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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연애 어떠세요? (17)
고3 초가을 초저녁이었습니다.
그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도서실에서 일찍 나왔습니다.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던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위아래 모두 밝은 색 진이었지요. 얼마 전 아버지께서 충무로의 한 옷가게에서 새로 사주시었던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게다가 제가 슬며시 아버지로부터 빼앗아 입은 셔츠와 구두까지. 그날 뭐한다고 그리 빼입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입고는 그 다음해에 디스코텍을 아주 많이 드나들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그날, 어깨에는 조그만 가방을 둘러메고, 아마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가 들어있었을 겁니다.
룰루랄라!
충무로를 걸었습니다. 참 기분이 좋았어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날아가는 것 같았지요.
육교아래를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제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무심코 돌아보니 곱슬머리가 아주 심한 젊은 아저씨였습니다. 글쎄 삼십대 초반쯤?
단발머리 수준으로 머리를 기르고 검은 안경에 두툼한 재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제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더군요.
‘학생인가?’
그럼 학생이지 뭐로 보인다는 말씀?
‘예.’
‘고3?’
‘예, 그런데요.’
기름이 잘잘 흐르는 미소가 그 남자의 얼굴에서 흐르기 시작하더군요.
‘술 마실 줄 알아?’
‘술요?’
술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던 때였습니다. 막걸리에 막 맛이 들여졌고 소주의 쏘는 그 열정에 매료되고 있었지요.
‘뭐, 술이라면 자신 있는대요.’
참! 어린 것이 술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그래? 그럼 나랑 술 한 잔 할까?’
‘예?’
처음 본 남자가 보도블럭 위에서 느닷없이 술을 마시자고 하네요.
‘왜요?’
‘왜긴! 보아하니 학생이 참 멋있어서 그러지.’
멋있다는데 뭐 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고.
대로 언덕위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가본 곳이었지요.
식사를 위한 레스토랑은 아니고 지금으로 치면 바, 카페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하계단에는 자줏빛 카펫이 깔려있고 벽에는 유리 그리고 천장에는 요란한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또 붉은색 소파와 클래식음악이 흐르고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가 정중하게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허구한 날 대학가 막걸리집 아니면 분식집에서 냄비오뎅에 소주를 마시던 제가 그런 곳이 처음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죠. 물론 보통 맥주집 정도는 알았지만.
크리스털처럼 보이는 접시에 안주가 나오고 무지하게 큰 병맥주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잔! 시원하더군요.
그리고 또 한잔, 그렇게 두어 잔 마신 것 같습니다.
그 남자는 모여학교 체육교사였습니다.
에구머니나! 이거 완전히 선도대상으로 찍히는 건 아닌지.
‘내가 말이야 일본에 있을 때는 말이지...’
갑자기 일본 이야기를 왜 하시나?
‘아주 자유로워! 프리야! 프리!’
뭐가요?
‘서로 마음만 맞으면 아무 상관이 없어!’
도대체 뭐가요?
그 남자는 운동을 많이 했는지 어깨도 엄청 넓고 손바닥도 거의 물개발바닥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건 어딘지 이상했지요. 여학교에서 너무 고생을 하셨나?
‘나랑 사귀어볼래?’
‘예?’
시방 예쁜 여자친구 하나 생기는 게 소원인데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시는가요?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결국 저는,
‘저기요! 제가요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주는 여자 한명 데려오면 어떻게 해보고 싶은 게 사실인데요. 남자끼리 뭘 한단 얘기세요? 죽어도 싫은데요!’
‘하! 우리 한국학생들은 너무 답답해!’
그리고는 또 일본 이야기. 일본 고등학생들은 정말 그런가요?
탈출해야지요.
단호하게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 남자도 포기했는지 따라 일어서더군요.
계단을 오르다가 그만 발을 헛딛고 말았습니다. 술기운과 충격 때문이었는지.
그 순간 저의 허리를 감싸며 부축하는 그 남자의 손을 느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 올라와서는, 그래도 어른한테 예의는 지켜야지요.
‘안녕히 가세요!’
우두커니 레스토랑 앞에 서있는 그 남자를 뒤로하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집까지는 내리막길이었습니다.
달려라! 달려!
맥주기운까지 동원해서 탄력이 붙었습니다.
최단시간 최고가속도 돌파! 치타의 유전자를 빌려라!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왔습니다. 기네스북에 올랐어야 하는 건데.
헉헉거리며 집에 들어오는 제 모습을 쳐다보시던 어머니의 표정이 생각나는군요.
동성연애.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우리사회에서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만 들어도 그날의 그 소름이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퍼지고 맙니다.
길거리에서 술 사준다고 하는 사람 조심하세요. 특히 멋있다고 치켜세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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