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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혐의로 폴란드 정부에 지명수배되어 있는 Solomon Morel, 현재 87세
"모렐은 독일 수감자들에게 말했다, “난 유태인이다.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난 너희 나치놈들에게 당한만큼 갚아 주리라고 맹세했었다.” 그리고 그는 몽둥이와 쇠지레, 그리고 수감자들이 짚고 있던 목발로 독일사람들을 때려 죽였다. 연합군은 독일의 항복 직후 독일과 폴란드에 1,255개소의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 민간인들을 감금했다. 그 곳에서 유태인 소장들과 간수들은 독일인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 John Sack, An Eye for an Eye, 1997

"1997년 2월,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John Sack을 초청연사의 명단에서 제외한지 3일 후, 콜럼비아대 역사학과의 Istvan Deak 교수는 UCLA 유대학 연구센터가 공동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했다. 전후 폴란드 국가보안국을 “유태인 공산주의자들의 보루”로 지칭한 디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화된 폴란드의 새 지도자들 중에는 유태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내무부를 비롯, 폴란드 국민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국가보안국을 필두로 거의 모든 정보와 감찰기관들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유태인이 쥐고 있었던 폴란드 비밀경찰은 고문, 살인, 선거조작, 강제이주 등의 만행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John Sack 의 An Eye for an Eye 를 인용한 그는 이 책에 대해 “유태인들이 전후 폴란드의 강제수용소에서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독일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고문과 살인에 대해 읽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콜럼비아대의 John Micgiel 교수와 Why Did the Heavens Not Darken? 의 저자인 프린스턴대의 Arno Mayer 교수의 강연 또한 디크 교수의 강연 요지를 뒷받침해주었다. An Eye for an Eye 가 밝혀낸 내용은 1997년 5월, 옥스포드대 역사학과의 Norman E. Davis 교수가 집필한 Europe: a History 의 출간과 함께 유럽史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 책에서 데이비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폴란드의 공산정권 초창기부터 보안국(UB)에 인구와는 비례하지 않는 많은 숫자의 유태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저지른 범죄가 극악했다는 것은 폴란드 사람이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진상이 대중에게 알려진 적은 거의 없었고, 또한 사람들은 대게 이런 얘기를 기피했다. 그러나 최근의 밝혀진 내용들은 이런 금기를 깼다. 1945년, 유태인 요원은 폴란드 국가보안국 전체인원의 3/4를 차지했으며, 이들의 주도 하에 舊 나치수용소들은 무고한 독일인과 폴란드의 反共인사들로 채워졌다. 이 곳에서 고문과 기아, 가학적인 구타와 살인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 시기 폴란드 국가보안국이 학살한 독일 민간인의 숫자는 6만에서 8만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흔히 대량 학살을 어느 한 민족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습관을 더 이상 정당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독일인들에 대한 강제이주는 2차대전의 알려지지 않은 대참극 가운데 하나이다. 전쟁직후 소련과 폴란드의 서부국경이 서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1300만에서 1500만에 달하는 독일주민이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포메른, 동프로이센, 그리고 슐레지엔에서 쫓겨났다. 주데텐란트와 이들 지역에서 자행된 ‘인종청소’와, 유럽사 초유의 난민사태를 빛은 이 강제이주의 와중에서 200만 명 이상의 독일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밖에서는 이런 비극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옥스포드대 역사학과의 Mark Almond 교수는 Ursula Lange의 신간 East Germany: What Happened to the Silesians in 1945 의 소개문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 드러난 나치의 만행 때문에 독일인에 대한 동정심은 적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한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단지 그들이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엄청난 고통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Forgotten victims, The Guardian, March 27, 2002
Between 1 and 2 million German POWs died in American captivity after surrender (1945)
뉘른베르크 재판

Rudolf Hoess, Auschwitz komanndant
"간수들은 회스의 수인복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벌거벗긴채 고문대 위로 옮겨진 그를 유태계 취조관 클라크 대위는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만해요, 그렇게 때리면 죽을 겁니다!" 의무관의 개입으로 구타는 중단되었다. 대위는 회스의 몸에 담요를 덮은 다음 그를 자신의 차까지 질질 끌고 갔다. 상사는 많은 양의 위스키를 회스의 입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회스는 잠에 빠지는 듯 했다. 클라크는 지휘봉 끝으로 감긴 회스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눈 뜨고 있어, 이 독일 돼지새끼야"... 그들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밖에는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담요를 벗겨 회스를 다시 벌거숭이로 만든 그들은 감옥마당을 가로질러 감방까지 그를 걷게 했다. 회스에게 제 정신이 돌아온 것은 사흘 뒤의 일이었다." - Rupert Butler, Legions of Death, 2004

Harlan Fiske Stone 미국 연방대법원장 (1941-1946) “이 얘기가 내 이름을 달고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당신에게 말하건데, 미국 대법원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나 이를 승낙한 정부의 결정과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아무런 상관도 없음을 밝혀둡니다. Robert Jackson 판사가 연합국측 수석검사에 임명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기 전에 나는 이와 관련해서 아무 통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보건데, 뉘른베르크 재판은 패전국이 전쟁을 도발했다는 죄목으로 勝者가 敗者를 벌주고 또 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입니다. 나는 이 재판이 무슨 법리적인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포장되는 것을 보면서 심한 역겨움을 느낍니다. 그나마 좋은 소리를 한다면, 그것은 이 재판이 패전국에 대한 승전국의 정치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행위는 1815년 나폴레옹을 퇴위시켰을때와 같이 도덕적으로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연합국들은 있지도 않은 무슨 법률적인 원칙들을 끌어다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현대의 전쟁을 일어나게 만드는 복잡다단한 상황과 요소들을 감안할 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를 규명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불확실성이 따릅니다. 결국 이에 대한 정답은 승자에게 달려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모든 전쟁은 침략적입니다. 누가 침략자인지를 지목할 권리는 패자를 굴복시킨 승자의 권력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승전국들이 온갖 형식적인 절차와 용어들로 이번 재판을 포장하고 독일 지도자들에게 무슨 있지도 않은 법적인 혐의를 씌우는 대신 그저 그들이 지닌 권력으로 가식 없이 독일의 지도자들을 ‘나쁜 인간들’로 벌주었다면 내 마음이 이렇게 거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앞으로 일어날 모든 전쟁은 승자가 패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식으로 종결되어야 한다는 선례(先例)를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잭슨 판사는 지금 뉘른베르크에서 고도의 집단린치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치들에게 무슨 일을 하건 그건 그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정당한 법적행위인체 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어쩌면 구식(舊式)일지도 모를 내 사고방식에 의하면 뉘른베르크 재판은 신성함을 가장한 사기극일 뿐입니다.” - Alpheus Thomas Mason, Harlan Fiske Stone: Pillar of the Law, 1956

Nahum Goldmann 시온주의 지도자 "뉘른베르크에 설치된 전범재판소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국제법에 의하면 단순히 명령에 복종한 군인들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었다. 그러나 이를 뒤집기 위해 엉뚱하면서도 센세이셔널 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인물은 Jacob Robinson 이었다. 그가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팔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대법원을 비롯한 미국 법조계는 그를 바보인냥 대했다. “독일 군인들이 무슨 유별난 잘못을 저질렀는가? 어쩌면 히틀러나 괴링을 법정에 세울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이들은 군인으로서 단순히 명령에 따르고 자신의 조국에 충성을 다했을 뿐이다”라는 것이 미국 법조인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연합국들을 상대로 전범재판소 설치를 설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은 대체로 반대하는 편이었고 프랑스는 거의 관심도 없었다. 최초의 서광은 로빈슨이 미국 대법원의 Robert Jackson 판사를 참여시키는데 성공했을 때 비로소 찾아들었다...

Robert H. Jackson
"독일이 이스라엘에 지불해야 할 금액은 800억 달러였다. 독일로부터의 배상금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의 절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기차와 선박은 독일제이며 전력발전소와 공장 등의 산업시설도 대부분 독일이 세워준 것이다. 이에 더해 독일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금을 지급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매년 수 억 달러에 달하는 독일 마르크貨가 흘러든다. 어느 해에는 독일에게서 받아낸 금액이 전 세계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모금한 액수의 두 배, 혹은 세 배가 될 때도 있었다. 오늘날, 독일이 이스라엘에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 The Jewish Paradox, 1978

1952년 독일과의 배상조약에 서명하는 골드만
"JUDEN RAUS!"

"A rowdy dispute that broke out during a ceremony to rename a Berlin street Judenstrasse -- Jews Street -- six decades after the Nazis removed the name has aroused fears and anger in Germany's tiny Jewish community... Paul Spiegel, head of the Central Council of Jews, said reports that protesters in the working class district of Spandau disrupted the ceremony earlier this month with ugly shouts of "Juden raus" (Jews out), "Jews are godless", "We have suffered too much for Jews", recalled the darkest chapter of Germany's Nazi past... The controversy over the new street name is only the latest incident fueling angst among the country's 100,000 Jews a half century after the Holocaust that killed most of the 600,000 German Jews, and some 6 million Jews throughout Europe... A swastika was recently drawn on a guest book at the Sachsenhausen concentration camp; a memorial to Jews in a town north of Berlin was painted with swastikas and damaged by fire; charges of anti-Semitism have been raised against a top politician; and a survey found most Germans believe Jews are exploiting the Holocaust to further their interests." (Reuters, Novermber 1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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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never far below the surface in Germany. They shut up about it for long periods of time, but it's always there. I've travelled a lot in Germany and I find that although they're the nicest people in the world, you get a few drinks into them and these sentiments begin to emerge from many of them." (Anonymous Jewish writer on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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