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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0년 5개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아,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를 느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투명인간이라도 돼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요.
지난 6일 오후 6시반(현지시각)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딱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14시간 15분간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뉴욕까지,
맨해튼의 숙소에 짐만 놓고 JFK공항으로 돌아와 다시 비행기를 1시간 반 타고
보스턴에 도착한 상황이었습니다.
6시반 메인주 록랜드(Rockland)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었죠.
탑승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그 순간 안내방송.
"록랜드행 비행기는 안개로 결항되었습니다."
.......안.돼.................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안.돼.....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만 나오더군요.
다음날 아침에 이 사람 인터뷰가 있었거든요.

로버트 인디애나(Indiana).
올해 우리 나이로 85세인 이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이 작가의 작품은 대개 어디서든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네. 'LOVE'.
서울, 뉴욕, 도쿄, 런던, 상하이 등등
전세계에 깔려 있는 그 '러브'의 작가입니다.
근 반 년전부터 컨택하여 어렵게 잡은 인터뷰였습니다.
인디애나는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 그런데.. 결항이라니...
카운터로 가 "다음 비행기는 없냐"고 물었더니,
"내일 아침 9시 10분 비행기가 가장 빠른 비행기"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인디애나는 록랜드에서 1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에 삽니다.
인터뷰 약속 시간에 닿으려면 다음날 8시 55분 배를 타야 하는데 9시 10분 비행기...
다시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여기서 인터뷰를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부장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서라도, 오늘 밤 내에
그 록랜드라는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랴부랴 공항 안내데스크로 가서
사정이 이런데, 록랜드로 가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한참을 책을 뒤적이더니,
"7시 반에 포틀랜드로 가는 버스가 있어요. 포틀랜드에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할 거예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포틀랜드?
예전에 어느 책에서 '포틀랜드산 망아지'라는 단어를 읽은 적이 있지만,
제 인생에 한 번도 끼어드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지명입니다.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포틀랜드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2시간 반이요."
....2시간 반....
"그럼 거기서 록랜드까지는요?"
"2시간 정도요."
.......16시간 비행기 타고 날아왔는데... 또 4시간 반 차를 타라니...
종일 먹은 거라곤 뉴욕에서 보스턴발 비행기 타기 직전 먹은 햄버거밖에 없는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포기할 순 없잖아요.
우여곡절끝에 포틀랜드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지겨울 줄 알았는데 웬걸,
시차에, 긴 비행에 지쳐서 깜빡 잠들었다 깼더니
포틀랜드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깜깜한 밤이었고, 과연 안개가 짙었습니다.
그렇게 짙은 안개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걸어가면 뺨에 물방울이 묻을 정도였어요.
예약해놓은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죠.
택시를 타면서 또 꾸벅꾸벅 졸다가 깼다가 했는데..
정말 에드워드 호퍼 그림 내지는 히치콕 영화에 나올법한
어둡고, 인적 없고, 무서운 길을 하염없이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왜 메인주에 사는 스티븐 킹이 그렇게 으스스한 소설을 썼는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그냥 버리고 가면 거기서 죽겠더군요.
그러나 다행히도 기사는 선한 사람이어서,
무사히 저를 록랜드의 숙소까지 안내해 주었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
호텔 리셉션에 "근처에 뭐 먹을데 없냐"고 물어봤더니
한참을 걸어나가야 맥도날드가 있다고 하길래
그냥 포기, 쫄쫄 굶고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또 안개가 자욱하더군요.

날이 좋으면 바다(대서양)가 보인다는데,
대체 어디가 바다라는 건지....

아침 먹는 걸 창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갈매기.
그 와중에도 귀여워서 찍었어요.
여하튼간에 안개가 너무나 짙어서,
저는 '과연 배가 뜰까. 배가 안 뜨면 정말 끝장이다'
노심초사하였으나,
다행히 배는 제 시간에 뜨더군요.

자동차도 실을 수 있는 커다란 배였어요.
안개 낀 바다를 넘실대며 배가 지나가는 동안,
저는 또 배 안에서 기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시차도 있고, 일단 자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마침내,
배는 인디애나가 산다는 섬, 바이널헤이븐(Vinalhaven)에 도착했습니다.


인구 1500명 정도의 평화로운 어촌마을.
주민들은 대개 어업에 종사한답니다.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곳,
인터넷이 3년 전엔가 들어왔다더군요.
카페에서 주스를 마시며 인터뷰 시간을 기다리다가,
오전 10시40분에 인디애나의 집으로 갔습니다.

빅토리아 양식의 4층 건물.
잘 보면 오른쪽 문 앞에 愛 조각이 보입니다.
대문을 뒤덮은 성조기는 뭐냐고요?
인디애나는 9.11 때 뉴욕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걸 목격했는데,
그 이후 돌아와서 문을 성조기로 다 칠하곤 'Peace Painting'에 몰두했다고 해요.
문설주에 놓인 돌멩이를 집어 문을 두들기자,
수척하고 연약한 표정의 노인이 나타났어요.
안경 한쪽 유리는 금이 가 있었고,
베이지색 스웨터 소매에는 음식물 얼룩이 묻어있었죠.
지팡이를 짚고서야 거동했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노인이구나' 했어요.
기사에도 썼지만,
인디애나는 60년대의 '스타 작가'였어요.
앤디 워홀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기도 했고
33세 때 MoMA 그룹전에 내놓은 작품 '아메리칸 드림'은
알프레드 바 MoMA 초대 관장의 찬사를 받았죠.
그 작품은 MoMA에서 구입해 아직도 그 곳에 걸려 있습니다.
대표작 LOVE는 1964년 MoMA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위해 고안한 작품이에요.
MoMA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드였고, 그래서 인디애나는 덩달아 유명해졌죠.
인디애나의 LOVE로 만든 우표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답니다.
'LOVE'로 명성을 얻은 이 남자는,
그러나 그 'LOVE'때문에 불행해졌습니다.
'LOVE' 저작권을 얻지 못해
그 이미지를 누구나 다 베꼈거든요.
티셔츠, 머그컵, 카드...
이미지가 남용되자 '싸구려 작가', '상업작가'라는 오명이 덧씌워졌습니다.
정작 본인은 'LOVE'로 돈을 벌지 못했는데도요.
콧대 높은 뉴욕 미술계가 그러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평론가들은 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고, 전시 제의도 줄었죠.
낙담한 인디애나는 1978년 뉴욕을 떠나.
그가 예전에 사 놓았던 이 바이널헤이븐섬의 집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뉴욕이 그를 외면하는동안,
전 세계가 그를 찾았지요.
그의 LOVE는 세계 곳곳에 설치됐고,
작품은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사에 있으니 생략할게요.
인디애나를 만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그는 "한국인을 만난 건 처음이야. 내겐 정말 희귀한 기회야.
게다가 북한이 못됐게 굴고 있는 이 때에" 하더니
방명록에 사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층 거실로 안내했지요.

거실 입구에 있는 복도에 그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왼쪽에 걸린 게 그의 'Mother', 오른쪽이 'Father'입니다.
갓난아기 때 입양된 인디애나는 양부모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죠.
가스 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자동차에 가족을 태우고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린 그에게 가장 익숙했던 건 도로 표지판.
그가 나중에 도로 표지판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의 집은 뭐랄까 '동물원'같았어요.
기린, 곰, 개, 사자, 캥거루 등 갖가지 동물 인형 수십 마리(제가 본 것만)로 가득 차 있었어요.
대개 누르면 소리가 나는 동물들.
의자에 쓰려져 있는 기린을 가리키며 제게 "Oh, he is exhausted(오, 완전히 뻗었어)"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송아지만한 개 인형을 눌러서 개가 짖기 시작... ㅠㅜ
그리고 발치에서는 진짜 강아지 두 마리가 레슬링을 시작....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개 인형 짖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어요....
인디애나는 "나는 동물이 너무 좋아. 어릴 때부터 그랬어. 사람보다 낫잖아" 하더니만,
나중엔 바로 위 사진 뒤에 서 있는 기린들 사이로 저를 데리고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더군요.
저 앞에 있는 거대한 성(城)은 뭐냐고요?
인디애나가 꿈꾸는 스튜디오랍니다.
"이게 내 '드림 스튜디오'야. 각각의 타워에서 다른 예술작업을 하고 싶어. 탑 하나에선 그림 그리고, 또 다른 탑에선 조각하고..." 이러더군요.
인터뷰 시간은 짧은데,
연세 드셔서 귀도 잘 안 들리고.. ("네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워. 좀 크게 말해"라고 했다는..)
저는 혹시나 예민하기 짝이 없다는 그가 기분 상해서 입 다물까봐 노심초사,
다음 배 시간 전까지 과연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분은 인터뷰에는 집중 안 하시고..
제가 반가웠던 모양인지.. 계속 사진 찍자고 하시고,
인형 하나 하나 이름 소개해 주시고...
눌러서 울음소리 들려주시고... ㅠㅜ
질문을 하던 중간에 갑자기 기린 이야기를 하더니
"나는 기린이 참 좋아. 아주 다정하거든. 너도 기린을 좋아하니?
한국에도 기린이 있어?"
.......뭐 이런 걸 물어보신다든가,
"한국에서도 동물 인형을 만드니?"
(만든다고 하자) "그런데 왜 인형은 모두 다 중국제야?"
중국이 인건비가 싸서 그렇다고 했는데..
제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인지, 목소리가 작아서인지 이해 못하신 듯. ㅠㅜ
하여튼간에 끊어질 듯 이어지고, 또 다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인터뷰...
저는 사실 궁금했던 게,
왜 인디애나가 'love', 'hope'같은 글자로 작업하는가였어요.
그림을 잘 못 그려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죠.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왜 구상화는 그리지 않으세요? 그림을 잘 못 그리세요?"
그는 막 웃더니
"나는 사실 리얼리스트였다"면서
자기가 고등학교 때 그렸다는 그림을 보여주더군요.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림 속 가게는 사촌이 운영하는 곳이고,
저 초록색 자동차가 아버지가 몰고 다니던 차라고 해요.
그는 "60년대 뉴욕은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걸 안 하면 평론가들이 취급을 안 해줬는데,
추상표현주의가 싫었던 일군의 무리들이 팝 아티스트가 됐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LOVE'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랑엔
신의 사랑도 있고,
부모의 사랑도 있고,
남녀간의 사랑도 있잖아요.
그는 딱 잘라서 "Mainly from my mother"라고 하더군요.
"누구나 '사랑'이라고 하면 어머닐 떠올리지 않나. 나는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었어"라면서요.
"아버지는 차가운 사람이었으나 어머니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의 이름은 카르멘이었는데,
집시 이름을 가진 사람답게 열정적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비제의 오페라를 아주 좋아해서
엄마 이름을 카르멘이라 지었다"는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계속 질문을 하려는데
가족 이야기가 나오니 추억에 젖었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며 1층으로 내려가자고 하더군요.
집의 1층은 그야말로 '인디애나 박물관'이었어요.
그의 사진, 기사 등을 모은 스크랩북으로 가득 차 있었죠.

벽에 걸린 그림이 인디애나가 6살 때 그린 거랍니다.
왼쪽 그림 속 노인은 잔디 깎는 외할아버지,
오른쪽 그림은 청소하는 엄마랑 자신이라는군요.
스크랩북을 펼치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가족사진부터
자기 부모님의 가족사진,
자기 어릴 때 사진..
그야말로 장황한 가족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 이거 너무 길어지면 나 준비해간 질문 다 못하는데..'
속으로 또 노심초사하며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고 열심히 받아적었어요.

가족, 친척, 친구, 함께 활동했던 예술가 등등등
별의별 사람들의 사진이 다 있었습니다.
그는 화가 엘스워스 켈리 이야기를 하더니
"그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다. 정말 프로페셔널한 사람. 내 인생의 멘토"라고 하더군요.
또 다른 아티스트 마리솔이 젊었을 때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와 함께 했던 전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쫓겨나듯 뉴욕을 떠나온 그는
처음에 제가 "왜 뉴욕을 떠났냐"고 물었을 땐,
"너무 복잡해서. 집세가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됐다"라고 하더니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자 속 얘기를 좀 털어놓았어요.
벽에는 금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알파벳을 쓰고, 각각의 글자 아래에 두 개의 검은 공을 그려넣은 그림이
걸려 있었어요.
인디애나의 근작 '블랙 알파벳'이죠.
그는 "알파벳을 검정으로 칠한 건 뉴욕과의 내 관계가 암울(dark)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공은 내가 뉴욕에서 배척(blackball)당했단 걸 상징한다. 나는 평화와 행복을 찾아 섬으로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그럼 저 바탕의 황금색은 뭔가요?" 물었더니
"Celebration(축하)"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축하.
저작권 등록을 못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이용해 돈을 벌 때
심정이 어땠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다 잊었다. 내 마음 속에서 그 일들을 다 몰아내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인디애나는 'LOVE', 'HUG','YIELD'같은 긍정적인 단어로 많이 작업합니다.
"당신은 낙관주의자인가요?"
했더니,
"세상이 너무 비관적이잖아. 재난의 연속이야. 최근에 클리블랜드에서 세 명의 소녀가 납치당했다가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 사건 덕에 북한 얘기가 쏙 들어갔지"라고 했어요.
학생 때 한국전쟁 반대 벽화를 그려 상을 받은 적 있었던 인디애나는
한국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모양으로 제게
"한국에도 내 작품이 있냐"
(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내게 편지를 안 쓰지?" 했습니다.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와 비슷하냐고 묻기도 했고,
나중에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자기 집 앞에 있는 愛자 앞에서 찍자길래..
LOVE가 더 낫다고 설득을...
여러 곳,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노인이 힘들어 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배경의 LOVE는 인도에서 제작했다는 태피스트리.
앞의 오리들은 인디애나가 아끼는 목각 오리 인형.
사실 오리들 발에 다 LOVE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겨 놓았는데...
거리가 짧아서 나오지 않았어요.
머릿속으로 구상해갔던 하트 제스추어를 부탁했는데
"왜 이걸 해야 하냐"면서 이해를 잘 못하시더라고요.. ㅠㅜ
결국 회심의 '하트 사진'은 기사에 반영 안 되고....
역시 인터뷰이가 내켜하지 않는 포즈를 주문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포옹하고 집을 나서다가,
잊어버린 질문이 하나 생각나서
다시 계단을 달려 올라가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예술이란 뭐죠?"
대답은 간결하나 명확했어요.
"Everything. What I live for."
배는 정시에 떠났고,
이번엔 보스턴행 비행기도 정시에 떴죠.

9인승 경비행기더군요.
왜 안개로 결항되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마치 약수를 찾아나선 바리공주라도 된 듯
'모험'을 무사히 마친 저는
비행기 안에서 고꾸라지듯 잠들었다가 멀미해서 보스턴 공항에서 약 사먹고,
다시 뉴욕 오는 비행기 안에서 거의 기절....
다음날 아침 뉴욕 6번가에 있는 LOVE를 찾아갔어요.
인디애나가 "뉴욕에 있는 내 LOVE 봤어?" 하길래
"아직 못 봤는데 뉴욕 가면 보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LOVE'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서 걱정했지만,
딱 그 곳에 도착하자 마치 하느님이 보우하신 듯 비가 그쳤습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죠.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LOVE'로 그를 상처입힌 도시, 뉴욕에서,
'LOVE'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구나.
인디애나가 뉴욕 미술관에서 갖는 첫 회고전이 9월 26일부터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립니다.
가제는 '로버트 인디애나, LOVE를 넘어(Robert Indiana beyond 'LOVE')'랍니다.
전시를 기획한 바바라 허스켈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는
"인디애나는 저평가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15년간 그에 대한 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다. 미국인들은 '사랑'을 습관처럼 입에 담지만, 그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디애나의 'LOVE'는 간결한 디자인에 수많은 의미를 닮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장애물을 만나죠.
때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그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 같다고,
35년만에 다시 뉴욕에 도전장을 내미는 인디애나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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