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mbrace2012 Digilog Artworks (3474) Image size 5,000 x 5,000 Pixels (71.5M) Resolution 300dpi.
포옹-듣기만 하여도 가슴 떨리는 말.시인 용혜원씨의 시작 시귀처럼 '구름이 한아름으로 산을 / 품에 안듯 /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 그대를 꼭 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와 중간 소절 '사랑의 의미를느낄 수 있는 시간 / 아무 것도 필요 없이 / 둘만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시간 / 촉촉함과격정, 그리고 기쁨과 행복 / 포금함과 따뜻함 / 사랑의 모든 말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만하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랑하는 연인과의 포옹은 그런 것일 뿐, 어떤과장된 수사도 필요치 않은 것이 사랑의 행위 중 포옹이다.
그리고 말로만 느끼던 사랑을 눈길로 받아들이고 눈길이 손길이 되고 온몸으로 느끼는깊은 포옹은 한없이 걸어도 좋을 들판도 눈앞에 펼쳐지고 두둥실 바다 위에 떠있기도 한다.사랑의 시작은 이런 행위로 또 다른 언어를 대신하고 솜방망이처럼 마구 뛰는 가슴이 터질듯 요동을 치며 그대 속을 파고드는,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희열의 절정이 아니던가?'이리 오세요, 안아드릴께요' 라는 Hug Performance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안아주고, 안겨지고 싶은 마음은 부끄러울 일도 아닌, 누구에게나 필요한 본연의 내면적 갈구다. 누군가의Hug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데, 너무나 많은데, 별로 힘든 일도아닌데 여전히 갈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영화의 대사처럼 '어깨 좀 빌려 줄래?' 죽고 싶을만큼 외로운 사람이 많은데...... 거 뭐 대단한 일이라고....... ---------------------------------------------------------------------------------------
내 마음 새가 되어-72012 Digilog Artworks (3470) Image size 7,157 x 5,138 Pixels (105.2M) Resolution 300dpi.
내 마음의 새는 늘 비상을 자제하였다.억누르고, 기다리고, 때로는 질책을 하면서 짙은 계절의 향기가 천지를 진동할 때까지 날개를접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힘찬 나래짓으로 창공을 가르려면 최소한 기다림의 미덕을 터득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소리 없는 피울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여건이 성숙되었다.개나리의 황색물결이 지천에 널리고 진동하는 꽃향기가 축포처럼 터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이 화창한 봄날을....... 멀리 가만한 자태를 감추고 있어도 그믐달의 위치를 내 어찌 모를까? 그래, 날자, 날자, 솟구쳐 날자. 그렇게 하얀 새를 띄워 보내며 내 마음도 실려 가는 잔인한 봄, 3월의 시작이다. 겨우내 동면하였던 칙칙한 마음자락 다 풀어제치고 팔랑팔랑 노랑나비 한 마리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들판을 가로지르는 봄의 산책도 아름답지만 내 어찌 그런 한가로운 여유 하나만으로 묶혔던 마음을 다 줄까? 드높이, 드높이 비상하여 내 님을 찾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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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ican Culture-32012 Digilog Artworks (3467) Image size 7,000 x 6,241 Pixels (125.0M) Resolution 300dpi.
아프리카를 나는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지만 늘 가슴 한 구석 빚진 기분이 든다.축복의 땅, 척박한 땅, 자연의 보고 같은 뒤섞인 이미지와 낙후된 경제와 문명이 쏟아내는 이질적 가치와 인종학살과 같은 끔찍한 현안, 그리고 절망과 기아, 에이즈가 범벅이 된 고통의대륙이기에 측은지심에 앞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인간으로써 마음의 빚이 있는 것이다.아마도 그것은 아프리카 부족들이 걸친 원색적이고도 화려한 의상이나 장신구처럼 원초적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인지 부쩍 아프리카를 다룬 그림들을 많이도 그렸다.가까운 내 친구가 '저 친구 가까운 시간에 아프리카 한 번 가게 되겠다'라고 말할 만큼 그 화려한 원색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고 영감을 얻어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전혀 상반적이고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에서 얻는 Feel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기대 되겠는가? 주술사들의 몸짓처럼 영혼과의 대화를 간절히 원한다면 책상 앞에서 상상으로 되겠는가?언젠가는 꼭 가 보아야 할 곳이 아프리카다. 참 가볼 곳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나이는 들어가고, 시간도 없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할일은 태산이고........
그녀의 회상2012 Digilog Artworks (3466) Image size 5,000 x 6,000 Pixels (85.8M) Resolution 300dpi.
이런 작품일 경우, 작가가 자신의 말을 다 해버리면 독자의 무한상상에 제동을 거는,불필요한 사족이 될 수도 있으므로 가급적 단상을 피해버리는 편이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그런 의미에서 추상이나 반 추상 작품의 경우는 사실 그림의 제목도 거추장스럽습니다.짧게, 또는 장황하게 10 여 년을 지나오면서 꾸준히 작품 단상을 써온 나로서도 이런 경우,대단히 망설여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꾸만 작가의 변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림 제목도 신경 쓰지 마시고 편안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Nude Image-452012 Digilog Artworks (3458) Image size 8,000 x 7,205 Pixels (164.9M) Resolution 300dpi.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혼합하는 나의 디지로그 작업 방식에 대단한 변화가 연일 일어나고있다. 전자에 한 번 올린 적이 있는 Pulp Molding Form을 사용하면서 부터 표현방식의 변화가 단순 평면에서 입체로 옮겨지므로써 거의 릴리프 수준을 넘는 반 입체 작품을 만들게 되는 또 다른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자연 이러한 자재를 구하는 일도시중에서는 쉽지 않아 멀리 충청도의 어느 회사 공장에 자재들을 부탁하여 부피가 큰 상자로두 박스나 받았는데 각양각색의 입체 포장 완충재를 늘어놓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 하였다.그러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새로운 과제를 산더미처럼 받고는 이리저리 배열도 하고 각기 다른 특징과 모양새의 콤포지션을 하느라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들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칠은 어떻게 하고 하나의 주제로 묶기 위하여 어떤 표현을해야 하며, 디지털과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커다란 과제를 짊어진 것만으로도내가 살아 숨 쉬는 존재의 의미이기도 했기에 이리저리 스케치도 해보고 구상을 지속할 것이다.이 작품은 2년 전에 내가 폼 자재로 이미 만들어 두었던 작은 소품으로 지난번 풍경화에 이어인물사진을 혼합하는 단순 실험작이다. 앞으로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100호 남짓한 대형캔버스 위에 펼쳐질 작품이 완성되면 아마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작품으로 평가 받지 않겠는가? 그래서 작가는 딱히 쉬는 날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Back side of Canvas-052012 Digilog Artworks (3457) Image size 5,000 x 5.000 Pixels (71.5M) Resolution 300dpi.
발상의 전환으로 본다면 이면은 늘 흥미로운 것이다.노출되어 있지 않은 여인의 속살처럼 들뜬 기대감으로 가득한 속성도 지녔다.이러한 이면, 또는 배면을 그린 이 반 추상 작품은 숨이 멎을듯한 화사함과 가슴에 차오르는 환희가 화폭 뒷면에 존재했을 것으로 상정하고 그러한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이다. 어쩌면 화가의 상상이 갖는 내면적 변화이기도 하고 마지막 표면(Surface)에 나타난 하나의 작품 뒤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애환과 환희, 그리고 숨 막히는 열정의 거친 몸놀림인지도 모른다.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 다 떠나버린 놀이마당의 잔재인지도 모를, 그런 버려진 色과 形이 부정형하게 캔버스뒤편에 각인되었다. 아무도 미처 그 과정을 들여다 봐 주는 이 없는 볼품없는 흔적들이지만 애정을 가지고 이면을 찬찬히 투시해 보면 어머니의 희생처럼 고귀하고 순결하기 그지없는 형상들일 수도 있기에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것이다.
Violet Tulips-122012 Digilog Artworks (3450) Image size 7,000 x 5,418 Pixels (108.5M) Resolution 300dpi.
이 그림 속의 튜울립은 공산품처럼 제조일자로 따진다면 2005년산이다.마치 꿈 속에서 아른거리는 보랏빛 이미지를 복사용지에 베껴오듯 조심스레 새 집으로 옮겨 심었다. 처음엔 토양도 다르고 환경도 달라서 말라 비틀어 죽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였는데 그 가녀린 꽃들이 용케도 환경을 적응하며 조용히 안착한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그래도 오목히 쌓인 석고 받침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는지 환한 웃음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앙증스러워 나 자신도 놀랐다.세상에 이런 훈훈함만 있다면, 세상에 이런 작은 미소만 있다면....하고 한참이나 고갈된 마음을 풀어놓고 그림과 이야기를 하였다. 작은 정물이 주는 소담한 행복이란 여자들만의 것은 아닌가 보았다.그것도 나처럼 둔탁하고 거칠기 한정 없는 남자의 손에서 이런 그림도 나오는 것을 보면...........
Apartments2012 Digilog Artworks (3441) Image size 5,000 x 5,000 Pixels (71.5M) Resolution 300dpi.
고사성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란 말이 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말로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말한다. 흰 바탕이란 본질이 없으면 제대로 그림을 이룰 수 없음인데 특히 인쇄나 프린트를 해보면 바탕색의 중요감을 실감케 된다. 그것은 아마도 비유에 불과할 것이고 매사에 본질을 망각한 허튼 포장이나 치장을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설혹 내가 그림의 주제를 집합주택인 아파트로 가닥을 잡았다고 치자.내가 무슨 분양 팜프렛의 투시도도 아니고 그 성냥곽 같은 외관을 무엇 하러 그리겠는가?사람들이 모여사는 군락의 상징인 아파트를 통하여 온갖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현대인들의삶을 단면으로 보고 싶었을 뿐, 외관상의 모양새는 애당초 관심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두부 자르듯 단면을 통하여 발췌해 보는 것이 동기였고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치장하지 않은 본질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접근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서기초화장, '화운데이션' 하나도 바르지 않은, 깨끗이 세안한 맑은 얼굴로 말이다.
산화되는 꽃2012 Digilog Artworks (3440) Image size 5,000 x 5,000 Pixels (71.5M) Resolution 300dpi.
꽃은 왜 우는가?아니 꽃이 과연 울기라도 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분명히 꽃도 운다. 이런 가설은 깊지도 못 한 나의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사이언스' 잡지 Nature에 실린 석학들의 연구결과에 토대를 두었다. 꽃을 포함한 모든 식물들도 나름대로의 고통(Pain)에 민감한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뭇가지를 잘라내었을 때, 나무는 몹시 고통을 느끼고 상처부위에 진액을 분출하여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적 자세로 전환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의 경우 울음에 해당하는 음파가 발생하고 생체 리듬에 엄청난 변화가 증폭된다.
꽃이라고 그러하지 않겠는가?추워서 울고, 뜨거워서 울고, 목말라 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파랑나비가 그리워서도 운다. 파릇한 젊음이 만개하였다가 시들어지고 말라비틀어지면 피 빛 울음을 울고 석양의 하늘을 보며 절규도 한다. 다만 우리가 모를 뿐이다. 안으로 삼키는 울음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소리내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야 우는 줄 안다. 정작 너무나 큰 슬픔은 울음조차 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은 실체가 아닌 양,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가기 일쑤다. 아프다는 소리가 안 들리니 사람들은 꽃대를 가위로 삭뚝 잘라내고 아직은 한참이나 더 피어있을 꽃들을 일주일 즐기자고 화병에 꽂아두고 그것이 무슨 고상한 기품인 양 착각하며 속빈 강정 같은 우아를 뜬다.
꽃도 이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산화하고 싶다.花無十日紅이라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음을 자각한 꽃은 구차하고 초라한 구걸이 싫다.그리 마음 먹으며 스스로를 산화함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내려고 안간 힘을 쓴다.녹아내리건 산화하여 공기 중에 뿌려지건 이제는 이 모진 아픔과 작별할 시간인 것이다.떠나야 할 때, 떠날 용기도 없으면 꽃이 아니다.
a sinful priest- (破誡僧-3)2012 Digilog Artworks (3439) Image size 4,000 x 6,000 Pixels (68.7M) Resolution 300dpi.
부처님, 또는 예수님의 가름치심에 '이의 있습니다'라고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행위를 '파계'라고 한다. 특히 나는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고 석가모니의 경전에 어떤 부분이 불합리하다거나 이견을 낼만큼 현실감각이 맞지 않은 것인지 명확한 이론을 제시할 입장도 아니다. 다만 그러한 Anti-Buddhism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고통과 번민은 실로 가늠키 힘든 부피의 갈등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 관심사였을 뿐이다. 파계란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도 존재한다. 감히 성스러운 교리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그것도 그 세계를 동경하고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이론을 정립하지 않고 어찌 불경스럽게, 감히 Objection을 할 수 있겠는가? 끊임없는 의구심과 내면의 소리에 발목이 잡혀 번민과 갈등을 겪었을 파계자(transgressor)들의 행적들을 한번쯤은, 적어도 이미지만이라도 접해 보고싶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파계는 계율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에 비하여 신에 의하여 상당한 응징과 보복의 대상으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장 인간다운 본연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인간답게 사고하고 인간답게 해석하려는 의도데에서 파계의 씨앗은 이미 뿌려진 것이었다. 이러한 파계자들에게 우리는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마치 불량 서클의 못된 학생처럼 일괄적으로 매도할 근거가 있는가?
파계자의 행위를 현실적으로 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난 그렇게는 못 하겠소'이다.'부처님(혹은 하나님) 가름침대로 하라는데 왜 너만 못 해?' '저도 그리 해보려 무던히 노력해보았어요''그런데?''싫어요' '그럼 너 어떻게 되는 지 알지?' '알아도 안 할래요' '후회 안 하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