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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셀의 노랑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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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한잔 49. 피멍    2007/11/21 15:1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rcelco/2595239

49. 피멍

 

장반장의 하마 같은 몸에 깔려버린 정순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보지만 노동판 험한 일에 평생 다져진 그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다.
‘놔!’
‘아이고! 그것 참! 요사스럽게.’
장반장의 우둘투둘한 시커먼 손이 정순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반짇고리는 벌써 멀리 나둥그러져 버렸고, 정순은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다. 바늘에 꿰어 있던 실이 손가락에 닿는다.
그리고 정순은 장반장의 옆구리를 바늘로 힘껏 찌른다.
‘아!’
장반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자빠진다.
‘아니! 이년이!’
장반장은 정순의 몸 위로 다시 올라타며 그녀의 얼굴을 세게 내리친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내리친다.
‘이런! 잡부년이 곱게 남자 맛이나 좀 볼 것이지!’
정순의 코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한다.
‘이년아! 곱게 있어. 내가 힘 좀 써 줄 테니까.’
장반장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정순의 몸을 덮친다.
‘제발......’
정순은 더 저항할 힘도 말할 힘조차 없다.
이제 정순의 가슴까지 하얗게 드러나고 있다. 음흉한 장반장의 눈빛이 색욕에 야수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뭐야!’
숙소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문을 세차게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남자들이 몰려 들어온다.
‘야! 이 새끼!’
이대리가 몸을 날려 장반장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린다.
그리고 바닥에 뒹구는 그의 배를 마구 짓밟는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
직원들은 장반장의 두 팔 그리고 두 다리를 꼭 붙잡고 이대리는 그의 배에 올라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으스러지도록 때리고 있다.
인부 중 제일 나이 많은 한씨가 정순의 가슴을 가리어주며 입술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있다.

 

멍투성이가 된 얼굴로 정순은 멍하니 맥없이 그렇게 마루에 앉아있다. 천두는 설희를 업고 엄마 뒤에 서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다본다. 밤하늘에는 아랑곳없이 별이 쏟아지고 있다.
‘천두엄마!’
장경사와 이대리가 집으로 들어온다.
‘장반장 그 놈은 서로 데려갔네. 자네 괜찮은가? 병원에 가야지?’
정순은 넋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대리는 미안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발로 땅바닥만 긁고 서있다.
‘주강이한테 연락할까?’
‘아뇨! 안돼요.’
그제야 정순은 입을 연다.
‘자네 어쩌려고 그러나? 오늘도 이대리 이 사람이 눈치 채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 하지 않았는가? 서울로 가지 그러나?’
‘아주머니. 저희가 회사트럭으로 이사를 해드릴 테니 가시죠?’
‘아뇨. 벌써 이사할 곳을 정해두었어요. 차도 있고......’
‘자네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가?’
장경사는 자꾸 한숨만 나온다.
‘전주요.’
‘전주? 거기 아는 사람이 있는가?’
‘예. 살 곳이 있어요.’
장경사와 이대리는 조용히 정순의 집을 나온다.

 

며칠 후, 조씨가 그의 삼륜차에 짐을 싣고 있다. 그저 옷가지와 작은 경대 그리고 임원장의 자전거, 별다른 이삿짐도 보이지 않는다.
‘천두엄마! 다 됐네.’
조씨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정순을 부른다.
‘예.’
조씨는 잔뜩 멍든 정순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딴청을 부린다.
‘비라도 오면 난리니 어서 가세.’
‘예.’
‘아주머니!’
이대리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이제 가시는 겁니까?’
‘예.’
‘저기... 이거.’
이대리는 봉투 하나를 그녀에게 내민다.
‘이게 뭐예요? 이대리님.’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에서 사죄의 뜻으로 좀 준비했습니다.’
‘아뇨! 싫어요.’
‘아주머니. 장반장 그 놈은 철장에 갇히면 돼지만 저희가 아주머니한테 끼친 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발 받아주십시오. 제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대리님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전 이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정순은 설희를 안고 삼륜차에 타버린다. 천두는 짐칸 옷 보따리에 기대어 앉아있다. 어린 녀석의 표정이 정말 우울하다.
‘아주머니! 받으셔야 합니다.’
이대리는 돈 봉투를 정순의 무릎 위에 던져버린다.
‘왜 이러세요?’
‘아주머니! 제 명함 꼭 갖고 계세요. 제가 언젠가는 꼭 신세를 갚겠습니다.’
그리고 이대리는 돌아가 버린다.
‘천두엄마. 그냥 받게. 돈도 필요하지 않는가.’
조씨의 삼륜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마을을 지나 이제 읍내로 가는 길. 덜컹거리는 삼륜차 안의 정순은 눈물을 글썽인다. 조씨는 모르는 척 앞만 보고 삼륜차를 몰고 있다.

 

9년 전 그날,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들고 앞서 걸어가는 임원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뒤를 불룩한 배를 잡고 따라가던 그 옛날 정순의 모습. 처음 그길로 정순은 임원장을 따라 걸어왔었다.
‘좀 쉬었다 가겠는가?’
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말을 했던 임원장의 그 모습. 희끗한 머리카락.


길 따라 일어나는 뿌연 흙먼지에 정순의 추억이 다 뿌려지고 있는 것 같다.
임원장도 떠나고 이제 정순도 그 길 그 마을을 떠나고 있다.
천두는 짐칸에 앉아 혼자서 노래를 부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세월 한잔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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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한잔 48. 반짇고리    2007/11/20 15:07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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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반짇고리

 

박중헌의 화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누가 공사판일 하라고 했습니까?’
‘공사판일이라니요? 동네에서 일하시는 분들 식사 만들어 드리는 게 왜......’
‘시끄럽습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내 지금 소리를 안 지르게 생겼습니까? 돼지 다 팔아먹고 집도 헐리게 생겼는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럼 어쩌겠어요? 제 땅도 아니고 제 집도 아닌데.’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합니까?’
‘폐 끼치기 싫어요.’
‘폐?’
‘예.’
천두는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잔뜩 얼어붙어 있다. 마루에서 자던 설희까지 깨어나 울기 시작한다.
‘당장 때려치우고 내랑 부산으로 갑시다.’
‘제가 거길 왜 가요?’
‘정말 이럴 겁니까?’
‘박상사님. 제발 이제 그만하세요. 그동안 도와주신 거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더는......’
‘그래서 어째 살 겁니까? 천두, 설희 데리고 뭘 어째 살 겁니까?’
‘전주에 일 할 곳이 있어요.’
‘아이고! 그러십니까? 또 얼마나 고생을 하고 살라고요?’
‘상관마세요!’
정순은 울부짖듯 소리친다.
마루에 앉아있던 설희는 놀란 나머지 찢어지는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천두가 얼른 설희를 껴안는다.
‘아저씨! 나가요! 우리엄마한테 왜 그래요!’
천두는 가슴에 설희를 품은 채 울기 시작한다.
정순도 마당에 주저앉아 땅을 짚고 눈물을 흘린다.
‘그럽시다! 정순씨 맘대로 하소!’
중헌은 정순의 집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멀리서 장반장이 그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그날 밤, 장반장이 숙소 끝 구석진 자리에서 인부 두 명과 술을 마시고 있다. 두 인부는 항상 장반장에게 붙어 다니며 아부로 사는 그런 인간들이다.
‘그럼 그렇지! 반질반질하게 생긴 젊은 것이 기둥서방 하나 없을 리가 없지.’
장반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정말 기둥서방 맞아요? 반장님.’
‘그럼! 척 보면 알지. 무슨 일인지 대판 싸우고 가더라고. 허허허허.’
‘아이고!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다더니.’
‘얌전하긴! 우리 밥 줄때 좀 보라고. 교태가 이만저만인가? 살랑살랑 웃으면서 말이야.’
두 인부는 장반장 장단에 맞추느라 말을 보태고 또 보탠다.
‘음... 내가 이제 슬슬 한번 건드려 볼까?’
장반장이 또 엉큼한 미소를 짓는다.
‘반장님. 어쩔라고요?’
‘야! 반장님이 현장마다 계집 하나 꿰차지 못 한 적이 있으시냐?’
‘기둥서방하고 깨졌으니 좀 있으면 밤이 써늘해지겠지. 안 그래?’
‘하여간 반장님은 도사여. 도사!’
‘여기까지 와서 계집 하나 못 건지고가면 쓰나.’
세 명의 음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며칠 동안 정순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중헌을 그렇게 보내 버린 것이 후회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린 천두도 그런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전혀 짓궂은 짓을 하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조용히 설희만 돌본다.
그리고 이른 초저녁 무렵.
‘아줌마! 아줌마!’
인부 한명이 정순네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무슨 일이세요?’
‘아이고! 큰일 났네!’
‘왜요?’
‘아줌마 혹시 약 있어요?’
‘예? 약요?’
‘급체 같은데 이걸 어쩌나?’
‘누가요?’
‘우리 장반장님이 배를 붙잡고 뒹굴어요. 저녁 먹은 게 탈이 났나봐.’
‘정말요?’
‘아! 아줌마! 지금 사람이 죽어 가는데.’
‘어떡하죠? 지금 약이 다 떨어졌는데. 이대리님한테 말씀하시죠?’
‘아이고! 이대리하고 사람들 전부 차타고 목간 갔단 말이오.’
‘이를 어쩌지?’
‘가만! 혹시 아줌마 손 딸 줄 알아요?’
‘손요?’
‘아니! 당장 급하니깐 바늘로 손이라도 따야지! 나 참!’
‘아! 예. 잠깐 기다리세요.’
정순은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반짇고리를 꺼내온다.
‘천두야! 설희 좀 보고 있어. 엄마 갔다 올게.’
정순과 그 인부는 숙소로 달려간다.

‘아줌마. 들어가 봐요.’
‘예? 저 혼자요?’
‘난 그거 못 봐! 난 피만 봐도 토한다고!’
‘예.’
정순은 숙소로 들어선다. 반짇고리를 들고서.
장반장이 배를 움켜잡고 끙끙 앓으며 누워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저기... 많이 아프세요?’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정순은 망설이다가 반짇고리를 연다.
‘제가 손이라도 따 드릴게요. 저녁밥에 탈 날 게 없는데......’
장반장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망치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그의 손을 내민다. 정순은 조심스레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는다.
‘나 하나도 안 아파.’
‘예?’
‘니가 갖고 싶어서 속이 타지!’
장반장은 벌떡 일어나 정순의 어깨를 꽉 붙잡고 방바닥에 뉘어버리고 만다.
‘놔요!’
커다란 장반장의 몸뚱이가 정순의 몸 위로 올라타고 있다. 정순의 몸부림도 그리고 비명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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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한잔 47. 설거지    2007/11/19 16:07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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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설거지

 

돼지는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우리 앞에 정순을 넋을 놓고 기대어 앉아있다. 간간히 불어오는 여름 그 바람이 정순의 앞치마를 살짝 건드린다.
이젠 매일매일 공사장 인부들의 밥을 대어주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인원에 그 먹성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천두엄마.’
조씨가 그녀를 찾아 돈사 안으로 들어온다.
‘오셨어요?’
‘돈 받아 왔네.’
‘예. 수고하셨어요.'
조씨는 신문지에 꼭꼭 싼 돈뭉치를 건네준다.
‘돼지 값이 그새에 또 떨어졌어.’
‘다 팔았으면 다행이죠. 뭐.’
정순은 외상값을 갚으려 조씨에게 돈을 건넨다.
‘아이고! 이거 받기가 미안하구만.’
‘무슨 그런 말씀을. 여태 도와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요.’
‘미안하네. 우리 아들 녀석 학비만 아니라도 안 받을 텐데.’
‘어서 받으세요.’
정순은 조씨의 손에 돈다발을 쥐어준다.
‘갈 곳은 정했는가?’
‘여기 공사장 소장님이 많이 봐주셔서 아직 집을 헐지는 않는데요. 그것도 얼마 못가요. 이젠 떠나야죠. 어쩌겠어요?’
‘이거야 원! 그 크던 임씨 집안이 아주 사라지네 그려. 세상이 왜 이러나?’
‘저.....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요.’
‘그래? 뭔가 말해보게나.’
‘저 이사할 때 이삿짐 좀......’
‘아!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암! 해줘야지. 그런데 삼륜차 갖고 되겠는가?’
‘그럼요. 짐이 뭐 있겠어요?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요.’
‘어디로 가는가? 서울?’
‘아뇨. 전주요.’
‘언제 가려는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주에 한번 가봐야 돼서요.’
‘그러게.’
조씨는 그나마도 도울 일이 생겨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된다.

 

인부들의 점심시간, 따가운 햇볕을 피해 여기저기 그늘을 찾아 앉아 정순이 퍼주는 점심을 먹고 있다. 정순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아이고! 저 젊은 아줌마 음씩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그러게 우리가 아주 임자 만났어.’
인부들은 매번 정순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입이 닳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대리도 그 모습에 항상 흐뭇하다.
정순은 식사가 끝나면 항상 따뜻한 보리차까지 날라다 준다. 더운 여름이지만 속이 탈나지 말라는 그녀의 마음씨가 담겨있다.
‘아주머니! 아주 잘 먹었습니다. 진수성찬입니다.’
인부들의 반장인 장씨가 느물느물 웃어가며 정순에게 그릇을 돌려준다.
‘예. 고맙습니다.’
‘아이고. 이 젊은 분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뇨. 늘 일을 해와서요.’
‘어떻게...... 부군께서는?’
‘예. 돌아가셨어요.’
‘아이고. 이를 어쩌나!’
얼굴까지 잔뜩 찌푸리며 혀를 차는 장반장의 모습이 그리 좋지 않다.
‘내가 여기 반장이니 뭐 어려운 일 있으며 말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대리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에이! 거 젊은 사람이 뭐 아나요? 나같이 나이 좀 먹은 홀아비나 알지.’
‘예?’
‘허허허허! 나중에 또 이야기 합시다. 그럼.’
장반장은 뒷짐을 지고는 천천히 걸어가 버린다.
그리고 이대리가 장반장을 자꾸 쳐다보며 정순에게로 온다.
‘아주머니. 장반장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음식 잘 드셨다고.’
‘그래요?’
‘그런데 무슨......’
‘아! 예. 드릴 말씀을 잊고 있었군요.’
‘무슨?’
‘아주머니. 이제 곧 여기는 힘드실 텐데 제가 자리 한번 알아봐드릴까요?’
‘예? 자리라니요?’
‘서울 공사현장에 함바집이 필요할 텐데. 제가 자리를 넣어드릴 수 있습니다.’
‘함바집요?’
‘공사장 식당 말입니다. 밥집요.’
‘어휴. 제가 어떻게......’
‘아닙니다. 아주머니 정도면 거의 최상급입니다. 저도 공사장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아주머니 정도의 음식은 처음입니다. 정말입니다. 아주머니.’
‘그게 사실은......’
‘왜요? 무슨 문제라도?’
‘제가 하기가 좀 어렵네요.’
‘왜요?’
‘남지를 않아요. 지금이야 사정도 봐주시고 동네니까 해드리지만 돈이 모자라요.’
‘예? 정말이세요?’
‘예. 죄송해요.’
‘아이고! 그럼 진작 말씀을 하시죠. 저는 남으시는 줄만 알고.’
‘아니에요. 사정 봐 주신 것 만해도 감사하죠.’
‘어쩐지...... 이런 음식을 공사판에서 먹는다는 게 힘들죠.’
이대리는 미안한 마음에 물끄러미 서 있다가 슬쩍 자리를 떠난다.

 

저녁 일찍 인부들의 식사를 마치고 정순은 마당에서 잔뜩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천두도 제 깐에는 도움이 된다고 엄마 옆에 앉아 그릇을 옮겨주고 있다.
‘어! 아저씨!’
천두의 말에 정순은 깜짝 놀라 대문 쪽을 바라본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서있는 박상사, 박중헌이 그곳에 서있다.
‘어머! 갑자기......’
정순을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박중헌. 정순은 겁을 먹고 살짝 뒤로 물러선다. 천두는 그릇을 손에 쥐고 멀뚱멀뚱.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정순씨!’
‘설거지......’
정순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그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설거지? 누가 이런 짓 하랬습니까?’
‘그게... 공사장 분들이 식사하실 곳이 없어서......’
‘뭡니까!’
박중헌은 발 앞에 있던 커다란 광주리를 발로 걷어차 버린다.
‘어머!’
마당에는 인부들의 밥그릇이 나뒹굴고 있다. 그리고 천두는 벌써 엄마 등 뒤로 숨어있다.
‘아저씨!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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