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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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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aram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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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LOVE'의 작가를 만나기까지    2013/05/23 02:12 추천 7    스크랩 1
http://blog.chosun.com/aram1214/6983992 주소복사 트위터로 글 내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글 내보내기

만 10년 5개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아, 정말 죽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를 느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투명인간이라도 돼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요.

지난 6일 오후 6시반(현지시각)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딱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14시간 15분간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뉴욕까지,

맨해튼의 숙소에 짐만 놓고 JFK공항으로 돌아와 다시 비행기를 1시간 반 타고

보스턴에 도착한 상황이었습니다.

6시반 메인주 록랜드(Rockland)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었죠.

탑승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그 순간 안내방송.

"록랜드행 비행기는 안개로 결항되었습니다."

 

.......안.돼.................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안.돼.....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만 나오더군요.

다음날 아침에 이 사람 인터뷰가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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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인디애나(Indiana).

올해 우리 나이로 85세인 이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이 작가의 작품은 대개 어디서든 본 적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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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LOVE'.

서울, 뉴욕, 도쿄, 런던, 상하이 등등

전세계에 깔려 있는 그 '러브'의 작가입니다.

 

근 반 년전부터 컨택하여 어렵게 잡은 인터뷰였습니다.

인디애나는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 그런데.. 결항이라니...

 

카운터로 가 "다음 비행기는 없냐"고 물었더니,

"내일 아침 9시 10분 비행기가 가장 빠른 비행기"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인디애나는 록랜드에서 1시간 반 동안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에 삽니다.

인터뷰 약속 시간에 닿으려면 다음날 8시 55분 배를 타야 하는데 9시 10분 비행기...

다시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여기서 인터뷰를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부장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걸어서라도, 오늘 밤 내에

그 록랜드라는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랴부랴 공항 안내데스크로 가서

사정이 이런데, 록랜드로 가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한참을 책을 뒤적이더니,

"7시 반에 포틀랜드로 가는 버스가 있어요. 포틀랜드에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할 거예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포틀랜드?

예전에 어느 책에서 '포틀랜드산 망아지'라는 단어를 읽은 적이 있지만,

제 인생에 한 번도 끼어드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지명입니다.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포틀랜드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2시간 반이요."

....2시간 반....

"그럼 거기서 록랜드까지는요?"

"2시간 정도요."

 

.......16시간 비행기 타고 날아왔는데... 또 4시간 반 차를 타라니...

종일 먹은 거라곤 뉴욕에서 보스턴발 비행기 타기 직전 먹은 햄버거밖에 없는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포기할 순 없잖아요.

우여곡절끝에 포틀랜드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지겨울 줄 알았는데 웬걸,

시차에, 긴 비행에 지쳐서 깜빡 잠들었다 깼더니

포틀랜드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깜깜한 밤이었고, 과연 안개가 짙었습니다.

그렇게 짙은 안개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걸어가면 뺨에 물방울이 묻을 정도였어요.

 

예약해놓은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죠.

택시를 타면서 또 꾸벅꾸벅 졸다가 깼다가 했는데..

정말 에드워드 호퍼 그림 내지는 히치콕 영화에 나올법한

어둡고, 인적 없고, 무서운 길을 하염없이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왜 메인주에 사는 스티븐 킹이 그렇게 으스스한 소설을 썼는지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그냥 버리고 가면 거기서 죽겠더군요.

그러나 다행히도 기사는 선한 사람이어서,

무사히 저를 록랜드의 숙소까지 안내해 주었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

호텔 리셉션에 "근처에 뭐 먹을데 없냐"고 물어봤더니

한참을 걸어나가야 맥도날드가 있다고 하길래

그냥 포기, 쫄쫄 굶고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또 안개가 자욱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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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으면 바다(대서양)가 보인다는데,

대체 어디가 바다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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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는 걸 창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갈매기.

그 와중에도 귀여워서 찍었어요.

 

여하튼간에 안개가 너무나 짙어서,

저는 '과연 배가 뜰까. 배가 안 뜨면 정말 끝장이다'

노심초사하였으나,

다행히 배는 제 시간에 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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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도 실을 수 있는 커다란 배였어요.

안개 낀 바다를 넘실대며 배가 지나가는 동안,

저는 또 배 안에서 기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시차도 있고, 일단 자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마침내,

배는 인디애나가 산다는 섬, 바이널헤이븐(Vinalhaven)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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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500명 정도의 평화로운 어촌마을.

주민들은 대개 어업에 종사한답니다.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곳,

인터넷이 3년 전엔가 들어왔다더군요.

카페에서 주스를 마시며 인터뷰 시간을 기다리다가,

오전 10시40분에 인디애나의 집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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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양식의 4층 건물.

잘 보면 오른쪽 문 앞에 愛 조각이 보입니다.

대문을 뒤덮은 성조기는 뭐냐고요?

인디애나는 9.11 때 뉴욕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걸 목격했는데,

그 이후 돌아와서 문을 성조기로 다 칠하곤 'Peace Painting'에 몰두했다고 해요.

 

문설주에 놓인 돌멩이를 집어 문을 두들기자,

수척하고 연약한 표정의 노인이 나타났어요.

안경 한쪽 유리는 금이 가 있었고,

베이지색 스웨터 소매에는 음식물 얼룩이 묻어있었죠.

지팡이를 짚고서야 거동했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노인이구나' 했어요.

 

기사에도 썼지만,

인디애나는 60년대의 '스타 작가'였어요.

앤디 워홀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기도 했고

33세 때 MoMA 그룹전에 내놓은 작품 '아메리칸 드림'은

알프레드 바 MoMA 초대 관장의 찬사를 받았죠.

그 작품은 MoMA에서 구입해 아직도 그 곳에 걸려 있습니다.

대표작 LOVE는 1964년 MoMA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위해 고안한 작품이에요.

MoMA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드였고, 그래서 인디애나는 덩달아 유명해졌죠.

인디애나의 LOVE로 만든 우표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답니다.

 

'LOVE'로 명성을 얻은 이 남자는,

그러나 그 'LOVE'때문에 불행해졌습니다.

'LOVE' 저작권을 얻지 못해

그 이미지를 누구나 다 베꼈거든요.

티셔츠, 머그컵, 카드...

이미지가 남용되자 '싸구려 작가', '상업작가'라는 오명이 덧씌워졌습니다.

정작 본인은 'LOVE'로 돈을 벌지 못했는데도요.

콧대 높은 뉴욕 미술계가 그러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평론가들은 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고, 전시 제의도 줄었죠.

낙담한 인디애나는 1978년 뉴욕을 떠나.

그가 예전에 사 놓았던 이 바이널헤이븐섬의 집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뉴욕이 그를 외면하는동안,

전 세계가 그를 찾았지요.

그의 LOVE는 세계 곳곳에 설치됐고,

작품은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사에 있으니 생략할게요.

인디애나를 만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그는 "한국인을 만난 건 처음이야. 내겐 정말 희귀한 기회야.

 게다가 북한이 못됐게 굴고 있는 이 때에" 하더니

방명록에 사인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층 거실로 안내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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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입구에 있는 복도에 그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왼쪽에 걸린 게 그의 'Mother', 오른쪽이 'Father'입니다.

갓난아기 때 입양된 인디애나는 양부모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죠.

가스 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자동차에 가족을 태우고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린 그에게 가장 익숙했던 건 도로 표지판.

그가 나중에 도로 표지판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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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뭐랄까 '동물원'같았어요.

기린, 곰, 개, 사자, 캥거루 등 갖가지 동물 인형 수십 마리(제가 본 것만)로 가득 차 있었어요.

대개 누르면 소리가 나는 동물들.

의자에 쓰려져 있는 기린을 가리키며 제게 "Oh, he is exhausted(오, 완전히 뻗었어)"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송아지만한 개 인형을 눌러서 개가 짖기 시작... ㅠㅜ

그리고 발치에서는 진짜 강아지 두 마리가 레슬링을 시작....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개 인형 짖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어요....

인디애나는 "나는 동물이 너무 좋아. 어릴 때부터 그랬어. 사람보다 낫잖아" 하더니만,

나중엔 바로 위 사진 뒤에 서 있는 기린들 사이로 저를 데리고 가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더군요.

저 앞에 있는 거대한 성(城)은 뭐냐고요?

인디애나가 꿈꾸는 스튜디오랍니다.

"이게 내 '드림 스튜디오'야. 각각의 타워에서 다른 예술작업을 하고 싶어. 탑 하나에선 그림 그리고, 또 다른 탑에선 조각하고..." 이러더군요.

 

인터뷰 시간은 짧은데,

연세 드셔서 귀도 잘 안 들리고.. ("네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워. 좀 크게 말해"라고 했다는..)

저는 혹시나 예민하기 짝이 없다는 그가 기분 상해서 입 다물까봐 노심초사,

다음 배 시간 전까지 과연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분은 인터뷰에는 집중 안 하시고..

제가 반가웠던 모양인지.. 계속 사진 찍자고 하시고,

인형 하나 하나 이름 소개해 주시고...

눌러서 울음소리 들려주시고... ㅠㅜ

질문을 하던 중간에 갑자기 기린 이야기를 하더니

"나는 기린이 참 좋아. 아주 다정하거든. 너도 기린을 좋아하니?

 한국에도 기린이 있어?"

.......뭐 이런 걸 물어보신다든가,

"한국에서도 동물 인형을 만드니?"

(만든다고 하자) "그런데 왜 인형은 모두 다 중국제야?"

중국이 인건비가 싸서 그렇다고 했는데..

제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인지, 목소리가 작아서인지 이해 못하신 듯. ㅠㅜ

 

하여튼간에 끊어질 듯 이어지고, 또 다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인터뷰...

 

저는 사실 궁금했던 게,

왜 인디애나가 'love', 'hope'같은 글자로 작업하는가였어요.

그림을 잘 못 그려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죠.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왜 구상화는 그리지 않으세요? 그림을 잘 못 그리세요?"

그는 막 웃더니

"나는 사실 리얼리스트였다"면서

자기가 고등학교 때 그렸다는 그림을 보여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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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림 속 가게는 사촌이 운영하는 곳이고,

저 초록색 자동차가 아버지가 몰고 다니던 차라고 해요.

그는 "60년대 뉴욕은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걸 안 하면 평론가들이 취급을 안 해줬는데,

추상표현주의가 싫었던 일군의 무리들이 팝 아티스트가 됐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LOVE'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랑엔

신의 사랑도 있고,

부모의 사랑도 있고,

남녀간의 사랑도 있잖아요.

 

그는 딱 잘라서 "Mainly from my mother"라고 하더군요.

"누구나 '사랑'이라고 하면 어머닐 떠올리지 않나. 나는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었어"라면서요.

"아버지는 차가운 사람이었으나 어머니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의 이름은 카르멘이었는데,

집시 이름을 가진 사람답게 열정적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비제의 오페라를 아주 좋아해서

엄마 이름을 카르멘이라 지었다"는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계속 질문을 하려는데

가족 이야기가 나오니 추억에 젖었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며 1층으로 내려가자고 하더군요.

 

집의 1층은 그야말로 '인디애나 박물관'이었어요.

그의 사진, 기사 등을 모은 스크랩북으로 가득 차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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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그림이 인디애나가 6살 때 그린 거랍니다.

왼쪽 그림 속 노인은 잔디 깎는 외할아버지,

오른쪽 그림은 청소하는 엄마랑 자신이라는군요.

 

스크랩북을 펼치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가족사진부터

자기 부모님의 가족사진,

자기 어릴 때 사진..

그야말로 장황한 가족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 이거 너무 길어지면 나 준비해간 질문 다 못하는데..'

속으로 또 노심초사하며 핸드폰 녹음 기능을 켜고 열심히 받아적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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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척, 친구, 함께 활동했던 예술가 등등등

별의별 사람들의 사진이 다 있었습니다.

 

그는 화가 엘스워스 켈리 이야기를 하더니

"그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예술가다. 정말 프로페셔널한 사람. 내 인생의 멘토"라고 하더군요.

또 다른 아티스트 마리솔이 젊었을 때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와 함께 했던 전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쫓겨나듯 뉴욕을 떠나온 그는

처음에 제가 "왜 뉴욕을 떠났냐"고 물었을 땐,

"너무 복잡해서. 집세가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됐다"라고 하더니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자 속 얘기를 좀 털어놓았어요.

벽에는 금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알파벳을 쓰고, 각각의 글자 아래에 두 개의 검은 공을 그려넣은 그림이

걸려 있었어요.

인디애나의 근작 '블랙 알파벳'이죠.

그는 "알파벳을 검정으로 칠한 건 뉴욕과의 내 관계가 암울(dark)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공은 내가 뉴욕에서 배척(blackball)당했단 걸 상징한다. 나는 평화와 행복을 찾아 섬으로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그럼 저 바탕의 황금색은 뭔가요?" 물었더니

"Celebration(축하)"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축하.

 

저작권 등록을 못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이용해 돈을 벌 때

심정이 어땠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다 잊었다. 내 마음 속에서 그 일들을 다 몰아내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어요.

 

인디애나는 'LOVE', 'HUG','YIELD'같은 긍정적인 단어로 많이 작업합니다.

"당신은 낙관주의자인가요?"

했더니,

"세상이 너무 비관적이잖아. 재난의 연속이야. 최근에 클리블랜드에서 세 명의 소녀가 납치당했다가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 사건 덕에 북한 얘기가 쏙 들어갔지"라고 했어요.

학생 때 한국전쟁 반대 벽화를 그려 상을 받은 적 있었던 인디애나는

한국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모양으로 제게

"한국에도 내 작품이 있냐"

(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내게 편지를 안 쓰지?" 했습니다.

한국어가 일본어나 중국어와 비슷하냐고 묻기도 했고,

나중에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자기 집 앞에 있는 愛자 앞에서 찍자길래..

LOVE가 더 낫다고 설득을...

 

여러 곳,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노인이 힘들어 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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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의 LOVE는 인도에서 제작했다는 태피스트리.

앞의 오리들은 인디애나가 아끼는 목각 오리 인형.

사실 오리들 발에 다 LOVE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겨 놓았는데...

거리가 짧아서 나오지 않았어요.

머릿속으로 구상해갔던 하트 제스추어를 부탁했는데

"왜 이걸 해야 하냐"면서 이해를 잘 못하시더라고요.. ㅠㅜ

결국 회심의 '하트 사진'은 기사에 반영 안 되고....

역시 인터뷰이가 내켜하지 않는 포즈를 주문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포옹하고 집을 나서다가,

잊어버린 질문이 하나 생각나서

다시 계단을 달려 올라가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예술이란 뭐죠?"

대답은 간결하나 명확했어요.

"Everything. What I live for."

 

배는 정시에 떠났고,

이번엔 보스턴행 비행기도 정시에 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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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승 경비행기더군요.

왜 안개로 결항되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마치 약수를 찾아나선 바리공주라도 된 듯

'모험'을 무사히 마친 저는 

비행기 안에서 고꾸라지듯 잠들었다가 멀미해서 보스턴 공항에서 약 사먹고,

다시 뉴욕 오는 비행기 안에서 거의 기절....

 

다음날 아침 뉴욕 6번가에 있는 LOVE를 찾아갔어요.

인디애나가 "뉴욕에 있는 내 LOVE 봤어?" 하길래

"아직 못 봤는데 뉴욕 가면 보겠다:"고 약속했었거든요.

'LOVE'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서 걱정했지만,

딱 그 곳에 도착하자 마치 하느님이 보우하신 듯 비가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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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죠.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LOVE'로 그를 상처입힌 도시, 뉴욕에서,

'LOVE'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구나.

 

인디애나가 뉴욕 미술관에서 갖는 첫 회고전이 9월 26일부터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립니다.

가제는 '로버트 인디애나, LOVE를 넘어(Robert Indiana beyond 'LOVE')'랍니다. 

전시를 기획한 바바라 허스켈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는

"인디애나는 저평가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15년간 그에 대한 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다. 미국인들은 '사랑'을 습관처럼 입에 담지만, 그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디애나의 'LOVE'는 간결한 디자인에 수많은 의미를 닮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장애물을 만나죠.

때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그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 같다고,

35년만에 다시 뉴욕에 도전장을 내미는 인디애나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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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파멸의 작가, 더글러스 케네디    2013/04/13 02:37 추천 4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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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파멸에 대해 가장 잘 쓰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아마 미국 소설가 더글러스 케네디(Kennedy)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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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바로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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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인데요.

성공한 변호사이면서도 사진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못해

욕망하고, 좌절하고, 결국은 아내의 내연남인 사진가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선,

내연남으로 신분을 위조해 사진가로서의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사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빅 픽처'를 읽게 된 건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을 통해서였습니다.

누군가 더글러스 케네디 이야기를 했고,

'빅 픽처'가 재밌다고 하길래 호기심에 사서 읽어봤죠.

탄탄한 구조와 흡입력 있는 문체에 금세 빨려들어갔어요.

그리고 그 게시판에서 소개됐던 더글러스 케네디의 또 다른 책도

당장 사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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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제목은 상투적이지만 내용은 상투적이지 않습니다.

미국 여기자 샐리는 우연히 전쟁지에서 영국 기자 토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죠.

임신을 하게 돼 결혼하게 되는데,

토니가 전혀 육아에는 관심이 없는 이상한 남자라는 걸 알게 됩니다.

낯선 영국에 적응까지 하지 못해 샐리는 더더욱 힘들었는데,

형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미국에 다녀왔더니

글쎄, 살던 집에서 토니도, 아이도 사라지고 없는 겁니다.

토니의 행적을 추적하던 샐리는

토니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내연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이를 내연녀에게 넘겨줬다는 걸 알게 되죠.

아이를 되찾기 위해 샐리는 분투합니다만,

출산 직후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앓았으며, 아이를 키우기에 부적합한 여자라는

토니의 증언 때문에 도무지 쉽지가 않습니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영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대한 설명,

그리고 기발한 스토리 덕에 즐겁게 읽었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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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주에 새로 번역 출간된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리빙 더 월드(Leaving the World)'.

부모이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아 13세 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제인 하워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하버드대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지만,

유부남 교수와 불륜에 빠지고, 교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헤지펀드 회사에 취직했다가, 뉴잉글랜드주립대 교수로 일자리를 얻은 제인은

영화광 테오와 사랑에 빠져 딸을 낳게 되는데요.

무책임한 테오가 동업자와 내연의 관계에 빠지고,

인생의 단 한 가지 희망이었던 딸 에밀리는 교통사고로 죽고 말죠.

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제인은

모든 사회적 관계를 끊고 캐나다로 떠납니다.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게 된 제인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음악광 번과 친해지게 되고,

도시의 소녀 실종사건을 해결하게 되면서 점차 내면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소설의 후반부를 지배하면서 '도피'와 '자기치유'라는 소설의 주제를 분명히 합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전반부는 흡입력이 없어 지루했는데요,

아이를 잃고 자살을 기도하고,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이후를 다룬

후반부부터 흥미진진하여 빠져들었습니다.

 

이 작가는 특히 우울증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것 같습니다.

수면제 없이는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삶.

절망에 빠져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하는 제인에게

정신병동의 의사가 충고합니다.

 

"시카고에서 수련의 생활을 할 때, 내가 존경한 최고의 정신과 의사는 독일 출신의 할머니 명예교수였어요.

 그 교수는 다하우 수용소의 생존자였죠. 그녀는 다하우 수용소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어요.

 그녀 자신도 나치의 생체실험 대상자였어요. 언제나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었고, 수없이 끔찍한 참상을 겪었지만

 그녀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의지를 가진 임상의였어요. 그녀는 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으로 이민 와

 시카고대학 철학과 교수와 재혼했어요. 그녀의 강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다하우수용소의 생존자로서 느끼는 죄책감을 다루었어요. 어떤 학생이 그간 겪은 혹독한 어려움을 고려할 때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 물었어요.

 그녀이 대답이 독특했죠. 그녀는 사무엘 베케트의 글을 인용했어요. '나는 나아갈 수 없다, 나는 나아갈 것이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나오는 구절이죠."

"맞아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우리는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가 내가 입을 먼저 열었다.

"난 나아갈 수 없어요."

"알아요. 지금은 그렇겠죠.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난 나아갈 수 없어요. 나는 나아가지 않을 거예요."

 

퇴근후 거실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이 장면을 읽었습니다.

제인이 "난 나아갈 수 없어요. 나는 나아가지 않을 거예요" 하는 구절에서

눈물이 투둑, 떨어졌죠.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상태를 저도 경험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얼마 전 어느 소설가를 인터뷰했는데,

그가 사람은 타인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안의 슬픔을 치유한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는 어쩌면 더글러스 케네디의 우울한 이야기를 읽으며 제 안의 우울을 치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마지막엔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이 말이 인용됩니다.

"우주는 파랗고, 새들이 우주를 뚫고 날아간다."

'우주는 직선으로 작용하는 장'이라는 어느 물리학자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하이젠베르크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학부 때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감명깊게 읽었었어요.

저는 양자물리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학문에 대한 그 열정만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글러스 케네디는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했습니다.

'위험한 관계'의 토니와 이 책의 테오가 겹쳐 보였거든요.

그리고 여성의 우울증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구나, 싶기도 했고요.

 

욕망과 파멸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시드니 셀던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90년대 어느 집 서가에나 있었던 그 시드니 셀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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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셀던) 

 

우울증보다는 욕망에 더 관심이 많은 독자들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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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템테이션'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무명작가 노릇을 하다가,

시나리오 한 편이 대박을 치게 되자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하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방송국의 이사와 내연의 관계

(더글러스 케네디 소설엔 늘 '내연의 관계'가 등장합니다)

에 빠진 한 남자가

어떻게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가를 박진감 있게 그려낸 소설이죠.

'빅 픽처'가 '다른 사람'이 되고싶어하는 욕망을 그렸다면,

'템테이션'은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그렸어요.

워낙 잘 읽히는 책이라

저는 퇴근길 교보문고에 앉아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답니다.

 

얼마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 온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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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5구의 여인'이 지금 거실 탁자 위에 있는데

오늘밤 읽기 시작해 밤을 샐지,

아니면 일단 잠들고 내일 읽을지 고민입니다.

 

이제 주말이네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혹은 내면을 파고 드는 심리소설이 필요하신 독자들께

주저않지 않고 더글러스 케네디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부터 미술과 함께 문학도 담당하게 되었답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소설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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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이들을 위한 응원    2013/04/08 01:40 추천 5    스크랩 1
http://blog.chosun.com/aram1214/6918684 주소복사 트위터로 글 내보내기  페이스북으로 글 내보내기

고지식한 성격은 타고난 것이지만,

이 성품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꽤나 힘이 듭니다.

특히나 요령과 순발력이 필요한 기자생활을 한다는 건

매순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아 아슬아슬합니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데,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이 길을 가는 게 옳은 건지,

끊임없이 회의하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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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미술과 함께 문학 담당도 하게 되었는지라,

신문 서평을 위해 읽게 된 책입니다.

원래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지라, 부담없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단 '배를 엮다'라는 제목에는 의문을 가졌었죠.

배, 무슨 배?

 

이 책은 전형적일 일본식 장인(匠人) 이야기입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스터 초밥왕'의 사전 편집자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도쿄의 대형 출판사에서 37년간 일본어 사전 편집자로 일했던 아라키가

은퇴를 앞두고 후계자를 물색합니다.

필생의 과업인 일본어 사전 '대도해(大渡海)' 편찬을 맡겨야만 했거든요.

언어학과 대학원 출신이라는 영업부 직원 마지메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은 사전 편집부로 스카웃된 마지메가 장장 15년에 걸쳐 '궁극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말주변 없고, 사회성 없어 영업부에선 빛을 보지 못했던 그는

적확한 언어 사용에 대한 집착, 그리고 끈기와 정확함으로

꾸준히, 천천히 사전을 만들어 나가죠.

 

연애를 해본적이 없는 마지메에게

사전 감수자인 마쓰모토 선생이

"사전 만드는 사람은 모든 단어를 체험해 봐야 한다"면서

연애를 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장면,

고지식한 마지메가

마음에 담은 여자에게 예스러운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장면 등이

약방의 감초처럼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용례 채집부터 종이 선정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전 만들기의 과정을 찬찬히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사전 만드는 종이에는 온기가 배어나고, 넘길 때 손에 착착 붙도록 촉감이 좋아야 한다든가.

교열을 수십 번 보는데, 빠진 단어 하나를 발견하면 난리가 나고,

교열 실수를 없애기 위해 합숙까지 한다든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게는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마지메의 캐릭터가

저 자신과 비슷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메는 지금까지 줄곧 '특이한 녀석'이라는 부류에 있었다.

학교 생활에서도 회사 생활에서도 늘 따로 놀았다.

가끔 호기심과 호의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도, 마지메의 응답이 너무 엉뚱한 탓인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바로 가 버린다.

마지메 본인은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응대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잘되지 않았다.

그것이 고통스러워서 책을 읽게 되었다. 아무리 말을 못해도 상대가 책이라면 침착하게 깊고 조용히

대화할 수 있다. 또 하나, 학교 쉬는 시간에 책을 펴 놓고 있으면 친구들이 괜히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었다.

 

책을 들고 앉는다는 건,

일종의 장벽을 치는 거죠.

나를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신호.

인간관계에 서툴러 어릴 때부터 독서에 몰입했던 저는

이 구절에서 마지메와 완전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분투기,

그리고 사전편집부에서 적응해 가며 그가 마침내 어엿하게 한 사람 몫을 하게 되는 과정이..

수줍고 말없는, 그러나 한결같은 존재들에 대한

응원처럼 느껴져 읽는 내내 위로가 되었답니다.

 

기사에는 "사전을 펼치고 언어의 망망대해를 유영하길 즐기는 독자에게 권한다"고 썼지만,

그건 외교적 멘트일 뿐,

사실은

말주변 없고 사회생활에 서툰, 사람 만나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더 편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었습니다.

 

아래는 기사 링크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05/2013040502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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