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홈 |  기자 블로그 |  새로운 글 |  Blog뉴스 |  카페  |  사진마을 블로그 개설 |  랜덤 블로그
와플클럽
blog.chosun.com/wapleclub
 
와플클럽 (wapleclub)
와플클럽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플클럽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분은 여기에서 신청해주세요.
현명한 사람들의 선택 와플레터(와플 Waple은 현명한 사람 Wise People을 의미합니다)
전체게시물 (1465)
와플클럽2009   
와플클럽2008  
Waple Issue  
Waple World  
Waple View   
Waple Hero  
Waple culture  
블로그 라이브  
알려드립니다  
뉴스 엮인글  
뉴스 스크랩  
 
Today  1988    / Total  2430583
  
Waple World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밖에서도 거듭나야 할 한국 사회    2009/11/06 10:40 추천 3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wapleclub/4299405

현명한 사람(Wise People) 님께 드리는 와플레터 서비스입니다


밖에서도 거듭나야 할 한국 사회
 


태국의 수도 방콕의 시내 중심가에는 '수쿰빗(Sukhumvit) 플라자'로 불리는 한인 타운이 있다. 'ㄷ' 자 모양의 4층짜리 건물들 안에는 식당, 부동산, 의원, 노래방, 약국, 만홧가게, PC방, 미용실, 사우나, 골프교실 등 50여개 상점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 7년째 식당을 하는 N(46)씨는 최근 "태국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대가 총리 공관을 점령했던 작년 8월, 방콕의 2개 공항을 점거했던 11월, 파타야의 아세안 회의장을 박살 냈던 올 4월에도 이 식당을 찾았다. 그때마다 활기가 넘치던 그녀는 이번엔 달랐다. 한국에 돌아갈까 조금만 더 버텨볼까 고민하느라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그녀에게 3주 전쯤 정해문(鄭海文) 대사가 전화를 했다. "이제 11월부터 여행 시즌이 시작되면 상황이 나아질 테니 조금만 더 참고 힘내세요." 그녀는 "이국 땅에서 한국 정부의 대표가 위로 전화를 해주니 눈물이 핑 돌더라"며 "얼마나 힘들면 전화 한 통에 눈물이 나겠느냐"고 했다. 요즈음 정 대사는 N씨처럼 힘들어하는 태국 교민들에게 위로 전화를 돌리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태국 교민사회의 어려움은 통계가 말해준다. 한국관광공사 방콕지사에 따르면 2006년 109만명이던 한국인 관광객은 2007년 108만명, 지난해 89만명, 올해 8월까지는 43만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도 40%나 줄었다. 태국여행자협회(ATTA)의 집계는 더 심각하다. 올 들어 9월 20일까지 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평균 30% 감소했다. 이 중 한국인 관광객은 -55.1%를 기록, 일본(-40.5%)이나 중국(-40%), 러시아(-22%)를 앞지르며 최대의 감소 폭을 기록했다.


한태교류센터(KTCC)의 이유현 대표는 ▲ 반정부 시위대가 작년 9월과 11월 푸껫공항과 방콕공항을 잇달아 폐쇄시킨 일 ▲ 지난해 태국의 바트(Baht)화가 15~20%가량 강세였던 일 ▲ 올 4월 파타야 정상회의장을 시위대가 점거한 일 ▲ 올 8월 태국을 여행한 50대 남성이 귀국 후 한국 최초의 신종플루 사망자가 된 일 등을 악재로 꼽았다.


아피싯(Abhisit)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지난달 1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 형제자매 여러분의 안전과 편의는 총리인 제가 보장합니다. 마음 놓고 언제든 놀러 오세요"라고 말했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리면서 태국으로의 여행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교민 3만명 중 70%가 여행업과 식당 및 여행 관련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태국 교민사회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재작년까지 성업 중이던 150여개의 여행사 중 현재 정상 영업을 하는 곳은 30~40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3000~4000명에 이르던 관광 가이드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고 수백명 남은 가이드들도 일하는 날이 드물다. 수쿰빗 거리의 한인 식당가는 식사시간에도 한적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류(韓流)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태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한다는 점이다. 태국인은 2005년 11만2000명, 2006년 12만8000명, 2007년 14만6000명, 지난해 16만명이 한국을 다녀갔고 올해도 5.9%의 상승세다.


여행사를 하는 한 교민은 "교민의 70%가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매달리던 태국 교민사회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며 "이번 기회에 태국을 '덤핑 관광' '강제 쇼핑' 등으로 얼룩지게 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다양한 업종이 공존하는 교민사회로 거듭 태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국을 다녀온 많은 이들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  - 이항수 홍콩특파원

  •  

     






      댓글 (1)  |  엮인글 (0)
    한국을 라이벌로 보기 시작한 일본    2009/11/05 11:10 추천 10    스크랩 3
    http://blog.chosun.com/wapleclub/4297306

    현명한 사람(Wise People) 님께 드리는 와플레터 서비스입니다


    한국을 라이벌로 보기 시작한 일본
     


    지난주 도쿄 출장길에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간부는 "일본 정치가 이제야 겨우 한국을 따라잡았다"고 했다. 자민당의 50여년 장기집권이 무너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는 한국 정치를 '3류'라 하지만, 그래도 정권교체 경험만큼은 일본보다 11년 빨랐다. 이게 일본 눈엔 부러웠던 모양이다.


    서점에서 펴본 극우 성향 시사지('SAPIO')엔 일본의 스포츠가 왜 한국에 밀리는지 '개탄'하는 특집이 실렸다. 몇몇 잡지는 김연아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고, 신문들은 일본 전자업계와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대서특필한다. 정치·경제에서 스포츠까지, 일본은 내놓고 한국을 '라이벌'로 삼고 있었다.

     

    10년 전쯤, 내가 도쿄 특파원 시절 보았던 TV 방송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일본 고교생들에게 지도를 주면서 한국이 어디 있는지 찍어보라고 했다. 그 결과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한국의 위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고, 심지어 아프리카 언저리를 짚는 학생까지 있었다.


    일본 고교생의 지리 실력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일본 사회는 오만한 경제대국이었고, 한국은 안중(眼中)에도 없었다. 평균적인 일본인이 가진 한국 이미지를 요약하면 '성수대교가 무너진 개도국' 정도 됐다. 일본 총리 부인이 한류 팬임을 자처하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드나, 불과 몇년 전까지만도 우리 위상이 그랬다.


    내 기억으로 일본이 한국을 라이벌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일본이 아날로그 성공체험에 취해 있는 사이, 우리는 디지털 혁명에 성공적으로 올라탔다. 한류 붐이 있었고, IMF 사태 덕에 강해진 대기업들의 약진이 더해졌다. 그 짧은 기간에 일본의 턱밑까지 따라붙었으니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렇다고 우쭐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성장 전략은 일본 하던 것을 그대로 쫓아가는 방식일 뿐이었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일본의 돈과 기술을 들여오고 일본식 제도와 노하우를 베껴다 압축 성장을 이뤘다. 그렇게 40여년을 열심히 뛴 결과 일본과의 격차를 가시권 안으로 좁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한·일의 국력 경쟁은 게임의 룰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일본이 우리를 라이벌로 여기는 순간,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기존 방식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거대 일본이 정색하고 달려들 때 과연 이겨낼 역량이 되는가. 일본 '추격'은 성공했지만,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 '추월'의 전략이 있는가.


    얼마 전 방한한 전신애 전(前) 미 노동부 차관보의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미국 정부의 인재 정책을 오래 담당했던 그는 "한국의 '지적(知的) 에너지'가 일본을 능가했다"고 잘라 말했다(주간조선 인터뷰). "일본 젊은이가 어디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단연 한국의 젊은 세대다. 한국의 청년들은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의 상위권을 휩쓸고, 비보이(브레이크댄스)·e스포츠·온라인게임에서 세계를 리드한다. 가수 '비'로 상징되는 한류 전사, 김연아·여자 골퍼들로 대표되는 스포츠 전사들은 일본의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과거의 일본은 실용적 혁신성으로 가득 찬 나라였다. 일본의 구(舊)세대는 컵라면과 워크맨과 가라오케를 창안해내며 세계의 이노베이션을 주도했다. 그러나 화려했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일본의 젊은 세대는, 패기도 창의성도 그만 못하다. 차세대 인재 경쟁력은 분명 우리가 앞선다.


    까마득하게 앞서가던 일본을 이 정도까지 따라잡은 것은 아버지 세대의 분투 덕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본 추월'을 이뤄내느냐는 이제 다음 세대의 몫이 됐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  - 박정훈 사회정책부장

  •  

     






      댓글 (5)  |  엮인글 (0)
    네팔 공항 앞 북한 아가씨들    2009/11/04 10:50 추천 16    스크랩 6
    http://blog.chosun.com/wapleclub/4295172

    현명한 사람(Wise People) 님께 드리는 와플레터 서비스입니다


    네팔 공항 앞 북한 아가씨들
     


    네팔 카트만두 공항 바깥으로 나오니, 하얀 스커트 차림의 '우리' 아가씨들이 도열해 있었다. 같은 비행기에 VIP가 탔구나. 환영 행사가 진행될 줄 알았는데, 내게 전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한번 꼭 들르세요. 평양 옥류관에서 하는 음식 그대로입니다. 맛있습네다."

     

    전단에는 '옥류관' 상호 아래 육개장, 김치찌개, 문어 절임, 냉면 등의 음식 그림과 시설이 완비된 노래방이 인쇄돼 있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월·금) 한국서 들어오는 KAL기의 도착 시각에 맞춰 공항까지 나와 '서울 손님'을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마중 나온 현지 여행사 사장이 무심하게 말했다.
    "저 아가씨들 시내 쇼핑센터 앞에서도 전단을 돌려요. 주로 노래방 찾는 손님들이 갑니다. 북한 아가씨들이 들어와 같이 놀아요."


    전단의 기억이 선명해, 귀국 전날 밤 '옥류관'에 갔다. 여종업원들은 10명 남짓 됐다. 이들은 출신성분이 좋은 집안에다 외국어대나 예능 대학을 마쳐야 선발된다. 북한 안에서는 선망(羨望)의 엘리트다. 저녁 식사를 거의 마칠 즈음, 여종업원이 방긋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쇼를 할 겁니다. 보고 가십시오."


    식점에는 우리 일행까지 포함해 단 3개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두 테이블은 중국 손님들이었다. 한쪽에 설치된 무대에서 한국·북한·일본·중국 노래와 팝송 등 '글로벌한' 노래를 돌아가면서 불렀다. 전기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고, 그때그때 모자와 미니스커트와 드레스를 갈아입고 춤을 췄다.


    이 북한의 엘리트 아가씨들이 펼치는 '쇼'를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상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체제의 '외화벌이'를 위해 공항까지 나가 전단을 돌리고 겨우 몇천원짜리 밥 먹는 자리에서 이런 공연까지 하는가. 내 딸자식이 저렇다면 참을 수 있을까. 이들이 선발된 존재라면, 선발되지 못한 주민들 삶의 비참함은 어떤가. 이런 체제를 언제까지 우리는 곁에서 방관해야 하는가."


    하지만 어느 세월에 '북한 주민의 인권'은 우리에게 너무 진부해졌다. 고문과 공개처형, 강제수용소의 증언에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고, 인신매매됐던 탈북 여성의 눈물 앞에도 우리는 분개하지 않는다. 지금 북한 주민 3분의 1이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소식에도 우리는 안타까움이 없다. 장마당에 나가는 걸 막으려고 북한여성들을 '자전거 못 타고 바지 못 입게' 했다는 유엔보고서도 그냥 '해외토픽'처럼 여긴다.


    10년의 '좌파' 정권이 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한 것은 다 안다. 당시의 주류 지식인들과 '정의'를 부르짖는 운동권들이 "북한 인권을 말하는 것은 남북 화해를 해치는 것" "그건 내정간섭"이라며 결탁했다.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 일부 양심세력이 이에 맞섬으로써 북한 인권은 더 많이 시끄럽게 사회적 논쟁이 됐기 때문이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 사례를 수집해 나중에라도 형사소추하겠다는 서독의 '잘츠기터' 같은 기구를 만들 의지는 없다. 단지 북한 인권 활동을 둘러싼 마찰과 투쟁, 파열음이 사라졌을 뿐이다. 북한인권단체끼리의 세미나는 좀 더 편안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권에서는 멀어졌다. 마치 유행이 다한 것처럼. 지난 정권에서는 북한 인권이 버림받았다면, 현 정권에서는 잊힌 격이다. 연애소설에는 "실연당한 여인보다 잊힌 여인이 더 불행하다"고 한다."


    무슨 섭섭한 소릴" 하며 현 정권은 '공적'을 내세울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눈치 보면서 기권했던 대북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인권상도 줬다. 또 인도적 차원에서 (80만t의 쌀이 부족한 북한에) 옥수수 1만t을 보내주기로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지만 현 정권이 '북한 주민들이 현재 처한 삶'에 대해 직접 관심을 표한 적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핵문제와 6자회담만 반복했을 뿐이다. 미국 국무부에서, 저 멀리 떨어진 북유럽 나라에서도 우려를 표시하는 북한 인권 유린 상황은 화제에서 빠져 있다. 먼저 앞장서 "당신들의 아침은 안녕한가?" 살펴야 할 당사자가 우리 정부라는 점에 대해 여전히 인식이 없다.


    우리 대통령이 역사적 소명을 가졌다면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들 편에 늘 우리가 있다. 당신들은 인간으로서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을 벌써 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위에서 관심이 없으니, 자기 먹고살기에도 바쁜 일반 대중들이야 당연히 관심 밖이다. 언젠가 참혹한 고통의 질곡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면 "그때 당신은 왜 우리에게 침묵했나?"고 틀림없이 물을 것이다.

                     

     

     

  •  - 최보식 선임기자

  •  

     






      댓글 (6)  |  엮인글 (0)
    미(美) 경제거품, 아시아 수출 탓 아니다    2009/11/03 13:28 추천 3    스크랩 3
    http://blog.chosun.com/wapleclub/4293214

    현명한 사람(Wise People) 님께 드리는 와플레터 서비스입니다


    미(美) 경제거품, 아시아 수출 탓 아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달 아시아를 향해 작심한 듯 포문을 열었다. "아시아의 수출 주도 성장정책과 그로 인한 글로벌 불균형이 미국 경제에 거품을 일으켰다. 지난 1년간 국제무역이 위축돼 불균형이 다소 완화됐지만 최근 아시아 경제가 살아나면서 불균형이 다시 심화되고 이게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그는 "인위적인 수출 인센티브 정책이 국내산업과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장기적으로 자국민의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면서 아시아 국가들이 내수 진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9월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앞장서 '글로벌 불균형 시정'을 합의문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 버냉키 의장이 아시아를 향해 "그 약속을 지키라"고 또 한 번 다그쳤다.

     

    물론 그의 지적엔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다. 수출 위주 정책이 재화와 자원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서비스 산업 등 내수 부문의 발전을 위축시킨다는 점, 아시아 국가들이 높은 수출의존도 탓에 세계 경제가 조금만 휘청거려도 심한 몸살을 앓는다는 점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아시아 스스로도 문제의식을 느껴온 터다.

     

    그러나 '아시아가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대미 무역흑자로 미 국채를 사들였고, 그렇게 쏟아져 들어온 돈이 미국 거품을 만들었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가 알듯 미 경제의 거품은 기본적으로 사상 최저 금리정책 탓이다.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2000년 닷컴 거품이 붕괴된 뒤 경기부양을 이유로 연방기준 금리를 13차례에 걸쳐 6%에서 1.25%까지 떨어뜨렸다. 1%대 저금리는 2004년까지 갔다. 그 바람에 값싼 은행 돈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주택 수요가 늘자 집값도 뛰었다. 사두면 돈 번다는 생각에 신용과 소득이 부족한 중하위 계층까지 너도나도 집을 사들였다.

     

    월가(街)는 또 어떠했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부실채권들을 이리저리 섞고 쪼개서 만든 정체불명의 파생상품을 첨단금융상품으로 포장해 사고팔면서 금융시장을 투기판으로 몰아가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미국 경제의 거품을 만든 건 미국인의 '도덕적 해이'와 월가의 '탐욕'이었지 아시아의 수출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미국은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불균형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질 않았다. 무역적자가 한 해 8000억달러를 넘어도 아시아와 유럽에서 흘러들어온 막대한 자본수지 흑자가 이를 메우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대표적 달러 건재론자인 리처드 쿠퍼 하버드대학 교수 같은 이는 "미국이 해외의 달러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금융시장을 갖고 있는 한, 무역수지 적자는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무역 역조를 해소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의 통화가치를 급격히 절상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그렇게 해봐야 불균형을 바로잡는 효과가 미미하고 투기성 핫머니가 아시아 국가를 공격할 기회만 줘 세계 경제가 동반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랬던 미국이 태도를 바꾼 건 금융위기 후 미국 금융시장이 더 이상 무역적자를 메우는 돈줄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각국이 미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면서 1조달러 흑자를 자랑하던 자본수지는 적자로 돌아서는 걸 걱정해야 할 판이다.

     

    과도한 글로벌 불균형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교역상대국에 일방적으로 책임과 희생을 떠넘기는 식이어선 안 된다. 거품과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부터 쌍둥이 적자를 줄이고 금융시장을 매력적으로 개혁하는 노력과 책임 분담의 자세를 보이면서 국제사회에 공조를 요청해야 한다. 그게 미국 경제도 살고 세계 경제도 사는 길이다.                   

     

     

  •  - 이 준·논설위원

  •  

     






      댓글 (2)  |  엮인글 (0)
    참고할 만한 '칠레식 부양 정책'    2009/10/13 11:07 추천 13    스크랩 8
    http://blog.chosun.com/wapleclub/4250194

    현명한 사람(Wise People) 님께 드리는 와플레터 서비스입니다


    참고할 만한 '칠레식 부양 정책'
     


    "이것이 칠레식 경기 부양책입니다."(지난 8월 6일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건설회사 CEO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이 실시한 한국식 경기부양책은 4대강 살리기와 같은 대규모 건설예산 편성과 각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조기집행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소아과 의사이자 아이 셋을 혼자 키운 '싱글맘' 바첼레트 대통령이 말한 칠레식 경기부양책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가 있는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칠레는 지난 3월과 8월 경기부양을 위해 아이를 가진 저소득층에 가구당 약 70달러의 '가족 보너스'를 지급했다. 경기침체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영자신문 산티아고타임스는 "칠레의 어머니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이 정책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물론 칠레도 우리처럼 각종 건설 사업과 광산개발 사업 등으로 경기부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바첼레트 대통령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머니와 어린이'에 있다는 점을 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06년엔 0~4세 어린이들에게 급식과 의료, 교육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선언해 단번에 하락하던 출산율을 반전시키기도 했다.

     

    칠레는 또 지난 7월 '어머니 연금 제도'를 만들었다. 칠레에선 지난 7월부터 빈부(貧富)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정부가 약 600달러를 준다. 그러나 이 돈은 65세가 되기 전까지는 찾을 수 없고 대신 연금보험회사에 투자된다. 보험회사는 국채 수익률에 맞춰 돈을 굴리고 수십년 뒤 연금 수령시점이 되면 매달 나눠 어머니에게 돈을 지급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정부가 아이디어를 짜내 장기적으로 혜택이 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나랏빚을 늘리지도 않았다. 구리와 농산물이 주요 수출품인 칠레는 원자재 가격이 폭등할 때도 정부 지출을 늘리지 않고, 불황을 대비해 지난해까지 칠레 총생산의 15%가 넘는 200억달러 이상을 곳간에 쌓아놓고 있었다. 칠레는 이 돈을 기반으로 남미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고 있다.

     

    중도 친서민 정책의 정치적 성공으로 지지율이 50% 안팎에 이른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축하의 폭탄주를 돌릴 때, 임기를 석 달 앞둔 바첼레트 대통령이 지지율은 칠레 역사상 가장 높은 76%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든 '통 큰' 아버지 이명박 대통령이 '짠순이 어머니' 바첼레트 대통령을 배울 필요가 있는 이유다.

                       

     

  •  - 칠레 산티아고=조의준 특파원

  •  

     






      댓글 (2)  |  엮인글 (0)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