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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안보 전략-자원 획득 위해 무력 충돌도 가능    2009/07/18 11:56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laykorea/4086774
러시아 정부가, 외교,안전보장의 기본 문서인 "2020년까지의 국가 안전 보장 전략"을 발표했다. 자원의 획득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경쟁하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서 무력행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했던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강국 러시아의 부활"이라고 하는 종래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요점이다. 경계해야 한다.

구소련 제국을 염두에
 
이번 발표는, 자원 획득 경쟁을, 미래의 러시아의 안전보장상의 위협의 하나라고 인정하고 있다. 획득을 위해서, 군사력의 행사를 단행했을 경우, "러시아와 그 주변국의 국경 근처의 복잡한 힘의 밸런스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라고 하고 있는 점이 주목받는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을 예상하고 있는지, "주변국(복수의 나라)"이란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자원 쟁탈의 격렬해지는 지역으로는 "중동, 바렌트해 및 그 외의 북극해 주변"과 "카스피해 연안, 중앙 아시아"등이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무력 충돌을 예상하는 지역으로서 중앙 아시아나 남 카프카스등의 구소련 제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라는 견해가 강하다. 이로인해 러시아의 "세력권"에 미국이 개입한다면, 러시아는 군사력의 행사도 불사하겠다는, 메세지를 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아브하지아와 남 오세티아를 국가로 승인해서, 남 카프카스 지역에 있어서의 세력권을 확대했다.게다가로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사카쉬빌리 정권의 퇴진과 친이슬람정권의 발족에 의해, 카스피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에너지 회랑인 동지역에 압력을 행사 할 자세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가 "잠재적인 위협"이라고 파악하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는 5월6일부터 6월1일까지의 예정으로 그루지야에서 군사 연습을 실시하고 있다. 이것은 NATO가 그루지야의 사카쉬빌리 정권을 지지하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 보이는 형태가 되고 있어 러시아는 맹반발 하고 있다. 이번 발표한 신문서는 NATO와 "관계 강화의 뜻이 있다"라고 하고는 있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의문이다.
 
발표된 문서에서는 과거에 작성되어 있던 문서에 있던 "반서구" "반미적"이라고 하는 기술의 대부분이 삭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미 오바마 정권의 대 러시아 전략을 판단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고, 러시아의 안보 전략의 본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러시아는 신안보 전략으로, 미국과 "대등하고 완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푸틴 전정권이 밝힌 "강국 러시아의 부활"노선을 분명히 하고, 더 한층 국익 옹호를 위해서는 "정치, 법, 대외 경제, 군사 그 외의 수단을 사용한다"라고 했다, 군사력의 행사도 불사한다고 명시해 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출까
 
핵전력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안전 보장이기 때문에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향한 계속적인 전진"이 포함되어 명문화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연말까지 "제1차 전략무기 삭감조약"(START1)에 대신하는 새로운 조약을 맺을 방향이지만, 메드베이제프 정권이, 오바마 대통령과 보조를 맞출 의사가 있는지, 앞으로의 태도에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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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인플렌자 대책-경제불황을 극복하는데 문제된다.    2009/07/18 11:55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laykorea/4086769
신종 인플렌자의 감염자 증가는, 사람의 건강이나 생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경제에의 악영향도 염려해야 한다. 감염이 어디까지 퍼지는지, 예측할 수 없지만, 중증에 빠질 걱정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 되어 있지만, 전세계경제에의 마이너스 영향도 적지 않다.
 
신종 인플렌자가 확산되면 세계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불황으로부터의 탈출도 늦어 진다. 불황 극복을 하려면, 신종 인플렌자의 봉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확대는 경제에도 악영향

신종 인플렌자의 확산을 어디서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간파하는 것은 어렵지만, 감염 환자가 늘어 감에 따라 경제활동에 좋지않은 영향의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에, 모두가 의문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감염 환자수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경제활동의 담당자가 줄어 들 것이다, 일부터 안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활동의 담당자가 줄어 들고, 일 뿐만이 아니라, 활동의 기회에 대해서도 억압 요인이 될 것이다.

게다가 다수자의 참여가 있어야만 되는 각종 행사에서도, 장애가 생기고. 또, 상가, 유흥가, 관광지등의 손님이 줄어 드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은, 경제 활력의 크기에 정비례 한다. 신종 인플렌자가 창궐 한다면, 사람이나 물건의 이동(수요의 동향)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이일로 인해, 경제활동이 많은 제약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시장의 확대에 있어서, 플러스로 작용하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방역이나 필요한 약품의 생산, 공급은, 필연적으로 많아 진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의 수요증가는, 신종 인플렌자의 확대가 일으키는 경제활동에의 마이너스에 대비하면, 전혀 경제에 플러스가 되지 않는다. 신종 인플렌자는 전세계의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현재, 세계는 여지껏 보지못한 대형 불황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과대 투기의 반대급부로, 거대 손실이 수반하는 구매력의 급격한 축소가 세계 경제,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발생했다, 나라나 지역에 따라 양상은 다르지만, 생산,소비의 성장의 둔화내지는 감소의 고민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한편, 그 추세를 뒤집을 전망도, 아직은 찾아 내지 못했다. 그런만큼, 신종 인플렌자의 생각치 못한 출현과 감염의 증가 추세는, 경제발전의 부흥에 찬물을 뿌리고 있다. 따라서, 감염이 더이상 확대되지 않게, 최대한 저지하는 대책을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어 있다.

신종 인플렌자의 증가 추세를 어떻게 막는지, 모든 나라가 시험대가 되어야 한다. 가능성이 높은 치사율대의 새로운 인플렌자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는지의 “시금석”도 된다. 이것에 대한 예방준비를 하는 관점에서라도, 이번 신종 인플렌자 대책에는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확산된다면 손실은 방대해진다.

14세기 중엽의 유럽에서는, 페스트(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약1억명중, 3분의1 내지 4분의1이 희생이 되었다고 하는 설 도 있다. 설마, 그럴리야 없다고 생각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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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과 근세 사회로의 이행

Ⅰ. 서론

Ⅱ. 본론

   1.흑사병의 전파 경로

   2. 흑사병의 확산

   3. 흑사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4. 채찍질 고행운동

   5. 흑사병의 영향

Ⅲ. 결론

Ⅰ. 서론

중세말기, 특히 14세기 중엽에 이르러 유럽사회는 엄청난 파국을 맞이한다. 이 시기에 닥쳐온 페스트를 비롯한 대역병이 파국적인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야기하면서, 중세가 유지해 온 경제적 균형이 뒤흔들리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흑사병은 단순한 인구의 감멸 뿐 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에도 큰 영향을 끼쳐 종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면 14세기의 흑사병으로 인한 재난이 중세라는 마지막 버스를 탔던 중세인 들에게 어떠한 심리적, 정신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파악해보고, 흑사병이 초래한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유럽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또 유럽인의 종교적인 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중세말기의 엄청난 사회 변동과 아울러 흑사병이 시대흐름에 끼친 영향까지도 알아보자.


Ⅱ. 본론

1. 흑사병의 전파 경로

1347년 10월에 12척의 제노아 상선이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구로 들어갔다. 이 배들은 제노아인들의 중요한 상업 기지가 있던 흑해로부터 왔는데, 이 배에는 아주 이상한 화물이 실려있었다. 이 화물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계란 크기의 검은 혹을 가지고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던 선원들이었다. 이들 혹에서는 피와 고름이 흘러나왔다. 희생자들은 극도로 고통스러워하며, 보통 수일 내에 사망하였다. 희생자들은 기침을 하며 많은 땀을 흘렸다. 그들의 신체에서 나오는 땀, 피, 호흡, 오줌, 배설물 등 모든 것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이 병은 서혜 임파종의 페스트로서 여기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혈관이 감염되는 경우에는 종기가 생겨났고, 내부 출혈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 페스트는 외부 접촉에 의하여 감염되었다. 폐 페스트의 경우에는 병이 호흡(기침, 재채기, 숨)에 의하여 확산되었다. 페스트는 인간의 생명에 아주 치명적이었다. 감염된 사람은 밤에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사망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의사가 환자로부터 병을 옮아 환자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시인인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 1313-1375)는 1348년에 흑사병이 플로렌스에 닥쳤을 때의 끔찍한 상황을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그가 쓴 「데카메론」은 10일 동안 농촌 별장을 향하여 도시를 떠나고 있는 7명의 숙녀와 세 명의 신사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들 각각은 정원에서 돌아가며 총 백 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 중 많은 것은 음탕한 것이었고, 다른 많은 이야기에는 애절한 감정과 시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표현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페스트인데, 보카치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병이 퍼진 초기에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종기가 생긴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종기 중 어떤 것은 사과 크기만큼 자라났고, 다른 어떤 것은 계란 정도만 하였다. 사람들은 이 혹을 페스트 종기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생겨나서, 인도,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로 확산되었던 페스트에 대한 소문은 1346년에 유럽에 도달하였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유럽의 역사에서 이전에 페스트가 발병한 적이 있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어떤 페스트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아테네에는 5세기에, 아라비아에는 6, 7세기에,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1892년과 1910년 사이에 인도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적이 있었다.

2. 흑사병의 확산

1348년 1월에 페스트는 튀니스를 통하여 북아프리카로, 그리고 마르세유를 통하여 프랑스에 침투하였다. 마르세유와 튀니스는 항구 도시이다. 페스트는 그 해 3월 무렵이면 서쪽으로는 스페인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프랑스 중부까지 확산되었다. 5월 무렵까지는 페스트는 로마와 플로렌스로 침입하였다. 또한 6월이면 페스트는 파리, 보르도, 리옹, 런던까지 이동하였다. 스위스와 헝가리는 7월에 희생지역이 되었다. 병이 유럽을 통하여 이동해나갈 때 프랑스의 탁발수도사인 장 드 베네(Jean De Venette)는 우리에게 병의 확산에 관한 연대기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어떤 정해진 시기에 페스트는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창궐하다가 사라졌다. 병은 회오리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없어졌다. 그 등장과 움직임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북부 도시에서는 페스트가 겨울에 잠복 상태로 있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등장하였다. 1349년에는 페스트가 파리에 다시 등장했고, 결국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퍼졌다. 노르웨이에서는 시신을 실은 배가 해안을 떠돌아다니다가 몇 달 후에야 발견되기도 하였다. 1349년 말엽까지는 스웨덴, 덴마크, 프러시아, 아이슬란드, 그리고 그린란드도 페스트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페스트는 등장한 만큼이나 재빠르게 사라졌다. 1350년 중반 무렵이 되면 페스트는 유럽 대륙에서 그 활동을 마쳤다.

14세기 중반까지는 유럽의 대도시는 파리, 플로렌스, 베니스, 그리고 제노아 등이었다. 이들 도시에서는 인구가 십만 명을 넘었다. 런던, 강, 밀라노, 볼로냐, 로마, 나폴리, 쾰른 등에는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보르도, 툴루즈, 마르세유, 세빌, 톨레도 같은 소규모 도시에는 2만 내지 5만의 사람들이 살았다. 페스트는 이런 도시 모두에 확산되어 어떤 곳에서는 인구의 30퍼센트 내지 60퍼센트가 죽었다. 1348년 1월에 나폴리와 베니스 사이의 지역에는 강한 지진이 발생되어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집과 교회가 붕괴되었고, 마을이 파괴되었으며, 역겨운 냄새가 땅속에서 솟아 나왔다.

부자든 가난하든, 젊었든 늙었던, 남자든 여자든 페스트는 희생자를 선택할 때 아무런 구분도 하지 않았다. 페스트는 회오리바람처럼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장소를 강타했다. 건강한 아이 하나가 열두 명의 가족 중에 유일한 생존자인 경우도 있었고, 연장자가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다. 수도원이나 감옥 같은 폐쇄된 장소에서는 한 사람이 감염되면 통상적으로 모두가 감염되곤 하였다. 몽펠리예에 있는 도미니크파에 속한 탁발수도사들 140명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페스트는 어떤 거리의 한쪽 지역, 혹은 거리 전체, 혹은 거리의 어떤 집을 덮칠 수도 있었다. 환자가 한 사람 발생했다가도 회복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지만 페스트에 감염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며칠 이내에 사망하였다.

당시의 기록관리의 상황을 감안하면, 정확한 사망자 수를 계산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 끔찍한 운명을 당한 사람들의 수를 추산할 수 있는 몇몇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비뇽에서는 석 달 동안 매일 400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5만의 인구 중 36000명)  어떤 포도밭에는 6주 동안 11,000명의 시신이 묻혔다. 1349년의 3개월 동안에 파리에서는 매일 800명, 피사에서는 500명, 빈에서는 매일 600명이 죽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349년의 10주 동안에 2천 명이 죽었고, 동일한 기간에 에르푸르트에서는 1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페스트로 인한 사망률은 지역에 따라 20%에서 100%까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였다. 인도에서 아이슬란드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1347년에서 1350년 사이의 3년 동안에 30 내지 35%의 유럽인들이 사망했다고 추산되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추정인구 7천 만 중에서 약 2천 만이 죽었던 것을 의미하였다.

사람들은 거듭된 죽음 가운데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마지막 의식인 기도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신앙의 시대에 부적절하게 매장된다는 것보다 끔찍하게 생각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 때문에도 희생자들은 더욱 두려워하였다.

3. 흑사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사람들이 페스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보통 우리는 그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하여 몰려 지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를 피했다. 변호사들은 유언장에 서명하기를 거절했고, 의사들은 환자 보기를 거부했으며, 성직자들은 고해성사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들을 내버렸고, 남편은 아내를 내다버렸다. 교황의 주치의의 말을 빌자면, "사랑은 죽었다."

보카치오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온갖 생각을 했다. 즉 병자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피하고 도망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각 사람은 스스로 병에 걸리지 않기를 원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마을에서는 드럼과 트럼펫에 맞추어 사람들이 춤을 추었다고 보고되었다. 그들은 가족, 친구, 이웃, 성직자가 매일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 이후에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즐거워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 도망칠 수 있는 사람들로서는 오염된 지역에서 피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이것은 보통 「데카메론」의 부유한 이야기꾼의 경우처럼 도시에서 농촌으로 도망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농촌에서도 마찬가지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기들 집에서, 그리고 거리와 들판에서 죽어 넘어졌다. 농산물이 수확되지 않은 채 남겨졌고, 소, 양, 염소, 돼지, 닭은 미쳐 날뛰었다. 당대의 기록에 따르자면, 가축들도 페스트의 희생물이 되었다. 유럽에 양모를 다수 공급하던 영국 양은 많이 죽었다. 어떤 보고에 따르자면, 어떤 목장에서는 5천 마리의 양이 죽어 넘어졌다. 이 모든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고, 역사가들이 "절망에 기인한 치매상태"(dementia of despair)라고 부르는 현상이 생겨났다. 어떤 독일 사람은 "미래에 대해 어느 누구도 생각할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가축을 풀어주었다."고 썼다.

페스트의 원인에 대해 대개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를 내쫓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페스트의 매개체인 쥐와 벼룩은 14세기에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전혀 의심되지 않았다. 실지로 페스트의 원인균인 "Yersina pestis"는 14세기 중엽에 페스트가 발병한 지 500년이 지난 19세기 중엽에서야 발견되었다. 원인균은 벼룩의 위장이나 쥐의 혈액 속에 살고 있다가 벼룩이나 쥐가 사람을 물 때 인간에게로 옮겨갔다. 보통 페스트를 옮기는 매체는 "rattus rattus", 즉 중소 크기의 검은 색 쥐였는데 이 쥐는 항해하는 선박에서 늘 발견되곤 하였다. 쥐가 죽으면 벼룩은 이동을 했는데, 다음 숙주가 인간이라면 감염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중세인들은 페스트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하였다. 1348년의 지진으로 공기가 더러운 냄새로 오염되었고, 그리하여 페스트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행성의 정렬방식이 지목되었다. 토성, 목성, 화성은 1345년 3월 30일에 물병자리의 40도에 정렬한 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페스트는 신의 진노를 의미하였다. 그토록 광범위하고 무자비한 페스트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일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3일 동안이나 계속되는 종교 행렬을 인도하였는데, 그 뒤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2천 명의 사람들이 따랐다. 사람들은 기도하고, 울부짖으며, 이를 갈았으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성모 마리아의 자비를 애원하였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 병이 분명히 신의 역사(役事)라고 믿었다. 그리고 1348년 9월에 교황도 여기에 동의하였다. 교황은 칙령을 통하여 "신이 이 역병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런 견해가 널리 퍼지자 집단적인 죄의식이 광범위하게 생겨났다. 만약 이 병이 신의 징벌로서 인간에게 내려왔다면, 그것을 불러일으킨 죄는 끔찍함에 틀림없다. 탐욕, 고리대금업, 세속성, 간음, 신성모독, 거짓, 이단, 사치, 불신앙, 우상 숭배, 나태함, 게으름 등이 그러한 죄였다. 기독교 자체의 모판이 바로 이 모든 것 아래에 있었다. 어떤 것도 교회의 심리적, 사회적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심지어 계란을 끓일 시각도 기도서를 말하는 때에 맞추어졌다.

역병에 대처하려는 온갖 노력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치료와 예방 둘 다 면역, 회복 혹은 희망이라는 관점에서 아무 것도 주지 못하였다. 의사들은 주로 방향제를 태우거나, 공기를 정화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희생자의 운명이 오직 신에게만 달려 있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역할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환자들은 방혈, 완화제를 가지고 장(腸)을 청소하는 일, 그리고 페스트 종기를 찌르는 처치를 받았다. 환자들은 식초와 장미 향수로 씻겨졌고, 독하지 않은 식단이 주어졌고, 흥분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환자가 갑자기 회복되더라도 그 원인은 의사의 치료 때문이라고 보기보다는 운으로 돌려졌다.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고자 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했다. 페스트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왜 이곳에서 발생하는가? 나는 왜 살아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분노와 좌절감을 집중하기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유럽에는 희생양이 아주 많았다.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파멸시킬 의도로" 물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유럽의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1348년 봄에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카르카손과 나르본느의 유대인들은 집에서 질질 끌려나가 장작불에 내던져졌다. 이 역병이 신의 형벌이라는 점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신에게 분을 돌릴 수는 없었다. 기독교 유럽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유태인들은 가장 명확한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기꺼이 기독교 세계와 단절되었던 국외자였다.

1320-1321년의 전염병 기간에 수백 명의 나병환자들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유태인들이 이 불행한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믿었다. 역병이 25년 뒤에 재발되었을 때, 유태인들은 다시 한 번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교회에 따르자면, 유태인들은 구원자로서의 예수를 배척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 대신에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다. 4세기 초에 교회는 유태인에게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그렇지만 유태인들은 중세 사회에서 고리대금업자로서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온갖 상공업에서는 배제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유태인들이 십자가 처형을 재현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을 살해하는 의식을 종종 수행한다고 믿었다.

13, 14세기에 교회는 유럽의 유태인들을 고립시키는 법을 공포하였다. 유태인들은 기독교인 하인을 소유할 수 없었고, 기독교인들과 결혼할 수 없었고, 새로운 회당을 건축할 수 없었다. 나아가 그들은 천을 짜는 일과 채광(採鑛), 금속 가공업, 제화, 제빵, 제분, 목수 일을 할 수 없었다. 교황 인노센트 3세는 1215년에 개최된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유태인들이 동전 모양으로 된 노란색 배지를 달도록 강요하였다. 다음 세기 무렵까지는 이슬람교도와 창녀 등 다른 부랑자들도 동일한 배지를 달도록 강요받았다. 1348년 9월에 사보이에서 종교재판이 시작되었는데, 첫 번째 피고는 유태인들이었다. 그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고문을 통하여 자백을 받아냈고, 열한 명의 유태인들이 장작더미에서 화형 당하였다. (1349년 1월 9일) 스위스의 바젤에서는 이런 목적으로 특별히 건축된 집에서 7백 명의 유태인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산 채로 화형 당하였다. 어떤 유태인도 200년 동안 바젤에 정착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령이 통과되었다. 1349년 2월에 2천 명에 달하는 스트라스부르의 유태인들은 매장지로 잡혀가서 집단적으로 화형 당하였다. 1349년 초에 독일의 마인츠에서는 유태인이 주도하여 2백 명의 기독교인들을 살해하였다. 기독교인들의 복수는 끔찍하였는데, 12,000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되었다.

1351년에 흑사병이 잠잠해지자 유럽의 유태인에 대한 박해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페스트가 발생한 지 1, 2년 동안에 유태인에 대한 학살은 양이나 잔혹함에서 극단적이었다. 페스트 발병과 더불어 유태인에 대한 박해로 거의 모든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모두 합해서 60개의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와 150개의 소규모 유태인 공동체가 소멸되었다. 1347년에서 1351년 사이에 350건 이상의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이런 일로 인하여 유태인들은 계속해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옮겨가게 되었다. 엄청난 자연재앙을 당하여 유럽인들이 잔혹한 행위를 통하여 상황을 개선하려고 시도한 것을 보면,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지닌 기묘한 측면을 보게 된다.

4. 채찍질 고행운동

흑사병이 발발한 시기에 발생된 보다 흥미롭고 기괴한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채찍질 고행운동이었다. 1348년에 처음에는 잘 조직된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주기도문과 아베 마리아를 부르면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보헤미아, 그리고 저지대, 피카르디를 지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시장으로 불러모았다. 행렬의 선두에는 자줏빛 벨벳 깃발과 황금 옷을 입은 지도자와 그의 부관들이 있었다. 행진하는 사람들은 머리와 얼굴을 가렸고, 그들의 눈은 자기 앞의 땅 위에 고정되었다. 행렬보다 앞서서 전령이 파견되어 행진 소식을 모든 도시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림으로써 그들의 도착을 알렸다.

행진하는 사람들은 일단 도착하면 허리까지 옷을 벗었고, 커다란 원을 그렸다. 채찍 고행자들은 원 모양의 주변을 돌며 행진하였고,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땅에다가 몸을 내던졌다. 지도자는 그들 가운데 걸어다녔으며, 죄를 범한 사람들이나 형제단의 규율을 어긴 사람들을 때렸다. 이런 의식이 진행된 이후에는 집단적인 채찍질이 시작되었다. 모든 형제들은 금속 못이 박힌 무거운 가죽끈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으로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세 명의 형제들은 지도자가 모든 죄인에 대한 신의 자비를 기도할 때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도시민들은 놀라움을 가지고 이 광경을 바라다보았다. 그들은 몸을 떨기도 하고, 흐느껴 울기도 했고, 공감하면서 신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공적인 의식은 33일 절반 동안의 기간에 낮에 두 번, 밤에 한 번 반복되었다.

채찍질 고행운동은 아주 잘 통제되었으며,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가입자들(대부분 평신도거나 성직록을 받지 않은 성직자)은 7세 이후의 모든 죄를 고백해야 했고, 33일 절반 동안 스스로를 채찍질하였다. 또한 각 구성원은 목욕, 면도, 침대에서의 취침, 옷갈아 입기, 어떤 경우든 이성과의 대화 등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런 일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들은 일정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벌금을 지불한 것을 보면 모든 사람이 형제단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벌금조차 지불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여기에 가입할 수 없었다. 형제단은 배타적인 조직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가입은 불가능하였다.

대중들은 보통 채찍질 고행자들의 행진이 자기 마을과 도시에서 거행되는 것을 환영하였다. 왜냐하면 이 행진은 단조롭기 그지없던 농민들의 생활에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채찍 고행자들은 의식을 위한 기회로서 봉사하기도 하였다.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집단적인 방식으로 과도한 감정을 억제할 수 있었다. 우리는 비록 채찍질 고행자들을 생각하며 웃고, 그들을 광신자로 치부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중세인들이 페스트의 피해를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국 행진에 참여하는 것은 신이 자기들을 용서해준다는 값싼 보장책으로 기능하였다. 역사가인 말콤 랑베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죽음의 신이 도래하기 전에 채찍질 고행은 공포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몇 안 되는 탈출구 중의 하나였다. 죽음이 도래한 이후에는 최악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매장하는 것처럼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실제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1349년 무렵이 되면 채찍질 고행 운동은 로마 교회와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런 충돌은 아마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마침내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죄인들로부터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교회는 이 일을 교회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의 채찍질 고행자들은 교회의 교권 제도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349년 중반에 교황 클레멘트 6세는 채찍질 고행자들을 이단 운동이라고 비난하는 교서를 발표하였다. 채찍질 고행자들은 불법 단체를 조직하여, 자기들의 복장을 채택하였고, 자기들의 교회 규칙을 제정하였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많은 군주들은 형제단이 자기들 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시작하였다. 지도자들은 산 채로 화형 당하였고, 채찍 고행자들은 성직자들에 의하여 비난받았다. 1350년까지는 채찍질 고행운동은 등장한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소멸되었다.

우리는 채찍질 고행자들을 잘못된 광신자라고 놀리기는 쉽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방문한 도시에서 영적인 갱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중세인들은 가족과 친구를 빠른 속도로 잇달아 잃는 고통을 당하면서, 자신들에게서 죄와 분노를 씻어줄 수 있는 일종의 메커니즘을 필요로 하였다. 채찍질 고행자들은 중세인들을 위하여 그러한 길을 하나 제공해주었다. 간음한 자들은 자기 죄를 고백하였고, 도둑들은 훔친 물건을 돌려주었다. 채찍질 고행자들은 또한 대중들에게 일종의 기분전환을 해주었고, 그들의 고통이 페스트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겪게 될 보다 큰 고통을 종식시켜 주리라는 약속을 해주었던 것이다.    

5. 흑사병의 영향

흑사병의 직접적인 피해는 우선 인구감소였다. 물론 인구감소는 흑사병이전부터 시작한 것으로, 흑사병은 이런 사태의 전개를 더욱 악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의 인구는 1000년경 대략 3800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흑사병이 엄습하기 직전 1350년경에는 대략 7500만으로 추정된다.(300년 사이에 2 배의 증가!) 이 숫자가 흑사병의 시기를 거치면서 4-5000만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흑사병의 창궐은 경제의 마비와 교란을 초래하였다. 유럽의 경제는 극적인 변화를 하고 있었다.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은 높은 임금과 제품생 산에의 높은 비용,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물가상승을 초래했다. 많은 회사들이 파산했고, 토지 소유자들은, 그들의 가게를 돌보거나,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곧잘 그들의 재산을 상실했다. 노동집약적인 봉건체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흑사병이 당대인의 의식과 태도에 미친 영향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의학지식이 결여된 당대인에게 흑사병은 죄악에 물든 인간세계를 벌하는 "신의 분노(ira dei)"와 같은 일대 재앙으로 여겨졌다. 교회는 사실상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교회도 사제도 흑사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인 양상을 띠었다.

한편 종교적 대응양식이 극도로 고양되어 참회와 고행의 행렬이 나타나는가 하면, 현세 도피적이고 찰나적인 쾌락에 탐닉하였다(Boccaccio의 Decameron을 상기하라). 또는 누군가에 이 재앙의 책임을 돌려 속죄양으로 삼았는데 유태인이 그 피해자로서 대량의 수난을 당했다.

鞭打苦行者, 채찍질 고행자(Flagellants). 흑사병이 창궐할 무렵 14세기 중엽, 일련의 속인들이 행렬을 지어 전 유럽을 배회하였다. 이들은 헐벗은 스스로와 이웃의 동료를 채찍으로 때리면서 회개를 외치고 신의 자비를 구걸하는 행렬을 벌였다.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현상이 광신적으로 발동된 예이다.

유태인 탄압. 1 차 십자군원정이 개시되었을 때, 성지탈환의 미명으로 狂信的인 무리가 북프랑스와 라인지방의 유태인 공동체를 滅殺한 사례가 있었다. 흑사병이 유행할 때, 사람들 사이에는 유태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든지, 기독교도의 어린아이를 유대교의 비밀의식에 犧牲으로 했다든지 하는 근거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처에 유태인이 집단으로 학살되고, 재산이 몰수되는 수난을 받았다.

흑사병은 유럽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킨 대변동 이었다. 그것은 유럽의 경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회가 질병 앞에서 무능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흑사병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앞당기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Ⅲ.결론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은, 인간의 역사에서 결코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재앙이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의 경제는 극적인 변화를 하고 있었다.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은 높은 임금과 제품생 산에의 높은 비용,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물가상승을 초래했다. 많은 회사들이 파산했고, 토지 소유자들은, 그들의 가게를 돌보거나,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곧잘 그들의 재산을 상실했다. 노동집약적인 봉건체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대중봉기도 일어났고 이는 간헐적인 것이기는 하나 지속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바스티유까지 이어져 나려가 근대화 촉진을 한 것이다.


< 참 고 문 헌 >

http://kdaq.empas.com/dbdic/db_view.jsp?ps=src&num=133171

http://www.kmib.co.kr/event/serial/millennium/history/w1301-1400.html

http://web.edunet4u.net/~mille/밀레니엄/세계/흑사병/흑사병.htm

http://bh.kyungpook.ac.kr/~leor/ma/matop13.htm

서양 중세사 브라이언타이어니 집문당

서양 중세사 강의  서양중세사학회 느티나무

[출처:http://history.wonkwang.ac.kr/school/west/medieval/medpas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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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투자의 확대 요구한다-주요8개국(G8) 농업장관 회담    2009/07/18 11:53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laykorea/4086765
금융 불안으로 앞으로 식량안전이 불투명

투기 거래의 감시 강화

18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열린 주요8개국G8(서방 선진 7개국+ 러시아 )과 G5(브라질· 인도 ·중국· 멕시코 · 남아프리카공화국) G8 국가들이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개도국 5개 나라를 불러모은 것이다, 농업장관 회담은 20일, 세계적인 식량 안전 보장 체제의 강화를 발표한 공동선언을 채택한 후, 폐막했다. 선언은, 투기적인 거래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의 동향을 감시하여, 농산물 가격의 변동 요인을 한층 더 분석하도록 요구했다.

G8는, 침체화 하고 있는 식량 위기가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라는 불안을 공유하고, 세계적인 식량 안보 체제의 강화를 향해서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농산물의 증산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필요성을 강조.농촌 진흥이나 기술개발을 포함해 정부와 민간이 농업 부문에의 투자를 확대하도록 요청했다.

작년의 주요국 정상회의에서 밝혀진 농산물의 국제 비축 구상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구체화에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식량가격 안정을 위하여 글로벌 곡물 비축을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미국 등의 반대로 합의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선언은, "비축 관리의 수법으로 다양한 선택사항을 계속해 모색한다." 고, 구체적인 안을 앞으로 논의키로 결정을 지었다.

선언은 또, 금융 위기의 심각화에 수반해 염려되는 보호주의의 대두를 저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수출규제를 포함한 공정한 통상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회피하기 때문에, 정책 총동원으로 대응할 결의를 표명했다.

이 외 , 바이오연료의 생산을 둘러싸고, 에너지 정책과 농업 정책의 쌍방을 배려한 형태로 진행하도록 요청.식량 수급에 영향을 주지 않는 차세대 바이오 연료의 개발을 진행시키는 중요성을 지적했다.

회담의 종반에서는, 공동선언의 형식을 둘러싸고 조정이 난항, 미국, 일본등이 첫 G8농업장관 회담으로서 G8단독의 선언으로 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유럽 연합은 이번 회담에 참가한 신흥국등이라는 논의를 반영한 것으로 하도록 주장했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G8로서의 공동선언을 채택하는 한편, 신흥국등을 포함한 논의는 의장 성명의 형식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농업을 지키는 것은 거대한 단체가 아니라 우리 정부와 농민 그리고 국민,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말레이코리아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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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없는 G8 농업 논의는 더 많은 기와와 빈곤을 가중시킬 뿐이다.


Cison di Valmarino에서 폐막된 농업에 관한 첫 회의를 마친 G8 농업장관들이 과거 실패에 대해 인정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향후 전망 선언문을 발표했다. 농업에 관하여 세계적 논의의 중심 행위자인,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는 수 백 만 명의 여성과 남성 농민들과 가족농들을 배제시킨 채, 밀실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G8은 결코 전세계 기아를 없앨 수 없다.

특히 지난 주말 회의에는 농민 단체들의 접근을 제한하여 극소수의 농민들만을 참여시킬 것을 공언함으로써,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G8의 주장은 공허한 말뿐임을 증명하였다. G8 농업장관들은 산 속의 고립된 성에서 회의를 진행했으며 이탈리아 농업 장관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국제 농민 단체들의 대표자들의 의견 개진조차도 거절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온 최종 선언문은 대단히 모순적이다. 식량 생산자들의 역할을 수용하고 농촌 지역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G8 국가들은 이 위기를 해결할 진정한 전략 수립은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선언문에는 농가구들과 소농들의 역할, 그리고 "토지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함으로써 "농업과 농촌 개발"을 지속가능한 경제 개발의 중심에 놓겠다는 것과 "도하 라운드에서 밝히고 있는 균형 있고 포괄적인 원대한 결론에 도달 하겠다"는 두 가지 모순되는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두 정책은 농업 시장을 자유화하고 자연 자원을 사유화함으로써 소농중심의 농업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WTO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선언문은 또한 제안된 "식량 농업 글로벌 파트너쉽" 창설을 지지하는 한편, 식량과 농업 정책에서 FAO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두 입장은 양립할 수 없다. UN이 작금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글로벌 파트너쉽을 대표하는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기존의 기구들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율배반적 내용 이외에, G8은 수 년 동안 명백하게 드러났던, 밀레니엄 개발 목표의 하나인 2015년까지 기아 인구를 50%로 줄이는 계획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이는 오랫동안 G8이 남반구 나라들에게 강요했던 정책들에 대한 분명한 대답인 것이다.

지속가능한 소농들과 가족농을 중심에 놓는 진정한 정책은 자유 무역 의제와 글로벌 파트너쉽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의 일할 권리와 먹을 권리를 보호하도록 하는데 있다. 기아와 영양부족에 가장 시달리는 이들은 세계 노동 현장의 50%를 대표하는 농민들이다.

이번 주 트레비소에 모인 국제농민단체인 비아 깜페시나의 대표단들은 대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계 소농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전세계 정부와 국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스스의 농업 시스템을 규정하고 보호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반구와 남반구간의 농업 수출 모델을 지속가능한 가족농에 기반한 지역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 모델로 전환시켜야 한다. 식량주권을 위한 이탈리아 플레폼(Italian Platform for Food Sovereignty)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참여한 말리 농민단체인 CNOP의 이브라힘 콜리발리 대표는 "아프리카는 스스로 먹여 살릴 수 있다. 부자 나라들의 불법 집단이 강요하는 국제적 농업 정책은 필요 없다. 국제농업 정책을 결정한 권한이 G8에게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2009년 4월 21일(화), 이탈리아 트레비소
[전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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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위기-테러 봉쇄를 위한 결집을    2009/07/18 11:52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laykorea/4086761
파키스탄이 테러의 확대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미 오바마정권의 군사 고문을 맡는 키르카렌씨는 "이대로 사태가 추진되면 파키스탄은 수개월 이내에 붕괴한다"라고 경고했다. 클린턴 미국무장관도 의회 공청회에서, 아프가니스탄의 구정권 탈레반이 이웃나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근처까지 세력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에 강한 염려를 표명했다.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지원이 급선무다.

파키스탄 전역에 세력을 확대중

탈레반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과격파가 아프간 국경의 지배 지역을 넘어 파키스탄 각지에 세력을 확대하고 있고, 정치나 경제 기능의 집중하는 북부의 펀잡주를 거치고, 남부의 대도시 카라치에도 침투하고 있다.

펀잡주의 거점 도시 라호르에서는, 경찰 훈련 관련 시설이나 외국의 크리켓 팀이 탄 버스가 무장 집단에 습격되었다. 파키스탄 정부의 통치가 미치지 않고 있다, 알카이다나 탈레반의“성역”이 되고 있는 북서의 변경 부족 지역에서는, 현지의 부족 지배자가 테러 공격을 무서워해 무장 세력과의 사이에 이슬람법을 도입하는 대신에 평화 합의를 하자는 곳도 나왔다.

테러 확대의 원인에 대해서도, 키르카렌씨는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양역으로의 탈레반의 제휴를 들고 있다. 아프카니스탄간의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사는 파키스탄의 바르치스탄주의 주 도쿠엣타로 이동하여, 동지인 탈레반 지도자 메쥬드사와 화해를 하고, 오사마 빈 라덴 지원의 공동투쟁을 맹세했다. 미군의 아프카니스탄 작전 확대에 의해서, 과격파가 파키스탄으로 도망치고 대도시를 포함한 파키스탄 전역에 테러 활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문제는, 파키스탄 정부의 대응력이다. 자르다리 대통령의 정권 기반은 약하고, 정정 불안이 계속 되고 있다. 게다가, 군의 정보 기관(ISI)은, 과거의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대항하기 위해, 탈레반을 기른 경위로부터, 탈레반에 동정적이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ISI를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했고, 파키스탄군의 테러 작전의 정보가 테러 집단에 누설되고 있다고 한다.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파키스탄 국민은, 미군의 대테러전, 특히, 주민에게 사상자를 낸 파키스탄측으로의 월경 공격을 반이슬람의 싸움으로서 반미 감정을 높이고 있다. 학교에서는 공공연하게 자폭 테러를 기리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이 붕괴하면,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으로의 패전할 경황도 아닌 비극이 된다. 특히, 과격파의 손에 핵병기가 건너면, 세계가 가장 무서워하는“핵의 자폭 테러”라고 하는 악몽도 예상된다.

미군은 이라크로부터 병력의 일부를 아프간에 돌릴 방침이지만, 군사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테러의 근절에는 과격파를 길러 온 빈곤의 해소도 급선무다. 그 의미로, 앞서 도쿄에서 열린 파키스탄 지원국 회의에서 국제사회가 파키스탄 안정을 위해 향후 2년 동안 50억달러 이상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경제 지원이 정해진 것을 환영해야 한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4월 17일 도쿄에서 개최된 파키스탄 우방국 각료회의(Ministerial Meeting of the Friends of Democratic Pakistan: FoDP) 및 파키스탄 지원국 회의(Pakistan Donors Conference: DC)에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는 미국, 한국, 영국 등 20여 개 국가와 유엔, 세계은행, IMF 등 10여 개 국제기구에서 대표단을 파견했다. 미국 홀 브룩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특사를 비롯 각료들이 참석했다.

당연히 많은 지원을 표명해야

우리 나라는 대형 지원을 표명해야 하고, 미국 관계나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서 보고 당연한 지원을 해야 한다.긴급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파키스탄 지원에 각국은 한층 더 결집해야 한다.

[말레이코리아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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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해상 도발    2009/07/18 11:50 추천 0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malaykorea/4086757
국제수역내 美측량선 잇단 위협
오바마행정부 적극대응 나서야

중국 하이난 섬에서 남쪽으로 대략 110㎞ 떨어진 국제수역에서 작전 중인 해군 측량선 임페커블호의 민간인 승무원들의 활동을 중국이 방해한 것은 국제해양법의 중대한 위반이다. 중국의 배타경제수역에 포함되는 국제수역에서 활동 중인 측량선의 활동 방해는 “해상의 자유”의 개념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다.

또 다른 비무장 미 해군 측량선이 얼마 전 활동 방해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 해군의 비무장 측량선 보우디치호가 2008년 9월 서해의 국제수역에서 작전 중 중국 측의 방해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기사는 중국 항공기 한 대와 전함들이 보우디치호에 가한 공격적 행동을 상세히 전했다. 이 기사는 미국 측량선이 다시 중국 해역에 들어올 경우 침몰시킬 것이라고 끝맺었다. 이런 도발적인 발언은 외면해서는 안 되며 항의를 해야 한다.

중국이 임페커블호의 측량 활동에 그처럼 강력한 반응을 보인 것은, 중국의 핵 탄도미사일을 장착한 잠수함 및 공격용 잠수함 함대가 지하 기지에 대기하고 있는 하이난 섬에서 불과 110㎞ 떨어진 해상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 해역에 들어간 미국 측량선은 관행을 충실히 지키는 한편 어떤 도발행위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하이난 섬 부근의 해저를 측량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술 발달로 잠수함의 엔진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상황에서 해저 환경을 파악하는 것은 대 잠수함 작전의 필수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이난 섬에서 출동하는 중국 잠수함들은 말라카 해협에서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등 미국의 우방국들로 연결되는 중요한 해저 통신선을 차단할 수 있는 최신 역량을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해양조약법에 서명했으나 조약 내용을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자국의 배타경제수역 내에서 다른 나라 해군이 군사 활동을 벌이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미국과 다수 해양 국가들은 중국의 선언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의 예비역 해군 중장 오타 후미오는 최근 발표한 논문 “일본과 중국 간의 분쟁 예방과 신뢰 구축 대책”에서 중국이 1974년 이후 해상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패턴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필리핀의 기지 사용협정이 1991년에 끝나고 1년 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몇몇 섬들을 자국 소유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불법적 행위다. 중국은 1996년에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불법적으로 선언했다.

중국이 동중국해를 넘어 일본의 배타경제수역에 빈번하게 들어와 해상 정찰활동을 벌이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중국 정부는 상대방의 배타경제수역에서 작전을 벌일 경우 사전에 통보하는 내용의 협정을 2001년에 맺었다. 그러나 중국 정찰선들은 이 협정을 빈번하게 위반하고 있으며 2004년의 위반 건수는 18건에 달한다.

사전 통보의 의무화는 배타경제수역을 포함한 국제수역의 “통행의 자유” 원칙을 위반하는 처사다. 미국과 구소련은 해양협정 체결 때, 상대방의 배타경제수역 내에서 벌이는 작전을 사전 통보하는 조항을 포함시킨 적이 없다. 인정된 영해 외에는 성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 하이난 섬 근해와 같은 주요 수역에서 실시하는 합법적인 측량활동을 취소할 경우, 미국과 일본을 표적으로 삼는 중국의 핵 탄도미사일 잠수함 함대가 남중국해를 안전지대로 활용하게 된다.

미국은 자국을 겨냥한 러시아의 핵 탄도미사일 잠수함 함대가 북극해를 안전지대로 삼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핵미사일을 안전하게 배치하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미래의 대결국면을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생각한다면 중대한 오산이 될 것이다. 중국의 해상 도발에 오바마 행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바이든 부통령이 예언했듯이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시험을 받고 있다.

제임스 라이언스 前 美 태평양함대 사령관

A new challenge at sea
James Lyons

China's harassment of the civilian crewed U.S. Navy survey ship Impeccable operating in international waters approximately 70 miles south of Hainan Island was unprovoked and a flagrant violation of recognized Law of the Sea regulations. Their harassment of a survey ship operating in international waters within China's claimed Exclusive Economic Zone (EEZ) is a direct challenge to the "freedom of seas" concept.

There may have been another recent incident involving an unarmed U.S. Navy survey ship. A Chinese Communist Party newspaper recently reported on a similarly serious incident involving the unarmed USNS Bowditch survey ship in September 2008, operating in international water in the Yellow Sea area. This article cites the "Gazette of Marine Administrative Law Enforcement" published by China's State Oceanic Administration said U.S. survey ships in Chinese waters may be sunk! The article went on to describe the aggressive actions of Chinese aircraft and warships against the Bowditch. It concluded by stating that if a U.S. survey ship enters China's sea again, China will sink it! Such provocative statements cannot be ignored or go unchallenged.

China has reacted so strongly to the USNS Impeccable survey operations because it was within about 70 nautical miles of Hainan Island, where China now bases its new nuclear ballistic missile submarines as well as attack submarines in underground submarine pens. Our operations there were not provocative and were within accepted norms.

It is essential that we continue these hydrographic operations so that we better understand the maritimeenvironment as it is a critical component for Anti-Submarine Warfare (ASW) operations, given that submarines are getting quieter. Submarines operating from Hainan Island will have an advanced capability to interdict the critical sea lines of communications from the Straits of Malacca to our key allies in the region, including Japan, South Korea, Taiwan and the Philippines.

While China is a signatory to the Law of Sea Treaty (LOST), it has chosen to interpret the treaty in a suspect way and has made claims for itself that forbid military and intelligence collection by foreign navies in its declared Exclusive Economic Zone. Of course, the United States and many other maritime nations do not accept such declarations by China.

It should be noted that these illegal declarations helped convince President Reagan to refuse to sign the "Law of the Sea Treaty." The United States contends that the right of its ships and aircraft to transit through or operate in the EEZs is the same as their rights on the high seas, including surveying and intelligence collection.

In his recent article "Conflict Preven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between Japan and China," retired Japanese Vice Adm. Ota Fumio notes how China has demonstrated a pattern of maritime expansion since 1974. When the United States terminated its base arrangement with the Philippines in 1991, China in 1992 passed a law unilaterally (and illegally) declaring sovereignty over various disputed islands in the South China Sea including the Paracels, Spratlys, Taiwan - and Senkaku, which belongs to Japan. In 1994, China built a facility on the Philippines Mischief Reef. In 1996, China "illegally" laid claims to the entire South China Sea.

It should be noted that China has frequently conducted ocean surveillance and survey operations in the Japanese EEZ beyond the East China Sea. In 2001, the governments of Japan and China reached an agreement that China would notify Japan when Chinese survey ships were to conduct operations in the Japanese EEZ. The implication is that Japan would similarly notify China. However, even with this agreement there have been numerous violations by Chinese surveillance ships in Japan's EEZ. In 2004, there were 18 such violations.

A prior notification requirement is a direct infringement on the established principle of "freedom of transit" in international waters including the EEZ. In our Incidents at Sea agreement with the Soviet Navy we never included a prior notification clause for operations in declared EEZ. There were no sanctuaries other than recognized territorial waters.

If we withdraw and cease our legitimate survey operations in these important areas of concern, it will be a clear signal that the South China Sea will become a safe haven for Chinese nuclear ballistic submarines targeting the United States and Japan.

The U.S. Navy did not and does not allow Russia's northern waters to be a safe zone for Soviet/Russian nuclear ballistic missiles aimed at America. Therefore, there is no legitimate reason we should let the South China Sea become a "safe haven" for China to launch ballistic missiles at the United States or our allies.

The United States as it should has protested this recent Chinese provocation. However, if we think avoiding future confrontations will cause problems to go away, we are making a serious miscalculation. Make no mistake, our friends, allies and potential enemies throughout the world are watching how the Obama administration responds to this provocation. Mr. President, as Vice President Biden predicted, you are being tested.

Exclusive Economic Zone:배타경제수역 Law of the Sea Treaty:해양조약법

[출처: 워싱턴타임스·정리=오성환 세계일보 외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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