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중남미 첫 올림픽 개최와 일본의 패퇴. 올림픽 유치전의 결과는 마치 '신흥대국 시대'를 상징하는 것 같다. 미국·유럽·일본 경제가 입은 상처는 크고, 깊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대국의 양적 성장만으로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전에 진행됐던 장기 성장 태세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신흥대국의 대두에 따라 이들의 노동력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선진국에서는 고용이 늘어나기 어려워진다. 금융에서 다시 큰 이익을 올리지 못하면, 선진국에선 고용과 소비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한편 세계경제 질서에서의 존재감이 커진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신흥대국의 정치 지도자와 국민을 만족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원·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이들의 성장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힘들다. '포스트 세계 금융위기 시대'의 개막에는 큰 불안이 숨어 있는 것이다.신흥대국을 수출시장으로서 확보해온 한국경제의 전망은 구미·일본보다는 밝지만, 안고 있는 과제는 마찬가지다. 수출이 호조이지만 국내 고용 확대에는 그다지 기여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화 속에서 노동력을 요구하는 프로세스와 제품은 개발도상국에, 시장을 요구하는 프로세스와 제품은 거대시장에 이끌려가며 한국에는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반면, 신흥대국이 자원·에너지 낭비형 성장을 계속하면, 한국은 자원 소국으로서 큰 제약을 받는다. 작년 한국의 원화가치 급락은 단기채무도 원인이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생겼기 때문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54년 만에 전면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낸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안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협력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공동체'의 원리라면, 동아시아의 고임금·소자원이 바로 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한일 간의 고용 공동체, 자원·에너지 절약 공동체, 환경 공동체야말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우선 고령화하는 사회 속에서는 제조업을 대신할 새로운 고용을 의료, 관광, 문화, 음식 등 서비스 산업이나 농업 속에서 찾아야 한다. 서비스업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면 생산자원 중에서도 가장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의 이동이 필요한 데다, 문화적인 토착성이 필요하다. 또 농업에는 토지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제조업형의 아웃소싱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내수형 업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규모의 시장과 경쟁이 필요한데, 이 면에서는 이미 경제권 형성이 시작되고 있다.자원·에너지 면은 어떨까. 중국 등 자원이 부족한 신흥대국은 그 성장력과 협상력을 카드로 삼아 이후에도 자원·에너지 확보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선진경제에 가능한 것은 희소자원을 일정 정도 확보해 가면서 소비효율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한국 미디어에는 일본을 포함한 '열강'에 비해 한국의 자원외교가 늦다고 탄식하는 기사가 넘치고 있는데, 신흥대국이 등장하면서는 일본조차도 독자적인 협상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다른 곳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환경은 어떤가. 하토야마 정권은 대담한 탄소배출 삭감 목표를 세워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특기로 삼는 분야는 미국처럼 아예 산업 자체의 틀을 바꾸는 기술혁신보다는 과제를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과제극복형의 기술쇄신이다. 자원제약 때문에 이에 대응하다 보니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처럼, 높은 환경목표는 새로운 쇄신을 낳을 것이다.휴대전화로부터 희소자원을 회수하는 '도시광산'과 친환경 농업의 여러 가지 실험 등 이미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자국 내에만 통용되는 '갈라파고스형 진화'에 머물고 마는 일본형 기술에는 이것을 일반화하고 세계표준화에 다리를 놓아주는 외부인이 필요하다.신흥대국이 활보하는 '포스트 세계경제위기 시대'의 국제사회는 '경제규모'가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 대국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는 일본도, 아무리 해도 규모를 주장할 수는 없는 한국도, 현실을 직시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비상구가 보일지도 모른다. 경제 '공동체'에서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입구를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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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經濟史)적 관점에서 볼 때 철도가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근대 1차 산업혁명기에 철도는 혁명적인 경제·사회발전을 이끌어온 표상과 같은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철도의 뒤를 이어 고속철도가 경제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사례에서 증명된다. 일본은 196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신칸센(新幹線)이라는 고속철도를 건설한 이후, 아주 짧은 기간 내에 투자 비용을 회수했을 뿐 아니라 국가 경제구조 전반에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 신칸센이 가져온 경제구조 변화는 일본으로 하여금 1970년대 오일 쇼크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지속적인 고속 성장을 담보하면서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4년 신칸센 건설 이후 1970년대 초까지 무려 6배가량 증가했다.그런데, 일본이 고속철도를 건설할 당시의 경제 환경을 살펴보면, 고속철도의 건설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석유 가격은 무척 저렴했기 때문에 고속철도 건설보다는 고속도로의 건설이 더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은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봤고, 고속철도 건설을 선택했다. 고속도로나 항공 운송과 비교해 볼 때 고속철도는 에너지 절약이란 관점에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였다.즉 고속철도는 전기(電氣)로 움직이는데, 이때 전기는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등의 광물 자원뿐 아니라 원자력, 풍력, 수력, 태양열 발전 등 이른바 재생 에너지원(源)을 통해서도 생산할 수 있다. 광물 에너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본으로서는 각종 에너지 자원의 가격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가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지금의 중국 역시 광물 자원이 갈수록 고갈되어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교통 운송 방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고속철도를 건설해서 중장거리 운송을 맡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고속철도 건설은 하이테크 기술을 받아들여 소화시키고,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생활 방식까지 크게 변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사회 발전 11차 5개년 계획(2006~2010년)에 따르면 중국은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사이 1300㎞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포함해서 지속적으로 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래에 중국은 동북 지역과 동부 연해지역, 그리고 중부지역을 서로 연결하는 3가지 간선 고속철도망을 구축할 계획이며, 고속철도의 총 연장이 2만㎞에 달하게 될 것이다. 고속철도 선진국인 일본, 독일, 프랑스, 미국의 고속철도 총 연장을 모두 합한 것(약 4600㎞)의 5배를 넘는 것이다.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현재 중국이 계획 중인 고속철도망의 3분의 1이 완공되는 시점이 되면, 중국 경제는 전문화와 분업화가 진전되면서 전체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 최대의 시장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동부 연해지역인 주장(珠江) 삼각주와 창장(長江·양쯔강) 삼각주, 또 보하이(渤海·발해)만 경제권이 제 모습과 규모를 갖추게 되고, 이는 중부지역에도 영향을 미쳐서 청두(成都)와 충칭(重慶), 우한(武漢)과 정저우(鄭州), 동북지역의 선양(瀋陽) 등지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 경제권이 형성될 것이다. 고속철도망 건설 작업이 완료되는 2020년 이후에는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크게 상회할 수도 있다. 동부 연해 지역은 금융·상업·무역지구로, 중부지역은 공업경제지구로, 서부는 상업과 관광, 무역이 복합된 지역으로 전문화되면서 상호 협조하는 거대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고속철도 건설은 앞으로 동북아 경제의 일체화(一體化), 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3국 경제의 일체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과 한국 간에 놓인 서해를 관통하는 해저(海底) 터널의 필요성도 커지게 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만약 한국과 중국 간에 해저 터널이 놓인다면 한국 경제와 중국 보하이 경제권이 하나로 융합하면서 한중 양국은 단일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한국 경제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경제 성장에 따른 이익을 향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발전을 이끌어가는 풍향계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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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정부에 제안한 한-중 해저터널 건설시 생산유발 효과가 275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경기개발연구원(경기연)은 8일 오후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중국 산둥사회과학원 등의 후원으로 ’한-중 해저터널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이 자리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경기연 조웅래 부원장은 한-중 해저터널 건설시 1달러를 1천130원을 기준으로 할때 한국 116조원(1천26억달러), 중국 150조7천억원(1천333억달러), 일본 8조6천억원(76억달러) 등 3국에서 모두 275조3천억원(2천436억달러)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또 기계류와 금속광물 등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한국 48조8천억원(432억달러) 등 3국 합계 99조9천억원(88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해저터널 노선으로 ▲인천~중국 웨이하이시(341㎞) ▲화성~웨이하이시(373㎞) ▲평택.당진~웨이하이시(386㎞) ▲남북관계 개선을 전재로 한 북한 옹진~웨이하이시(221㎞) 등 4개 노선을 제안한 가운데 각 노선별 공사비로 72조6천억~123조4천억원을 예상했다.조 부원장은 최장거리 노선을 건설하더라도 생산유발액이 공사비의 배가 넘는다고 밝혔다.그는 지상구간 시속 400㎞, 터널 구간 시속 200㎞로 고속철도 운행시 서울~웨이하이시를 1시간57분, 서울~베이징을 4시간26분이면 갈 수 있어 기존 비행기로 갈때 시간 및 비용을 고려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이어 한-중 해저터널이 여객.물류비용 절감 등 한.중 교류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고, 특히 한-일 해저터널이 개설돼 연계될 경우 한.중.일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한국교통연구원 권영인 연구위원은 “한-중 해저터널은 아시안철도망, 아시안하이웨이 등과 연계되는 초광역 국가간 교통망의 의미를 갖는다”고 밝힌 뒤 “기존 해저터널 건설 기술로 시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중국 산둥성교통과학연구소 쉬윈페이 연구원은 “한중 해저터널이 한.중 협력강화는 물론 지역과 세계의 번영 및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며 “4개 노선중 인천~웨이하이 노선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부터 동북아 지역의 국가간 교류활성화를 위해 한국 서해안과 중국 산둥성 지역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건설을 정부에 제안한 가운데 국토해양부는 현재 이 터널에 대한 타당성 검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도 지난 7월 이 터널의 건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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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으로만 떠돌던 베링해협 해저터널 프로젝트가 최근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다. 베링해협은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시베리아 사이에 있는 너비 85㎞의 해협으로 100여년 전부터 양 지역을 연결하자는 논의가 있어 왔다. 지난 6월 11일에는 국제 공모전을 통해 뽑힌 베링해협 해저터널 가상 설계도도 언론에 공개됐다. 해저터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통일교 계열의 평화통일재단과 국제건축가연맹(UIA)이 주관한 이번 공모전에는 전세계 31개국 135개 작품(전문가 부문 28개국 71개 작품)이 출품돼 1등 당선작 등 우수작품에 모두 20만달러의 상금이 주어졌다. 상금 5만5000달러가 걸린 전문가 부문 1등작으로는 콜롬비아 훌리안 레스트레포의 ‘다이오미드 군도’란 작품이 선정됐다.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조성중 국제건축가연맹(UIA) 교육 부문 지역이사는 “세계 건축가들이 베링해협 해저터널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번 공모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협력단체이기도 한 국제건축가연맹은 120여개국 130만명의 건축가가 가입된 단체로 우리나라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1995년) △백남준 아트센터(2002년) △서울 오페라하우스(2005년) △행정복합도시 마스터플랜(2006년)의 공모전을 주관한 바 있다. 이번 공모전 수상작들은 오는 7월 2일부터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또 해저터널 건설 과정에서 상당한 경기부양 효과도 기대된다. 경기부양 사업으로는 초대형 인프라 구축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평화통일재단 측의 주장이다. 평화통일재단 측은 인건비가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건설현장에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통일재단을 지원하고 있는 통일교는 북한 현지에서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 세계평화센터 등을 운영하면서 북한 당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석유 수입선을 중동에서 시베리아로 다변화해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통일교 문선명 총재도 지난 5월 출간된 자서전을 통해 “미국이 이라크에 퍼붓는 전비만 투입해도 베링해협 해저터널을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통일재단 측은 “러시아나 알래스카의 자원이 양국 철도망을 통해 전세계로 이동하면 양 지역 사람들의 교류도 늘어나고 진정한 동서 냉전의 종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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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에서 현실로=13일 평화통일재단 등에 따르면 베링해협은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시베리아 사이에 있는 폭 85㎞의 해협으로, 100년 전부터 양안을 연결해 철도를 건설하자는 논의가 꾸준히 있어 왔다. 실제 1만3000년 전만 해도 두 지역은 육지로 연결돼 있었다. 이 계획이 성사되면 유로터널(약 50㎞)을 뛰어넘는 세계 최장 해저터널이 된다. 재단 측에 따르면 해저터널은 러시아 추콧카반도의 데즈네프곶에서 출발해 베링해협 한가운데에 있는 대(大)다이오미드섬(디오메데·러시아령·29㎢)과 소(小)다이오미드섬(미국령·7.4㎢)을 거쳐 미국 알래스카주 웨일스곶으로 연결된다.기본 구상은 철도가 놓일 메인 터널 2개(직경 12∼14m), 송전·송유·가스관 등이 들어갈 서비스 터널 1개(〃 7∼9m) 등 ‘해저터널’과 섬 두 개를 연결할 다리로 구성된다. 거리는 유로터널의 두 배에 이르지만, 해저부 지질이 화강암 단층지괴를 석회암이 덮고 있어 굴착이 가능하고 수심도 50m 정도에 불과하다. 베링해협 양쪽에는 330만∼400만㎡(약 100만∼120만평) 규모의 국경도시와 터미널이 설치된다. 특히 대·소 다이오미드섬 사이 4㎞ 구간은 관광자원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설계 공모에서 두 섬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생각지 못한 제안이 많아 교량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졌다”고 말했다.이 프로젝트 성사는 미·러 양국 정부에 달려 있다. 특히 미국 측 결단이 관건이다. 이용흠 평화통일재단 상임 부이사장은 “유로터널은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연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면서 “(대륙세력의 침입 등 우려로) 줄곧 반대하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유럽 통합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면서 급물살을 탔다”고 말했다. 시베리아 개발이 시급한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2007년 G8(주요 8개국) 회의에서 기초 제안을 하는 등 적극적이다. 재단 측은 오는 9월 푸틴 총리와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평화의 초석=‘베링 프로젝트’는 1981년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IIFWP) 문선명 총재가 ‘인터내셔널 하이웨이’ 건설을 선언하면서 태동했다. 아프리카 희망봉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 영국 런던에서 미국 뉴욕까지 세계를 순회 질주할 수 있게 만든다는 국제고속도로 구상에서 베링해협의 연결은 필수다. 문 총재는 2005년 베링 프로젝트 추진을 공식 선언했으며, 총 공사비로 2000억달러를 추산했다.이 부이사장은 “흔히 길이 뚫린다고 하면 경제적인 측면만 생각하지만, 물자와 사람이 소통하면 문화와 사상, 종교, 혈연의 교류가 이뤄진다”면서 “평준화된다는 것은 곧 평화를 뜻한다”고 말했다. 미개척지인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의 자원을 개발해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글로벌 부(富)’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프트웨어적 소통’을 통해 세계 평화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링 프로젝트가 착공 단계에 들어서면 한국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인력이 대거 동원되도록 해 남북 통일과 북한의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재단 측은 강조했다.러시아 외무부 정책자문 담당인 블라디미르 수린 박사는 최근 “러시아는 심각한 인구 감소와 사실상의 시베리아 방치로 영토를 보전하기 힘든 국가 위기에 처해 있다”며 “한국과 ‘공생국가’ 관계를 맺어 한민족이 시베리아로 자유롭게 이주해 개발에 앞장서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는 ‘코리아 선언’을 제안하기도 했다.시베리아 동토에는 세계 천연가스의 37%, 석유의 5.8%가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해저터널이 뚫리면 러시아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와 석유를 미국에 바로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미국으로서도 석유 수입선을 중동에서 시베리아로 다변화해 중동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문 총재는 지난 5월 출간한 자서전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퍼붓는 전비만 투입해도 베링해협 해저터널을 뚫을 수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6년간 이라크전에 투입한 전비는 6570억달러에 이른다. 재단 측은 “베링해협은 시간과 공간, 이념, 역사의 장벽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며 “막혔던 길을 열어 인종, 문화, 종교, 국가 간의 벽을 헐어내고 소통을 통해 인류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Why] 한반도 땅 속의 비밀… 지진 지구 자기장 변화 활발했던 조선 중기엔 한반도 지진 잦아 피해 적은 건 깊이 10㎞… 서해안 퇴적층의 완충작용 때문/ 최승찬·독일 킬 대학 지구물리 연구소 교수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 ‘안전신화’도 무너졌다. 일본 니가타(新潟) 지역을 강타한 지진의 영향으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냉각수가 누출돼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원자로가 아닌 변압기에서 발생했지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섬뜩했다. 지진대국’ 일본이 전체 전력수요의 30%를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이냐는 논란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일본처럼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한국은 과연 지진 안전지대일까? 강력한 지진 피해는 일본처럼 판 구조의 경계부에 있는 지역에서 자주 일어난다. 지진이라는 것이 지각판(板)이 이동하면서 다른 판과 충돌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유라시아·태평양판 경계부에서 수백㎞나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구 차원의 지각 운동을 보면, 유라시아판이 동쪽으로 움직이고 인도대륙이 북상하며 태평양판이 서진하고 필리핀판이 북진하는 ‘4각 구도의 응력(서로 미는 힘) 압박’이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이 힘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한반도에서 느끼지 못할 뿐이며, 연약한 단층대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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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정부도 인정한 안동립의 독도 지도전쟁
독도 바위섬 수 최초 확인 … 10여 차례 방문 후 명명, 이젠 보급에 앞장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평생 지도를 만들어온 동아지도 안동립(51) 대표는 ‘독도는 국민이 지킨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사람이다.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독도의 자국 영토 편입 100주년을 맞아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우리 국민은 분노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독도 영유권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명쾌한 대책을 내놓은 이가 바로 안 대표다. 그런데 지도 장인인 그도 그때서야 독도가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2개 섬 외에 89개의 바위섬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틀렸다.
훗날 독도를 정밀 조사한 그는 독도의 총 바위섬 수는 102개, 암초 수는 78개라는 것을 밝혀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 마땅히 이 바위섬들은 그 나름의 이름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태반이 무명(無名)의 섬이고, 나머지는 섬 이름이 자료마다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촛대바위’다. 이 바위는 ‘촛대바위’ 외에도 ‘엄지바위’ ‘기도바위’ ‘보살바위’ ‘성모마리아상’ ‘장군바위’ 등으로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었다. 자료를 만든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졌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던 것. 안 대표는 울릉문화원장을 비롯한 독도 전문가와 독도에 오래 출입한 울릉도 어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 바위의 본래 이름이 촛대바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보찰바위’ ‘지네바위’ ‘춧발바위’
독도에는 또 하나의 보살바위가 있었다. 이름 추적에 나선 안 대표는 이 바위의 본래 이름이 ‘보찰바위’란 사실도 밝혀냈다. 보찰은 ‘거북손’이라고도 하는 따개비의 일종. 독도에 자주 출입하던 울릉도 어부들은 보찰이 잔뜩 붙은 이 바위를 보찰바위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와전되면서 보살바위로 바뀌었다.
‘지네바위’도 비슷한 경우다. 독도에는 지네가 없다. 그런데도 지네바위가 있어 그 사연을 알아보니, 1960년대 ‘이진해’라는 울릉도 주민이 이 바위에 미역을 따 말렸다고 해서 ‘진해바위’로 불리던 게 와전돼 ‘지네바위’가 됐다. 또 독도에 당나귀는 없지만 ‘동키(donkey·당나귀)바위’는 있다. 동도 정상에 주둔한 경찰이 생필품을 위로 올리려고 배가 닿는 곳 바위에 도르래를 설치했는데 이 도르래를 뱃사람들이 ‘동키’라고 부르면서 바위 이름이 ‘동키바위’가 됐다.
동도 남쪽에 있는 ‘춧발바위’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현지인은 ‘기준’을 뜻하는 말로 ‘춧’이란 낱말을 썼다. 춧발바위를 넘어 동쪽으로 가면 창망한 동해가 펼쳐지면서 큰 파도가 몰려온다. 이 때문에 무동력선을 몰고 동쪽으로 항해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독도에서는 오전에는 동풍, 오후에는 서풍이 불어온다. 날씨가 좋아도 춧발바위를 넘어 동쪽으로 가려면 오후에만 항해를 시도해야 한다. 그는 춧발바위의 어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울릉도 주민이 오래전부터 이 섬을 경영해온 사실을 확인했다.
독도에는 이름 없는 바위섬이 더 많았다. 동도 동쪽 끝에는 해발 4.1m에 204㎡(62평) 정도 넓이를 가진 바위섬이 하나 있다. 독도는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다.
그런데 그 북서쪽 바로 곁에 있는 바위는 ‘물오리바위’란 이름을 갖고 있으나,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이 바위는 이름이 없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안 대표는 이 섬에 ‘첫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대표의 독도 바위 이름 조사와 명명(命名)은 2005년에 한꺼번에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해까지 10차례 이상 독도에 찾아가 이곳저곳을 탐험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첫섬은 2008년 EBS 방송팀과 독도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지은 이름이다. 독도 탐험을 하려면 독도에서 여러 날을 살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이 식수 확보. 서도 북서쪽에는 ‘물골’이라는 큰 굴이 있는데, 이 굴 천장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여성동아’ 별책부록으로 지도 발간
물골 근처에 또 하나의 굴이 있는데, 이 굴 주변에서 1960년대 ‘배석진’이라는 울릉도 주민이 해녀 10여 명을 데리고 미역을 땄다. 그런데 이 굴에서 울릉도 주민이 ‘가제’라고 부르는 물개의 뼈가 발견됐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이 굴을 ‘가제굴’ 또는 ‘배석진굴’이라 불렀다. 지네바위와 배석진굴 명명으로 그는 독도 속의 민중사를 발굴해냈다.
서도에서는 ‘어업인 숙소’로 명명된 곳이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평지다. 그곳에서 물을 마시려면 서도 정상을 타고 넘어 물골까지 가야 한다. 그러고는 물을 받은 통을 지고 다시 정상을 넘어와야 한다. 그는 물통을 진 채 서도 정상을 타고 넘으면서 해발 168.5m인 독도의 최정상 서도 봉우리에 아직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무슨 이름을 붙여줄까.
대한민국의 영유권을 상징하기 위해 ‘대한봉’, 대한독립을 상징하기 위해 ‘독립봉’, 그리고 ‘서도봉’ 등을 놓고 고심했다. 어업인 숙소에 함께 머물며 독도를 찍던 사진작가 최차열 씨, 김종권 씨와 상의하니 그의 생각대로 대한봉이 가장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한봉을 명명한 그는 동도 최정상(해발 98.6m)도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런데 어업인 숙소에서 바라보면 태양은 대개 동도 정상으로 떠오른다. 여기에 주목한 그는 동도 정상을 ‘일출봉’으로 짓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혼자 명명하지 않았다. 울릉문화원장, 독도관리소장, 독도박물관 학예사 등 독도를 잘 아는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조사한 결과와 명명한 것을 밝혀 의견을 들은 뒤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을 모아 독도 지도를 편찬했다.
지도를 발매할 때는 사전에 국토지리정보원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2005년 6월 그는 자신이 고증했거나 새로 지은 지명을 붙인 독도 지도를 제작해 국토지리정보원의 심사를 받은 뒤 발매했다. 그런데 얼마 후 국토지리정보원으로부터 “지명을 붙이는 것은 정부 고시로 하는 것인데 왜 개인이 했느냐”며 “발매한 지도 전량을 수거해 폐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심사를 해 통과시켜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폐기하라고 하느냐”고 맞섰으나 관(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무렵 바캉스용 지도 제작건으로 만난 ‘여성동아’ 계수미 당시 편집장과 의기가 투합해 그는 여성동아 2005년 8월호 별책부록으로 독도 지명을 붙인 지도를 발간했다. 그 덕에 정부 지시로 사라질 뻔한 지도는 보급될 수 있었다.
이 부록은 큰 인기를 끌었다. 정부는 여성동아 부록으로 인쇄된 독도 지명 지도에 대해선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06년 12월 정부는 독도 지명고시를 하면서 안 대표가 명명한 이름들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썼다. 안 대표의 행위를 불법으로 몰았던 정부가 안 대표의 노력을 정식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에 그는 용기를 얻었다.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다툼이 첨예하던 1954년 ‘동아일보’ 김준하 기자는 그해 7월29일자 동아일보에 ‘어장 독도에 등대 설치 긴요’라는 부제를 붙인 ‘절해의 섬 독도를 찾아서’란 르포를 실었다. 이 기사를 계기로 ‘독도에 등대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그해 말 정부는 독도에 등대를 세웠다. 그러나 이 등대는 풍파에 사라져버렸고, 현재는 동도 정상에 새로 지은 등대가 밤을 밝히고 있다.
독도의 옛 등대 이야기를 독도 연구가 한송본 씨에게 들은 안 대표는 동도 일출봉 북쪽 능선 끝에서 옛 등대 터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독도 주민으로 유명한 김성도 씨에게서 “옛날엔 저녁마다 구 등대에 올라가 칸델라 불을 켜놓았다”는 증언도 들었다. 독도 지명 찾기로 시작된 그의 독도 사랑이 독도에 숨은 근대 문화재 찾기로 확장된 것이다. 이후 그의 관심은 대마도와 역사 문제로 확장된다.
평생 지도만 제작해온 그는 대마도 남쪽에 있는 섬을 상도(上島), 북쪽 섬을 하도(下島)로 표기해놓은 일본 지도(1997년 무양당 펴냄)를 찾아냈다. 현재 모든 지도는 북쪽을 위에 놓고 그리기에 북쪽에 있는 섬이 상도, 남쪽에 있는 섬이 하도가 된다. 그런데 그가 찾아낸 일본지도는 거꾸로 적어놓은 것. 그는 조선시대에는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한양에 가는 행위를 모두 ‘올라간다’고 표현한 사실에 주목했다. 당시엔 조선의 한양이 세상을 보는 중심축이었다.
대마도는 우리 땅?
이러한 관점이 잘 투영된 사례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전라 좌수영이다. 북쪽을 위에 놓는 현대 지도 제작법 측면에서 본다면 전라 좌수영은 전라도 서쪽에, 우수영은 동쪽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좌수영은 우측인 여수, 우수영은 좌측인 진도에 있었다. 경상도도 마찬가지로 좌측인 통영에 경상 우수영, 우측인 동래에 좌수영이 있었다. 이러한 배치는 한양을 중심축에 두면 금방 이해된다.
북쪽에 있는 한양에서 보면 진도와 통영은 오른쪽에 있으니 전라 우수영과 경상 우수영이 들어서고, 여수와 동래는 왼쪽에 있으니 전라 좌수영과 경상 좌수영을 만드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대마도를 바라보면 남쪽에 있는 섬이 상도, 북쪽에 있는 섬이 하도가 된다.
이런 식으로 명명한 일본 지도가 있다는 것은 조선인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생각했고, 일본도 이 시각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일본은 이를 뒤바꿔 북쪽 지역을 상현(上縣·가미아가타)군, 남쪽 지역을 하현(下縣·시모아가타)군이라고 불렀다.
그는 부산과 대마도에 있는 봉수대에서도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논거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일본에서 오는 세력을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은 부산인데, 부산 영도의 태종대와 해운대에는 대마도에서 올린 봉화를 받아 한양으로 전달하는 봉수대가 있다. 그는 대마도가 조선의 문화권이 아니라면 조선만의 정보전달 시스템인 봉수대를 대마도 주민이 만들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이제 안 대표의 관심은 만주 벌판에 산재한 고조선의 문화를 지도로 옮기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위기를 느낀 그는 한민족 문화가 시작돼 확장된 과정(중국 요서 지역에서 만주, 한반도까지)을 역사 지도로 담아내고 있다. 독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반(反)동북공정으로 확장되는 안 대표의 지도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