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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불륜)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불륜 46. 사랑 (끝) 손현주, 김명민, 한고은    2009/09/04 10:14 추천 4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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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_손현주_김명민_한고은.jpg

<가상 캐스팅: 손현주, 김명민, 한고은>

 

46_김명민_한고은_입원.jpg

 

46. 사랑

 

병원복도 끝 의자에 앉아 옹녀는 훌쩍이고 있다. 아씨가 옹녀를 살며시 껴안으며 위로한다.
‘언니, 울지 마. 방장님이 의사선생님 모셔오면 금방 나을 거야. 여긴 만두님 치료할 전문의가 없다잖아. 하긴 뭐 이 구석지에......’
‘어차피 방법이 없다잖아. 수술도 위험하고.’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지. 아직 희망이 있어.’
아씨가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옹녀에게 묻는다.
‘언니, 돌쇠가 왜 저러는 거지? 그냥 만두님 걱정돼서 그러는 거 같지가 않은데? 왜 그러지? 언니는 알지? 응?’
옹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찬찬히 말한다.
‘내가 말했잖아. 돌쇠하고 만두에 관한 일은 얘기 하지 말라고.’
‘언니가 언제 그랬어? 소보로님 얘기하지 말랬지.’
‘응? 그... 그랬나?’
아씨는 뭔가 생각해 내려는 듯 심각하게 생각에 잠기고 있다.

 

상진은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입을 꼭 다물고 필만을 쳐다본다.
주머니에서 그림을 꺼내어 보여주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이 그림 네가 그려준 거 맞지? 만두 주필만.’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통해 내쉬는 필만의 가녀린 숨소리만 답한다.
‘내가 멍청했지. 이걸 보고도 널 생각하지 못했으니... 그래, 솔직히 네 그림을 모른 거지. 제대로 본적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미소를 띤다.
‘흐흐. 잘 그렸다. 정말 윤희 같구나. 윤희 학생 때 이랬겠지?’
그리고 뒷면을 보더니.
‘윤희가 종이를 붙여 놨다. 네가 사인한 걸 가렸나봐. 흐흐.’
상진은 필만의 손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림을 쥐어준다.
‘임마, 이건 너 가져. 어차피 네가 그린 거니까. 자식......’
그리고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잠시 이를 악물고 있다가 다시 필만을 쳐다본다. 그리고 목걸이를 목에서 빼어낸다.
‘대신, 이건 내 거야. 이거 원래 우리 집사람, 윤희가 나 주려고 산 거야. 그때, 그날 아침에 내가 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가지고... 하여튼 이건 내 거야. 알았어? 엉뚱한 놈이 왜 가져?’
꼼짝도 하지 않는 필만, 상진은 필만의 머리 위에 있는 모니터를 올려다본다. 파장을 그리며 연둣빛으로 그어지는 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자식, 그 와중에 이거 거기다가 켜 놀 생각은 어떻게 했냐? 이 형 살리려고? 너 살려고? 아님 둘 다?’
상진의 귓가에도 꿈처럼 윤희의 맑디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 소중한 사람을 지켜준대. 정말이야.
상진은 보랏빛 유리알을 눌러본다.
‘어? 이거 왜 안 켜져?’
상진은 이리저리 다시 만져보지만 유리목걸이는 반짝이지 않는다.
‘배터리가 나갔나? 비에 너무 젖은 건가? 물 들어갔나?’
상진은 목걸이를 필만에게 보여주며 또 말한다.
‘야, 이거 안 된다. 어떻게 키는 거냐? 고장 난 거야? 배터리 갈아야 돼? 그래?’
상진은 또 혼자 바보처럼 피식 웃는다.
‘자식이 치사하게 무슨 비밀이라고... 저 혼자만 알려고......’
그때 아씨가 병실 문 뒤에 살짝 머리를 내밀고 몰래 엿보고 있다.
옹녀가 아씨를 확 끌어당기고는 작은 목소리로 야단치듯 말한다.
‘너 뭐하니?’
‘언니. 이상해. 돌쇠가 만두랑 무슨 얘기를 해. 한번 봐봐.’
옹녀도 한번 몰래 들여다보지만 이내 옹녀를 끌고 복도 끝으로 간다.
‘언니. 돌쇠 이상하지 않아? 제 정신이 아닌가봐.’
‘시끄러!’

 

상진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맥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아주 천천히 말한다.
‘필만아, 나 눈치 챘었다. 그날 말이야. 윤희 죽은 날 그날. 날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 뜨끔한 거지. 처형 집으로 들어오는 걸 봤는데... 그래. 난 직감했어. 난 알거든. 마누라를 모르겠냐? 아... 남자가 생겼구나. 보통사이가 아니구나. 어떻게 알았냐고? 흐흐흐흐.’
상진은 또 바보처럼 혼자 웃는다.
‘그 사람은 말이야. 흐흐흐흐. 이젠 넌 알아도 되겠지? 그 사람... 윤희는 사랑을 나누고 나면 말이지. 남자랑 아주 진하게 사랑을 나누고 나면 꼭 머릿속이 텅 빈 여자처럼 되거든. 그리고 향기가 같은 게 나. 향기. 내가 그래도 남편인데 모르겠냐? 흐흐흐흐.’
그리고 또 필만을 바라본다.
‘그게 너였어. 상상도 못했지.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이걸 어쩌나? 이년동안 잠자리 한번 같이 안했는데 이제 와서 어쩌나? 이혼해야 하는 건가? 아니지! 안 돼. 이혼은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흐흐흐. 혼자 머릿속이 정말 복잡했었다.’
상진은 눈을 감는다.
‘그래.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보통사이가 아니었겠지.’
다시 필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랑했냐? 사랑했어? 윤희를? 형수를? 대답 좀 해봐.’
상진은 필만의 손등을 살짝 건드려본다.
‘야! 내가 너 죽도록 패주고 싶은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형한테 좀 맞아야지. 안 그래? 자식아. 치사하게 아프다고 엄살피우냐?’
상진은 다시 필만의 손등을 두들겨본다.
‘야, 너 정말 윤희 사랑했냐? 그럼 우리 삼각관계야? 뭐야? 이거 불륜 아니야? 불륜. 응? 임마! 정신 좀 차려 봐.’
상진은 필만의 손을 흔든다.
‘자식아! 맞기 싫으면 싹싹 빌어! 진심으로 사과해. 알았어? 집사람한테는 내가 나중에 가서 사과를 받던지 아니면 아주 작살을 낼 테니까. 미안하지? 형한테 잘 못했지? 하긴... 내가 남편인 줄 꿈에도 몰랐겠지. 그래... 그랬겠지. 이게 도대체 뭐냐?’
필만의 손가락이 꼼지락 거린다.
‘어?’
그리고 필만이 가늘게 눈을 뜬다. 희미한 눈빛, 그의 눈동자가 상진을 향해 움직인다.
‘야! 정신이 든 거야?’
필만의 눈빛이 너무 슬퍼 보인다. 그리고 아주 가늘게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상진은 필만 얼굴 가까이 다가가며 저도 울먹인다.
‘임마... 왜 울어? 형이 때리지도 않았는데.’
필만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슬픈 눈빛으로 눈을 깜빡인다.
‘뭐? 잘못했다고? 지금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맞아?’
필만이 손을 움직이려 하지만 바르르 떨리고만 있다. 상진이 그의 손을 잡아준다.
‘그래. 일단 살고보자. 그러고 나서 또 나한테 죽도록 맞던지. 하여간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임마.’
필만은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있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너 이렇게 가면 안 돼. 죽으면 절대 안 돼. 그러면 윤희가 너 먼저 데려가는 거 잖아? 그럼 난 뭐야? 안 돼. 죽지 마.’
필만의 눈이 다시 조금씩 감기고 있다.
‘눈 떠! 임마!’
필만이 갑자기 눈을 부릅뜬다. 상진이 놀란다. 그리고 필만의 숨소리가 마치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에라도 막힌 듯 거칠어진다. 그리고 고개를 젖히며 괴로워한다.
‘왜? 왜 그래? 잠깐 기다려. 내가 의사 불러올 게.’
상진이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 할 때, 필만의 몸이 마구 떨려온다. 그리고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경고음이 마구 울려댄다.
‘여기요! 간호원!’
상진이 황급히 침대 옆을 빠져나가려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만다.
유리 목걸이는 바닥에 떨어지며 문 쪽 벽까지 미끄러져 가버린다.
간호원이 뛰어오고 옹녀와 아씨도 달려 들어오고 상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고 있다.
‘돌쇠! 괜찮아?’
아씨가 묻지만 상진은 그녀를 뿌리치며 흐느낀다. 의사가 뛰어 들어오고 모두들 필만의 주위를 둘러싼다. 상진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유리목걸이를 보고는 그곳으로 기어간다. 유리목걸이를 두 손에 꼭 쥐고 문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 경고음소리가 삐소리를 내며 길어진다. 마치 필만의 마지막 인사처럼 들린다.
옹녀는 필만의 몸 위에 엎드려 울고 아씨는 옹녀를 달래며 함께 울고 있다. 유리창 밖 하늘에 엷게 드리워진 회색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있다. 상진은 몸을 떨며 처절하게 울고 있다.
‘왜 가는 거야? 왜!’
그의 손에 쥔 보랏빛 유리목걸이가 흔들린다.
‘사랑하면서 사랑하지도 못했는데... 사랑해주지도 못했는데... 내 잘 못이지. 내가 불륜이야. 내가......’
상진은 가슴속에서 나오는 슬픔과 고통을 억누르지 못하고 제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그의 손의 유리목걸이는 흔들리고만 있다.

 

어느 어두컴컴한 작은 방, 작은 책상 위에 하얀 노트북이 놓여있다. 갑자기 밝게 빛나며 켜지는 모니터의 불빛.
- 소보로: 만두님!
- 만두: 예.
- 소보로: 화났어요?
- 만두: 왜요?
- 소보로: 그럼 왜 이제 왔어요?
- 만두: 미안해요. 꼭 만나고 올 사람이 있었어요.
- 소보로: 정말?
- 만두: 예.
- 소보로: 누구?
- 만두: 잘 아는 사람.
- 소보로: 음... 그렇구나. 지금 뭐해요?
- 만두: 그냥 있어요.
- 소보로: 난 빵 먹는데. 소보로. ^_^
- 만두: 맛있겠다.
- 소보로: 우리 만날래요?
- 만두: 언제요?
- 소보로: 지금. 지금 당장.
- 만두: 기다려요. 내가 거기로 갈게요.
- 소보로: 빨리 와요. 빨리요!
- 만두: 알았어요. 날아갈 게요.
- 소보로: 그래요. 날아와요. 얼른. ^_^
소리 없이 노트북의 불빛은 꺼져간다.


옴니버스 ‘하루살이’ 시리즈
불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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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45. 숨소리    2009/09/03 11:02 추천 8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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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_손현주_김명민_한고은.jpg

<가상 캐스팅: 손현주, 김명민, 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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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숨소리

 

상진이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고 있다. 아씨는 그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는다.
‘여기가... 여기가 어디야?’
‘병원이지.’
아씨는 상진에게 눈물을 떨어뜨리며 미소를 짓는다. 가쁘게 숨을 쉬며 병실 안을 둘러보던 상진이 몸을 일으키려한다.
‘아!’
하지만 곧 심한 통증을 느끼고 누워버린다.
‘가만히 있어. 아직 움직이면 안 돼. 많이 다쳤어. 그래도 다행이야. 구조대가 그러는데 기적이래. 기적. 돌쇠! 기적이래.’
‘어디를 다친 거야?’
‘응. 다리... 왼발을 심하게 다쳤어. 바위에 눌렸대. 커다란 바위에.’
‘얼마나 됐어? 나 여기 있은 지.’
‘응. 하루 조금 지났어. 어제 새벽에 여기 병원에 도착했거든.’
통증을 참으려 눈을 질끈 감았던 상진이 다시 눈을 뜬다.
‘필만이. 필만이는? 필만이 어디 있어?’
‘응......’
‘어디 있냐니까?’
‘저기... 옹녀 언니가 같이 있어.’
‘어디?’
‘병실이 달라.’
‘다쳤어? 필만이 다쳤냐고?’
‘응......’
‘얼마나?’
아씨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망설인다.
‘왜? 왜 그래? 필만이가 왜?’
‘저기... 사실은......’
상진은 기를 쓰고 몸을 반쯤 일으킨다.
‘사실 뭐? 필만이가 뭐?’
‘좀 많이 다쳤어. 좀 심해.’
‘왜? 어떤데?’
상진의 숨이 더 가빠지고 있다.
‘저기... 거기서 바위덩어리 같은 거에 머리를 다쳤나봐. 만두님 머리가 많이......’
‘어디 있어? 어디야?’
상진은 일어서려 기를 쓴다.
‘아휴! 가만히 좀 있어. 나중에 가봐. 좀 진정해!’
‘내가 지금 가봐야 돼.’
‘아니야. 괜찮아. 지금 방장님이 서울로 급히 가셨어. 친구 분이 이 그쪽으로 아주 유명한 의사분이시래. 그래서 직접 모시고 온다고 가셨어. 다 잘 될 거야.’
숨을 헐떡이며 상진은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한 남자가 병실로 들어온다. 바로 그를 구조한 구조대 반장이다. 역시 묵묵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반장님, 오셨어요?’
아씨가 그를 반긴다. 하지만 상진은 지친 얼굴로 그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
‘깨셨군요. 다행입니다.’
‘돌쇠. 이분이 구조대 반장님이셔. 돌쇠 살린 분이야. 은인이라고.’
‘예... 감사합니다.’
‘뭘요? 제가 하는 일일뿐입니다. 평생 하겠죠.’
‘그냥 거기서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예. 그러셨겠죠. 그런데 거긴 왜 들어가셨습니까? 그 계곡 말입니다. 지도에도 없는 곳을요.’
‘할아버지가가 올라가봤자 낭떠러지라고 별골이나 가보라고......’
‘예? 할아버지라니요? 낭떠러지? 별골은 또 뭡니까?’
‘거기 중턱쯤에 커피 파시는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셨는데요.’
‘커피를 팔아요? 낭떠러지가 있다고요?’
‘예. 그러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이서 커피도 마셨습니다. 거기서 직접 끓여 주시던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는 없는데요. 그리고 그 길로 올라가도 영봉이 나옵니다. 길이 좀 헛갈리지만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상진에게 건네준다. 무심코 목걸이를 보던 상진은 숨이 멎는 듯 시선이 멈춘다.
‘이걸 깜빡했습니다. 우리 대원이 정신이 없어서 미처 일행 분들께 드리지 못했습니다.’
상진은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받아든다. 아씨는 영문을 몰라 바라보고만 있다.
‘이 목걸이가 조선생을 살렸습니다. 너무 어둡고 폭우가 쏟아져서 미처 사고지점을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빗속에서 이 목걸이가 반짝이더군요.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저희로서도 정말 다행이고요.’
‘아니 이게 어떻게......’
‘기억이 안 나십니까? 조선생이 묻혔던 흙더미 구멍사이로 이 목걸이를 걸어놓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뇨.’
‘아... 그럼... 일행 분, 그분이 걸어놓으셨군요. 부상이 너무 심해서 사고시점에 거기서 완전히 의식을 잃은 줄로만 알았었는데.’
상진의 얼굴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남자는 아씨에게 눈짓을 하며 천천히 병실을 나가고 아씨가 조용히 따라 나간다. 그리고 남자는 병실 앞 복도에서 속삭인다.
‘큰 사고를 당하면 한동안 정상적인 대화나 판단이 안 될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입니다. 최대한 안정시키도록 하십시오. 사모님.’
‘아... 사모... 예. 예. 감사합니다.’
상진은 떨리는 손으로 유리목걸이를 만진다. 그리고 목걸이에 새겨진 글씨를 본다.
‘H... Y... H......'
상진의 숨소리가 더 가빠지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한윤희... 필만이가......’
아씨가 돌아와 그의 모습을 보고 묻는다.
‘돌쇠 왜 그래? 그 목걸이 뭐야? 돌쇠 거야? 만두님 거?’
‘우리 거 아니야... 우리가 아니야.’
‘뭐? 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그리고 상진이 무엇인가를 찾으려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왜? 뭐 찾아?’
‘내 지갑. 내 지갑! 내 지갑 어디 있어!’
상진이 갑자기 미친 듯이 외친다.
‘아휴! 왜 그래? 내가 줄 게. 저기 서랍에 있어.’
아씨는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어 상진에게 준다.
‘젖어서 내가 좀 말렸어.’
침대에 누운 채 상진은 지갑에서 그림을 꺼낸다. 아직도 그의 손은 떨리고 있다. 그리고 비에 젖어 찢겨진 그림을 꺼낸다.
상진은 깊게 숨을 한번 몰아쉬고 그림 뒷면에 붙은 종이를 떼어낸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종잇조각들. 아씨는 허겁지겁 상진의 몸에 떨어지는 조각들을 줍고 있다. 그리고 상진은 그림 뒤에 번져있는 글씨를 읽는다.
‘2008년... 만... 만두.....’
상진은 맥이 빠지는지 갑자기 축 처져버린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인다.
‘돌쇠, 왜 그래? 어디 아파? 의사 불러올까?’
상진은 힘없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그는 울먹이며 고통스러워한다.
‘돌쇠. 돌쇠! 왜 그래? 응?’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 못 됐어. 아니야!’
상진은 엉엉 울기 시작하고 아씨는 그의 얼굴을 감싸 안는다.

 

두어 시간이 지나 상진은 다시 눈을 뜬다. 아씨는 그의 옆에 엎드려 잠이 들어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상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손에 쥐었던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 찢어진 그림은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제 손등에 꽂혀있는 링거바늘을 뽑아버린다. 가까스로 침대에서 내려가는 그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 깁스한 왼발을 질질 끌며 병실을 나가려한다. 아씨가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돌아본다.
‘어머! 돌쇠!’
깜짝 놀란 아씨가 달려와 상진을 붙잡지만 그는 고집을 피운다.
‘어디 가? 큰일 나!’
‘가야 돼.’
‘어디를?’
‘가야 돼! 가야 돼!’
상진은 아씨의 팔을 뿌리치며 끝내 병실 밖으로 나간다. 복도 벽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가는 상진을 아씨는 말리지 못한다.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간호사가 뛰어온다.
‘왜 그러세요?’
‘아휴! 좀 말려줘요!’
‘어디 가세요? 예?’
‘난 가야 됩니다. 가야 돼요.’
‘진정하세요. 아직 회복이 안 되셔서 흥분하시는 것 같아요. 진정하세요.’
간호사도 그의 팔을 붙잡고 말리려하지만 상진은 굽히지 않는다.
‘어디에요? 어디?’
‘뭐가요?’
‘간호원! 필만이 어디 있어요?’
‘예?’
‘돌쇠. 만두님은 왜? 나중에 가도 되잖아?’
‘안 돼! 지금 가야 돼! 지금 당장!’
상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불길이 치솟아 오를 것만 같다.

결국 간호사와 아씨의 부축을 받고 상진은 필만이 누워있는 병실로 들어선다. 두 눈이 퉁퉁 부어올라 맥없이 앉아있던 옹녀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니... 어떻게......’
하지만 상진은 인공호흡기를 한 채 누워있는 필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가온다. 상진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필만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필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노려본다. 머리와 얼굴에 온통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필만의 모습.
옹녀는 무엇인가 짐작을 했는지 간호사와 아씨를 데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아씨는 아직 영문을 모르는지 돌쇠를 돌아보며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이다. 그리고 상진의 거친 숨소리, 의료기에서 나오는 펄스소리만 삑삑 울리고 있다.
‘야! 주필만! 일어나! 눈 떠봐! 임마!’
하지만 필만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꼼작도 하지 않는다.
‘주필만. 눈 떠!’
상진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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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44. 핏물 (손현주,김명민,한고은)    2009/09/02 10:15 추천 2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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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캐스팅: 손현주, 김명민, 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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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핏물

 

아직도 호텔로비에 모여 있는 회원들. 모두 초조하고 또 우울한 모습들이다. 변강쇠가 슬쩍 뽀록을 건드리며 속삭인다.
‘저기... 우리 밥 안 먹어요?’
‘뭐요?’
뽀록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자 변강쇠는 금방 주눅이 든다. 그 커다란 덩치에 늑대라도 만난 새끼 양 같은 모습이 된다.
그리고 호텔정문에 경광등을 번쩍이며 구조대차량이 나타난다. 형광색 우비를 입고 저벅저벅 들어오는 구조대를 보고 회원들은 잠시 말을 잃는다.
‘일행이십니까?’
모자를 벗으며 맨 앞의 한 남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묻는다. 깡마른 구릿빛 얼굴에 강직함이 흘러넘친다.
‘예. 우리가 일행입니다.’
쌕쌕이가 대답한다.
‘두 분이 연락이 안 된다고요?’
‘예. 남자 두 사람입니다.’
‘핸드폰도 두고 가셨다고요?’
‘예. 방에 두고 갔습니다.’
남자는 잠시 생각한다.
‘비가 워낙 많이 와서 좋지 않군요.’
내숭이 앞서며 묻는다.
‘무슨 일 있는 걸까요?’
‘제가 이일만 이십 년째입니다. 신고 받고 바로 왔습니다. 어쨌든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아마 길을 잃었던가 아니면 폭우 때문에 어딘가 갇혀 있을 겁니다. 올라가봐야죠.’
쌕쌕이가 지도를 남자에게 준다.
‘이게 그 사람들이 올라간 길입니다. 제가 줬습니다.’
남자는 손에 묻은 빗물을 털며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 길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예?’
‘선생님이 주신 이 지도 말입니다.’
‘예.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찾다가......’
남자는 입술을 꼭 깨물며 뒤에 있는 부하대원에게 지도를 보여준다. 대원들은 모두 짧게 한숨을 내쉰다.
‘왜 그러십니까?’
‘선생님. 그 길은 위험한 길입니다. 중간부터는 사실상 입산금지구역입니다.’
‘예? 그런 거 없었는데요.’
그리고 물개가 앞서며 말한다.
‘우리가 내려올 때 그길로 왔어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등산로였는데요. 좀 가파른 데도 있었지만요. 아! 저희가 불을 피운 자리도 봤습니다. 모닥불이었습니다.’
‘누가 거기서 불을 피웁니까?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굳이 푯말 같은 걸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이 지역 분들도 그 길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군청에서 만든 지도에도 그 길은 없지 않습니까? 공식적으로 거긴 등산로가 아닙니다. 등산로 안내표지판에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했는데... 아니 왜요? 왜 안 갑니까?’
쌕쌕이 방장은 당황하고 있다.
‘제가 이곳 출신입니다. 마을에서 오래전부터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뭐 그거야 소문이고. 저희 입장에서 볼 때 거긴 아주 위험합니다. 물이 아주 쉽게 불어나고 또 산사태도 자주 발생합니다. 게다가 그곳은 대낮에도 아주 어둡습니다. 좀 이상한 곳입니다. 굳이 등산객들한테 그런 소문을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
남자가 다시 모자를 쓰며 쌕쌕이에게 묻는다.
‘두 분 비상식량 같은 거 갖고 계신가요? 실종된 두 분 말입니다.’
‘글... 글쎄요. 산이 험하지 않은 것 같아서 굳이......’
‘그분들 아침식사는 하셨습니까?’
‘아... 아뇨. 두 사람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체온이 떨어지겠군요. 상황이 안 좋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옹녀와 아씨는 서로 손을 꼭 잡고 훌쩍이고 있다. 남자가 대원들에게 뭔가 짤막하게 지시하고 호텔을 나서려 한다.
‘잠깐만요!’
쌕쌕이가 남자를 부른다.
‘왜 그러십니까?’
‘같이 갑시다.’
‘예?’
‘나도 같이 갑시다.’
‘아니... 연세도 들어보이시는데......’
‘그건 상관없고. 내가 여기 방장이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 같이 갑시다.’
내숭이 쌕쌕이의 팔을 붙잡으며 말리려 하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물개도 선뜻 나선다.
‘저도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수색이 더 빠르겠군요. 그럼 같이 가시죠!’
쌕쌕이는 내숭의 손을 힘껏 한번 쥐어본다. 그리고 옹녀와 아씨를 보며 입을 꼭 다물고 미소를 보내준다. 옹녀와 아씨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원들을 따라서 쌕쌕이 방장과 물개가 나갈 때 옹녀가 쫓아나간다.
‘방장님!’
호텔 정문 앞 계단에서 쌕쌕이가 비를 맞으며 뒤를 돌아본다.
‘방장님. 꼭 데려오세요!’
‘알았어! 꼭 데려올 게! 걱정하지 마요!’
모두들 구조차량에 올라탄다. 쌕쌕이는 차에 타며 그를 쳐다보고 있는 회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내숭은 아씨의 어깨를 꼭 감싸 안으며 달래고 있다. 비는 멈추지 않고 있다.

 

상진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는 커다란 빵 봉지와 우유 한 팩을 들고 있다.
‘여보! 여보!’
거실로 들어오며 윤희를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아니... 남편도 오기 전에 벌써 자? 하여간 잠꾸러기야.’
침실로 들어가 보니 윤희가 곤히 잠들어있다. 얇은 잠옷을 입고 옆으로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상진이 씩 웃는다.
‘몸매 하나는 끝내준다 말이야. 흐흐흐.’
그리고 윤희 옆에 살짝 앉아 그녀의 배에 손을 얹는다.
‘어이구. 이제 배 불러오면 어떡하나? 한윤희 몸매 다 망가지겠네? 히히히.’
윤희는 잠결에 뒤척이며 돌아눕는다. 상진은 윤희가 그저 예뻐 보일 뿐이다. 그리고 상진도 침대에 누워 깊이 잠이 들어버린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이른 새벽, 윤희가 상진을 흔들어 깨운다.
‘여보......’
윤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그리고 숨을 가쁘게 내쉬며 신음한다.
‘여보... 아......’
‘응?’
상진은 그냥 잠결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만다.
‘여보 일어나. 빨리.’
‘응......’
‘여보 나 이상해. 일어나. 일어나......’
윤희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상진이 눈을 뜬다. 그리고 그녀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벌떡 일어나 스탠드를 켠다.
‘어!’
그녀의 사타구니 그리고 허벅지 모두 시뻘건 핏물로 물들어있다.
‘여... 여보!’
‘여보......’
윤희는 신음하며 점점 의식을 잃어간다.
‘안 돼!’
상진은 소리친다.
‘안 돼!’


상진이 소리치며 꿈에서 깨어난다. 숨이 가빠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지? 어디야?’
사방을 더듬거려 보지만 바위와 흙더미뿐이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보려 하지만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감각조차 없다.
흙더미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하늘의 별과 같은 보랏빛 작은 빛이 보인다. 안간힘을 다해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한손으로 흙을 파헤쳐본다.
‘필만아! 필만아!’
그는 외쳐본다. 하지만 답하는 것은 천둥소리뿐이다.
‘사람 살려! 누구 없어요! 여기요! 여기!’
그는 또 흙을 파본다. 하지만 더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보랏빛 빛이 사라진다. 그리고 플래시 불빛이 보인다.
‘여기! 사람 살려! 여기!’
그리고 플래시 불빛이 더 강해진다. 흙더미 사이로 비치는 불빛. 그리고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깁니다! 반장님! 여기요!’
상진은 더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서서히 눈이 감겨온다.
‘여기... 여기야......’
상진은 의식을 잃는다.
그리고 얼마 후 상진은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온다.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플래시 불빛들 그리고 사람들의 고함소리. 헐떡이는 숨소리. 그의 얼굴에 다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신이 듭니까?’
‘이봐! 돌쇠! 돌쇠! 나야! 나!’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눈부신 불빛뿐이다. 그리고 오로지 느껴지는 것은 얼굴에 떨어지는 차가운 빗물뿐이다. 그리고 다시 그는 의식을 잃고 만다.

 

‘여보! 일어나!’
윤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상진의 귀에 울린다.
‘일어나라니까! 아버님 어머님 오실 때 됐어. 일어나!’
‘아! 참! 왜 그래? 노는 날.’
상진은 귀찮은 듯 이불을 뒤집어쓴다.
‘일어나라니까! 결혼하고 자기 처음 생일인데. 빨리 일어나! 나 어머님한테 혼난단 말이야. 아홉시에 아침 먹자고 하셨잖아. 일어나! 빨리!’
‘에이 참!’
짜증만 내는 상진, 윤희는 이불을 걷어내고 물에 젖은 손으로 상진의 두 볼을 마구 비벼댄다.
‘아! 차가워!’
‘호호호호! 빨리 씻어!’
윤희는 방을 나가고 상진은 하품을 하다가 혼자 실실 웃는다.
‘돌쇠!’
아씨가 그를 부른다. 꿈에서 깨어나는 상진의 눈앞에 아씨의 얼굴이 보인다.
‘돌쇠, 정신 들어? 정신 좀 차려봐. 응?’
아씨는 상진의 바로 코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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