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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캐스팅: 김명민,손현주,정준호>

26_3 저주
장형사의 머릿속에서 짙은 안개가 걷히고 있다. 하지만 더 짙은 그 무엇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정말 우습지 않나? 장형사.'
민검사가 조용히 웃는다.
'이시장 외손자 정대익은 그럼?'
'이시장을 죽는 날까지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 생각이었지. 그런데......'
이정혜가 말을 잇는다.
'외손자가 그런 녀석일 거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않았어요. 장형사.'
'우연이었군요?'
'그래요. 정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가 막히지 않아요? 호호호호!'
민검사가 한숨을 쉰다.
'우린 세 가지 실수를 했어.'
'세 가지요?'
'하나는 이시장의 외손자, 그리고 또 하나는 어린아이들의 그 장난 같은 인터넷카페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지. 정말 짐작도 못했지.'
'그럼 또 하나는요?'
'그건......'
이정혜가 장형사를 똑바로 쳐다본다.
'김반장과 장형사를 과소평가했다는 거죠.'
'흐흐흐흐. 과소평가요? 제 생각에는 저는 맞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두 분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만 듣고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만 들어주는 것으로 끝을 내준다면 다행이겠지.'
민검사의 눈빛이 날카롭다.
'몇 명이나 더 죽일 생각이셨나요?'
'몇 명? 하하하하!'
'장형사! 우린 끝까지 이 세상의 추악한 인간들을 없애버릴 거예요.'
이정혜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그래요? 도대체 민검사님의 그 조직은 몇 명이나 되는 겁니까?'
'글쎄... 우린 아주 많지. 아주 많아! 하하하하!'
'그럼 가월회하고는 도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자네 궁금한 게 무척 많군. 하긴 다 말해주어도 이젠 상관없겠지.'
'상관없다고요?'
'하하하하! 가월회는 우릴 경계하지. 우리가 그들을 알고 있고, 또 그들이 우리를 알고 있지. 우리를 추적하면 그들이 나오고 그들을 추적하면 우리가 나오게 되어있지.'
'어째서죠?'
'그건 우리와 그들이 이용하는 경찰들이 우리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와 가월회를 마치 보이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만 생각하지. 스스로의 약점 때문에 어쩔 수가 없으니까.'
'비리를 약점 잡아 경찰을 장악하셨군요.'
'어디 경찰뿐인가?'
'조폭도 이용하시죠? 안 그런가요?'
'사실 그 꽃도 조폭과 러시아마피아 사이에서 찾아낸 거야. 자네도 알고 있지?'
'왜 굳이 독초를?'
'처음에는 독살을 위해서 필요한 거는 아니었어.'
'그럼요?'
'우린 그 독초가 환각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걸 알아냈지. 우린 자금이 필요했어. 자금!'
'자금?'
'조직을 자금 없이 운영할 수 있나? 이 거대한 조직을 말이야.'
'그래서 조폭들과 타협하셨나요?'
'아니!'
'아니라니요? 그럼 어떻게?'
'우린 꽃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 철저하게 차단된 정보였어. 자금을 확보하기에 충분했지.'
'그런데요?'
'그런데 러시아마피아, 조폭 그리고 경찰 그런 얽힌 문제들이 만만치가 않았어.'
'그러면?'
'그들이 해결했지.'
'가월회?'
'그래! 우린 약을 가월회에게 공급해주는 대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어.'
'가월회도 돈이 필요했군요.'
'그래. 흔한 뇌물로는 자금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마약장사를 하려 했단 말입니까?'
'마약? 하하하하! 우린 국내에서는 절대 팔지 않기로 했었네. 모두 해외로 나가게 되어있지.'
'흐흐흐흐! 토냐가 말한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이었군.'
'토냐?'
'러시아콜걸 토냐.'
'그 콜걸은 가월회 끄나풀들과 연결되어 있었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죽였나요?'
'내가 알기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탈출하지 못했을 거야.'
'다 죽이는군! 흐흐흐흐'
'장형사 우리가 다 죽인 게 아니야. 지금껏 뭘 들었나?'
'그럼 가월회 그자들이 죽였단 말입니까?'
'그래.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모인 자들이야. 돈줄이 탄로 나는 걸 원하지 않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단 말이야.'
'그럼 당신들은? 흐흐흐흐'
장형사의 비웃음에 민검사가 분노를 삭히 듯 잠시 숨을 멈춘다.
'우린! 추악한 인간에 대한 심판을 하는 거야. 저주!'
'하하하하!'
장형사가 크게 웃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눈을 찡그리며 숨을 멈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장형사가 테라스 밖을 바라본다. 여자의 고통스런 신음소리.
'저기 온실에 누가 있는 거요?'
민검사가 이정혜를 쳐다보며 말한다.
'정혜, 저 아가씨 약 기운이 떨어진 모양이군.'
이정혜의 모습은 너무나 침착하다.

27_1 후회 (종결)
‘아가씨라니? 또 누굴 헤치려는 거요?'
장형사가 민지강을 노려본다.
'말 많은 아가씨! 너무 많이 알아내려 하더군.'
'양기자?'
장형사의 물음에 이정혜가 미소 짓는다.
'그래요. 양기자 그 아가씨가 저기 있지요.'
'당신들!'
'내일쯤이면 중독자가 되어버릴 거야. 우리가 약을 주지 않는 한 평생 정신병자처럼 살아야 되지.'
'빨리 돌려보내! 어서!'
'서두르지 말게.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
'다 되다니 무슨 말이오?'
이정혜가 장형사의 찻잔을 살며시 들어본다.
'장형사, 차를 다 마셨군요.'
'뭐라고? 그럼?'
'그래요. 장형사는 호랑이꽃을 마셨죠. 아주 조금.'
'내게 독을 마시게 했군. 그런데 민검사 당신은?'
민지강은 보라는 듯 남아있는 차를 다 마셔버린다.
'해독제를 가지고 있군. 그렇지?'
'하하하하! 맞네. 양봉을 하려면 벌침에 면역이 있어야하고 독사를 키우려면 해독제 정도는 갖고 있어야하지 않겠나?'
'이런 정신병자들!'
장형사는 분을 참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서려한다. 하지만 그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제기랄!'
장형사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장형사 걱정하지 말아요. 고통은 없을 테니까. 그냥 천천히 마비돼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아요.'
이정혜 그녀는 너무도 차갑다.
'고맙기도 하시군! 당신이 반장님을 죽였지? 그렇지?'
여인은 눈을 감는다.
'그래요. 오라버니는 다 알고 있었어요. 내가 고백하기를 바랐던 거죠. 하지만 난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없지요.'
장형사의 시야가 희미해져가고 있다. 눈을 억지로 뜬다.
'어떻게 죽였지?'
'반장님은 심장이 나빴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어요.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장형사의 호흡이 약해지고 있다.
'개 같은 것들!'
'원망하지 말게.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까.'
'후회하게 될 거다.'
'후회하지 않아요. 절대로! 장형사는 후회되나요?'
이정혜의 모습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래! 후회한다. 전부 다! 내 아내를 사랑한 것도, 내 딸을 너무 사랑한 것도 그리고 반장님을 너무......'
장형사의 머리가 힘없이 뒤로 젖히어진다.
'이제 그만 끝내세. 장형사.'
민지강도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렇게는... 그렇게는 못하지.'
장형사가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뭘 어쩌겠다는 건가?'
장형사가 웃옷을 열어 보이고 있다. 그의 안주머니.
'그게 뭐야?'
'안 보이시나? 이거 이어폰마이크! 내 핸드폰!'
'뭐?'
이정혜와 민지강의 표정에 긴장이 돌고 있다.
'여태 생방송을 아주 잘 해주셨군. 아주 순순히.'
'무슨 짓을 한 거야?'
'잘난 검사나리! 내 친구가 기자라는 걸 잊으셨나? 강기자!'
'이 자식! 무슨 소리야?'
'지금 병원에서 당신들 목소리를 쩌렁쩌렁하게 듣고 있을 거야.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다 들었겠지. 병원이 아주 크거든. 시설도 좋아. 흐흐흐흐!'
이정혜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사장! 앉으시는 게 좋아.'
'이런 비열한 자식!'
이정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장형사가 뒤춤에서 권총을 꺼낸다. 천천히 겨눈다.
'앉으시지!'
민검사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 권총 어디서 난 건가?'
'너희 같은 것들 처리하라고 반장님이 주셨지. 내가 권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래? 쏠 텐가?'
'글쎄? 손가락이 먼저 마비되지 않는 게 다행이군. 아마 지금쯤 기자들이 몰려오고 있겠지. 물론 우리 박형사도 오고 있을 거야. 흐흐흐흐!'
'박형사?'
'옷을 벗더라도 너희는 잡아 처넣고 옷을 벗을 테니까. 갚을 건 갚아야지!'
'하하하하! 장형사, 자넨 우리가 해독제를 주지 않으면 곧 숨이 끊어져.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려!'
'흐흐흐흐! 내가 살려고 이러는 줄 아나? 너희를 죽이기 위해서야. 너희의 저주를 내가 처벌하기 위해서야. 난 형사야!'
'바보짓 하지 마!'
'여기 총알 딱 세 발이 있지. 한 발은 비뚤어진 사랑에 미친 검사님을 위해서. 한 발은 과욕과 분노에 미친 아주 아주 아름다운 한 여인을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은 멍청한 형사새끼가 평생 후회만 하면서 살지 않으려면......'
막다른 그 길로 경찰차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구급차 그리고 취재차량들. 그때 그 길을 뚫고 총성이 울린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또 한 발.
그늘진 작은 나무숲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구름에 펼쳐지는 검은 날갯짓들.
한적한 외곽도로.
한 여인이 그 길 위에 초조하게 서있다.
'여보세요! 보험사죠? 차가 고장 나서요. 지금 여기, 용인 가는 길인데요.'
열려진 차창으로 라디오소리가 들려온다. 아나운서의 목소리.
'경찰은 오늘, 지난 달 언론에서 공개한 검사와 경찰로 이루어진 비밀사조직을 수사하여 그 주모자들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주모자들은 모두 쉰여덟 명에 이르며 일부 조직원들은 자살하거나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지난 십여 년간 조직폭력, 살인교사, 마약밀매, 뇌물수수 등......'
그 길 아래 작은 언덕, 무성한 잡초들.
바람이 불어온다.
진홍빛 작은 꽃 한 송이, 그 바람에 쓸쓸히 고개를 흔들고 있다.
사랑의 피. 사랑의 분노. 그리고 저주의 꽃.
나이페로소스.
-나이페로소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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