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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1[3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318/318/1/%BB%E7%C1%F8_1%5B31%5D.jpg)
90년대 중반. 방송작가 교육원에서 수강을 할 때 작가협회에서 나오는 협회보를 무료로 받아볼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중년의 작가분의 짧은 수필 한편이 실린걸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대략 이랬습니다. 가까운 친척 한분이 돌아가셨다. 친척이라고는 하나 왕래는 거의 없는 명절정도에나 이따금씩 보는 그런분이고, 나이 50이 넘도록 변변한 직장하나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내는 그런 폐인 정도로만 평소 알고있는 그런 친척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친척이니 문상을 갔다가 뜻밖에 그 동네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문상을 온것을 보고 의외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그 친척분이 젊은시절 붓글씨를 좀 배웠는데 그 실력으로 종종 동네 주민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상이나 제사가 있을때 축문등을 직접 써주었다고 하고 그것에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문상을 온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수필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선 함부로 판단할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의미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습니다. ' 세상에 이런일이 '나 ' 인간극장 '같은데서 종종 남다른 외길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어떤 분야에서든 이 사회에 작은 봉사나 헌신을 하는 모습들. 그런 삶들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감동도 하고 때로는 나도 저런 삶을 살아봐야지 하고 소망한적이 있습니다. 무슨일을 하든 이 사회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는 그런것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 그런 값진 삶을 살수만 있다면...
앞서 소개한 그 방송작가분의 수필에 실린 그분의 친척 이야기도 그런 의미에서 제겐 작은 하지만 깊은 충격과 인상을 남긴 일화였습니다.
실은 얼마전 조금 먼 친척분의 상을 당했습니다. 제게는 육촌,팔촌뻘쯤 되는 친척 동생들을 오랫만에 만나볼수 있었습니다. 촌수는 멀지만 어린시절엔 그런대로 왕래가 잦은 편이었는데,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되면서 각자의 삶에 바쁘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식은 멀어진 사람들...
어린시절엔 저와 터울이 꽤 지는 친척동생들을 무척이나 귀여워했는데...갓 태어난 아기가 조금 지나서 보면 이목구비가 조금씩 잡혀져가고 손가락 발가락도 커져가고...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기어다니고 걷게 되고 말도 하는 그 모습들이 어찌나 신기했는지.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로 시작되는 동요를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 아빠빠빠... ' 이렇게 부르던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노래에 사람들이 박수를 안 쳐주면 자기혼자 박수를 쳐보고는 ' 미~~~~~~워 '하며 뾰루퉁해지던 아기. - 90년대 중반 한참 하이텔에서 채팅을 할때 사람들이 저한테 관심을 안 가져다주면 종종 그 시절 그 아기 말투를 흉내내 ' 미~~~워 '라는 문자를 적기도 햇는데...하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그 의미를 몰랐을겁니다.
아무튼 어느새 그 아이도 20대 중반의 숙녀가 되어있더군요. 유난히 눈이 컸던게 인상적인 친척동생도 하나 있었는데 성인이 된 그 아이는 상당한 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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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아이들한텐 내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바로 그 90년대 중반 접한 방송작가분의 수필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솔직히 그 작가분이 그분의 친척에 대해 수필에 언급한 표현처럼 ' 나이가 꽤 되었지면 변변한 직장도 없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폐인 ' 정도로 기억된것은 아닌가 하는...
학창시절에도 워낙 말수도 적고 친구도 없었던 나. 때론 그래서 바보로 놀림받던...그러다 부질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허망한 시간을 보낸 나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시절..." 완전히 신들렸어 ! " 부질없는 열정에 사로잡혔던 그 시간 어떤 여자분이 저를 지칭하며 한 소리였습니다. 그 짧은 표현만으로는 상황이 이해되기 힘들테니 부연설명을 하자면 어쨌든 평범한 일상인들의 눈엔 저의 선택한 그 길이 그리고 그 공간이 그리고 저의 행각이 ' 비정상적 '으로 보였다는것을 함축하는 표현이었던 것 입니다.
뉴라이트 닷컴에 주사파 시절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회한의 글을 종종 남기는 논객이 계십니다. - 꽤 유명한 분이죠 ^^ - 한번은 그분의 글을 읽고나서 그런 댓글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고...당신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나 역시 한때 부질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허망한 시간을 보낸일이 있기에 그 과거의 짓눌림에 고통받는 심경을 이해할것 같다고...
저야 4년제 대학에 들어갔던것도 아니고, 따라서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종종 제가 인터넷에 남기는 글들을 보며 그 세대들이 대개 그러했든 젊은시절 운동권 물 좀 먹었나보다 짐작하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가진 과거에 대한 회한과 통한은 그런 운동권 출신들하고는 성격이 틀린 것 입니다. 그 무슨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 같은것도 - 뉴라이트 닷컴의 모 씨 같은 분이 보면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은 그래도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열정을 불사르거나 혹은 우리 사회의 불우하고 소외된곳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때. 그때 그 시간 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 광주에서 시민군이 그 무슨 신군부한테 무참이 짖밟혀갈때 넌 그때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 ? ' 그런식의 물음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이 사회의 어떤 불우하고 소외된곳을 위해 헌신하거나 혹은 이 세상을 위해 의미있는 그 무엇을 이루어보고자 노력할때, 난 그 시간에 고작 부질없는 허상을 쫒아 헛된 시간을 보낸것이 그 시간이 아까와 후회하는 것이고 그 시간이 부끄럽고 서러워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우는것입니다. 때로는 악몽에 짓눌려 시달리기도 하는 것 입니다. - 따라서 나는 386세대한테 돌을 던져야할 이유같은것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네들의 영향권에선 그래도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던 사람이니까요. 하이텔할때 다운받은 노래방 프로그램을 통해 운동권 가요 몇곡 익힐기회가 있었던것 정도를 제외한다면요 ^^
![사진_3[15].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318/318/1/%BB%E7%C1%F8_3%5B15%5D.jpg)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면서 문득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 또한 죽고나면 저렇게 작은 함속의 유골로만 남게될것을.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어떤이들에 의해 입관이 되고 운구차에 실려 장지로 옮겨지고 화장이 되어 안치되거나 혹은 어떤 이름모를 산이나 강에 뼛가루가 되어 흩어지겠지...그 생각을 하니...내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나 혼자 후회하며 울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90년대 중반 나한테 전도하려 애썼던 하이텔 시절의 기독교 동호회 회원들을 실망시키게 되겠지만 (특히 날 위해 울면서 까지 기도했다던 하O빛 72의 S군, K군, H군, B모양, C모양 등등에겐 더더욱 ^^;;) 솔직히 죽은뒤에 천국이나 지옥같은것이 존재하기나 하는걸까 의문이 들때가 많습니다.
' 나비의 꿈 '이란 고사가 있지요 ? 꿈에서 깨고나니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의 꿈속에 내가 존재하는것인지 헷갈리더라는 이야기. 번민이 많은 탓인지 워낙 별 잡스런 꿈을 많이 꾸다보니 실제 그런 생각을 하게 될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꿈속에 내가 보는 세상이 저승 혹은 저 세상 그 자체가 아닐까.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나면 그 뒤에 천국이나 지옥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속에서 오만세상을 떠도는 나의 영혼처럼 죽임 그 이후에도 또다른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게 되는것은 아닐까하는. - 차라리 천국이나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같은 날라리 신자에겐 축복이 될 것 입니다 ^^;;
'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 조용필의 ' 킬리만자로의 표범 '에 나오는 노래가사입니다만, 차라리 그렇게 허망한 생이라면 이 세상에 살아있는동안 정말 이 사회를 위해 뭔가 의미있는 흔적이라도 남겨놓아야 할 것인데...
돌아오는길에 유난히 석양이 서글펐습니다. 사춘기 시절엔 석양의 노을이 공연히 저의 감성을 자극해 슬픔에 잠기게 만들곤 했었는데. 하지만 그날의 석양은 내 삶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그걸 곱씹어보느라 느끼는 서글픔이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그 방송작가분의 수필에 소개된 그 친척분 이야기. 나이 50 넘도록 변변한 직장없이 술로 세월보내다 허망하게 가신 그런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참 좋은일 하다 가신 분이라더라...수십년후 제 친척 동생들한테 최소한 그 정도 소리는 듣고싶은게...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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