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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과 힌두문화
오래전, 15년쯤전에 인도에 갔었는데요.
어느 누구를 안다는것이나 이해 한다는것은 일견만 가지고는 안되는거겠지요?
특히, 거기는 수천년이나 홀로 쌓여온 무작정 종교, 절벽같은 그의 높은 담은 넘보지도 못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어린아이의 한숨같은 질리게 하는 실화가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하려니 왠지 쑥스럽기에 좀더 부드럽게 시작할 수 없을까 하는생각으로, 기대는
해 보지만, 결코 이야기가 잘 안풀릴것 같은 불안감에 무심코 옆 탁자에 노란통안의 씹어먹는 밀크
캬라멜형 비타민씨를 입안에 집어 넣었죠.
혀로 핥아 감각을 맛보았는데, 아무 맛이 없잖겠어요?.
이게뭐야 하며 뱉어보니 껍질을 안깐채 그냥 집어 넣었던 것이었어요.
순간, 아 이맛이었구나 하고,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답답한 느낌이 콘돔맛일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확 스쳤습니다.

그리곤, 캬라멜을 입안에 까넣었죠.
혀로 빨아 시고 단맛을 느끼면서 이제야 글이 좀 떠오를것 같았어요.
영국이 인도를 300년쯤 지배했었다는 이야기는 다 아는역사니까 넘어가구요.
인도를 사랑하게된 영국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이었을까요?
쓸데?없이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거지요.
제눈에 담겨진 인도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미, 영국의 오랜틀안에서 벗어난후 한참 지났었을때 였었는데도 말씀이지요.
우리나라도 결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던 시기였구요.
길에서 똥싸면서 손가락으로 똥을 가위질 해대고 오줌이야뭐, 관광버스쪽을 향해 내갈기는거지요.
긴뿔달린 소가 큰길로 떼를 지어 걸어가고 역사내 기찻길 선로에서 뒷발질을 하는등, 관광객
앞으로 아이들이 시커먼 손을 즐비하게 내밀며 딸라를 구걸하였지요.
정말, 무엇하려 저렇게 한심한 녀석들을 그리도 많이낳아 놓았냐?
그런 답이 없는 질문만 나 스스로 던질 수 있을뿐 이었지요.
그 자신들 스스로야 그냥 지나가는 길,
통과의례적으로 다음생을 위해 넘어야하는 산이거나,
들고나는 터널일 뿐이라고 이생의 삶을 헌신짝취급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던 겁니다.
다그렇냐구요?
물론, 아니구 말구요.
당시 인도 부자가 세계 3위에 들었다니까 얼마나 부자겠습니까?
그렇게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나 신분도 여러층이므로 상위계급 사람들은 그곳이야 말로 천국이나
극락에 온냥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노예같이 거러지같이 바닥을 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거지요.
산아제한은 왜 못했을까요?
콘돔은 언제 생겼고 언제 인도에 처음으로 들어갔을까요?
책에있는것을 찾아보니, 기원 전 3000년경의 초기 이집트 왕조에서 사용되었으며, 돼지나
염소의 맹장이나 방광으로 만들어졌다네요.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있다는데, 당시에는 피임 목적이 아닌, 남성의 성기를 보호하기 위한
속옷처럼, 늘상 착용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6세기 후반쯤에도 성병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며 지역별로 역사
적으로 콘돔의 유래가 이리저리 사용되었다고 전해지기에 피임을 목적으로 사용한 콘돔의
유래를 헤아리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오히려, 콘돔보다는 피임약, 악어의 똥과 아교 같은 물질을 배합한 것을 질 내에 삽입하거나
벌꿀, 탄산나트륨, 기름등 자극적인것을 섞어 질에넣어 정자를 약화시키거나 죽이는 방법의
경구용 피임약이 먼저 사용된것 같답니다.
그렇게도 극성적으로 물리적 화학적으로 피임이나 성병으로부터 보호 하는 방법을 연구, 사용해
왔던 서방세계에 비해 한심하게 인구를 늘리기도하고 무자비하게 파리처럼 죽이기도 한 인도에는
언제부터 피임약이나 콘돔이 사용되었을까 궁금합니다.
국지적으로 사용된것은 알 수 없지만, 제가 그곳에 갔던 15~6년전만해도 콘돔이 없었다는군요.
하지만, 시도를 해 보기는 했었답니다.
저보다 인도사람들을 더 긍휼히 보았던 영국인들이 인도에서 손을 떼기전에 조금 질서있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귀한 콘돔 선교를 시작했었답니다.
땅도 넓고 자연조건도 조금 노력 하면 잘 살수도 있는 나라라고 느껴 산아제한에 대해 역설하며
가가호호 방문하여 콘돔을 본국으로부터 가져다 나누어 주었답니다.
수개월뒤에 영국의 콘돔선교사들이 콘돔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하여 확인차 나섰겠지요.
동네는 입구부터 확연히 달라졌더라나요?
원래 인도의 가정들은 각각 섬기는 신이 다르기에 색색이 서낭당깃발 같은것을 꽂고있었는데
그 색색의 깃발은 다 없어지고 집집마다 선교사들을 환영하는듯 풍선들을 매달고 있더라나요?
희색이 만연한 영국 콘돔선교사들은 각가정들을 방문해 잘 사용하고 있는지,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실제 조사를 했겠죠?
근데, 하나같이 모두 임신들을 하고 있었답니다.
너무 놀란 선교사들이 콘돔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어보았겠지요?
인도사람들은 낯색하나 안변하고 ‘흰두신에게 잘 보이도록 크게 만들어 저 깃대위에 잘 매달아 놓았지’
하며 뭐~ 잘못됐냐며 오히려 반문하듯 하더라나요?
쉽게 이야기 해서 애가 만들어 지는것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세포분열, 융합이 일어나는지 마는지
알 일도 아니고 염두에 둘 일도 아니라는것입니다.
애기(人間)는 그렇게 만들어지는게 아니고 오직, 힌두신(시바, 비슈누)만이 애를 만들고 말고 할 수
있다는 신본주의였습니다.
섹스는 탄트라, 차크라의 한 행법, 수도의 일환일뿐 그로인해 애가 만들어 지는게 아니라는거구요.
그렇게 힌두신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국인들의 콘돔선교는 받아 들였냐?가 궁금하시겠죠?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만, 남을 배척하기 보다는 남의 것을 흡수하고 융합하려 한다는게 힌두의 전통,
그래서 힌두가 한가지 신이 아니고 오만잡신의 다면성적이며 황홀난망 하도록 찬란한 뭉뚱그림.....,
그래서 언제나 가장 강한 신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도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힌두교내의 ‘예수신’정도로 받아들여
그를 인식하고 소화하여 새로운 모양의 한 힌두신을 창조한다는식 이랄까요?
이것이 불교가 인도에서 크게 꽃을 피우지 못한 이유가 되려는지요.
그래도 타종교를 믿는 신자를 전도하는것보다 무지몽매한 무신론자를 믿게하는게 힘들다 하시려는지요?
힌두교가 인도를 벗어나 얼마나 널리 번졌으려나요?
최소한도 우리나라에 까지는 왔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보면 알 수있는게, ‘김일성이가 신이다, 아바이 수령이다.’라니까 대에 걸쳐 맹신 복종하며
섬기고 있잖습니까?
게다가 그 씨바의 아들 ‘김정일도 신이다.’ 하니까 그를 또 죽어라 받들잖아요?
다음에는 또 어느 말뚝같은 씨바~를 장대끝에 콘돔풍선처럼 부풀려서 매달으려는지요?
남한에는 없냐구요?
좌빨씨바~라고 있었는데, 그는 다음에 이야기 하고,
탄트라나 차크라를 받아들이다못해 스와프탄트라 그룹씨바~차크라, 호모잡놈씨바~, 레쓰비개잡년
샤크티 등등 우리의 삶 깊숙히 어느새 도달해 있는것 아닌가 합니다.
답 답~ 합니다.
때가 어느때인데, 현대인지 구시대인지 도대체 정신들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제물은 철철넘치게 싸가지고 가서 장대끝에 콘돔풍선 매달고 이제 오시려나 저제나 오시려나 제발
한번만 현신해 주옵소서~하고 7일 밤낮을 부복하고 있었다니 장차 그 씨바~놈의 힘이 최고다 라며
핵핵거리는 짓거리를 어찌 다 감당하려는지, 대를이어 받아주려는지 정말, 씨바~를 붙잡아 섬기는게
오로지 가문이 살길이라고 믿는건지…….
다 좋다 이겁니다.
금강산 시원한맛을 보여 주려거든 썬그라스는벗고 안내하고 뫼이향산 특산물맛을 보여주려거든
딱딱한 대광주리 뚜껑일랑은 벗기고 맛보여 주던지, 제대로 통일이라는 씨앗을 잉태하려거든
콘돔은 빼고 세울 거시기체면만 세우고 살갑게 납짝 엎드려 납시라 하시지요.
그리못하겠다 하거든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담보로 핵핵대지 말고, 씨바~놈의 제집 식구나 제물로 바치라
하시지요.
우리 삶 깊숙히 뿌리 내린 씨바신, 예수님이던 석가님이던 계속 흡수 핵융합하고 있습니다.

< 제글 안빈낙도1 2006/03/16 14:35 에서 道 or 到>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똥창에 박던 아구창에 박던 노고지리 울던 까마귀가 울던
소치던 아해는 아직도 핵핵대며 게 자빠졌느냐
우리 밭은 썪혀두고 남의 밭만 갈려 하느뇨
(일절은 남구만, 2절은 Old Barn)
먼산바라기 / 2009년 8월 17일 밤/ 토론토에서 Old B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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