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홈 |  기자 블로그 |  새로운 글 |  Blog뉴스 |  카페  |  사진마을 블로그 개설 |  랜덤 블로그
자동차 그리고 음악이 좋아서
blog.chosun.com/naltazzi
 
이상민 (naltazzi)
지금 착착 크게 키우고 있는 블로그예요 꺄악♡ 그리고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전체게시물 (445)
뉴스 스크랩  
뉴스 엮인글  
유럽경제동향  
음악수첩  
자동차 관련(~2007)  
자동차 관련(2008)  
자동차 관련(2009)  
이웃자료실  
 
Today  84    / Total  59923
  
음악수첩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링크스크랩]    [우리 시대의 애호가5]송주호 EBS 기술연구원    2009/07/31 01:2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naltazzi/4111965
 원문출처 : 아저씨, 클래식에서 길잃다
 원문링크 : http://blog.chosun.com/danpa/4110524
고백하자면,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글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언어는 세상을 비추는 도구임에 분명한데, 그의 글에서는 때때로 언어 자체가 세상인 듯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제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는 무척 울림이 길었습니다. 세 단락만 인용하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가가 지..>> 전체보기
인기 Blog뉴스 김성현 님 최근 게시물


  댓글 (1)  |  엮인글 (0)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공연후기    2008/12/11 06:24 추천 3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naltazzi/3550877

여기에 음악이 있다
名不虛傳
그리고 三位一體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2008년 11월 2일(일) 19시, LG아트센터
비발디, 르끌레르, 퍼셀 작품(총 6곡)
파비오 비온디/에우로파 갈란테

 

고음악에 대한 편견
 필자는 고음악의 애호가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독일 후기낭만파 음악가들의 열렬한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가에 대해 언급하면, 데이비드 먼로우(David Munrow), 쿠이켄(Kuijken) 형제, 조르디 사발(Jordi Savall),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 구스타프 레온하르트(Gustav Leonhardt), 크리스토퍼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 등의 고음악 탐구자들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브루너 발터(Bruno Walter),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한스 크나퍼츠부쉬(Hans Knappertsbusch) 등의 지휘자들을 동시에 거명한다. 이에 대해, 필자의 지인들은 의문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전혀 다른 시대의, 전혀 다른 정신의, 그리고 전혀 다른 편성의 음악을 어떻게 동시에 좋아할 수 있냐는 질문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되어서 개의치 않지만, 간혹 질문자들이 이렇게 반박한다면 그 때는 대답하기가 좀 힘들 때가 있었다—고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실력이 딸리지 않는가, 연주가 건조하고 힘이 없지 않는가? 사실 그런 면도 없지는 않았다.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 붐이 일었던 1950년대 당시의 연주가 요즘 나오는 퍼셀 연주보다 더욱 뛰어나고 듣고 싶어지는 것이 많은 점에서는 딱히 그 반박을 재반박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정상급 실력이라고 할 수 없던 연주자들이 정격연주의 세계로 뛰어드는 듯한 움직임도 포착되기도 하였고, 그래서 수준 이하의 녹음도 난무해서 음반값이 아깝다는 생각조차 들던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편견은 정격연주 초기의 시행착오였다고 간주해도 될 것이다.

 

 공연 관람 결정, 오판, 그리고 반성
 이 공연을 관람하는 이유는, LG아트센터 측의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퍼셀과 장-마리 르끌레르(Jean-Marie Leclair, 1697~1764)의 작품 때문이었지 비발디의 작품을 좋아해서도, 파비오 비온디의 팬이어서도 아니었다. 일단 들어왔던 비발디의 많은 협주곡 작품이 악기편성만 바꾼 수준이라고 말해도 좋을만큼 너무도 닮아—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조화의 영감 정도를 꼽을 만 하다—있기에 그리 큰 흥미가 가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의 이러한 속단은 파비오 비온디와 그의 현악앙상블 에우로파 갈란테가 첫 음표를 소리로 만들자마자 잘못되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연주곡은 모두 6곡으로, 비발디의 작품 4곡, 르끌레르의 바이올린 협주곡 C장조(Op. 7 No.3), 퍼셀의 압델라이저 모음곡이다. 전반부는 비발디의 두 작품 속에 르끌레르의 협주곡이 배치되어 있으며, 후반부는 퍼셀의 모음곡에 비발디의 두 작품이 연이어 연주된다. 공연책자는 구입했지만 일단 읽어보지 않고 연주부터 듣기로 했다.
 첫 작품이 프랑스풍의 신선한 느낌이라서 이게 당연히 르끌레르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책자를 보고 확인해 보니 비발디의 „세느강의 축제“ 중 신포니아 C장조(Sinfonia in C Major, from La Senna Festggiante)라는 곡이었다. 똑같은 곡만을 쓴 지루한 작곡가라고 평한 스트라빈스키의 말에 대해서는 „친절한금자씨“ 영화에 나온 비발디의 칸타타 „Cessante, Omai Cessante“ 중의 2악장 „Aria - Ah ch'infelice sempre(Larghetto & Andante molto)”를 접하면서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고 반박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비발디 음악에 썩 매력이 가는 것은 아니어서 일부러 비발디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 신포니아는 비발디가 프랑스풍의 기악곡을, 그것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과는 다른 곡도 쓸 수 있다는 증거임에는 틀림없다. 곡도 곡이지만, 어딘가 이탈리아의 대표적 현악 앙상블인 이 무지치(I Musici)를 연상하게끔 하는 요소가 있다. 정격연주가 힘없고 무미건조하다는 평도 여기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사용하는 첼로가 현대의 것과 다르게 접이식 발이 없어 완전히 무릎 사이에 끼고 연주해야 한다든지, 쳄발로에 더해 류트가 통주저음 악기로 추가되었다는 것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나중에 공연책자를 꼼꼼히 읽어 보니 역시 이 무지치의 영향이 읽히는 이유가 있었다. 파비오 비온디는 14세 때 팔레르모를 떠나 파르마로 간 후, 이 무지치의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마리아 카토니를 사사했다고 한다. 역시 걸출한 스승에서 배운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법이다. 바로 이것이 名不虛傳이 아니겠는가.

 

 이탈리아풍의 르끌레르 그리고 퍼셀
 르끌레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첫째 연주곡인 비발디의 신포니아와는 달리,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인데도 이탈리아의 색채가 느껴진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중에 찾아보니 프랑스 리용 출생이긴 한데 이탈리아의 토리노로 건너가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1716년에 거기서 결혼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1723년 파리로 돌아가 대중공연인 콩세르 스피리튀엘(Concert Spirituel)에서도 연주를 한다. 오히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귀화한 륄리보다도 이탈리아 색채가 더욱 느껴지는 것이, 곡의 정보를 전혀 모른 채 들으면 분명 이탈리아인이 쓴 작품이라고, 그리고 앞의 신포니아는 프랑스인이 쓴 작품이라고 오인할만큼 정확하게 뒤바뀌어 있다. 르끌레르의 작품에서 륄리, 라모, 쿠프랭 등을 기대했는데 결과물이 다르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오히려 프랑스인이 보고 재해석한 이탈리아적인 음악언어가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관용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더욱 좋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파비오 비온디는 책자의 사진보다는 흰 머리카락이며 흰 수염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멋있다. 단순한 듯 하면서도 다른 단원들과 조화를 이루는 검은색 계통의 무대의상이 단조롭지만도 않고 잘 어울린다. 다른 단원들도 성별을 가릴 것이 없이, 조금씩은 다르면서도 위화감이 없고, 공통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단조롭지 않게 무대의상을 잘 갖추었다. 상황에 따라 옷을 잘 입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나라 이탈리아다운 면모에서도 점수를 높이 주고 싶다.
 후반부의 첫째 곡인 퍼셀의 압델라이저 모음곡에서는, 약간 의외라고 해야 할까, 50년대 영국 음악가들의 퍼셀 해석이나, 90년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Freiburger Barockorchester)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연주 기량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좋기에 그것을 문제삼을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 특히 2번 론도와 6번 아리아의 경우가 위화감을 많이 느끼게 한다. 벤자민 브리튼이 인용해서 유명한 곡이기도 한 2번의 론도는 약간 늘어지는 것이, 비유를 하자면 무도회장에서 원무를 추는 여자 무용수가 한쪽 발을 끄는 듯한 감각을 주고 있다. 그리고 6번 아리아도 경쾌하게 노래를 하기 보다는 시칠리아노 풍으로 연주한 듯 하여, 우중충한 영국의 날씨에 익숙한 사람이 따뜻한 이탈리아의 날씨에 적응을 잘 못하여 조는 것 같이 약간 맥이 풀리는 감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유일하게 이 부분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주의 기량이 뛰어난 것과 감명깊은 해석을 보여주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하지만 완벽한 동의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하자.

 

 비올라 다모레, 그리고 아르농쿠르
 전반부에 세번째로 등장한 곡인 비발디의 비올라 다모레(Viola d’amore)와 류트협주곡 d단조(Concerto for Viola d’amore and Lute in d minor)는, 아직 한국의 음악애호가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비올족의 현악기에 대한 좋은 체험기회가 되었다.
 비올라 다모레는 „사랑의 비올라“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비올이라는 악기는 현재의 바이올린족 현악기의 조상인데 일관된 형식은 없지만 대체로 6개의 현을 가지고 있고 지판에는 기타와 같이 프렛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악기의 몸통 뒷판은 평평하다. 게다가 공명현이 있어서 음색에 독특한 깊이를 제공해 주며, 이와 같은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줄감개 부분이 다르게 생긴 것으로도 바로 알아 볼 수 있다. 바이올린에 비해 소리의 높이는 낮지만, 이름 그대로 음색은 많이 따뜻하고 계속 끌리는 편이다. 오보에 다모레(Oboe d’amore)를 접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이 악기는 현대에 들어서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의 작은 소나타, 그리고 비올라와 챔버오케스트라를 위한 실내악 6번(Kammermusik Nr. 6),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8)의 오페라 나비부인, 쥴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의 노트르담의 곡예사(Le jongleur de Notre-Dame) 등의 곡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비올라 다모레의 음색을 좋아하고 유튜브(YouTube) 등의 동영상 사이트 등을 통해 연주를 보기도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류트나 테오르보 등이 이전에도 많이 접했던 만큼 더 이상 낯선 악기가 아닌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보통 비올 음악은 인내심 없이는 좀 듣기 힘들다. 섬세한 음색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음량이 작은데다, 각 비올의 표준이 정립되어있지 않다 보니 독주나 통주저음 반주보다 규모가 큰 합주를 하는 상황에서는 다소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연주자의 기량으로 이것을 보정해 줘야 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파비오 비온디는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비올라 다모레의 따뜻하고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기분좋은 자극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정격연주자들이 만드는 늘어지는 듯한 힘없는 음색도 구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혹시 비온디는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의문의 답 또한 금세 풀렸다. 음악을 듣고 있는 도중에는 공연책자를 거의 읽지 않는 터라 당시에는 몰랐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책자를 펼쳐보니 역시 아르농쿠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60년대의 아르농쿠르 지휘의 마태수난곡 등의 명녹음이 비온디의 음악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역시 „음악은 기분좋은 자극“이라는 그 선구자의 철학이 느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후반부의 나머지 두 곡인 라 스트라바간차(Concerto for Violin, string, and continuo Op. 4 „La Stravaganza“ No. 4 in a minor) 그리고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 11번 곡인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d단조는 워낙 유명해서 특별히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하지만, 좋은 곡을 더욱 좋게 만드는 점에서는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필립스에서 나온 이 무지치이 비발디 시리즈의 음반보다 이 에우로파 갈란테의 연주가 보다 마음에 들어서, 청출어람이라고 평가해 주고 싶다. 이렇게 파비오 비온디와 그의 앙상블 에우로파 갈란테와 함께 한 1시간 40분은 근래에 보기 드문 고음악에 대한 편견을 기분좋게 때려 부수는 멋진 자극이었다. 왜 그를 그렇게 극찬하는지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고, 명성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만하다.

 

 드디어 한국에도 고음악이!
 본 공연도 공연이지만, 고음악 연주회가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상황을 보니 놀랍다. 그리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필자가 음반수집을 시작한 1994년만 하더라도 고음악, 정격연주라는 것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주류 음악계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학문적 탐구를 빙자하여 벌이는 사기극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음반도 그렇거니와 악보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방송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고음악을 접하기가 어렵지 않으며, 쳄발로, 류트, 비올 등의 악기의 음색에 애정과 성원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다. 그리고 전석 매진에 관객들의 완벽한 질서와 정성을 다한 갈채까지 더해진 이 공연은 파비오 비온디와 앙상블 에우로파 갈란테만의 것이 아닌, 관객까지 모두 힘을 합쳐 만든 음악의 삼위일체(Trinity) 그 자체라고 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다. 이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낼 만한 거장에 독일 후기낭만파 지휘자들뿐만 아니라 파비오 비온디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공연과 녹음을 기대하자. 이의 있는가? 과찬으로 보이는가? 공연이든 녹음이든 접해 보고 나서 논하라. 그러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고음악에 대한, 특히 비발디에 대한 편견을 벗어던진 자신이 보일 것으로 믿는다.

 

 

 

 



  댓글 (1)  |  엮인글 (0)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