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11.21 02:51
- ▲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세월이 흐를수록 나무에 담긴 사연이 잊히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고목나무 전설은 문화이자 歷史 자료지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됐다. 남한강 상류의 서강에 둘러싸인 이곳 솔숲에는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단종은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서울을 바라보면서 통곡했다고 한다. 그 비참한 모습을 지켜봤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슬픈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소리 음(音)'자를 붙인 나무다.
'나무 박사' 박상진(69) 경북대 명예교수가 펴낸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왕의서재)에는 나무에 얽힌 이런 사연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가 14년 동안 발품 팔아 확인한 전국의 문화재 나무에 얽힌 전설과 사연을 담은 책이다. 250여 천연기념물 고목나무와 숲 가운데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73개를 선별해 컬러사진과 함께 펼쳤다.
"녹음기를 들고 마을 이장이나 노인정을 찾아가 나무에 얽힌 전설과 사연들을 수집했습니다. 어르신들 얘기는 '~라더라' 한마디면 끝나버려요. 2~3차례 찾아가서 더 듣고, 인물과 마을 역사를 찾은 다음, 나무의 특징까지 넣어서 이야기를 엮은 거죠."
박 명예교수는 "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가 역사이자 문화"라며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나무에는 세상살이의 온갖 사연이 얽혀 있다"고 했다. "병을 낫게 해주고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되게 해주는 나무부터,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켜본 나무까지…. 고목나무 전설은 우리의 구전문화이며 때로는 역사의 편린을 꿰어맞출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는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이 이성계에 의해 쫓겨나 살다가 이 나무에서 교살됐다는 전설을 가진 음나무(천연기념물 제363호)가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직이 함양군수 시절 5살짜리 아들을 홍역으로 잃었는데 아이의 이름이 목아(木兒·나무 아이)였다는 얘기, 그가 이듬해 함양을 떠나면서 학사루라는 누각 앞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고 아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는 사연도 들려준다.
"흔히 문화재라면 탑이나 팔만대장경, 박물관 유리장 속의 금관만 생각할 뿐 '나무 문화재'라는 말엔 익숙지 않잖아요. 전국의 이름난 고목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나무 고고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그는 1963년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림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전남대, 경북대 교수로 지내며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재질 분석작업에 참여하는 등 나무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나무의 어떤 매력에 끌렸던 걸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는데, 담임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자네 같은 젊은이가 아니면 누가 한국의 헐벗은 산을 푸르게 만들겠나'. 그 한 마디가 제 인생을 바꿨죠. 어떤 사명감 같은 게 평생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을 압도하듯 사방으로 펼쳐진 나무들을 보면 세상사의 온갖 근심이 사라진다"며 "언제 찾아가도 늘 제자리에서, 덤덤히 맞아주는 나무의 큰 품을 잊지 못해 천 리 길도 마다않고 달려가게 된다"고 했다.
주말마다 떠나는 답사 파트너는 아내. "집사람이 조수예요. 요즘엔 내비게이션이 흔하지만 예전엔 그런 게 어딨어요? 저는 운전을 하니까 옆에서 길을 찾는 역할을 했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제 아내가 나무 박사 다 됐어요."
그는 "팔팔할 때는 전자 현미경 들여다보는게 일이었는데, 이제 나이 들어서 첨단 연구를 하기는 어렵고 일반인들에게 나무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나무 종류별로 최고의 나무들이 있는데, 일명 '얼짱 나무'들만 모아서 한 번 써볼까 해요. 소나무 중 최고, 은행나무 중 최고… 이렇게 묶어서 소개하면 사람들이 나무를 더 친근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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