘똘레랑스‘, ’구체제의 미신과 편견을 타도하기 위한 이성’ 따위의 사탕발림으로 이 나라의 국민들을 기만하고 자신의 의도를 감춰왔다. 그러나 유태인들 사이에서는 달라진게 별로 없다. 그들은 지금 1885년에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던 티베리우스 황제의 시절과 같이 그를 증오하며 그 때와 같은 모욕과 핍박을 가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일에 십자가에 채찍질을 하고 성체를 더럽히며 성화를 손상시키는 행위는 중세시대와 다를 바 없이 오늘날에도 유태인들에겐 크나큰 즐거움이다. 그때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살해했지만 지금은 무신론적 교육의 독약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살해한다. 어떤 것이 더 끔찍한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실 한 개인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부터 밤에 잠드는 시각까지 매일같이 접하는 관념들, 즉 유태인 언론이 조장하는 위선적이고 인위적인 지식풍토와 여기에서 비롯되는 근대주의(modernism)의 선입견들에서 자유롭기는 힘든 일이다. 나는 우리조국 프랑스가 얼마나 야비하고 교활하며 음험한 적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지를 동포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역사 속에서 위대했던 프랑스는 이 적들에 의해 정복당했고 우리 조국을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가치관과 품성은 이 적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변질되고 타락해버렸다. 나의 이런 증언으로 우리 조국이 다시 태어나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나는 유태인 언론에 의해 끊임없이 모욕당하고 공격받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을 뿐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라는 나의 양심을 따랐을 뿐이다. Liberavi animam meam,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소서.” (La France Juive)

 

Georges Batault

“독일만큼 유대인들이 금융, 산업, 상업 등 全 국가경제를 거머쥐고 있는 나라도 없다. 실로 전쟁으로 거부가 된 신흥재력가들은 대부분 이 고대민족 출신이다...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 운동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유대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언급하자면, 유대인들은 좌파적, 그리고 급진 좌파적 정당 활동을 통해 인터내셔널리즘이라는 도구로 비유대인의 내셔널리즘에 대항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의 완벽한 왕국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진리에 대한 인류의 갈증과 기독교적인 신앙, 그리고 애국심과 유럽인이라는 자부심조차 침울한 무언 속에 빠져있는 지금 새로운 사상과 관념들이 승리를 확신하듯 진군해오고 있다. 이성과 자유, 그리고 기독교적인 구원과 같은 보다 숭고한 이상향을 너머 진군해오는 그것이란 바로 개인의 물질적 안락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축재(蓄財)를 숭상하는 물질만능주의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대한 책임이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말에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작고한 파리의 제임스 로스차일드(James de Rothschild)씨가 그렇게 사악한 인간이었냐고. 나는 지금 제기능을 상실한 기독교 대신 전 세계를 독점하고 있는 유대교와 유대인적인 관념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앞으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의회주의 정치체제와 만인을 사로잡고 있는 저 평등과 그에 기초한 사회, 무제한적 돈벌기와 은행, 과학, 이 모든 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물론 언제인지를 알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유대인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들은 이 모든 환란에서까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지금 눈앞에 있다... 그렇다, 유럽은 지금 광범위한 붕괴의 일보직전에 있다... 내게 비스마르크, 비콘즈필드(Beaconsfield), 프랑스 공화국, 강베타(Gambetta) 따위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을 비롯하여 全 유럽인의 군주는 유대인과 그의 은행이다.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비스마르크와 같은 존재는 짚새기 마냥 옆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유대교와 그들의 은행은 지금 모든 것 위에, 유럽의 교육과 문명, 사회주의, 아니 특히 사회주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도움을 얻어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를 뽑고 기독교적 문화를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혼돈과 무질서의 배후에는 유대인이 있다. 사회주의를 설교하면서도 유대인은 유대인으로 남을 것이며 그의 동족들과 함께 사회주의의 테두리 밖에 머물 것이다. 그리고 全 유럽의 생계가 약탈당한 뒤에도 유대인과 그들의 은행은 온전하게 서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적인 교조로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른 시장자본주의라는,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인간관을 주창한 인물이 데이비드 리카르도라는 유대인이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마땅한 것이 성공적인 비지니스라는 이 정신 나간 관념은 바로 유대인 리카르도의 머릿속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 Le Problem Juif, Journal d'un ecrivain

 

“침략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라. 어느 나라에 살고 있든 유대인은 본질적인 그들의 성격상 그 국가에 동화될 수 없으며 또한 실제로도 동화되지 않는다. 그 국가들에는 치명적이게도 유대인은 본능적으로 그 국가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들은 그 나라의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성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꿔놓으려 한다. 처음 이러한 목표는 실용적인 차원의 단기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유대인의 목표는 그 범위와 의도에서 메시아주의적인 것이다. 일시적인 오류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대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제국주의적" 사명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오직 이스라엘의 절대적 승리이다. 삶의 의지와 야성이 거세된 세계를 마침내 이스라엘이 정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면서 인류를 노예화한다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전통적인 사회질서와 국가체제, 그리고 문화를 해체하고 분해하는 효과를 지닌 사조와 풍조들을 직관적으로 지지하고 전파한다. 유대인은 그 정체성이 모호한 “인류”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며 '인류'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고백한다. 그들은 인류를 과거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려 한다지만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인류를 지력(知力)이 거세된, 물질적인 도구나 자원과 다를 바 없는 벌거숭이 인간들로 만들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인이 원하는 것은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한 인류를 갖가지 프로젝트에 동원하여 마침내는 이 땅에 이스라엘이 영원히 군림할, 메시아적인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다.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이성과 정의를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대인의 권력과 주인민족의 권력은 반비례한다는 진리이다. 유대인은 멍청하게도 그들을 받아준 나라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 국가를 멸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유대인을 받아들인 국가가 유대인에게 지배당하게 되리라는 것은 진정 그렇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그렇게 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Israel contre les Nations)

 

F. Roederich-Stoithem  독일 歷史家

"정직한 사람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유태인은 열등한 족속이다. 그 어느 곳에서건 유태인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능력이 없으며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고 운영할만한 정치적인 윤리관이 결여되어 있기에 항상 이민족 사회에 기생해야 하는 저주를 감수해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 등,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해 낼만한, 보다 숭고하고 고결한 정신세계가 부족한 유태인들의 유일한 방어수단은 간교한 지성(知性)과 교활함, 그리고 그 끝없는 뻔뻔함 뿐이다. 사실상 유태인은 인류사회에서 일종의 기형이라 할 수 있는 정신적 불구자 집단이다. 유태인은 인간의 하향적인 본직을 대변한다. 만일 이들이 모든 곳의 정직한 사람들의 안녕을 위협하는 독사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면 유태인은 그 나마 인류에게는 연민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은, 저 유태인 하이네조차도 인정하듯, 인류가 앓고 있는 질병의 근원이다. 가는 곳마다 타락과 붕괴를 일으키는 유태인은 영혼과 도덕적 부패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하등인간(untermensch)'을 상징한다... 유태인적인 삶의 원칙은 오늘날의 경지에 도달한 인류를 원시적인 과거의 상태로 다시 끌어내린다. 최후의 결과는 만인(萬人), 만사(萬事)의 저급화, 천박화, 속악화이다... 일찍이 타키투스(Tacitus)가 유태인에 대해 논하길, ‘저들은 우리가 숭고하게 여기는 것을 불경하게 대하며 우리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잡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환영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상 유태인적이란 본질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도덕적인 관념과는 상극적(相剋的)인 것이다. 무의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유태인들은 참으로 많은 것의 의미를 뒤집는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은 그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선민(選民)’이라 칭하는 것이다.” - Theodore Fritsch, Ratsel der Judischen Erfol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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