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년 인도를 떠난 동인도회사 선박 3척이 아프리카 소말리아 부근에서 해적을 만났다. 해적 두목은 배를 턴 뒤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배에 적의가 없지만 배고픈 부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해 달라. 언제나 영국인의 친구인 헨리 에버리가.’ 에버리는 1년 뒤 대포 46문이 달린 해적선 ‘팬시’를 이끌고 무굴제국 황제의 배를 습격해 1억5000만달러어치를 챙기고 잠적했다.
▶1600년대 들어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잇따라 생기자 지중해와 카리브해 해적들이 앞다퉈 인도양으로 달려왔다. 금은보석 향료 실크 도자기를 싣고 인도와 유럽을 오가는 두 회사 선박이 사냥감이었다. 1730년까지 이어진 ‘해적 황금시대’는 영국 해군이 나서서야 끝났다. 영국 법원은 붙잡힌 해적을 끔찍하게 처형해 본때를 보였다. 아라비아해부터 마다가스카르까지 누볐던 윌리엄 키드의 시신은 쇠창살에 가둬 템스강변에 2년이나 전시했다.
▶15일 한국인 4명을 비롯해 선원 24명을 태운 한국 원양어선 두 척이 소말리아 모가디슈해안 북동쪽 210마일 해상에서 해적에게 끌려갔다. 작년 4월 동원호 선원 25명이 해적들에게 납치당했던 곳이다. 국제상공회의소 국제해사국이 말레이시아 남쪽 말라카해협과 함께 양대 해적 소굴로 꼽는 곳이 소말리아 해안이다. 수에즈운하를 오가는 상선과 아라비아해를 빠져나온 유조선이 붐비는 해상교통 요지다.
▶소말리아는 정정이 불안해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가 게릴라 훈련기지까지 만들 정도다. 해안선도 3300㎞나 돼서 해적이 활개치기에 맞춤하다. 소말리아 해적은 볼보엔진 달린 선박을 몰고 다녀 ‘볼보스’로 불린다. 해골 깃발과 칼 대신 로켓추진 수류탄, 아카보 47소총을 들이대며 유조선부터 유람선, 유엔 선박까지 닥치는 대로 턴다. 선원은 몸값 받아내고 배는 새로 칠해 팔아먹는다.
▶외교부는 허약한 소말리아 정부 대신 인근 케냐와 탄자니아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중국,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피해국과 공동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해적들은 주로 공해(公海)에서 일을 벌여 국제공조가 어렵다. 아프리카 해적이 제일 좋아하는 ‘봉’이 한국과 일본 선원이라고 한다. ‘공정가’ 50만달러를 군말 없이 빨리 내기 때문이란다. 정 안 되면 이달 말 진수되는 동북아 최강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