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분출구
1988년 여름,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텔레비전만 틀면 뭘 발랐는지 앞머리에 잔뜩 힘준 여대생들이 자원봉사 도우미랍시고 외국인 운동선수들 혹은 기자들과 어울려 웃고 있었다.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영광스런 대한민국. 선진국으로 향하는 길, 88올림픽.
어느 날인가는 대학친구 녀석과 학교 앞 소줏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왜? 내게는 천박해보였다.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뭐가 그렇게 자랑이라고?
그리고 그 천박함은 바로 사회에 나타났다.
미친 듯한 허영과 낭비 그리고 서로 퍼부어대는 돈 자랑들.
대책 없는 외식문화, 접대 그리고 호사스러운 생활들. 그리고 죽자 살자 전쟁이라도 하는 듯이 기세가 등등해져가는 격렬 노조.
인건비는 오르고 물가도 오르고, 하다못해 빌딩 유리창을 닦는 단순노무자의 실수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르고.
대학은 다닐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공부는 왜 해? 노조나 하지.
주가는 오르고 한탕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심지어는 기업 간부가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주식투자만 신경 쓰다가 해고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이카 시대.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되고, 차만 사면 돈 들여 꾸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길은 미어터지고.
그렇게 미쳐가던 시절에 문민정부라는 게 들어섰다.
기나긴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시작된다고 떠들었다.
그것이 독재였다면 과연 그 독재에 진정 피해를 본 국민은 누구였단 말인가?
민주주의 힘, 국민의 힘 그리고 시민의 힘이 진가를 발휘할 시대가 오고 있었다. 적어도 이론상 아니면 기분상.
세상이 다 바뀌는 것 같았다. 하긴 금융실명제까지 하고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으니 정말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만든 스스로의 거품이 빠지고 결국 IMF라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희한한 상황이 됐다.
이미 정말 살려야 할 중소기업들은 다 망했고 대기업들은 정치논리로 살아남았다.
그러더니 지역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선생님.
또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았다.
정식 취임도 하기 전에 IMF를 극복한답시고 별라별 일들을 다 벌였다.
어쨌든 성공했다. 왜? 국민이 들끓었으니까. 냄비니까.
그러고서는 IT강국의 시대를 열었다.
또 국민들은 미쳤다.
인터넷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쏟아 부었다.
도메인 하나를 60억 원을 주고 샀던 대한민국, 세계 평균거래가의 두세 배를 주고 인터넷서버를 마구 구입했다. 왜 두세 배를 주고 사야했을까?
나머지 차액은 어디로 누구에게 간 것일까?
IT관련 직종의 인건비는 마구 치솟았다. 너도나도 인터넷.
지금 우리는 비교적 좋은 IT 여건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공짜가 아니다.
결국 국민들의 희생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다 망해가던 대한민국에 축제가 생겼다.
2002년 월드컵. 또 국민은 미쳐야했다. 미칠 구석이 생긴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애들이 들끓었다. 전염된 것이다. 기성세대에게로부터.
희망이 없던 대한민국, 그런데 축구공 하나 때문에 희망이 생겼다.
온통 시뻘건 세상, 빨간색이라면 일단 거부했던 대한민국이 너도나도 다 빨간색이 되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던 것이다.
확실하게 미쳤다. 정말 미쳤다.
마치 조물주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모여서 외치면 모든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정말 남은 건 혼신을 다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땀뿐이었다.
그 여세로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 활짝 열린 정부가 들어섰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십여 년 전 기업회장 청문회장에서 쓸데없이 눈물을 흘렸던 바로 그 사람이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통령이라니. 어쨌든 인정해야만 했다.
국민이 들끓었으니까.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2006년 월드컵 별 볼일 없었다. 국민이 끓으려다가 그냥 식어버렸다.
국민은 차가운 냄비를 원하지 않는다. 펄펄 끓기를 바란다.
이젠 촛불까지 대거 동원하니 더 잘 끓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주기적으로 분출구가 필요하다. 국민이 그렇다.
타이밍이다. 분출할 타이밍. 분출하지 않으면 국민은 쓰러진다.
제 성질에 이기지 못하고.
이명박 정부는 실수했다. 바보들이다.
국민을 바라보지 못했다. 뭐가 안전하고 안전하지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끓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불을 붙였다.
사실 그렇게 잘 못한 것도 없는 걸음마 정부이다. 이제 시작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 4,5년 끓지 못하면 터져버리고 마는 국민들이다.
그래서 대통령임기 5년이다. 임기 5년 넘으면 깊은 산사로 가거나 교도소로 가야한다.
국민을 바라보지 못하는 정부.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사고와 불만을 바라보지 못하는 국민.
대한민국은 들끓는 포퓰리즘 냄비 문화의 포로가 되었다.
이제 분출할 시간이다. 늘 그래왔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