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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는 LG텔레콤을 죽인다?
“취임 전에 통신비 20% 인하”(이동관 인수위 대변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불필요한 기업 규제 완화”(이명박 당선자 공약)
지난 12월 19일 이명박 정부가 태어났다. 차기 정부가 세상을 향해 가장 먼저 외친 것은 “통신비 20% 인하”였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지난 12월 30일 대통령 취임 전에 통신비를 20% 내리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공약은 “규제 완화”였다. 규제완화는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즉 MB노믹스의 골자다.
선거 기간은 물론 당선 이후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통신비를 당장 20% 내리면서 신념에 따라 기업 규제를 완화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결과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LG텔레콤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현대증권은 작년 이동통신사들의 매출을 모두 합치면 약 20조원(SK텔레콤 11조2510억원·KTF 5조4480억원·LG텔레콤 3조256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순익을 모두 합치면 약 2조원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만약 통신비를 20% 내리면 매출이 16조원으로 줄어 든다. 순익은 사라지고 약 2조원 정도 적자가 난다.
보통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난다. 쉽게 말해 통신료를 내리면 사용자가 늘고, 1인당 사용액이 늘어나 생각보다 통신사가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예전엔 실제로 그랬다.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는 통화료를 10%씩 내려도 이동통신사의 매출과 순익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었다. 가입자가 계속 불어났고, 사용량도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효과는 사라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약 4100만대(SK텔레콤 2100만대·KTF 1200만대·LG텔레콤 800만대)에 달한다. 심하게 말하면 말 못하는 갓난 아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셈이다. 통화요금을 내린다고 가입자가 늘어날 여지가 없다.
통화량도 마찬가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아예 휴대전화를 입에 대고 산다. 입에 붙어 있지 않을 땐 손가락으로 키패드를 누르기 바쁘다. 가격이 내린다고 사용량이 늘어나는 효과는 크지 않다. 흔히 말하는 포화상태라서 탄력이 사라진 시장이다.
그렇다면 통화료를 20% 내리는 것은 불가능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 대신 지금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전화기 가격이 확 오르는 것을 감수하면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작년 3분기까지 LG텔레콤은 마케팅 비용으로 7000억원을 썼다. 년간 LG텔레콤이 마케팅 비용으로 쓴 돈은 9000억원이 조금 넘는다.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이란 간단히 말해 광고비용과 보조금 두 가지 항목이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림이 없다. 보조금이란 고객들이 휴대전화를 살 때 낼 돈의 일부를 통신사가 대신 내주는 것이다.
통신요금 떨어지면 휴대전화 가격이 오른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LG텔레콤이 작년 8월까지 KBS·MBC·SBS에 광고비용으로 약 148억원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년간 방송광고액은 약 210억원 정도란 추정이 가능하다. LG텔레콤은 지상파 방송사를 제외하면 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 기업이다. 간단히 말해 작년 LG텔레콤은 8000억원 이상을 보조금으로 지급했다고 봐야 한다. 3조2000억원 매출의 약 4분의 1을 보조금으로 쓴 셈이다. 다른 통신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결국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이 보조금으로 나간다.
보조금은 마약과 유사하다. 통신사 입장에선 효과가 아주 빠르고 정확하다. 휴대폰 전화 보조금으로 푼 액수는 단기적으로 가입자 증가 숫자와 정비례한다. 보조금은 또 같은 양을 사용하면 효과가 점차 사라진다는 점에서도 마약과 비슷하다. 한 회사가 보조금을 풀면 다른 회사들도 따라서 보조금을 풀 수밖에 없다. 같이 약을 처대면 효과는 곧 ‘0’로 변한다. 무한경쟁이 벌어지면 단기간에 약이 모자라는 회사가 쓰러진다.
그러나 우리 나라 통신사들은 무한경쟁을 벌이지 않았다. 약 값이 너무 나간다고 생각하면 통신사들은 상대방이 법을 어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현재 우리 나라는 보조금 지급 한도를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누군가 상대 업체가 한도를 넘는 보조금을 썼다고 정통부에 고소한다. 정통부가 이때쯤 나서서 사태를 수습한다. 국내 이통통신 마케팅의 역사는 보조금 마약 놀이의 반복이다. 말하자면 정부가 마약을 쓰도록 해 놓고 너무 많이 쓰진 못하도록 만들어 누군가 죽어 없어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는 역할을 해 왔다.
만약 법을 조금 손 봐 보조금을 한 푼도 쓰지 못하게 하고 이를 엄격하게 집행하면 통신료를 20%쯤은 내릴 여력이 생긴다. 문제는 보조금을 금지하는 법이 불필요한 기업 규제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업이 마케팅을 위해 자기 돈을 쓴다는데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정부가 써라 말아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보조금을 제한하는 법은 올해 3월 생명을 다하고 사라질 운명인 한시법이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올 3월부터는 논리적으로 통신사들이 마음대로 보조금을 쓸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서 법적 제한이 없는데 보조금이 지금보다 줄어 들 가능성은 없다.
보조금을 건들지 않는 이상 당장 요금을 20% 내리면 무조건 통신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LG텔레콤은 버티기가 힘들다. 순익이 매출의 10%에 불과하다. 게다가 사업을 시작한 다음 지금까지 쌓여 온 누적 적자도 크기 때문에 기초 체력이 약하다. 즉각적 요금 20% 인하와 철저한 규제완화가 만나면 당장 LG텔레콤이 쓰러진다.
처음 발표한 요금 인하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하자 인수위는 조금씩 입장을 바꾸고 있다. 인수위 최경환 간사는 5일 “시장 경쟁 활성화로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인하안을 1월 중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통부가 인수위에 보고하면서 20% 인하 계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을 것이다. 쉽게 말해 LG텔레콤이 망해도 좋은가를 물어 봤을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인수위는 어물어물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통부는 나름 대안도 내 놓았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라면 그 대안이 무엇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먼저 이미 설명한대로 요금을 내리는 대신 보조금을 금지하는 안이 있다. 소비자가 아니라 “경쟁을 최우선으로 보호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 이야기다. 보조금이란 단어는 어쩐지 규제와 간섭의 냄새가 난다. 보조금이 사라져 전화기가 안 팔리면 대표적 수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울 것이다.
또 다른 방안은 이른바 망개방이다. 통신업체가 만들어 놓은 망을 빌려서 많은 기업이 휴대전화 서비스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경쟁이 일어나 요금이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절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는 식당이 건물을 소유한 식당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 이기기는 힘들다.
정통부가 밀고 싶은 다른 안은 이른바 결합상품 요금제다. 요즘 하나로텔레콤은 광고에서 “당신 TV, 전화, 인터넷 모두 하나로를 쓰는데 뭐가 떨어지나”라고 묻는다. 대답은 “다 하나로를 쓰면 가격이 최대 20%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장 경쟁 활성화로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인하안”이란 표현이 결합요금제에 가깝다.
최근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했다. SK텔레콤의 이동전화 하나로텔레콤의 인터넷 서비스, 유선전화서비스, 하나TV를 묶어 결합상품을 출시하면 통신비를 장기적으론 20%쯤 내릴 여력이 생긴다. KT 남중수 사장은 최근 KTF와 합병 가능성을 말했다. KT의 유선전화, 인터넷, 메가TV와 KTF의 휴대전화를 묶은 꾸러미 요금제를 내 놓고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문제는 또 LG다. LG텔레콤, LG파워콤, LG데이콤은 이른바 ‘3콤’이라 불린다. LG텔레콤이 3위로 이통사 가운데 최약체인 것처럼 파워콤은 인터넷 서비스에서 KT와 하나로에 밀린다. 데이콤은 하나TV, 메가TV와 같은 IPTV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역시 3위다. 무선에 장점이 있는 SK 그룹, 유선이 강한 KT 그룹과 전면전을 벌이면 3콤은 난장판으로 변할 것이다.
몇년전 LG전자 남용 회장이 LG텔레콤 사장에서 물러날 때 정통부 탓을 하는 직원들에게 남긴 이야기가 있다. “정통부가 회사에 큰 도움을 주었으니 그런 소리를 하면 은혜를 모르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LG텔레콤은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SK텔레콤이 맘껏 마케팅 비용을 써 버렸다면 LG텔레콤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회사다. 문제는 3콤 모두가 그렇다는 점이다.
정통부는 지금까지 유무선 통신사업별로 3개 이상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 왔다. 승자 독식을 막고 전체 산업이 발전하도록 유도한다는 논리다. 그것이 정통부가 이야기하는 이른바 유효경쟁이다.
달라진 시대에 맞는 통신 정책이 새 정부에 있는가?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2003년 미국 HP가 전세계 기자들을 본사에 초청했을 때다. HP는 정보기술의 미래의 한 예로 한국의 사례를 보여 주었다. 한국에선 무선 인터넷으로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좀 달라졌다.
불행히도 우리 나라는 너무 좁다. 약 5000만명 정도의 인구로 3개 이동통신사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됐다. 그러나 3사 체제에서 요금을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확확 내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 통신업계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란 이야기다.
업체가 2개로 줄어도 한국 시장은 몇년만 지나면 포화 위기를 맞는다. SK텔레콤이 국내에선 1위라도 세계란 잣대를 들이밀면 작고 튼실한 기업 정도에 불과하다. 몇년 전 미국 시장에 진출한 SK텔레콤은 최근까지 굴욕에 가까운 실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 최고란 평가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도 수십년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새 정권이 들어선다. 이번 정권의 통신 분야 과제는 통신 요금을 내리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통신 업체가 해외로 진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요금을 당장 20% 내리겠다는 이야기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민한 다음 나온 소리인지 궁금하다.
/백강녕 기자 young10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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