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 좋은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18일 저녁 서울에 도착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한 일정은 간단하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주한미군 기지 방문이 사실상 전부다. 8일간 아시아 순방의 맨 마지막에 한국 방문이 배치된 것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의 체류시간은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올 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이화여대 강연 같은 행사도 잡혀 있지 않다. 14일 일본 도쿄와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각각 공개 강연을 했던 것과도 비교가 된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짧은 일정이 한국에 대한 홀대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런던의 G20 회의와 6월 이명박 대통령의 워싱턴 DC 방문 당시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 있는 관계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6월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한미동맹 공동비전'은 양국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강조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더 체험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쉽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간접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적어도 두 가지는 꼭 체험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자동차 시장이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의 도로에서 외국산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호텔 주차장을 채우고 있는 외국 자동차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허락하면 서울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일본·유럽 자동차 판매장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인들을 직접 만나 구매하고 싶어하는 외국 자동차에 대한 육성을 직접 들어보길 바란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정·관계 지도자들은 여전히 한미 자동차 무역 불균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일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상공회의소 연설에서 한미 FTA의 자동차 문제를 언급하면서 '폐쇄적인 한국시장의 유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성능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외국 자동차'에 열려 있는 한국 자동차시장을 유심히 보고 간다면, 한미 FTA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용산 미군기지에서 헬기를 타면 불과 30분 만에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한 판문점에 내릴 수 있다. 그곳엔 1976년 8월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 당시 살해된 미군 대위 아서 보니파스의 이름을 딴 미군기지가 있다. 바로 그곳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7년 베를린 장벽 앞에서 한 것처럼 역사적인 연설을 할 수는 없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 만약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휴전선까지 와 주십시오. 김 위원장, 휴전선을 열어 주십시오. 김 위원장, 이 휴전선을 깨부숴 주십시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베를린 장벽 붕괴처럼 휴전선의 제거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나눠줄 수 있다.
휴전선 대신 중국 국경을 넘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를 직접 만나보는 것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들을 만나보면 미국이 70년대 난민을 대량으로 수용한 '인도차이나 모델'을 탈북자에게 적용하자는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의 제안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은 한국에 반해서 하루를 더 체류했다. 누구보다 바쁜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전용기를 잠시 세워놓고 한미관계에 몇 시간을 더 투자할 수는 있지 않을까.
- 이하원 워싱턴 특파원
야구를 좋아하는 기자는 미국 메이저리그 챔피언 결정전 명칭인 '월드 시리즈' 가 못마땅했다. 미국 프로야구의 최강자를 뽑으면서 '월드 시리즈'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배경에는 미국 특유의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이 바뀐 것은 지난주, 뉴욕 양키스의 승리로 막을 내린 올해의 월드 시리즈를 보고 나서다.
이번 월드 시리즈의 MVP는 일본 출신의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가 차지했다. 6차전에서 홈런·1루타·2루타를 몰아치며 6타점을 기록한 것이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쓰이가 홈런을 날린 뉴욕 양키스 신(新)구장의 우측 펜스에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을 홍보하는 '讀賣新聞' 한자(漢字) 광고판이 빛나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에 패했지만 선전(善戰)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는 한국의 박찬호 선수가 있었다. 그는 총 4경기에 나와 자책점을 기록하지 않은 채 중간계투를 훌륭히 해냈다. 같은 팀의 선발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Martinez)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17년째 메이저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미국의 사회는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미국인들과 경쟁하는 월드 시리즈를 닮았다. 인종에 상관없이 최우수 실력을 갖춘 이들이 벌이는 각축장이다. 실력이 문제가 될 뿐,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는 표현이 진부하지 않다. 이번 월드 시리즈가 끝난 후, "왜 일본 출신의 마쓰이가 월드 시리즈의 MVP가 됐느냐"는 문제 제기는 없었다.
미국에는 야구 외에도 진취적이고 실력 있는 젊은 이방인(異邦人)들의 도전과 개척을 기다리는 영역이 많이 존재한다. 지난달, 로버트 게이츠(Gates) 국방장관의 방한 당시 동행했던 기자는 그의 전용기가 내린 김포공항에서 용산 미군 기지까지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시와 인근의 고양시, 김포시 일대는 2년 반 전에 비해 더 건물이 밀집해진 느낌이었다. 시야(視野)가 미치는 야산(野山)에는 어김없이 허리까지 아파트가 올라와 있었다.
버지니아주의 댈러스 공항과 워싱턴 DC의 레이건 공항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미국은 확연히 다르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녹지(綠地)가 많이 보인다. 띄엄띄엄 땅바닥에 바짝 달라붙은 인가(人家)를 보면서 '부럽다, 부럽다'는 탄성을 속으로 내지르곤 한다. 어딜 봐도 감탄이 나오는 미국의 녹지는 그만큼 개척할 기회가 많이 남아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취업난으로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과감히 눈을 해외로 돌려볼 것을 권한다. 좁아터진 한국에서 취업할 곳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미국을 뚫어보라. 소수 인종이 혜택을 받는 시스템이 한국보다는 비교할 수 없게 잘돼 있다. 미국의 정보통신업체 STG의 이수동 회장도 바로 이 혜택을 활용해서 미국인 직원 1700명을 고용하는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해가 다르게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격상(格上)되고 있는 것도 좋은 기회다. 주말에는 삼성전자의 TV로 풋볼을 시청하다가 현대 자동차로 출근을 해서 LG전자의 휴대폰으로 일을 처리하는 미국인들이 낯설지 않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중국과 일본, 유럽과 동남아, 중남미에서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국(異國)에서의 도전이 한국보다 쉬울 리는 없다. 하지만 경쟁률이 세계 최고에 육박하는 한국에서 하는 노력을 외국에서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젊은 세대의 국제적인 경험이 축적되면 곧 다가올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북한 재건(再建) 사업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한국의 '코리안 시리즈'에만 안주하지 말고 '월드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전할 때다.
6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대원국제중학교 강당. 1단계 전형 합격 통지를 받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 267명이 손에 각각 파랑·빨강·초록색 탁구공을 들고 모여 앉았다. 학생 옆에는 학부모가 한 명씩 앉아 있었다.이윽고 무대 위에서 김일형 교장이 가운데 놓인 하얀색 나무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하얀 장갑을 낀 김 교장의 손이 상자에 들어갔다가,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꺼낸 공은 파란색이었다. 김 교장과 같은 파란 탁구공을 들고 강당 왼쪽편에 앉아 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 들며 "와" 하는 환호성을 질렀다.그 순간 강당 가운데와 오른쪽에서 빨강·초록공을 들고 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추첨 전 빨간 공을 보여주며 "어제 좋은 꿈을 꿨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던 이모(12)군의 눈엔 눈물이 고였고, 손을 모아 기도하던 최모(12)양은 손에 쥔 초록색 공을 힘없이 떨어뜨렸다.같은 시각, 서울 강북구의 영훈국제중은 탁구공 대신 구슬 추첨으로 합격생을 뽑았다. 글로벌 리더가 될 아이들에게 수월성(엘리트) 교육을 시키려 만든 국제중이, 정작 학생 선발을 운(運)에 맡긴 것이다.두 국제중의 '3배수 선발 후 추첨' 방식은 입시 경쟁을 과열시킨다는 비판을 피하려 서울시교육청이 만들어 낸 '꼼수'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2월 신입생을 선발하는 자율고 13곳도 컴퓨터 추첨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외국어고도 추첨 선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대원국제중의 추첨식이 끝나자 파란 공을 쥔 아이들과 부모는 저마다 강당 무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반면 다른 3분의 2의 학생과 학부모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강당을 빠져나왔다. 탈락한 여학생 2명이 강당 밖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흐느끼는 모습도 보였다.이날 추첨 직전, 김 교장은 학생들에게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월드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학부모 강모(39)씨는 "아이들에게 '인생은 로또'라고 가르친 셈"이라고 했다.
- 오현석·사회정책부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는 울릉도를 방문한 뒤 도동항에서 작은 경비정에 올라 앞바다에 떠 있는 함정으로 떠났다. 풍랑에 경비정이 뒤집히려 하자 해군 참모총장이 "뛰어내리자"고 외쳤다. 박정희도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흠뻑 젖은 채 학동항으로 옮겨 경비정을 탔고, 줄사다리로 함정에 오를 때도 파도가 덮쳐 비틀거렸다. 연이어 위기를 넘긴 그가 말했다. "이래서 국가원수가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군."(조갑제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
▶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인도교를 넘던 쿠데타군이 다리 북단 헌병들의 총격에 막히자 소장 박정희는 차에서 내려 걸었다. 총알이 옆으로 쌩쌩 날아가는데 상체도 숙이지 않았다. 그는 "총알이 사람을 피하는 것이지, 사람이 총알을 피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아내가 저격당한 지 2분 만에 대통령 박정희는 다시 연단에 섰다. "여러분, 하던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그는 5분 넘게 연설문을 끝까지 읽고는 "감사합니다"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 박정희의 어머니는 며느리를 둘이나 본 마흔넷에 딸과 함께 임신한 것이 부끄러웠다. 아기를 지우려고 간장을 사발째 마셨고 장작더미에서 뛰어내렸다. 박정희는 뱃속에서부터 평생 죽음과 등을 대고 살았다. 1949년 군 내부 남로당 숙군(肅軍) 때는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일기에 충무공 말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를 써두곤 했다.
▶ 1977년 박정희는 대구사범 시절 일본인 은사를 만나 "언제나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총으로 권력을 잡았기에 그 총구가 자기를 겨눌 것이라 각오하고 살았다. 침대 발치에 카빈 소총 두 자루를 세워놓고 자던 그가 1979년 가을 카빈을 치웠다. 한 달 뒤 10월 26일 궁정동에서 그는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나는 괜찮아"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배석했던 여성은 그가 "체념한 듯 담담했다"고 전했다.
▶ 박정희는 "가난은 내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했다. "가난이라는 스승 밑에서 배운 수백만 동문이 있는 이상 쉴 수도 후퇴할 수도 없다"며 경제개발을 밀어붙였다. 가난과 죽음은 그의 두 동력원(源)이었다. 박정희는 1965년 이승만 영결식 조사(弔辭)에서 "실정(失政)이 박사의 애국정신을 말살하지 못한다. 박사의 민족을 위한 생애 중 일부분일망정 전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 조사가 새삼스럽게 들리는 요즈음이다. 어제가 박정희 30주기(周忌)였다.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이번에는 "혹시" 했던 국제사회의 북핵 대응이 "역시"로 가고 있다. 중국이 북핵 폐기를 위해 북한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 명확한 이상 북한이 궁지에 몰려 핵을 버릴 것이란 희망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일괄 타결 구상이나 미국의 포괄적 타결 구상은 아직은 먼 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북핵 폐기는 어떤 경우든 북한이 항복하는 형식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대타결의 상황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경제 지원 정도를 받고 생명과도 같은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본다면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다. 이 대타결 국면에서 우리는 매우 곤란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정치·군사적 문제와 맞닥뜨려야 한다.
김정일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북·미 회담 결과에 따라 6자회담에 복귀할 뜻을 밝히면서 "북·미 간 적대관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핵 문제 해결의 전제 조건을 분명히 했다. 그에 대한 설명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했다. 노동신문은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라면서 미·북 간 평화협정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방도의 하나"라고 했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미·북 간 평화협정 체결은 한·미 동맹을 종료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것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1월과 2월 평양을 방문했던 미국의 전직 관료와 북한문제 전문가들에게 '과감한 딜'을 하자면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료,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거와 한·미 동맹을 끝내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말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종료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은 우리 당국자들도 언급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와 북핵 문제 전망' 간담회에서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며 "북한이 얘기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는 미·북 평화협정과 그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라고 했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한·미가 받을 리 없는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핵 포기를 거부하기 위해 내놓는 핑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북핵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가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은 적은 없다. 겉으로 내놓는 미국의 공식 입장이 무엇이건 간에 미국이 북핵 제거와 주한미군 주둔 중 어느 것이 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를 한번쯤 비교해 보게 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없이도 한반도 전쟁 억지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북핵과 주한미군을 교환하는 거래는 가상의 차원에서 현실의 문제로 대두할 수도 있다. 미군 전력이 점차 해·공군 위주로 바뀌고 있고 주일미군과 괌 기지가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한국에 지상 기지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잃어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미국에서 "북핵 문제는 상호 적대적인 입장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담당관)는 식의 말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그냥 흘려 들을 것만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주한미군 철수를 무조건 환영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결국은 주한미군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기울 것이다. 일본도 북핵보다는 주한미군 철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경우 이 문제에서 한국만 홀로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 입장에서 북핵 제거보다는 전쟁 억지가 더 눈 앞의 국익이다.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북핵과 주한미군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의를 꺼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가 대북 협상에서 언제까지나 우리의 급소이자 근본적 약점이 될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주한미군이 없으면 전쟁 불안이 일고 북핵이 없어지지 않으면 핵공포 속에 통일은 불가능해진다. 이 딜레마는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은 6자회담의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에 모두 명문화돼 있다.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기 전에 어디에선가는 통일 상황까지를 염두에 둔 장기적 전략 검토와 대응 준비가 이뤄지고 있어야 한다.
- 양상훈·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