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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연재소설 -121] 푸른눈물
3장 3. 구경꾼들
물소리를 내지 않는 강이 깊은 법이다.
리진은 콜랭의 팔을 놓고 센 강물이 코앞에 보이는 둑에 앉았다.
―로즈 제독이 강화도에 함대를 몰고간 건 조선에서 선교사들이 처형당했기 때문이오.
―알고 있어요, 콜랭.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는 뼈아픈 일이에요, 콜랭. 남의 나라에 선교를 나와 처형당한 선교사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아파요. 그러나 당시의 조선 나랏법으로는 선교활동이 국법을 어기는 일이었다는 거…. 당신은 외교관이니까 그쯤은 알고 있겠죠. 악법이라고 해도 어쨌든요. 그렇다 하여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쳐들어온 건 침략이잖아요.
―진!
―당신이 어찌 생각하든 내 생각은 그래요, 콜랭.
센 강 위의 다리들 중 가장 오래된 퐁네프 다리 기둥마다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이 황혼빛에 물들어 갔다. 손만 뻗으면 강물이 손에 닿을 듯했다. 조선을 두고 일본과 청나라와 러시아 그리고 구미의 열강들이 힘겨루기를 할 때마다 노심초사하던 왕비의 얼굴이 출렁이는 물위로 떠올랐다. 리진은 강물 속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왕비의 얼굴은 지워지고 차가운 센 강물만 리진의 손등을 적셨다.
콜랭은 벽오동 나무가 자라고 있던 조선의 공사관에서 직지(直指)를 한장 한장 아껴 가며 읽던 밤을 떠올렸다. 콜랭이 직지를 손에 넣어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에게 보낸 일을 리진이 알면 그녀의 낯색이 어떻게 변할는지. 콜랭은 지레 큼,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었다. 조선에서의 어느 날이던가. 조선사람들 사진도 찍을 겸 장터의 서책가에 나갔다가 길거리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읽어 주는 전기수(傳奇?)를 만났다. 보통 장터에서 이야기책을 읽어 주고 돈을 받는 전기수들은 젊은 사내인데 그날 만난 전기수는 다 떨어진 짚신을 신고 있는 중늙은이였다. 목소리가 구수해서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상당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콜랭은 중늙은이 전기수가 옆에 쌓아 놓고 팔고 있는 서책들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한 권씩 내려놓으며 살펴보다가 맨 마지막에서 직지(直指)를 발견했다. 금속활자로 찍어낸 서책이라는 것에 놀랐고, 137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란 콜랭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조선돈을 다 꺼내놓고 직지를 들고 왔다. 콜랭이 오래된 조선 서책들을 사들인다는 소문은 도성 바깥까지 퍼져 장서들을 한무더기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오는 이들이 있었으나 그리 귀한 책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강변에서 올라와 일요일마다 꽃과 새를 싸게 파는 시장이 열리는 광장 쪽으로 걸었다.
조선 서책을 수집해 파리의 동양어학교에 보내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리진이라 콜랭은 직지를 손에 넣은 기쁨을 그녀와 함께 나누지 못했다. 직지는 본래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 같이 보아야 할 책이었다. 그날 콜랭이 구한 건 하권뿐이었다. 공사관에 돌아와 살펴보니 첫 장이 결락되어 있어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금속활자의 크기와 글자의 모양이 고르지 않고 들쭉날쭉하기도 했다. 간혹 목활자가 섞여 있기도 했고 어떤 것은 같은 글자인데 모양이 다르기도 했으나 귀한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직시하게 되면 그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콜랭은 수많은 불서의 법어와 문답들 중에서 중한 것만 채록되어 있는 금속활자본 직지의 가치를 알아줄 만한 이를 찾았다. 그가 앙리 베베르였다. 통역관 최 베드로와 함께 직지의 상권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손에 넣지 못한 아쉬움이 콜랭에겐 아직 남아 있다.
센 강변으로 새를 팔러 가는 것일까? 조롱이 매달린 긴 장대를 어깨에 멘 새장수가 지나갔다. 길린! 조롱에 시선을 주고 있던 리진이 서글프고 다정한 목소리로 콜랭의 조선 이름을 불렀다. 레핀 광장 주변의 웅장한 건축물들과 그 사이사이 드높이 솟아 있는 성당의 탑들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란히 걷던 콜랭이 걸음을 멈추고 리진의 어깨를 안았다. 나는 누구일까? 조선에서는 해 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멀어져 가는 새장수를 바라보는 리진의 검은 눈동자에 우수가 실렸다.
입력 : 2006.11.01 00:35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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