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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다렸던가? 드디어 쫄다구 첫 휴가 날이 왔다. 희망차게 맞이한 유일한 군바리의 아침이었다. 제대날도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예쁘게 빼입고 휴가신고를 하러 간다. 키만 삐죽 컸던 말년 고참병장을 따라 발걸음도 가볍게 언덕을 오르내렸다. 자 이제 기갑부대로 돌아와 장교에게 신고하고 내무반가서 가방 들고 나가면 된다. ‘야! 써울아! 간신히 구했데이~’ 윗 고참이 내게 가방하나를 전해준다. 얼룩무늬 가방. 일명 깨구리복, 위장복이다. 지금은 대부분 병과의 군인들이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고 있지만 그때는 기갑과 특전사 등 일부 병과만 개구리복을 입었었다. 더군다나 휴가 때는 위장복을 입지 못하게 했다. 그런다고 안 입나? 다 입지! 그리고 휴가용 위장복은 따로 준비했다. 몰래. 다 알려진 비밀이지 뭐. 버스는 달린다. 고속도로를! 아~ 얼마 만에 타보는 민간인 차량인가. 아~ 풋풋한 민간인 아가쒸들! 달려라 달려 고속버스야! 판교를 지난다. 판교, 그때는 변두리 구석지나 다름없었지. 이럴 줄 알았으면 군바리 월급모아서라도 땅 좀 사둘걸. 부동산에 미친 나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을 나왔다.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왜? 이발소를 찾는 거지. 이발은 이미 했지만 멋지게 위장복을 갈아입을 곳을 찾은 것이다. 면도도 한번 더 할겸. ‘면도 좀 하러 왔습니다.’ ‘아! 예! 휴가 나오셨군요.’ 이발사 아저씨 무진장 친절하다. 눈웃음이 흘러넘쳐 어두운 이발소에 넘실거린다. ‘이 쪽으로~’ 이발소가 왜 그리도 어두운거야? 옆에는 커튼이 전부 쳐있고 무슨 미로 같네. 아저씨가 커튼 하나를 휙 제친다. 헉! 하얀 가운 입은 아가씨가 의자에 앉은 어느 남자 위에 올라타 있다. 무슨 자세? ‘아이고! 손님이 계셨네!’ 이발사 아저씨 놀라는 둥 마는 둥 다시 커튼을 휙~ 가리고 옆 칸으로 나를 모신다. ‘저기... 어떻게?’ ‘예?’ ‘뭐를...’ ‘예?’ 그리고는 난 그냥 군복만 갈아입고 나왔다. ‘우와! 멋있습니다.’ 이발사 아저씨 군바리 비위 맞추느라 갖은 애를 다 쓴다. 그래도 난 면도만 할겨! 면도만 살짝 했는데 이발요금은 무진장 비싸게 받더군. 아까 그 장면 봐서 비싼가? 그 후로 나는 이발할 때 미용실로 간다. 난 지금도 우리 동네 미용실 간다우~
자 이제 어디로? 집으로? 아니지! 전차병 군바리가 집에 그냥 들어가면 쓰나~ 택시를 집어타고 퍼런담동에 있는 카페로 갔다. 그곳 주인은 우리학교 앞 음악카페에서 DJ하던 형인데 친구들과 함께 모두 친하게 지냈지. DJ라고 영문자 쓰고나니 뭔가 찝찝하네~ 퍼런담동 도착, 카페 문을 여니 카페주인 바로 그 형이 졸다말고 나를 바라본다. ‘어~ 군바리!’ 악수 한번 하고. 시간이 지나자 한명 한명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오후부터 밤까지 끝없이 술을 마셔댄다. 한밤 중, 나와 친구 펭녀석 그리고 나보다 한두살 많은 친구 쌩씨? 어쨌든 어쩌다 알게 된 사람이다. 그렇게 셋이서 택시를 타고 2차를 하러간다. 이때부터 2차, 3차는 술습관이 되어버린다. 펭과 쌩씨 그리고 나는 또 맥주를 마셔댔다. 그리고 막강했던 나도 취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펭녀석과 쌩씨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한여름 동트기 전, 서울의 어느 동네 큰길 한복판에서 나는 피의 잔치를 벌인다. 피의 잔치? 설마 내가 피를 흘렸겠수? 전차병 쫄다구였는데... 20년하고도 한달 정도 세월이 흘렀다. 공소시효 지났다!
피의 향연도 벌였으니 이제 집에 가야지. 택시를 탔다. 밤새 마신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어서인지 바로 잠이 들었다. ‘군인아저씨 다 왔어요!’ 눈을 떴다. 엥? 여기가 어디야? 술에 취해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말해 준 동네는...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이었다. 아마도 술김에 동심의 그리움, 뭐 그런 걸 느꼈나보다. 아니면 고달프고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어린아이처럼 마냥 천진난만하게 쉬고 싶어서였을까? 택시를 다시 돌려 한강을 건넜다. 내가 살고 있었던 포기한 동네로 출발! 동이 훤하게 텄다. 아파트 앞에 도착해 개구리복장을 한번 점검! 군화도 한번 살피고! 단 한 번도 부모님 앞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전차병이 되어 비틀거리면 말이 안 되지! 초인종을 눌렀다. 엉! 누르자마자 문이 열렸다. 3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신다. 잃어버린 아들이라도 찾으셨나? 피곤한 척은 있는 대로 다하며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조그만 거실 한가운데 작은 상 위에, 성모마리아상, 기도서, 묵주 그리고 촛불이 아롱아롱 빛나고 있었다. 첫 휴가 나와 밤새 소식이 없는 외아들을 기다리며 기도로 밤을 꼬박 세우셨나보다. 지금도 부모님 방에는 그 성모상이 놓여있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로 내게 말씀하신다. ‘이 녀석아! 철 좀 들어라~’ 성모마리아시여! 공소시효 정말 지났나요?
<첫 휴가 일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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