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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신작    블로그형  게시판형  리스트형
Newspaper    2011/05/22 15:21 추천 3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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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paper
2011 Daniel's Digital Artworks (3220)
Original Image size 7,500 x 5,867 Pixels (125.9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유화작업을 하던 중 미완성 상태에서 디지털 기법을 가미해 본 작품이다.
물론 나는 유화작업으로 또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완성하겠지만 이처럼 마치 '시뮬레이션'을
하듯 디지털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도 대단히 가치있는 일이다. 만약에 디지털로 가필을 해
보면서 결과치가 만족하지 않는 경우, '아날로그'에서 그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고
부분적인 대비를 비교해 가며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기에 요즘은 자신의 화실을 가지고 있는
전업작가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디지털 기법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OSMU 라고
일컷는 One Soure Multi Use의 다변화하는 작품의 응용사례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휴일인 오늘은 작심하고 지하실 창고로 가서 묵었던 '캔버스' 20 여개를 가지고 올라왔다.
대부분 덧칠을 하여 원본 그림을 없애는 작업인데 중간 과정에서 질감표현의 방편으로 촬영을
하여 컴퓨터에 저장을 하고 다시 하나 하나 아날로그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작업에 종일
시간을 할애하였다. 아시다시피 유화작업은 한번 칠하여 말리는데 3-4일 정도가 소요되므로
한번에 10개, 20개를 동시에 작업을 들어가야 마르는 순서대로 2차 작업이 가능하여 완전히
오늘같은 날은 고된 노동을 피할 수 없었다. 힘들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왜 이리도
온전한 날이 없이 죽어라고 바쁜지...참 기구한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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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동의없이 일체의 상업적 용도의 인쇄원고로
사용,또는 무단변형하면 저작권보호법에 저촉됩니다. 단 감상용도의 온라인상의 스크랩이나
복제는 허용됩니다. 보다 상세한 문의는
ohjinkook@empal.com으로 메일을 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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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n Dance    2011/02/04 11:45 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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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n Dance
2011 Daniel's Digital Artworks (3146)
Original Image size 6,000 x 4,031 Pixels (69.2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본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동의없이 일체의 상업적 용도의 인쇄원고로 사용,
또는 무단변형하면 저작권보호법에 저촉됩니다. 단 감상용도의 온라인상의 스크랩이나 복제는
허용됩니다. 보다 상세한 문의는
ohjinkook@empal.com으로 메일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틴댄스'는 열정적이다.
'파트너'와 눈빛을 교환하며 손과 몸으로 서로 동화되는 모습은 보기에도 흥겹다.
'라틴댄스'는 표현력이 자유로워 관능적인 춤으로 통한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감정이 곧 춤으로 표현되는 게 라틴댄스만의 장점이다.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열정과 관능의 춤 '라틴댄스'의 매력은 세대를 초월하여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살사댄스'(Salsa Dance)도 '살사'음악에 맞추어 추는 '라틴댄스'의
일종인데 그 동작이 너무나 관능적이어서 동양의 유교문화권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
운 면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의식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댄스스포츠'로

자리잡게 되었고 파급속도 역시 대단하다.

  <중독된 영혼 해방된 춤사위>라는 '슬로건'이 붙을만큼 Salsa의 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음은 동영상 작업에 왕초보인 내가 어렵사리(?) 구해서 퍼온

뉴욕의 유명 살사댄스컴퍼니[공연단]의 10주년 공연동영상이다.
명절 연휴- 화끈한 음악과 함께 황홀한 춤의 세계를 구경하시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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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의 애환    2011/01/19 10:39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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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의 애환
2011 Daniel's Digital Artworks (3133)
Original Image size 8,000 x 12,000 Pixels (274.7 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본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동의없이 일체의 상업적 용도의 인쇄원고로 사용,
또는 무단변형하면 저작권보호법에 저촉됩니다. 단 감상용도의 온라인상의 스크랩이나 복제는
허용됩니다. 보다 상세한 문의는
ohjinkook@empal.com으로 메일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불과 1달 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의 수가 20여만 마리라는 글과 그림을 올렸는데
전국의 소, 돼지, 오리나 사슴같은 가축들이 무려 140만 마리나 살처분되어 매몰되었다.
무슨 이런 변괘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제 호남과 제주만 뚫리면 이 땅의
축산업은 끝장이 나는 최악의 기로에 섰다. 엎친데 덮치는 결과로 AI조류독감까지 전국에
확산되면서 마치 저주받은 땅처럼 연일 불어닥치는 한파의 냉기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내 조국에 어찌 이런 일이......

 

  한국의 소는 원래 식용으로 방목하거나 사육하는 일이 없었다.
척박한 자원에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의 소는 잡아먹는 용도보다 먼저 농삿일에
투입해야하는 일꾼이었고 때로는 우마차처럼 달구지를 끄는, 역시 일꾼소였다. 그런 이유로
소는 사람과 같이 일터에 나가고 같이 퇴근하는 한 식구이자 동반자적 관계였다. 그래서
형편이 어렵거나 병이 든 소를 장터에 내다 팔 때는 온가족이 눈물바다가 되어 가슴을 쓸어
내렸고 심지어는 그 큰 눈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끌려가는 소를 못 잊어서 가족들이 병들어
눕기도 하였다. 누렁이는 한번도 불평없이 묵묵히 제 할일을 마다않고 주인을 돌보았으며
큰 아이의 등록금에 집안이 발을 동동 구를 때, 홀연히 몸을 던져 가족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 누렁이가 눈에 밟혀서 맛난 쇠고기국 한 그릇도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 바로
우리네 소와 한국사람들이었다.

 

  사정이 나아져 생활이 향상되면서 소의 사육이 식용으로 변환되고 기업형으로 축산농가가
발전하면서 소와 인간의 관게는 많이도 변했다. 소가 할 일을 대부분 기계가 대신하므로써
일꾼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효율성이 떨어져 그야말로 비닐하우스에 재배하는 토마토처럼
소도 사료로 기르고 투자대비 원가를 계산하여 도살일자를 매기는 기업형 축산이 자리잡고
요즘처럼 큰 전염병이 생기면 한 농장에서만도 수 백, 수 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피해를
겪지만 그런 식용 소와 인간의 관계설정은 애당초 정분을 매개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는 그럴 기회가 없었으므로 다소간 애잔한 감정의 이입이 무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 무슨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집단학살극이 우리네 강토에서 연일 벌어
진단 말인가?  그 불쌍한 것들의 고통스러운 아우성이 연일 전국을 강타하는데 그저 남의
일이려니,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라고 방임하며 TV 연속극이나 즐기고 백화점
명품매장이나 어슬렁거리는, 절제없고 무감각한 도시인들은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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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ure and human    2010/06/30 07:35 추천 5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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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The nature and human
2010 Daniel's Digital Artworks(2994)
Original Image size 6,000 x 7,000 Pixels (120.2 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몇날 몇일을 그야말로 숫가락과 놀았다.
또 병이 도졌다. 뭔가 하나를 붙들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병이 도지는 몹쓸 성미가 발동한 것이다.
SBS이던가? TV프로그램 중에 숫가락 만드는 공정이 나와 유심히 보다가 평생을 곁에 두고 살면서
단 한번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숫가락에 대한 재조명의 기회가 되었고 무엇인가 작품의 소재
로 삼아야겠다고 생각되어 고심을 거듭한 것이 최근의 숫가락 '시리즈'다.

 

  이 사진작품은 의도한 바대로 연출하여 찍은 것이 아니고 임의로 내가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즉 숫가락과 여인과 풍경사진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몽타쥬'하고 다시 가필을 거듭하여 만들어낸
회심의 노작이다. 어쩌면 디지털만이 해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의 '장르'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시원한 눈요기가 되는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작업시간은 약 6-7 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그림의 제목을 From the heaven to thr Earth (하늘에서 땅까지)로 지었다가
마음이 변하여 <자연과 인간>으로 바꾸었다.

 

  광명시 근처의 신용보증기금 연수원 공사현장에 가기 위하여 6시에 집을 나섰다가 잠시 사무실
에 들려 어제의 작품을 올려놓고 나가려는데 Artwall 설치를 위한 '시뮬레이션'용 사진을 찍는
일이 급하여 두서없는 글을 남기고 황급히 나가게 됨을 양해해 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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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보는 자유의 박탈과 수호    2010/03/04 10:13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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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보는 자유의 박탈과 수호
2010 Daniel's Digital Artworks(2885)
Original Image size 10,000 x 7,200 Pixels(206.0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사진 '스크랩'을 정리하다가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사진 몇 장을 '몽타주'하며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 작품이다. 물론 여기에 게재된 4컷의 사진작품은 모두 외국사진 작가들의
작품이므로 분위기를 띄어보았을 뿐 엄밀하게 나의 작품이라 발표할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을 위하여 무려 3,000장이 넘는 나의 사진 '스크랩'을 몽땅 뒤졌을 뿐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이 주제의 스토리에 맞는 구성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고심하였기에 올린다.
'그저 사진 4장을 배열했구만'이라고 가볍게 볼 일일까? 남이 해놓은 일이아 그리 간단하게
말할 성질의 것일까? 물론 나는 이 작품이 성공적이라 말할 수 없지만 마치 영화의 대본처럼
내용이 괜찮다면 사진은 대본대로 다시 연출하여 이렇게 찍으면 되는 것이다.

 

  자유의 수호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만행은 또 다른 자유의 박탈일 수도 있다.
수호자의 상징이 반드시 미국이 아니더라도 성조기는 충분한 소재고 '네오콘'의 정치가들이
갖는 흑백주의, 즉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사상을 얼룩말의 무늬가 성조기의 그것과
대비하여 잘 자리를 잡은 셈이다. 시계방향으로 자유를 수호(?)하려는 군사작전이 개시되고
광장의 수 많은 사람(붉은 우산의 군중들)들이 또 다른 자유를 박탈당하는- 그런 과정이다.
여기까지의 가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 많은 사진첩을 뒤지고 또 뒤진 것이다.아니면 말고.
위에 올려진 4장의 사진도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어 보다가 낙점하였고 후보군의 사진 10여
장도 경선에 경선을 거듭하였다. 아무리 그리지 않는 일이라 해도 쉬운 일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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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창가    2009/07/12 15:19 추천 1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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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창가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662)
Original Image size 7,000 x 4,489 Pixels(85.9 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종일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휴일의 작업실 창가에도 천둥 번개를 동반한 장마성 폭우가 하루 종일 쏟아져 내리고 그저 창
밖을 물끄러미 응시하기엔 너무나 애잔함이 밀려와서 카메라로 창밖의 풍경을 몇 장이나 찍었다.
다행히 작업실이 23층이라 바깥을 조망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급기야 몇 장의 사진 중에 이 사진
를 하나 건졌다. 다시 컴퓨터로 가져와 많은 보정을 한 끝에 비교적 괜찮은 이미지를 하나 만들
었는데 2-3년 전에 그렸던 여인 그림을 다시 '오버랩'하면서 새로운 디지털이미지가 완성되었다.
'이건 그림이 아니고 사진이잖아?' '이런 것도 작품인가?' 라고 말하긴 쉽지만 해 보라고......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아니면 그만이고......
  한 장의 <디지털이미지>도 감성적 충동이 없이 그저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비오는 날 창가를 보며 그게 연인이건 고향이나 부모건 연상되는 이미지가 누구에겐들 없을까?
먼 추억도 되살아나고 아픈 과거나 오래 남았던 사랑의 흔적도 떠 올리게 되는 것이 이런 날이다.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물방울이 하나하나 다 눈물일 수도 있고 모래알같은 추억의 앨범일 수도 있
는데 세월이 강처럼 흘렀다고 어찌 무심하랴? 지난 과거는 삭뚝 도마뱀 꼬리 자르듯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은가? 아무리 지난 일이 부질없었다 해도 다 끌어안고 가는 게 또 인생이다.
컴퓨터와 달리 감성이 있는 사람이기에 Delete key를 눌러 휴지통에 다 버리지 못 하는 것이다.
그렇게 떨어지는 창밖의 빗방울은 온종일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창문을 비스듬히 열라치면 '쏴-'
하며 빗길을 질주하는 자동차의 타이어 마찰음만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럽다. 그 문을 몇 번이
나 열었다, 닫았다,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서성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 하고 잿빛 하늘에 담배
연기만 투쳐내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의 매듭이 풀리지 않아서, 또 인생사 무슨 애틋함이 그리 많다고 젊디젊은 아
이들도 아니고 나이가 환갑이나 되는 갓 할아버지가 '센티멘탈'한 감상에 마음을 적신단 말인가?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며 나는 무엇을, 또는 누구를 기다린다고 이리 마음이 초조한 것일까?
그 명쾌한 답이 없음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시원한 바닷바람에 일조량이 많은 덕장에서 잘 말렸던 황태가 다시 비에 불리듯 사람 사는 것
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트'하게 조여졌던 마음이 무장해제를 하고 항거할 기운조차 없는
무기력한 날이 이런 날인 지도 모른다. 거부할 방도가 없는 습기찬 내면이 안으로 통증을 더하고
그 잘난 자존심, 알량한 자부심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질대로 구겨진, '그루미'한 어느 여름날이다.
손톱보다 작은 재주 하나 달랑 가지고, 죽도록 열심히 한다는 가소로운 열정 하나만으로 이 세상
을 헤쳐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남의 눈에는 웃기는 자장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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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인파    2009/05/20 09:24 추천 4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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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인파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612)
Original Image size 10,500 x 5,702 Pixes(171.3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백년도 못 되어 다 사라질 형상들...

 
  광장의 인파는 좁은 거리의 인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단순히 거리보다 광장 쪽의 사람 숫자가 많다는 것 보다 그 많은 사람이 동시에 모인다는 것은 반
드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동질성을 가지게 되고 그 무리의 덩치에 압도당한다.
축제를 하건, 행사를 하건, 시위를 하건, 운집한 사람들이 지닌 염원이 큰 파장이 됨은 물론이고
열변가가 외치는 구호와 달변에 군중심리까지 동원이 되어 이성이 마취되기 싶상이다. 그렇게 동
조하지 않으면 자신만 뒤떨어진 사람, 지각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 또 이런 집회장이다.
적어도 수 천명 이상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광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경우는 운동경기장이나 선
거유세장, 축제같은 행사장이 아니면 무슨 데모나 시위현장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대공원이나 여의도같은 광장에서 벗꽃축제같은 이념이나 정치 색깔이
없는 인파를 구경하게 되는데 이렇게 모여드는 인파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루라도 자연의 아름다
움을 감상하고 메말랐던 정서에 습기를 더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 운집한 광장은 그 자체가 화목과
화합의 장이고 하나의 큰 구경꺼리가 아닐 수 없다.

  형형색색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까? 또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근대시 주요한의 <불놀이> 중 한 귀절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의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
스러운 것을 왜 나만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사람, 사람들, 군중 속에 혼자 버려진듯한 고독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저 많은 사람들이 백년도 못 되어 다 사라져 버릴 형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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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of Four Season    2009/05/11 09:04 추천 1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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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


          2. 여름


         3. 가을


         4. 겨울



Image of Four Season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600-2604)
Original Image size 21,460 x 6,285 Pixes(385.9 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이 이미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하나의 추상화 작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타내는 각 작품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지만 일란성 쌍둥이처럼 변형되는
디지털 회화만의 장점을 엿볼 수 있다.이런 이미지의 설정은 여러가지의 용도로 쓰임새가 다양한데
이러한 연작은 다시 하나의 '시리즈'로 묶어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으로도 가능하다.



Image of four season-연작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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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들-3    2009/04/13 09:57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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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들-3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574)
Original Image size 7,000 x 6,000 Pixes(120.2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힘찬 나래짓으로 비상하길 빌면서...

 

  나의 동기동창 중 한 사람인 K씨와 나는 다른 친구들과의 인연과는 사뭇 다른 묘한 구석이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읽을 정도로 공감대가 비슷한 것 같다.
그런 K씨와 나는 18세에서 21세 까지의 진하디 진했던 만남을 끝으로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서로 다른 생활의 공간 속으로 내던져졌고 나이 57세가 되어서야 우리는 바로소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인연, 특히 학연이라는 끈은 모진 것이라 결국은 만나게 되는 것이지만 그와의 인연은
거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드라마틱'한 것은 물론, 무슨 모진(?) 운명같은 것이었다.

 

  그런 그를 다시 만나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그의 큰 자랑꺼리는 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
였고 부인을 끔찍히 사랑하는 자상함도 부러웠지만 두 딸에 관한 그들의 깊은 애정과 보살핌이
여늬 부모와 다른 점이었다.물론,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사랑에 뒤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만
단순히 물질적이나 경제적 후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자식관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돈만으로 다 되는 줄 알고 외국유학 보내어 성공한 자식이 몇이나 될까? 흥청망청 사람만 버려
서 귀국하기 일쑤인 현실을 보면 그들 부부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두 딸을 반듯이 학문과 예술
로 성공시킨 것은 정말 장한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그 자신도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인 줄 알
지만..'을 자주 입에 올리지만.....

 

  K씨의 첫째 딸 은경은 서울예고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음악의 천재성으로 일찌기
'클라리넷' 연주자의 대가를 예고하듯이 수 많은 입상을 하며 서울음대를 거쳐 지금은 독일의
'두이스브루그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 '클라리넷'주자로 활약하고 있고,
  둘째 딸, 선아는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뉴욕의 SVA(School of Visual Art)를 졸업하고 작년
에는 American illustration Compitition에 선정되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지금은 국내 최대의 광
고회사인 제일기획에서 발탁한 '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내가 뜬금없이 남의 집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그림을 그리다가 무슨 음악
의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K씨의 딸, 은경이 생각이 나고 일러스트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면 선아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그의 구전 홍보효과가 효력을 보는 셈이었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의 두 딸에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크기의 작은 그림(그림이 크면 이사를 하거나
환경이 바뀌면 걸지 못할 경우가 많아서)을 각각 하나씩 선물하기로 작정하였고 그 중에 바로
이 그림은 둘째 딸 선아에게 주기로 하였다. 명색이 그녀도 '일러스트레이터'인데 그림을 선물
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울까? 하지만 이 그림은 나의 많은 그림 중 스스로 아주 마음에 드는
수작(秀作)이라 자화자찬 할 만큼 감각적인 작품이라 그리 결정하였다.

 

  <젊은 그들> 그림의 제목처럼 넓디 넓은 창공으로 훨훨 힘찬 나래짓으로 비상하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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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가나안    2009/03/30 11:19 추천 2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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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가나안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562)
Original Image size 7,000 x 5,250 Pixes(105.1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가장 인간적인 모습---기도

 

  가나안(Canaan)이란 기독교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쪽 지역의 옛 이름이다.
기원전 13세기경 먼저 거주하던 가나안 족을 정복하고 고대 이스라엘이 정착한 지역으로 성서에
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란 성경의 귀절은 기독교인에게는 율법처럼 중요한 귀절이다.
물론 이 귀절로 인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분쟁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분쟁의 발생을 예측하지 못 하셨을 리가 있겠는가?

 

  나같이 사이비 종교인이라 이름 붙이기도 뭣한 주변인 주제에 무슨 성서에 나오는 귀절을 해설
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자격도 없지만 이런 정도는 누구나 아는 상식의 범주이기에 감히 기독교
성서의 언저리에 꿇어앉아 간절히 기도하는 여체를 주제로 작품화하였을 뿐이다.
  기도에도 간절함의 농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척도가 된다.
그저 나처럼 교회나 성당에도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 식사 전후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나
이다. 아멘.'로 마치는 간단한 기도나 성호를 긋고 '성부와 성자......'를 들먹이는 근성 기도는
하나마나한 엷디엷은 수작일 뿐이다. 교리공부도 안 하고 성당에도 거의 안 나가는 주제에 하나
님을 모독해도 유분수지, 이 무슨 회괴망칙한 짓거리란 말인가?

 

  그래도 이 무식한 사람이 한 가지는 안다.
하나님이 아니 계신다는 증거를 대기는 어려워도 하나님의 존재가 곳곳에 계신다는 것.
칠순이 훨씬 넘어 성령의 세계로 입문하신 이어령씨처럼 나도 반드시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일생을 마칠 것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예감에 점차 순응하고 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이 간절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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